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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하는 청계천
서울 도심 개발과 밀려난 사람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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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북스 2026.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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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청계천 지도
청계천 개발과 투쟁 연표
책을 펴내며

1부 청계천, 시간의 강을 거슬러

1장 청계천의 과거
1. 한양 천도와 개천
2. 생산과 유통의 출발지
3. 한국 근대화의 상징
4. 청계천을 기억하는 사람들

2장 청계천을 보는 다른 시선
1. 압축성장과 청계천
2. 청계천 주변의 치솟는 땅값
3. 신개발주의와 청계천

3장 청계천 명소의 기쁨과 슬픔
1. 연예인이 살았던 동대문아파트
2. 사라진 동대문실내스케이트장
3. 화가 박수근 집터
4. 현대식 아파트 동대문맨션
5. 전태일 열사와 평화시장
6. 광교와 장교 사이 광장시장
7. 헌책방과 대학천
8. 방산시장과 성제묘
9. 세계의 기운이 모인 세운상가

4장 나의 청계천
1. 창신동 쪽방 주민
2. 벽 속의 다른 벽돌 하나
3. 예지상가 금은방 이야기

2부 개발과 저항의 시간

5장 청계천 일대 재개발 잔혹사
1. 1970년대, 아파트 아파트
2. 잘려나간 삼일아파트
3. 상인들과 가든파이브
4. 청계천과 뉴타운 재개발

6장 청계천 복원 공사와 노점상
1. 황학동 벼룩시장의 아침이슬
2. 세운상가 공구상의 죽음
3. 2003년 저항 일지
4. 가난한 이들끼리 싸우는 현실
5. 노점상 걷어차지 마라

7장 동대문운동장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
1. 1970년대의 동대문운동장
2. 축구장의 풍물벼룩시장
3. 걸림돌이 된 가난한 사람들
4. 사라진 근대 스포츠 문화유산
5. 보이지 않는 도시들, 사람들

8장 무너진 공구상가와 산업생태계
1. 청계천·을지로 젠트리피케이션
2. 제조산업문화특구 지정이 필요한 이유
3. 을지OB베어에 모이는 사람들

9장 다시, 청계천
1. 추진 체계와 절차의 문제
2. 모든 것을 쏟아부은 행정
3. 도시계획, 환경, 역사·문화적 문제
4. 사회적 약자를 외면한 공간

마치며: 청계천을 걷다
참고자료

저자 소개 1

1989년 청년단체의 문을 두드리며 사회운동을 시작했다. 노점상 단체에서 30여 년간 활동한 빈민운동가로, 현재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수석부위원장과 빈민해방실천연대 수석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가보안법과 집시법으로 여러 차례 구속과 수배생활을 했다.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현장을 지키며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는 이유는 ‘더불어 사는 사회, 차별 없는 사회’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지은 책으로 『그곳에 사람이 있다』, 『가난의 시대』,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진집으로 『청계천 사람들』, 『노량진 수산시장』이 있다. 가난을 주제로 한 글과 사진 작업, 전시와 출판을 계속하며 ‘기록하는
1989년 청년단체의 문을 두드리며 사회운동을 시작했다. 노점상 단체에서 30여 년간 활동한 빈민운동가로, 현재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수석부위원장과 빈민해방실천연대 수석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가보안법과 집시법으로 여러 차례 구속과 수배생활을 했다.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현장을 지키며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는 이유는 ‘더불어 사는 사회, 차별 없는 사회’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지은 책으로 『그곳에 사람이 있다』, 『가난의 시대』,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진집으로 『청계천 사람들』, 『노량진 수산시장』이 있다. 가난을 주제로 한 글과 사진 작업, 전시와 출판을 계속하며 ‘기록하는 빈민운동가’로 불리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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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4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96쪽 | 366g | 128*188*18mm
ISBN13
9791186036938

