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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로랑생의 생애
마리 로랑생의 그림과 글 옮긴이의 말 연보 |
Marie Laurenc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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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대해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는 듯합니다. 그건 제가 그림을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수업을 듣는 것이든 데생이나 바느질을 하는 것이든, 제 바람에 대해서 미리 입을 놀리면 그 바람은 결코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주 어렸을 때 이미 깨달았답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후로는 일종의 미신처럼 그림에 대해 말하지 않으려고 언제나 애썼어요.
-18쪽, 〈추억에 관한 강연〉 중에서 저의 변변찮은 앎은 모두 저와 동시대를 사는 위대한 화가들인 앙리 마티스, 앙드레 드랭, 조르주 브라크에게 빚진 겁니다. 그들은 제가 그네들의 이름을 언급하는 걸 반기지 않을 테지만 사실이 그래요. 가르멘의 곡에 비유하자면,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아도 나는 당신을 사랑해”라고 표현할 수 있겠네요. -43쪽, 〈추억에 관한 강연〉 중에서 어제는 신경쇠약증에 걸린 젊은 출판인이 왔어요. 사교계 인사로, 남은 재산 모두를 책에 쏟아부은 사람이죠. 어리석지는 않아요. 그가 던진 말이 절 두려움에 휩싸이게 했거든요. “나이 듦을 혐오하시는군요.” 제 정곡을 찌른 거예요. 나이 듦이란 신체적으로 약해지는 게 아니라 정신이 무기력해지는 것이고 사람에게 환멸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요즘 제게는 꾸밈없고 솔직한 여자친구 한 명만 있으면 돼요. ‘황소’같이 얼빠진 남자들은 지긋지긋해요. 그런데도 점심 식사 초대를 받아들이긴 했지만요. -54쪽, 〈비아트리에서〉 중에서 제가 작업을 하는 건 자유롭기 위해서예요. 세계는 원처럼 절 둘러싸고 있어요. 그래서 전갈자리인가 봐요. 포위된 건 아니지만 원 안에서 둥글게 꼬리를 말고 있는 전갈인 셈이죠. 어떤 화가의 전시회를 보러 갔어요. 얼마나 슬펐는지…. 누군가 죽은 걸까요? 그가 묘사한 인물들의 눈. 그의 병적인 기억은 무엇 때문인 걸까요? 진정한 슬픔, 진정한 우울은 삶의 보배이기도 한데 말이지요. 저녁이면 일찍 잠자리에 듭니다. 침대에 누운 채 나무 꼭대기와 그 너머 구름을 바라봅니다. 그럴 땐 모르핀에 취한 것 같은 기분이에요. 모르핀이 온몸에 퍼지면 저는 곧 잠에 듭니다. -98쪽, 〈1925년 8월〉 중에서 아아, 눈을 뜨고 그 눈으로 바라보기만 해도 된다면 전 얼마나 건강할까요? 귀로는 나무들의 소리를 듣고, 입으로는 먹고, 코로는 호흡하기만 한다면. 그러면 숲속에서 두 다리 붕 뜬 채로 날아다니며 두 팔을 뻗어 공들을 잡으러 다니겠죠. 한순간도 질리는 법 없이, 노래를 부르면서 말이죠. 보리수를 바라봅니다. 날씨가 좋을 때 작업하는 당신의 삶보다 멋진 삶은 없을 거예요. -110쪽, 〈1925년 8월〉 중에서 누가 뭐라고 하든, 여성은 남성과 달라요. 여성은 재능이 있고, 일할 수 있지만 그렇기에 더 예민하고 고통에 사무쳐 은신처를 찾으려 합니다. 약동하는 여성들, 길 위를 달리는 여성들, 주체적인 여성들. 전 그녀들을 바라봅니다. 여행을 떠날 거예요. 이탈리아… 로마…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에 떠날 생각이에요. 재능이 있다는 건 특별하고도 가치 있는 사건이에요. 하지만 과한 칭찬에는 의심을 갖게 돼요. 미스 P가 수술 끝에 결국 병원에서 숨졌어요. 그녀는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 제게 매우 다정한 편지를 짧게 남겼지요. -안녕히! 여행을 떠난다니 얼마나 좋을까. -138쪽, 〈8월〉 중에서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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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로랑생 그림 속
