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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모더니즘의 신화와 사진책들
1. 19세기 사진책의 역동성 - 안나 앳킨스의 『영국 조류 사진』, 윌리엄 폭스 탤벗의 『자연의 연필』 2. 내러티브 만들기와 ‘투명한 창’의 신화 - 유진 스미스의 포토스토리 〈시골의사〉 3. 순수한 예술이라는 생각 - 워커 에반스의 『아메리칸 포토그래프스』 4. 모더니즘 디자인의 이상주의 - 얀 치홀트와 프란츠 로의 『사진-눈』 5. 포토몽타주의 두 얼굴 - 러시아 소비에트 매거진 『건설 중인 소련』 2부 1960년대 이후의 반동 1. 주관성에 관한 관심 - 로버트 프랭크의 『미국인들』 2. 사진책의 물질성 - 에드 루샤의 『26개의 주유소』 3. 글과 사진의 몽타주 -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전쟁교본』 4. 연결점으로서의 책 - 아담 머레이와 로버트 파킨슨의 『프레스톤은 나의 파리』 5. 주관을 넘어 수행으로 - 나카히라 타쿠마와 『프로보크』 3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동시대의 몸짓들 1. 다시, 매체에 대한 질문 - 마이클 스노우의 『커버 투 커버』 2. 이미지라는 행위 - 마리엘라 산카리의 『모이세스』 3. 사진가의 수행 - 비케 디푸터의 『As It May Be』 4. 연결로서의 아카이브 - 아담 블룸버그와 올리버 차나린의 『땅바닥으로 밀려 웃으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5. 허구적 다큐멘터리 - 크리스티나 드 미델의 『이것이 증오가 한 일이다』 6. 몽타주로서의 사진책 - 존 버거와 장 모로의 사진모음 「만일 매순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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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사진책’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사진 또는 사진책이란 이러이러한 것이다’라는 식의 정의를 먼저 내려놓고, 그에 걸맞은 사례를 찾아 비교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런 시도는 뭔가를 놓칠 수 있다. 미리 정한 정의에서 벗어나는 것들을 기준에 못 미치는 결과물 로 분류하고 제외하기에 사진이나 사진책을 더 넓게 생각해 볼 기회를 잃기 때문이다. 정의나 기준을 먼저 세우지 않고 초기 사진책들을 살펴보면 어떨까? ‘기준 미달’ 또는 ‘미성숙’으로 여겨졌던 부분에서 오히려 사진과 사진책이 지닌 어떤 역동성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p.19 존 힐에 따르면 “에반스는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동안 자신이 사진의 배열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출판을 선호했다.” 원래 작가를 꿈꿨던 에반스는 한정된 기간 동안만 열리는 전시보다 영구히 보 존되는 책을 원했고, 무엇보다 사진을 보는 순서를 작가가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책을 중요시했다. 그는 사진책 『아메리칸 포토그래프스』를 만들면서 두 가지 규칙을 세웠다. 하나는 왼쪽 지면을 백지로 남겨놓고 오른쪽 지면에만 사진을 한 장씩 싣는 것이었다. 사진 설명은 사진 가까이 놓지 않고 각 부의 마지막 페이지에 모아서 실었다. 대부분 한두 단어로 이뤄진 사진 설명은 사진 속 대상을 간단히 지칭하거나 장소, 연도 등 최소한의 정보만 담았다. 또 다른 규칙은 앞에서 말했듯이 사진의 순서를 작가가 정한다는 것이었다. ---pp.50~51 로버트 프랭크의 『미국인들』은 사진가들이 객관성에 의문을 던지면서 주관성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는 변화를 상징한다. 그런데 프랭크 이전에 이미 주관성에 관한 관심이 있었다. … 프랭크의 주관성 관심은 작가의 주관적인 세계로의 안내가 아니라, 세상을 말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프랭크는 사진에 작가의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은 ‘나에게는 이렇게 보였어’라고 계속 말을 걸기 때문에 독자들은 이전처럼 사진을 투명한 창처럼 보는 데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 목소리에 반응하는 독자들은 이렇게 응답할 것이다. “너에게 세상이 그렇게 보였다면, 나는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 거지?” 그렇다면 이제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은 누군가가 바라본 세상의 객관적인 기록물의 일방향적인 전달이 아니라, 사진가와 독자가 각자 바라본 세상에 관해 서로 이야기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pp.100-101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ere)는 『해방된 관객』에서 관객이란 브레히트가 생각한 것처럼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작가와 관객을 엘리트와 프롤레타리아로 나누어 바라봤던 브레이히트의 관점을 비판한 것이다. 나아가 랑시에르는 관객들이 이미 지니고 있는 힘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브레히트와 벤야민이야말로 관객과 독자의 역할에 선구적으로 주목했다고 할 수 있다. 