책 속으로

청계천에서 불과 1킬로미터 떨어진 명동의 땅값이 보여주듯, 도심 핵심 지역의 토지 가치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지가 상승은 일대 토지를 소유한 지주들의 개발 참여를 촉진하고, 그 여파는 청계천 주변 임대료 인상으로 이어진다. 그 결과 가난한 이들의 주거 공간은 해체되고, 생활 기반은 점차 밀려난다. 이는 서민의 재생산 영역에 대한 침해에 그치지 않는다. 높은 토지 가격과 임대료를 감당하고도 충분한 이윤을 확보하지 못하는 영세 상공인들은 결국 지가가 더 낮은 지역으로 이전할 수밖에 없고, 이는 생계의 불안정으로 직결된다.
--- p.61~62

이곳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허리를 펴고 걸어 다닐 수조차 없었다. 청계천 6가 쪽 고가도로 위를 차로 지나며 내려다보면, 마치 돼지우리나 닭장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밀폐된 공간에 갇힌 채, 끊임없이 울리는 재봉틀 소음 속에서 이들은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햇빛 한 번 보지 못하고 일했다. 작업 도중 화장실에 가는 일조차 주인아저씨와 미싱사들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이러한 현장을 시각적으로 뒷받침하는 기록이 노무라 모토유키의 사진이다. 노무라 할아버지는 전태일의 사망 소식을 들은 뒤 청계천 노동 현장에 들어가 직접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사진 속에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이 보이고, 작업장 한쪽에는 당시 인기 가수 나훈아의 엘피판이 놓여 있다. 그리고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빨간 옷의 청년은, 마치 전태일이 다시 살아 돌아온 듯한 인상을 남긴다.
--- p.84~85

종묘 인근에 대규모 주거지가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고, 사무 공간이 부족한 상황도 아니다. 이런 점에서 고층 건축물은 비용을 외부화하고 이익을 소수에 집중시키는 편익 구조를 지닌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이 문제는 세운상가 일대와 종묘 앞에 국한되지 않고 서울 곳곳에 해당한다. 한양도성 주변 숭인동과 숭례문 일대 창신동 역시 문화재 인근 개발 사업의 사례다.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개발을 둘러싼 욕망이 다시 불붙고 있다.
--- p.109

공방으로 돌아와 일을 마친 뒤, 공동 수돗가에서 왕방울에게 낮에 겪은 시위 이야기를 했다. 그는 잠시 듣고 있더니 자기 공방으로 나를 불렀다. 다락을 뒤지더니, 함께 일하던 형이 두고 간 책이라며 툭 건넸다. 표지에는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전태일의 삶을 다룬 책이었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이름이었지만, 그 책은 내 삶의 방향을 바꿔 놓은 계기였다. 며칠 뒤, 퇴근 무렵 수돗가에서 손톱 밑에 낀 광약을 칫솔로 문지르고 있었다. 그때 “우당탕” 발소리와 함께 “택시 불러!”라는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기사들이 왕방울을 업고 계단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떨어진 공구를 줍다 빠진 전기 코드를 발견한 기술자가 이를 다시 연결한 순간, 맞은편에서 롤러를 수리하던 왕방울의 손이 롤러에 빨려 들어간 사고였다. 손가락 세 마디가 으스러졌다. 세공사에게 손은 생명과 같다. 그 사고는 곧 생업의 끝을 뜻했다. 그날 이후 나는 왕방울을 다시 보지 못했다.
--- p.141~142

무엇보다 청계천 인근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상당수 주택 소유자도 토지보상액을 웃도는 분양가를 감당하지 못해 입주를 포기했다. 청계천 일대의 풍경도 크게 달라졌다. 1~3가에는 패밀리 레스토랑과 노천카페, 대형 생맥주 광장이 들어섰고, 2~5가로 이어지는 공구상가는 임대료가 급등했다. 6가 의류·패션상가는 한때 성장세를 보였으나 현재는 침체 상태다. 7~8가는 전통적인 벼룩시장 품목이 외형상 성장세를 보였고, 공구와 일부 잡화 업종은 현상을 유지하고 있다. 당시 양윤재 서울시 부시장에게 로비한 것으로 알려진 을지로2가 구역의 M사의 시세 차익이 천억 원대에 이른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개발이익이 3천억 원을 넘는다는 추산도 나왔다. 청계천 주변 재개발의 이익 규모를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다.
--- p.162~163

