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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옛날 옛적 로마에서 봅, 로버트의 아들 테베레강의 할리우드 ‘로도스의 거상’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 ‘옛날 옛적 서부에서’ ‘석양의 갱들’ 막간극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어떤 영화 역자후기 참고도서 영화목록 찾아보기 |
Christopher Fray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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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레오네)에게 가장 위대한 서구의 작가는 호메로스였다. 그는 영웅들의 공적에 관한 우화 같은 이야기들을 남겼다. 곧 아킬레스, 아약스, 아가멤논 등인데, 이들은 게리 쿠퍼, 버트 랭커스터, 제임스 스튜어트 그리고 존 웨인의 원형들이었다. 호메로스의 이야기는 영웅들에 대한 위대한 신화적 각색이다. 또 그의 이야기는 웨스턴의 모든 테마에 대한 원형이기도 했다. 곧 전투, 개인적 갈등, 전사와 그의 가족, 광활한 먼 곳으로 떠나는 여행, 그리고 우연이지만 카우보이에 관한 것까지 포함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리스의 영웅들의 짧은 삶은 창과 칼에 대한 재능에 달려있다. 반면에 카우보이들은 얼마나 빨리 총을 뽑는가에 따라 생존이 달려있다. 기본적으로 이건 같은 이야기이다.”
1장, ‘옛날 옛적 로마에서’ 세르지오 레오네에게 영화 만들기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비슷한 것이 됐다. 그의 영화에는 보통 정교한 플래시백이 등장하는 데, 이는 우연이 아니다. 레오네의 플래시백은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조금씩 초점을 맞춰 나간다. 1973년 레오네는 “플래시백의 기능은 프로이트적”이라고 말했다. “미국인들은 플래시백을 너무 엄격하게, 또 폐쇄적으로 이용했다. 그건 실수였다. 플래시백은 그냥 부유하게 해야 한다. 상상처럼, 꿈처럼 말이다.” 1장, 옛날 옛적 로마에서 레오네는 치네치타에서 강하게 훈련받은 입장에서, 자신이 배웠던 학습 내용을 정리했다. “만약 당신이 당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는 조감독이라면, 여러 감독과 일해보는 것이 더 낫다. 왜냐면 당신이 한 감독과, 특히 당신이 흠모하는 한 감독과 일하게 되면, 결국에 당신은 당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위대한 미국 감독과의 작업만이 빛나는 경험이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냥 여러 감독과 일해보기를 권한다. 우선 내가 협업했던 이탈리아 감독들은 옛날 영화 방식으로 일했지만, 자기 일에 전문가였다. 자신들이 뭘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미국 감독들과 일해보는 것도 좋았다. 왜냐면 미국 감독처럼 일하면 영화 만들기가 더 쉽다. 당신은 큰 예산을 쓸 수 있고, 엄청난 필름을 이용할 수 있으며, 여러 대의 카메라를 동원하고, 치열하게 일하는 여러 스태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3장, ‘테베레강의 할리우드’ 레오네의 웨스턴 데뷔작인 ‘황야의 무법자’의 담론은 그가 주장한 대로, 장르의 법칙과 역사적인 결별을 하는 것이었다. “나 이전에, 여성을 배제하면 웨스턴 자체를 만들 수 없었다. 주인공이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폭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리얼리즘에 관련해선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아도 됐다. 그래서 주인공들이 마치 패션모델처럼 옷을 입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부정적이고 더러워 보이는 영웅을 소개했다. 그는 자기 주변과는 밥 먹듯이 폭력을 행사한다.” 5장, ‘황야의 무법자’ “전설을 인쇄하라.”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에서 나온 이 유명한 대사로, 존 포드는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피터 보그다노비치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우리는 위대한 영웅이라고 생각되는 수많은 사람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신도 잘 알겠지만, 제기랄 그런 영웅은 없었다. 