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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제1부 이재명의 정교분리는 일제의 잔재인가, 독재의 예고인가? _손현보(세계로교회 담임목사) 나는 왜 항소하는가 한 사람이 겪은 일, 그리고 이 나라의 방식 설교와 기도가 죄가 되는 과정 반복된 고발과 재판 표적 수사라는 의심 이미 짜여 있던 시나리오 법원으로 향하던 날 구속, 그리고 처음 겪는 감금 80센티미터 독방에서의 시간 벌레와 더위, 그리고 버티는 삶 감시와 통제 속의 일상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규칙 재판에서 마주한 현실 납득되지 않는 판결 존경하는 재판장님? 바깥에서 바라본 이 사건 석방, 그러나 끝나지 않은 싸움 나의 사건으로만 끝날 수 없는 이유 그래서 항소한다 2. 이재명의 정교분리는 무엇인가 권력이 종교를 다루는 방식 독재의 입구에 선 대한민국 기준이 아니라 무기가 된 법 정교분리에 대한 오해 대통령의 발언과 실제 움직임 일제가 시작한 종교 통제 참여를 허용하고 표현을 막는 구조 나치 독일에서 반복된 통제 통제는 어떻게 확대되는가 3·1운동이 보여준 다른 길 헌법에 담긴 출발점 오래된 방식의 재출현 누구에게만 적용되는 정교분리인가 같은 종교, 다른 기준 선관위와 권력의 작동 방식 지금 벌어지는 일의 의미 제2부 손현보는 왜 국민께 항소하는가 _정승윤(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예배인가, 선거운동인가: 교회 강단과 공직선거법의 경계 예배에서 선거로 법이 보는 기준 해방 이후와 현재의 기준 기준의 차이 예배의 성격 예배는 왜 선거운동이 될 수 없는가 노동조합과의 불균형 비교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균형 2. 종교 발언과 공직선거 규율의 한계 설교인가, 선거운동인가 설교의 범위 선거운동의 모호성: 어디까지가 일반적인 의견 표현인가 현실과 표현의 위축 좁게 보아야 자유가 남는다 ‘선거운동’이라는 말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선거를 묶는 법의 구조 3. 종교단체 직무를 활용한 선거운동인가? 설교와 선거운동의 경계 손현보 목사의 147일 독방 구금이 던진 질문 선거 규제의 형성과 변화 데이터로 드러난 변화, 이제는 멈출 때 독일은 왜 설교를 처벌하지 않게 되었나 자유선거를 제대로 보장하려면 대한민국의 선거 규제와 해외 사례 일제가 만든 정교분리, 아직 끝나지 않았다 헌법 제20조의 의미: 종교를 침묵시키라는 말이 아니다 종교를 막는 벽인가, 권력을 막는 벽인가 정교분리를 잘못 쓰면 자유가 줄어든다 설교의 자유와 정교분리 ‘직무상 행위 이용’의 불안정성 공정성이라는 이름 아래 줄어든 자유 4. 무엇이 부정선거운동인가? 선거법의 이상한 기준: 말은 허용, 마이크는 금지 선거기간, 침묵을 만든 법 선거사무소 공간을 둘러싼 법의 오해 사전선거운동죄: 넓어진 기준과 좁아진 자유 180일 인쇄물·게시물 규제와 침묵의 시간 5. 사법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종교 탄압 손현보 사건이 남긴 질문: 선거 관리인가, 표적 추적인가 유죄를 향해 짜인 재판 147일, 설교가 죄가 된 시간 말을 막는 법, 무너지는 자유 6. 무죄를 선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최후 변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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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으로 향하던 날,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긴장감이 팽팽한 가운데 나는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만약 내가 구속된다면, 그것은 개인의 일이 아니라 이 나라의 상태를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나는 항소를 준비하고 있다. 나는 이것을 결과를 바꾸기 위한 절차로만 보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디에서 기준이 무너졌는지를 다시 짚어야 한다고 본다. 법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그 법이 사람을 설명하기보다 규제하는 도구로 쓰일 때 그 법은 다시 확인되어야 한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한 사람이 겪은 일을 그대로 남기고, 그 안에서 드러난 방식들을 하나씩 짚어보는 것이다. 그것은 겉으로는 작은 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가볍지 않다. 그래서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항소를 통해 다시 묻고 다시 확인할 것이다. 이 나라에서 말과 신앙이 어떤 자리에 놓여 있는지, 그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를 끝까지 따져보려 한다.