청계천 복원 공사를 전후해 추진된 뉴타운 사업은 개발 가능성이 보이는 곳마다 확산하며 강북 일대에 불을 지폈고, 서울을 넘어 전국으로 번졌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가 닥치자 한국 경제도 직격탄을 맞았다. 건설 경기가 침체하면서 뉴타운 개발 역시 잇따라 중단됐다. 청계천 복원과 맞물려 진행된 각종 투기성 개발은 부동산 욕망을 자극한 정책이었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2021년 3월 서울연구원이 발표한 「뉴타운·재개발 해제 지역 안전 관리 방안」에 따르면, 서울시 출구 전략에 따라 해제된 뉴타운·재개발 구역의 절반가량이 사실상 방치 상태로 나타났다. 뉴타운 재개발의 종착점은 2009년 1월 19일 서울 용산 재개발 현장에서 벌어진 참사로 상징된다.
--- p.170~171

이명박 서울시장이 추진한 청계천 복원 공사는 일대 상인들의 생계를 한꺼번에 뒤흔든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그 전조는 2002년 8월 23일, 세운상가 인근에서 공구를 팔던 노점상 박봉규 씨의 분신 사건이었다. 그는 단속 과정에서 압수된 리어카를 돌려받기 위해 서울 중구청을 찾았다가 격분해, 이명박 시장 앞으로 유서를 남기고 휘발유를 끼얹어 분신했다. 전신 3도 화상, 80퍼센트에 이르는 중상을 입고 영등포 한강성심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상인들과 노점상들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고 판단했고, 생존권을 둘러싼 저항이 본격화됐다.
--- p.183~184

2007년 8월 체육시민연대와 문화연대, 진보정당 등이 참여한 ‘동대문운동장 철거 반대 공동대책위원회’가 결성돼 기자회견을 열고 오세훈 시장을 규탄했다. ‘스포츠인 100인 선언’을 발표하고 시청 앞 1인 시위와 집회도 이어갔다. 그러나 여러 노력에도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 체육시설 동대문운동장은 결국 철거됐다. 그 자리에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다. 간이역이나 돌담길, 이발소, 최초의 짜장면집 보존을 요구하는 움직임은 있었지만, 동대문운동장은 지켜지지 못했다. 특정 장소에 있어야 할 것이 사라진 공간을 어떻게 기억할지는 남은 이들의 몫이다. 특히 그 공간이 역사성을 지닌 곳이라면 의미는 더욱 크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찾는 이들이 이 장소를 새롭게 해석하길 바란다.
--- p.220~221

도시는 생물은 아니지만, 성장과 쇠퇴의 흐름 속에서 구조와 기능을 달리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용도를 잃은 공간은 사라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서울을 ‘소멸’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기원전 18년 백제가 한성에 도읍을 정한 이후 이어진 시간을 설명하기 어렵다. 현재의 송파·강동 일대에서 출발해 여러 왕조와 근현대를 거치며 축적된 시간은 단절이 아니라 변형과 재구성의 연속이었다. 20여 년 전 완공된 청계천 복원 사업 역시 그런 맥락에서 평가할 수 있다.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의 주도로 추진된 사업은 도심 교통 구조와 하천 환경을 전면적으로 바꿨다. 사업의 성과는 단순히 경관 개선 여부를 넘어, 도시 구조 개편이라는 목표에 부합했는지, 장기적 도시 문제 해결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에 따라 가늠할 수 있다. 서울의 변화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어느 방향으로 수렴할지, 그 선택의 과정이 도시의 다음 장면을 만들게 된다.
--- p.256~257

청계천은 도심 한가운데 위치해 접근성이 좋다는 점이 강조됐지만, 실제 이용 환경을 두고는 다른 평가도 나왔다. 보행 약자, 특히 장애인과 노약자가 누구나 안전하게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 비춰 보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산책로로 내려가는 진입로가 충분하지 않았고, 마감재 사이의 틈과 울퉁불퉁한 바닥은 휠체어 이동에 불편을 초래했다. 경관 중심 설계가 결과적으로 접근권과 이동권을 제약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당시 장애인 이동권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던 상황에서 일부 단체는 청계천을 ‘차별천’이라 부르며 항의와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 p.277

