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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 대한민국 위대한 지도자: “박정희 대통령”호 중수(中樹)
제1부왜! 먼저 “국가”였는가? “시대와 선택의 조건” 제2부국가는 무엇을 책임졌는가? “국민에서 세계로” 제3부권력은 어떻게 절제되었는가? “원칙과청렴의 리더십” 제4부세계와 역사속의 평가 제5부결단으로 움직인 국가 제6부역사 앞에남겨진 선택 제 2편. 대한민국 “경영의 신”: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호 호암(湖巖) 제1부천석꾼의 아들, 책으로 세상을 읽다 제2부실패로 단련된 피 “무너짐에서 산업으로” 제3부삼성을 움직인 보이지 않는 원칙들 “전략은 조용히 준비된다” 제4부기업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사업보국과 인재제일” 제5부결단의 순간들 “전자산업, 반도체로향하다” 제6부한국 반도체의 탄생 “64K D 램에서 4메가까지” 제7부반도체를 만든 것은 ‘질문’이었다 “질문으로 경영한 사람” 제8부인간 이병철 “품격, 절제, 그리고 고독” 제9부경쟁, 갈등, 그리고 국가 “정주영과의 대비” 제10부步步是道場 (보보시도장) 제11부사람은 떠나도 기준은 남는다 제12부부전자전 (父傳子傳) 제 3편. 대한민국 “경영의 신”: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호 아산(峨山) 제1부가난은 출발선이었다 제2부맨손으로 사업을 일으키다 제3부실패는 시련일 뿐, 끝이 아니다 제4부국경을 넘다, 한국 건설의 첫 수출 제5부산업의 뼈대를 세우다 제6부속도로 국가를 잇다-경부고속도로 제7부바퀴로 나라를 움직이다 제8부거북선이 바다를 열다 제9부미래 산업을 내다본 눈 제10부사막에서 피어난 기적 제11부꽃 한 송이로 세계를 움직이다 제12부자연을 이긴것이 아니라 설득했다 “서산 간척 사업” 제13부민족을 잇는다리 제14부세계 9위 부자의 청렴 제15부정주영 어록과 인간적 일화 제16부부전자전 (父傳子傳) “이름을기억하는 힘과 원칙” 제 4편: 대한민국 “경영의 신”: 포스코 그룹(포항제철) “박태준 회장”호 청암(靑巖) 제1부운명처럼 준비된 사람 “천재, 군인, 그리고 박정희의 선택” 제2부가족과 원칙, 박태준의 인간학 제3부박정희와 국가 경영의 한복판 “철강은 곧 안보다” 제4부철강 불모지에서 시작된 꿈 “세계가 비웃던 도전” 제5부포항제철 창립 특명 “국가의 결단, 한 사람의 소명” 제6부외자 붕괴와 세계의 사망선고 제7부하와이 구상과 외교의 전쟁 “설득으로 길을 열다” 제8부공기단축 신화 “불가능을 일정으로 만들다” 제9부청암 박태준의 경영 철학 “종교는 쇠(鐵)” 제10부쇳물이 흐르다 “국가의 혈관이 열리다” 제11부박정희와의 마지막 의리 “사람으로 남은 관계” 제12부청렴결백, 그리고 유산 “권력과 부를 거절한 인생” 제13부교육으로 남긴 또 하나의 제철 “교육보국(敎育報國)” 사람을 키운 경영자 제 14부기억과 역사“철이 남긴 나라” 참고문헌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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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자원을 정치적 인기를 위해 나누는 데 사용했다면, 대한민국은 일시적 만족을 얻었을지는 몰라도 지속 가능한 국가로 성장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p.15 대한민국이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를 통해 확보한 자금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보상이라는 성격을 지니는 동시에, 국가 재건을 위한 사실상 유일한 종잣돈 이었다. 당시 일본의 외환 보유 규모와 한국의 경제적 여건을 감안할 때, 이 자금의 확보 자체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p.16 박정희는 ‘완성된 국가’를 운영한 사람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던 국가의 조건’을 만들어야 했던 통치자였다. ---p.26 한편, 한일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유입된 자금 역시 중요한 전환점으로 언급된다. 이 자금은 당초 농업과 사회간접자본에 사용하도록 제한된 성격이었으나, 정부는 이를 산업화 자본으로 전환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반발과 사회적 논쟁이 거셌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 산업 기반을 구축하는 데 활용되었다는 해석이 존재한다. ---p.30 이병철은 “¸”리는 좋지만 복이 없는 사람은 조직에 위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뛰어난 능력이 오히려 사기나 배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계한 것이다. 그래서 면접 과정에서 가장 배제하고자 했던 유형은, 능력은 뛰어나지만 신뢰가 흔들리는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다. ---p.194 1980년 이른 봄,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도쿄를 찾았다. 그는 일본 스미토모은행의 핵심 인사였던 이나베 슌페이를 만났다. 이나베는 일본 경제정책의 흐름을 설계해 온 인물로, 당시 일본 산업의 방향을 가장 정확히 읽고 있던 경제통이었다. ---p.209 정주영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쌀가게 운영 시절 쌀을 공급해 주었던 오윤근 사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정면으로 요청했다. 담보도, 보증도 없는 신용 대출이었다. 오윤근은 그의 성실함과 책임감을 알고 있었다. 결국 3천 원을 빌려주었고, 1940년 2월1일, 정주영은 마침내 자동차 수리공장을 인수했다. ---p.295 정주영은 기술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하지 말라는 이유”속에서 미래 산업의 신호를 읽어냈다. 누군가 위험하다고 말하는 곳에 그는 기회의 씨앗이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남들이 망설일 때, 그는 규모와 속도로 답했다. ---p.351 조선업의 성공은 대한민국의 국제 신용도까지 바꾸어 놓았다. 한때는 차관을 구걸하던 나라였지만, 이제는 세계 금융시장에서 ‘갚을 수 있는 나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배를 팔아 번 돈으로 차관을 갚고, 갚은 기록으로 더 큰 자본을 끌어오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 구조는 이후 반도체, 자동차, 전자산업까지 확장되는 토대가 되었다. ---p.341 윤여경과 김재관. 한 사람은 숫자와 시장으로, 다른 한 사람은 기술과 설계로 포항제철을 떠받쳤다. 이들이 만든 사업계획서는 대한민국이 중화학 공업국가로 도약할 수 있음을 세계에 증명하는 논리의 집약체였다. ---p.449 윤여경 박사는 단언했다. 김재관 박사가 없었다면 기술 도입은 수년 지연됐을 것이고, 외자 부담은 훨씬 커졌을 것이며, 설비 수준 또한 한 단계 낮아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포항종합제철의 성공은 결단의 결과이기도 했지만, 그 결단을 현실로 만든 것은 결국 사람과 전문성이었다. ---p.455 언론 역시 “이런 방식의 회사 운영은 비효율의 전형”이라며 연일 비판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나 박태준 회장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사원 복지 잘해서 망한 회사는 없다.” ---p.502 1960~70년대, 가난한 농업국가였던 대한민국은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반드시 철강산업이 필요했고, 철이 없으면 나라의 미래도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때 박정희 대통령은 결단을 내렸고, 박태준은 포항의 백사장에서 용광로를 그림으로만 본 경험을 바탕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시작했다. ---p.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