시선의 방향을 관객으로 돌렸다는 점과 관객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브레히트와 벤야민 그리고 랑시에르가 맞닿아 있는 지점을 생각해 보게 된다. ---p.127 마이클 스노우의 사진 중에 우리에게 꽤 익숙한 작품이 있다. 필립 뒤바(Philipe Dubois)의 책 『사진적 행위』의 표지에 수록된 〈Authorization〉(1969)이 그것이다. 스노우는 거울 앞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거울에 비치는 모습을 즉석 사진으로 촬영했다. 그리고 그 즉석 사진을 거울에 붙이고 다시 촬영하여 붙이는 행위를 반복했다. 점점 거울은 사진으로 채워지면서 거울에 비친 스노우의 모습은 사라지고, 동시에 사진에는 그 과정과 행위가 기록되어 남는다. 독자는 〈Authorization〉을 보면서 스노우가 찍은 사진만이 아니라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함께 보게 된다. 작가가 점차 사라지는 대신 독자가 그 작품 속에 자리 잡을 때, 그에게 어떤 ‘권한이 부 여(Authorization)’된 것처럼 보인다. 뒤바는 이 작업을 통해 사진이 일으키는 행위를 강조했는데, 이는 자신의 책의 주제인 ‘사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었다. ---p.162 산카리가 작업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이미지의 수행’ 혹은 ‘이미지 행위’라는 개념은 이미지가 객관적으로 저편에 미리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시작된다. 관객 또한 이편에서 홀로 관조하는 이가 아니다. 수행 또는 행위에 관한 관심은 객관/주관 중 어느 한쪽의 선택이 아니라, 그 이분법 자체를 넘어서고자 한다. 이제 우리는 예술 작품을 통해 공통의 의미를 보고 말하고 나누는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 그는 “새로운 이야기를 촉진하고 대화를 여는 의미의 창조자로서 독서 과정을 구상하려면 (사진)책을 이러한 만남의 촉진자, 즉 장치로 간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p.178 지금 동시대 작가들이 현실의 문제를 다루는 작업에 허구를 도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히토 슈타이얼은 『진실의 색: 미술 분야의 다큐멘터리즘』(2008)에서 최근의 다큐멘터리가 처한 문제를 논한다. 그는 지금 시대를 ‘보편적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부르면서 “우리가 보는 것이 진짜인지, 현실에 충실한지, 사실인지에 대한 괴로운 불확실성”만이 있을 뿐, 진실을 알아보는 일이 문제에 부딪혔다고 지적한다. 슈타이얼은 진실을 알아보는 일, 즉 ‘인식론의 전쟁’이 리얼리즘과 구성주의 사이에서 벌어져 왔다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리얼리즘 지지자들은 진실이 ‘자연적인 것’이기 때문에 다큐멘터리가 진실을 묘사할 수 있다는 모더니즘적인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p.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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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시대의 사상과 미학에 따라
등장하는 역동적인 사진책 이 책은 크게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 이후로 시기를 나누고, 각 시기별로 나타난 대표적인 사진책들을 주목한다. 그리고 사진책의 변화상을 제대로 추적하기 위해 각 시기별로 나타난 사상과 미술사조를 함께 살펴본다. 1부에서는 19세기부터 모더니즘 시기의 나타난 사진책을 선별해 역사적으로 접근한다. 그중에서 19세기의 사진집을 다룬 첫 번째 글은 사진책의 역사를 역동적인 것으로, 그 역동성 자체를 역사로 보는 것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사진책이란 원래 이런 것’이라는 기준을 먼저 정하는 환원주의의 태도로 역사를 볼 때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1부의 다른 글들은 사진가를 포함한 모더니스트 작업자들이 가졌던 근대적인 사고의 오류를 짚어보는 데 주력한다. 2부에서는 1960년대 이후 등장한 사진책 작업들이 이전 시기 예술의 흐름에 반동하는 태도들을 폭넓게 살핀다. 로버트 프랭크의 주관적 다큐멘터리 『미국인들』로 시작해 에드 루샤의 『26개의 주유소』,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전쟁교본』등 당시 출간된 주요한 사진책의 의미를 고찰한다. 그리고 일본의 프로보크 그룹 사진가들의 수행적 작업에 관한 소개로 이어진다. 3부에서는 2000년대 이후 동시대 작업들 중에서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을 중점적으로 소개한다. 마이클 스노우와 존 버거의 사진책을 로잘린드 크라우스의 ‘매체의 재창안’이나 상징 기호를 새롭게 정의하는 디디-위베르만의 생각과 함께 바라본다. 또한 3부의 다른 글들에서는, 마리엘라 산카리, 비케 디푸터, 크리스티나 드 미델 등 동시대 예술가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사진책을 적극 활용하는 사례를 살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