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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자녀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제6장 가려 계신 하느님 부록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
Nicolaus Cusa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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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략히 말해, ‘하느님의 자녀ᐨ됨’을 그리스어로 테오시스(Θεóσις)로도 일컫는 신(神)으로의 격상과 다른 것이 아닌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그대 자신은 테오시스를 ‘하느님 및 말씀에 대한 관념’ 혹은 ‘직관’이라고도 부르듯 우리의 완전성의 극치라고 믿습니다. 정말이지 나는 “한 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던”(요한 1,1; 창세 1,26) 말씀(Logos) 혹은 영원한 이성이 자신과의 닮음을 촉진하고자 사람들에게 영(靈)을 보내셨을 때 사람에게 이성의 빛을 비추셨다는 요한 신학자의 진술을 전적으로 받아들인답니다. 그(세상 창조) 후 다양한 방식으로 많은 예언자들을 보내셨고 마침내 이 세상에 ‘말씀’으로 나타나시어, 이 이성의 빛이 영을 살리는 생명이라고 선포하셨으니, 우리 이성적인 영을 통해서 만일 우리가 저 신적인 말씀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이 믿는 이들 안에서 차오를 것입니다(요한 1,1∼17 참고).
--- 「하느님의 자녀」 중에서 이교도 나는 당신이 경의를 다해 엎드려 흐느끼지 않으면서도 진심으로 사랑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는데, 묻겠습니다. 당신이 누군지? 그리스도인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이교도 당신은 누구에게 간구하는 것입니까? 그리스도인 하느님이지요. 이교도 당신이 간구하는 ‘하느님’이 누굽니까? 그리스도인 모릅니다. 이교도 모르는데 어찌 그다지 진지하게 간구하는 것입니까? 그리스도인 모르기 때문에 [이토록] 간구하는 것이지요. 이교도 모르는 그 누군가에게 마음을 빼앗긴 사람을 나는 이상하다(mirus)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 스스로 안다고 여기는(se scire putat) 그 무언가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을 나는 더 이상하다(mirabilius)고 생각하지요. 이교도 어째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인 왜냐하면 자신이 모르고 있음을 아는 것보다도 스스로 안다고 여기는 그것을 더 알지는 못하기 때문이지요. --- 「가려 계신 하느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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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황혼과 근대의 새벽을 잇는 거대한 지성
15세기 독일의 철학자이자 신학자, 법학자였던 니콜라우스 쿠자누스는 서구 지성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그는 신 중심의 중세적 세계관이 저물고 인간 중심의 근대적 사유가 태동하던 격동의 시기에 두 시대를 잇는 거대한 가교 역할을 수행했다. 이번 책 《하느님의 자녀 / 가려 계신 하느님》은 쿠자누스 사상의 핵심인 ‘인간의 격상’과 ‘신의 신비’라는 두 줄기를 집약한 선집이다. 이 책은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어떻게 무한한 절대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지, 그 과정에서 지성과 무지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를 정교하게 파헤친다. 지성의 빛으로 도달하는 신과의 일치, 〈하느님의 자녀〉 첫 번째 저작인 〈하느님의 자녀〉에서 쿠자누스는 유한한 인간이 어떻게 무한한 신성(神性)에 참여하여 ‘하느님의 자녀’로 격상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그는 인간의 지성을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도구가 아니라, 신의 모상으로서 신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역동적인 빛’으로 정의한다. 인간이 감각과 상상력을 넘어 순수한 지성의 단계로 고양될 때, 비로소 자기 자신을 초월하여 신과 일치하는 ‘테오시스(theosis)’의 단계에 이른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논지다. 여기서 쿠자누스는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한다. 신은 모든 것의 근원이지만, 인간은 자유의지와 사랑, 그리고 지성적 노력을 통해 신을 ‘닮음’으로써 하느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능동적으로 획득한다. 이는 중세의 신비주의 전통과 근대의 주체적 사유가 만나는 지점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목적이 신과의 합일에 있음을 천명하는 이 텍스트는 현대 독자들에게도 깊은 존재론적 통찰을 제공한다. 언어의 끝에서 마주하는 침묵의 절대자, 〈가려 계신 하느님〉 이어지는 〈가려 계신 하느님〉은 쿠자누스의 대표적인 대화편 중 하나로, 그리스도인과 이교도 사이의 문답을 통해 ‘부정신학(Apophatic Theology)’의 진수를 보여 준다. 제목이 암시하듯, 하느님은 인간의 언어나 개념으로 규정될 수 없는 ‘숨어 계신 분’이다. 쿠자누스는 신에 대해 무언가를 긍정하는 것보다 신이 무엇이 아닌지를 고백하는 ‘박학한 무지(docta ignorantia)’가 신성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길임을 역설한다. 책 속 그리스도인은 신을 완전히 안다고 자부하는 이교도에게 일침을 가한다. 우리가 신을 안다고 확신하는 순간 신은 우리로부터 멀어지며, 우리의 관념 속에 갇힌 우상이 되어 버린다는 사실이다. 신은 모든 존재의 근거이지만 그 어떤 존재와도 같지 않으며, 오직 ‘이름 붙일 수 없는 분’으로만 존재한다. 절대자에 대한 언어적 정의가 불가능함을 깨닫는 순간 진정한 신앙의 경외감이 시작된다는 쿠자누스의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철학적 울림을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