그래도 존경할 영웅을 갖는다는 것은 국가에 좋은 것이다.” 그런데 세르지오 레오네가 사실을 미화시킨 이유는 단지 ‘당신도 잘 알겠지만, 제기랄 그런 영웅은 없었다’라는 부분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레오네는 자신의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지옥의 인상을 강하게 심으려 했다. 레오네가 많은 자료를 모은 것은 ‘미국 역사의 짧은 기간’에 관한 홉스주의 시각, 곧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시각을 보강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가 모은 자료는 할리우드가 퍼뜨린 복음서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6장. ‘석양의 건맨’ 레오네가 말했다. “우리는 보통 패배자의 부끄러운 행위에 대해서만 듣지, 승리자의 그것은 듣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남군이 아니라, 북군의 수용소에서 일어난 참상들을 보여주기로 했다. 이것이 미국인들을 불쾌하게 했을 것이다. 미국의 남북전쟁은 거의 금기의 테마였다. 왜냐면 그 진실은 미친 짓이었고, 믿을 수 없는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의 진정한 역사는 문학으로든 영화로든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는데, 왜냐면 그것은 폭력 위에 구축됐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어떤 역사적 사건에 대한 공적인 시각에 대해 거부감을 느낀다. 내가 파시즘 아래 자랐다는 게, 큰 이유일 것이다. 나는 먼저 역사가 얼마나 조작되었는지 보려고 했다. 그래서 항상 무엇이 선전되었는지 질문했다. 나에겐 이렇게 스스로 회의하는 습관이 생겼다.” 7장, ‘석양의 무법자’ 레오네는 1950년대 초반부터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작품에 열광했다. 막스 에른스트에서 시작하여, 르네 마그리트, 그리고 조르지오 데 키리코에 이르렀다. 레오네의 평가에 따르면, “위대한 전환점을 가져온 화가는 데 키리코였다. 데 키리코가 없었다면, 살바도르 달리는 나타날 수도 없었다. 데 키리코는 미술의 역사에서 과거와의 어떤 결렬을 의미했다. 그의 새로운 발명은 초현실주의와 미래파에 길을 닦았다.” 레오네는 그들에 대한 자신의 흠모를 설명하며, 작가들이 보여준 지각의 게임, 환영과 트롱프뢰유(trompe l’œil, 실물의 착각 묘사), 그리고 기괴한 병치를 강조했다. 말하자면 ‘사물은 보기와는 전혀 다르다’라는 것이다. 7장, ‘석양의 무법자’ 레오네는 어둡고 밝은 색조를 극적으로, 또 날카롭게 대조하는 화가에 끌렸다. 그리고 흙색과 모래색을 사용하는 화가에 끌렸다. 예를 들어 고야는 질감에서(섬유, 돌, 나무, 흙 등의) 관능적인 즐거움을 끌어냈다. 또 레오네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고야는 ‘전쟁의 참화’와 ‘변덕’ 시리즈에서, 농부들의 기괴한 얼굴을 인상적으로 표현하곤 했다. 그런데 그런 그림에는 분명한 연민이 들어 있었다. 반면에 부르주아 혹은 귀족을 그릴 때, 그런 연민이 표현된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7장, ‘석양의 무법자’ 레오네는 인상주의 화가 드가의 독특한 ‘보는 방식’(way of seeing)을 강조했다. “나는 드가를 위대한 영화감독으로 바라보았다. 발레리나들의 제스처를 잡아내는 그의 방식 때문이었다.” 레오네에게 특별한 인상을 남긴 드가의 방법은 댄서들의 사적인 순간을 잡아내는 것이었다. 곧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보다는 씻고, 레슨 받고, 연습하는 순간들이었다. 덧붙여 원근법을 만들기 위해 한 명의 댄서를 저 멀리 배치하는 방식, 또 한 명을 캔버스의 옆으로 끌어내어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전면 배치하는 방식 등도 큰 인상을 남겼다. 그렇게 그리면, 인물들의 상대적으로 다른 크기 덕분에, 관객은 평면이 매우 깊다는 인상을 받는다. 레오네도 바로 이런 식으로 인물들을 잡는다. 