어떤 이들은 청계천 공구상가를 굳건히 지키는 사람들을 두고, 이미 지나간 것과 낡은 것에 집착하는 고집스러운 이들, 과거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로 치부한다. 그러나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것이 쏟아지는 ‘속도의 시대’ 속에서도 수십 년 동안 촘촘히 엮인 그물망처럼 생계 터전을 닦아 온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청계천에서 만들어진 물건은 장인의 손을 거쳐 상인에게 전달되고, 이어 노점상까지 이어져 버려지는 것 없이 재생과 소비로 연결되며 튼실한 상권을 이뤘다. 오늘도 세운상가 주변의 한쪽에서는 요란한 굉음과 함께 굴착기가 고개를 들고 있고, 작은 공장 안에서는 기계가 돌아가지만, 담벼락 너머로 철거가 진행되고 있다. 다른 한쪽은 젊은이들의 명소가 되어 밤이면 불야성을 이루며 호프집과 축제 공간으로 변해 있다. 청계천은 이렇게 서울 사대문 내 개발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다.

--- p.286~288

출판사 리뷰

개발의 그늘에 지워진 삶, 청계천에서 다시 묻다
보이지 않는 서울과 복원 이후의 이야기

청계천은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상징적 공간이자, 한국 도시화의 압축된 역사가 켜켜이 쌓인 장소다. 이 책은 청계천의 변화, 특히 ‘복원’과 ‘재생’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된 정책들이 실제로는 누구의 삶을 바꾸고, 누구를 배제해 왔는지 구체적인 사례로 드러낸다. 저자를 포함해 청계천 일대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이들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도시 개발이 곧 생존과 공동체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가장 가까이에서 개발의 현장을 기록하는 이유는 서울이라는 대도시가 성장해 온 방식을 비판적으로 성찰함으로써 앞으로도 계속될 도시의 변화가 공존과 연대의 모습이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개발의 논리를 그대로 반복한다면, 생계를 잃고 터전에서 밀려나는 일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 변화의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며, 서울이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역사·문화적 맥락과 도심 산업생태계 역시 함께 보존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시에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쓰였다. 청계천에서 성장하고 지금도 그 일대에서 살아가며 빈민운동을 이어가는 저자는, 도시를 외부에서 분석하는 대신 내부에서 살아온 사람의 시선으로 기록한다. 골목과 시장, 상인과 주민의 삶을 세밀하게 포착한 서술은 독자에게 ‘사람이 사는 도시’의 구체적인 얼굴을 보여준다. 청계천과 서울 구도심에 대한 깊은 애정,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온 이들에 대한 연대의 감각이 어우러진 이 책은, 도시를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동시에 우리가 어떤 도시를 만들어가야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남긴다.

근대화의 상징이자 가난한 사람들의 터전
청계천으로 읽는 도시와 민중의 역사

1부는 청계천이라는 공간을 하천이나 도시 경관을 넘어 서울이라는 도시의 형성과 변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사회적 장으로 재구성한다. 조선시대 한양 도성의 핵심 기반 시설로서 시작된 청계천은 반복적인 준설과 정비를 통해 도시 운영의 중심축 역할을 수행했다. 물길을 관리하는 일은 곧 도시를 유지하는 일이었고, 이 과정에서 청계천은 생산과 유통, 생활이 결합된 복합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근대로 접어들며 청계천 주변은 수공업과 상업이 밀집한 지역으로 발전했고, 다양한 계층이 모여드는 도시의 핵심 생활권이 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에도 이어지며, 청계천은 산업과 노동, 주거가 뒤섞인 독특한 도시 생태계를 형성한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청계천은 피난민과 도시 빈민이 몰려들며 판자촌이 형성된 공간으로 변화한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사람들은 생계를 꾸리고 공동체를 만들어나갔고, 이는 그저 빈곤의 집합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사회적 관계망이 촘촘히 구축된 공간이었다. 저자는 당시의 생활 조건과 풍경을 구체적으로 복원하면서, 청계천이 ‘가난한 사람들의 도시’로 기능해 온 과정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곳은 노동운동과 빈민운동이 싹튼 현장이기도 했다. 전태일의 분신으로 상징되는 노동 현실의 문제, 야학과 공동체 활동을 중심으로 한 사회운동은 청계천을 단순한 생활 공간을 넘어 사회적 변화를 모색하는 장으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공간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에 주목한다. 청계천은 어떤 이들에게는 개발과 정비의 대상이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삶의 터전이자 기억의 장소였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이후 도시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중요한 배경이 된다. 또한, 동대문아파트, 세운상가, 평화시장 등 청계천 일대의 주요 장소들을 통해, 근대화와 산업화의 상징이었던 공간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했는지를 추적한다. 이들 장소는 번영과 발전의 표지이면서 동시에 철거와 재편의 대상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의 삶이 영향을 받았다.