여성들의 향기롭고 달콤한 기교 뒤에는 억눌린 분노가 담긴 슬픈 아우라가 숨어 있다.” -주디 시카고Judy Chicago, 미술가 20세기 초 화려한 아방가르드 시대의 주류 바깥에서 여성적 감수성이 하나의 완결된 미학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현대 미술의 독보적인 시선, 마리 로랑생 세계의 결정판! 피카소, 마티스, 조르주 브라크 등 입체파의 거친 직선과 야수파의 강렬한 원색이 격돌하던 20세기 초 파리의 화단. 그 역동적인 남성 중심의 예술 세계 한복판에서 마리 로랑생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부드러운 곡선과 몽환적인 파스텔 톤을 선택해 자신만의 고유한 화폭을 구축했다. 사생아라는 낙인과 제1차 세계대전이 불러온 망명길, 그리고 여성 예술가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직업인’으로서의 자리까지, 지난한 현실 정치의 격랑에도 끝내 붓을 놓지 않았던 그는, 삶이 자신을 밀어낼수록 색채를 더 옅게 풀고 윤곽을 흐림으로써 현실의 중력으로부터 한 뼘 떠 있는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했다. 책 『죽었다기보다 잊혀졌어요』는 로랑생이 남긴 유일한 저서인 『밤의 수첩』을 편역하고, 95점의 생생한 도판을 더해 새롭게 구성해 오직 그만의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세계를 오롯이 복원했다. 페이지마다 가득히 담긴 그림과 화폭 뒤에 감춰져 있던 불안과 고독의 문장들은 그 안에서 깊이 공명하며 로랑생을 불러낸다. 그의 세계를 완벽히 체험하고 소장하는 단 하나의 책이다.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기보다 쫓겨났어요. 쫓겨났다기보다 죽었어요. 죽었다기보다 잊혀졌어요.” 오직 자기 자신으로 존재했던 예술가, 마리 로랑생의 유일한 목소리를 복원하는 일 책에 수록된 글들은 마리 로랑생이 남긴 유일한 산문집, 『밤의 수첩』의 일부이다. 화려한 파리 예술계에서 ‘뮤즈’라는 박제된 이미지 뒤에 숨겨진 한 예술가의 내밀한 기록인 그의 글 안에는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렸던 한 예술가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폭력의 시대 한복판에서 때로는 침묵했고 때로는 모호한 태도를 보이며 때로는 오해를 감수해야 하기도 했지만, 그는 예술로 현실을 초월하고자 했다. 책에 실린 그의 문장들은 그림을 설명하는 부록이 아니다. 현실 정치의 가혹함 속에서 길어 올린 불안과 결핍, 창작의 고통과 즐거움을 있는 그대로 적어 내려간 로랑생의 삶의 흔적이다. 또한 옅은 색채 속에 감춰져 있던 한 인간의 빛과 그늘, 자신의 예술적 자의식을 증언하는 귀한 자료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가 마리 로랑생을 다시 조명하는 것은 단순히 한 시대의 화가를 추억하는 행위는 아니다. 오랫동안 남성 중심으로 기록되어 온 미술사의 견고한 결을 다시 짚어보는 일이며, 그 중심부에서 ‘여성적’이라는 이유로 주변으로 밀려났던 감수성이 어떻게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가 되었는지를 복원하는 과정이다. 주류 미학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색채를 지켜낸 그의 삶은 현대인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긴다. 따라서 마리 로랑생을 다시 불러내는 일은 결국, 잊히거나 주변으로 밀려났던 여성 예술가들의 자리를 되찾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를 복원하는 행위인 동시에, 지금 우리의 시선과 감수성을 확장하는 일과도 맞닿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