이를테면 전신주도, 기차 궤도도 없어 원근법을 만들기 어려운 사막 장면에서 특히 그랬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서 어린 데보라가 축음기에서 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은 드가 스타일로 조명이 조절됐고, 프레임이 잡혀 있다. 7장 ‘석양의 무법자’에서 레오네는 막 제작을 마치고, ‘석양의 무법자’가 프랑스에서 개봉됐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영화의 대단원으로 마지막 장면을 항상 원형의 공간에서 마치고자 했다. 그런 공간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잔 마리아 볼론테를 죽였다(‘석양의 건맨’). 이번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일라이 월러크 그리고 리 밴 클리프가 동시에 대결했다. 이는 삶의 원형경기장이다. 곧 죽음의 순간은 진실의 순간이 되는 것이다.” 7장, ‘석양의 무법자’ ‘옛날 옛적 서부에서’의 시나리오를 함께 썼던 베르톨루치의 기억이다. “레오네는 정말 이상했는데, 이중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는 루키노 비스콘티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우아하고 호화로운 귀족 말이다. 그래서 레오네는 비스콘티가 웨스턴을 찍는 것을 상상하며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레오네의 기본 이데올로기는 소년처럼 삶을 단순하게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마치 소년이 이미지의 역동성에 접근하듯 일했다. 말하자면 레오네는 비스콘티처럼 현실에 천착한 세속적 인물이자 동시에 천재적인 사람이었다. 비스콘티는 북쪽 밀라노의 귀족 출신이고, 레오네는 로마의 프티 부르주아 출신이었다.” 8장 ‘옛날 옛적 서부에서’ 로마에서 활동하던 작가들과 감독들은 시중의 입소문에 귀를 기울였는데, 웨스턴에 자본주의 비판 혹은 제국주의 비판을 섞는 것에 흥미를 느꼈고, 상업적으로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장-뤽 고다르와 그의 협력자 장-피에르 고랭에 따르면, 뜨거운 그 시절에 “모든 마르크스주의자는 웨스턴을 만들고 싶어 했다.” 9장 ‘석양의 갱들’ 시나리오 작가 가스탈디의 기억이다. “세르지오 레오네가 내 글을 모욕했다. ‘이 장면은 축구로 치면 세리에 C야!’ 나는 아주 큰 목소리를 갖고 있고, 그래서 소리를 질러 대꾸했다. ‘너는 네가 누구라고 생각해? 세리에 A에는 펠리니가 있어. 너는 세리에 B야. 그것도 아직 챔피언이 한 번도 된 적이 없는 팀 말이야.’ 나는 폭풍처럼 화를 냈고, 문을 쾅 닫고 나와버렸다. 20일이 지난 뒤, 세르지오가 마치 하루 전에 헤어진 사람처럼 전화했다. 그가 말하길 나의 장면묘사가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세르지오는 문화가 없는 천재였다. 그는 개 같은 놈이지만, 나는 그를 사랑했다. 나는 친절하지만 평범한 사람보다 개 같은 천재를 항상 더 좋아했다.” 10장 막간극 원래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정말로 긴 영화가 될 것처럼 보였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레오네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 놓았다. 게다가 이 영화는 전개될 시퀀스를 고려할 때, 아주 비쌀 것 같았다. 그리고 만약 관객들이 탐구하고 싶은 주인공을 기대한다면, 그건 어떤 놀라움이 될 것인데, 왜냐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바로 시간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드디어 ‘개인적인 작품’이 됐으며, 이건 레오네가 15년 동안 이어온 감성적 투자의 결과였다. 11장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세르지오 레오네가 말했다. “내가 만든 것은 시간과 기억과 영화에 관한 영화다. 나의 영화는 ‘대부 1’ 혹은 ‘대부 2’가 아니다. 내 영화를 연대기 순으로 편집한 것은 볼 수 없을 것이다.” - 11장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세르지오 레오네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가 짧게 편집된 미국 판본(144분)에 대해 이렇게 한탄했다. “당신은 펠리니의 ‘8과 1/2’을 알 것이다. 만약 그 영화에서 플래시백을 들어내면, 남는 것은 펠리니가 스튜디오를 어슬렁거리는 것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절대로 갱스터 영화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판본은 그렇게 보인다. 