1부 후반부에서는 저자의 개인적 경험을 서술한다. 창신동 쪽방, 예지상가 등 구체적인 생활 공간과 인물들을 통해 청계천의 일상이 촘촘하게 그려진다. 이는 거시적 역사 서술과 대비되는 미시적 관점으로, 도시를 ‘살아본 사람’의 감각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저자는 청계천을 걸으며 축적해 온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도시의 변화가 개인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보여준다. 이처럼 1부는 청계천의 역사적 변천과 생활 세계를 입체적으로 복원함으로써, 이후 전개될 개발과 갈등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한다. 여기서 청계천은 과거의 공간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도시 문제의 출발점으로 제시된다.

사라진 시장, 무너진 산업, 흩어진 삶
도시 권력과 저항의 연대기

2부는 청계천을 둘러싼 본격적인 도시 개발 과정과 그에 맞선 저항의 역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1970년대 이후 서울의 급격한 도시화와 함께 추진된 재개발 정책은 청계천 일대를 근본적으로 재편하기 시작한다. 아파트 건설과 도심 정비 사업은 주거 환경 개선과 경제 발전을 목표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기존 주민과 상인들을 외곽으로 밀어내는 결과를 낳았다. 저자는 이러한 재개발의 흐름을 ‘잔혹사’라고 표현하며, 반복적으로 발생한 강제 철거와 이주 문제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살핀다. 특히 가든파이브와 같은 대체 상가 정책이 실질적인 생계 대안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상인들의 삶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짚는다.

청계천 복원 사업은 이러한 개발의 흐름 속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제시된다. 친환경 도시 조성과 시민 공간 확대라는 명분 아래 추진된 이 사업은 대규모 공공 프로젝트로 평가받지만, 그 이면에서 노점상과 영세 상인들의 생존권이 심각하게 침해되었다. 저자는 행정대집행과 강제 철거 과정에서 벌어진 충돌과 폭력, 그리고 이에 맞선 저항의 기록을 통해, 정책 결정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어떻게 배제되었는지 드러낸다. 또한, 가난한 이들끼리 경쟁하도록 내몰리는 구조를 지적하며, 갈등의 원인이 개인이 아니라 제도와 정책에 있음을 강조한다.

동대문운동장 철거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설 역시 중요한 사례로 다뤄진다. 이 과정에서 근대 스포츠 문화유산과 풍물시장 상인들의 삶의 터전이 동시에 사라졌고, 도시의 문화적 기억과 경제적 현실이 충돌하는 장면이 드러난다. 이어지는 논의에서는 청계천·을지로 일대 제조업 생태계의 붕괴가 집중적으로 분석된다. 공구상가와 인쇄업, 기계 산업 등 오랜 시간 축적된 산업 네트워크가 재개발과 임대료 상승으로 해체되면서, 도시 경제의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상권 변화에서 산업 구조의 문제로 확장된다.

2부의 마지막에서는 도시 정책의 구조적 문제를 비판적으로 정리한다. 추진 체계의 불투명성, 행정 중심의 일방적 결정, 역사·문화·환경에 대한 고려 부족 등이 주요 쟁점으로 제시된다. 특히 사회적 약자를 배제한 채 진행된 개발이 반복적으로 동일한 문제를 낳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현재 진행 중인 재개발 역시 같은 한계를 안고 있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청계천의 사례를 통해 도시 개발을 다시 사유할 필요성을 제기하며, 앞으로의 변화가 신중하고 포괄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처럼 2부는 청계천을 둘러싼 개발과 저항의 역사를 통해, 도시가 어떻게 권력과 자본, 그리고 사람들의 삶이 충돌하는 공간이 되는지 보여준다. 동시에 오늘날과 미래의 도시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나아간다.

얼굴과 소리를 지닌 사람 사는 곳,
거대 도시 서울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 지켜야 할 것들

저자는 ‘성공한 복원 사업’이라는 청계천의 통념에서 벗어나, 그 이면의 갈등과 배제를 세심하게 드러낸다. 서울 한복판, 그것도 가장 상징적인 공간에서 벌어진 개발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여 온 변화의 서사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을 지워 왔는지 알게 한다. 도시의 변화는 불가피하지만, 그 과정에서 생계를 잃거나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 변화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도시 곳곳에서 똑같은 갈등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개발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누구도 생계를 잃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나아가 서울이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역사·문화적 맥락과 도심 제조업, 생활 생태계를 보전하는 것이다. 청계천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우리는 개발을 ‘되돌릴 수 없는 진보’가 아니라 끊임없이 성찰하고 조정해야 할 과정으로 바라보게 된다.

또한, 이 책에는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시선이 책 전반에 깊이 스며 있다. 청계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지금도 그 일대에서 살아가며 빈민운동을 이어가는 저자는 도시를 외부의 관찰 대상으로 다루지 않는다. 골목과 시장, 상인과 주민의 삶을 몸으로 겪은 사람의 언어로 기록하며, 통계와 정책 분석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복원한다. 그 결과 독자는 개발과 재개발이라는 추상적 개념 대신, 구체적인 얼굴과 목소리를 가진 도시를 마주하게 된다. 청계천과 서울 구도심에 대한 애정,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에 대한 연대의 감각은 이 책을 단순한 도시 비판서가 아니라, 인간적인 도시를 회복하려는 기록으로 만든다. 결국, 이 책은 ‘어떤 도시를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을 넘어, ‘어떤 삶을 지켜낼 것인가’를 묻는 기록이다.

추천평

청계천은 압축 성장을 거친 서울의 도시계획이 권력과 자본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어떻게 직조되었는지 증명하는 가장 명료한 현장이다. 이 책은 거대한 개발주의에 굴하지 않고 삶의 터전을 지켜낸 사람들의 투쟁을 저자의 깊은 개인적 기억과 교차해 그려낸다. 자본이 빼앗은 공간의 사용가치를 되찾아 ‘도시에 대한 권리’를 선언하고, 청계천을 뭇 생명이 공존하는 개펄로 묘사하는 대목이 감동적이다. - 강내희 (전 중앙대학교 교수)
청계천에서 살아가던 노점상과 철거민들이 폭력적으로 내쫓길 때 함께했던 순간들이 기억에 남는다. 자본주의가 기형적으로 성장하면서 노점상이 등장했고, 자본의 이익을 위한 보수 정치가 탄압에 앞장서는 걸 보면, 저항은 자본과의 싸움임이 분명하다. 놓쳐선 안 될 장면이 이 책에 많다. 청계천의 역사, 특히 가난한 민중의 삶과 역사가 궁금한 분들께 일독을 권한다. - 남경남 (전국철거민연합 의장)
20여 년 전 복원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진 철거는 그저 자리의 상실이 아니라, 오랜 삶과 존엄을 밀어내는 일이었다. 이 책은 우리와 함께 비를 맞으며 현장을 몸으로 겪은 저자의 생생한 증언이다. 동대문운동장으로, 다시 풍물시장으로 흩어진 노점상들의 궤적을 따라가며 도시 재생의 이면에 숨겨진 강제 철거와 배제를 정면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함께 살자’라는 연대의 의미를 되묻는다. - 최영찬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의장)
청계천 복원 20주년에 기념행사와 성과 자축은 있었지만, 거대한 재개발 과정에서 드러난 쟁점들은 그간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이 책은 해방 이후 청계천 일대 도시 빈민의 삶과 저자의 경험을 교차한 ‘자기-사회 분석’이다. 생태문화 공간이라는 현재 모습에 머물지 않고 청계천을 삶의 터전이자 투쟁의 공간으로 다시 보게 한 이 작업은, 지금 잊혀선 안 될 사실들을 불러낸 중요한 지적 결과물이다. - 최혁규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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