왜냐면 미국 제작자들이 지저분한 에피소드들만 연결하여 남겼기 때문이다. 상영시간이 길어질 것 같은 영화를 줄이려고 할 때, 그 영화는 지루하게 느껴지고 그래서 더욱 길게 느껴진다. 왜냐면 그렇게 줄이면 영화는 더욱 이해하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이 영화는 레오네의 승인을 받아, 227분 판본으로 개봉됐다. 영화는 이 판본으로 1984년 10월 12일 뉴욕 필름 페스티벌에서 다시 소개됐다. 그리고 맨해튼에 있는 ‘제미니 2 극장’(Gemini 2 Theater)에서 쇼케이스로 상영됐다. 이 영화가 미국에서 재소개된 것은 말하자면 비평계의 압력 때문이었다. 레오네는 공개적으로 비평가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11장, ‘원스 어폰 어 타인 인 아메리카’에서 레오네는 상영시간에 관한 결정을 앞두고 제작사와 오랜 다툼을 벌이던 1983년 4월, 심장 문제로 건강을 크게 잃는다. 그때 그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 적이 있다. “루키노 비스콘티가 자기의 전성기 말년에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만든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건 삶과 죽음을 마주 보는 어떤 지점에 대한 성찰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바로 그런 순간을 맞이한 나에게 아주 중요한 것 같다.” 그는 그때 불과 55세였다. - 11장,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서 1984년 이탈리아 공산당 기관지 ‘루니타’(L’Unità)가 연례로 주최하는 ‘단결’(Unità) 축제에서, 세르지오 레오네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덕분에 중앙에 자리 잡았다. 레오네는 개막식 연설을 했다. “나는 많은 스크린 동지들과는 달리, 철학자로 기억되길 원치 않는다. 나는 엔터테이너로 기억되길 원한다. 혹은 철저히 잊히길 원한다. 미국에 대한 나의 관심, 그것은 보편적인 관심일 수 있는데, 오직 이야기(tale) 때문이었다. 내가 보기에 미국은 길고도 잔인한 〈천일야화〉 같다. 그래서 나의 영화에는 바그다드의 도둑들, 납치된 공주들, 야비한 마법사들, 로큰롤을 부르는 새들이 많이 나온다. 나는 셰에라자드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했고, 대중의 주목을 받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새벽에 사형선고가 집행될 것이었다.” 12장, ‘어떤 영화’에서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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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웨스턴의 선구자인 세르지오 레오네 평전이다. 이 책은 2000년에 초판이 나온 이래, 지금까지도 최고급의 평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레오네의 성장기부터 전성기, 그리고 말년의 미완성작에 대한 기록까지 거의 전 생애를 탐험한다. 웨스턴 장르는 미국만이 만들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이탈리아에서 웨스턴을 만들며, 새로운 장르, 곧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장르를 창조한 감독에 대한 존중과 그 과정에서 빚어진 시행착오까지 놓치지 않고 살피고 있다. 레오네는 독특한 연출수업을 받았다. 이탈리아에서 네오리얼리즘이 전개될 때, 레오네는 그 역사적 거장들이 아니라, 과거의 노장 감독들 아래에서 연출수업을 받으며 장인들의 솜씨를 익혔다. 그리고 할리우드가 로마의 치네치타에서 ‘벤허’(1959) 같은 시대극 대작을 만들 때, 윌리엄 와일러 같은 미국 거장들의 연출팀에서 대규모 시스템의 제작 방식을 배웠다. 이후 레오네는 자신만의 장르, 곧 ‘스파게티 웨스턴’으로 경력을 쌓는다. 이 책은 그 과정을 현미경으로 보듯 기록하고 있는데, 그럼으로써 이탈리아 무성영화, 시대극(마치스테 영화, 페플럼 영화), 네오리얼리즘, 할리우드의 웨스턴(특히 존 포드와 하워드 혹스)까지 아우르고 있다. 말하자면 이 책은 시대극과 웨스턴이라는 주제어로 쓴 세계영화사라고도 할 수 있다. 런던 왕립예술학교 총장 출신인 저자의 방대한 지식이 최고의 평전을 완성하는데 기초가 됐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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