--- 「한 사람이 겪은 일, 그리고 이 나라의 방식」 중에서 그런데 문제가 된 것은 전혀 다른 부분이었다. 50분의 설교 가운데 고작 1~2분, 그것도 앞뒤가 끊긴 몇 문장이 따로 떼어졌다. 그 조각이 어느새 ‘문제의 핵심’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설교 전체는 사라지고 일부 문장만 남았다. 기도도 마찬가지였다. 부목사가 드린 기도문은 공동체를 위한 평범한 내용이었다. 나라와 교회를 위해 드린 기도였다. 그런데 그 안의 한 문장만 따로 꺼내졌다. 그 문장이 따로 있는 것처럼 다루어졌다. 그때부터 기도는 더 이상 기도가 아니었다. 기도가 수사의 대상이 된 것이다. 누가 어떤 자리에서 무슨 뜻으로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기록된 문장 하나가 새로운 의미를 입었고, 그 의미는 곧바로 ‘위반’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졌다. 긴 설명과 이어진 말은 빠지고 짧게 잘린 문장 하나만 남았다. 그 문장이 다시 해석되었고, 그 해석은 그 사람을 규정했다. 그래서 더 답답했다. 나는 분명히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데, 기록에는 전혀 다른 말처럼 남아 있었다. 앞에서 설명하고 뒤에서 풀어낸 내용은 사라지고, 중간의 문장 하나만 남았다. 그 문장만 보면 내가 전하려 한 뜻과는 전혀 다른 말이 된다. --- 「설교와 기도가 죄가 되는 과정」 중에서 마르틴 니묄러는 이 시대를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목사였던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해야 할 말을 멈추지 않았고, 그 결과는 투옥으로 이어졌다. 그가 남긴 글은 지금도 많은 사람을 생각에 잠기게 한다. “처음 그들이 공산주의자를 잡아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니묄러 목사의 단순한 고백이 아니라 그 시대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한 집단에서 시작된 일이 다른 집단으로 이어지고, 결국 누구도 안전할 수 없는 과정을 담고 있다. 디트리히 본회퍼도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신앙의 자리에서 침묵하지 않았다. 국가가 요구하는 방향과 다른 말을 했고, 그 결과는 감옥과 죽음으로 이어졌다. 그의 선택은 거창한 정치 행동이 아니었다. 다만 자신의 믿음을 지키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선택은 국가의 기준과 맞지 않았고, 결국 사형이라는 처벌로 이어졌다. --- 「나치 독일에서 반복된 통제」 중에서 이 기준을 손현보 목사의 경우에 놓고 보면 방향은 분명해진다. 설교가 처벌 대상이 되려면 그것이 신앙 설명을 벗어나 특정 후보의 당선이나 낙선을 직접 겨냥했다는 점이 분명해야 한다. 신자의 눈으로 보았을 때 설교가 아니라 선거운동으로 받아들여질 정도여야 한다. 학문의 자유가 보호되어야 하듯 종교의 자유도 같은 무게로 다뤄져야 한다. 강의실이 검열의 공간이 되면 안 되는 것처럼 강단도 법으로 쉽게 재단될 수는 없다. 말의 자유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에 따라 그 사회의 수준이 드러난다. 그래서 이 문제는 한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금 기준이 어떻게 정리되느냐에 따라 앞으로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가 달라진다. 설교가 문제된다면 강의도 안전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하나가 흔들리면 다른 하나도 영향을 받는다. 결국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그리고 그 자유를 제한해야 할 때, 그 기준이 얼마나 분명한가?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면 비슷한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 「말을 막는 법, 무너지는 자유」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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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종교 자유는 있는가?
말 몇 마디로 구속영장까지 ‘법’, 기준이 아닌 무기가 되다 부산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는 어느새 ‘뉴스메이커’가 됐다.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등 악법 제정 시도에 맞서 2024년 10·27 200만 연합예배를 주도했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계엄 이후에는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의 31차례 공직자 탄핵 시도 등 각종 국정 방해를 비판하고 국가를 위해 기도하는 ‘세이브코리아 집회’를 시작했다. 그 이전 코로나19 당시인 2020년에는 예배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현장 예배를 수호하다 교회당을 폐쇄당했고, 교회 밖 마당에서 마스크를 쓴 채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그러다 2025년 9월 8일 자정이 가까운 시각, 손현보 목사는 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돼 수감됐다. 구속영장 발부 이유는 “도주 우려”. 그는 그해 3월 부산시 교육감 재선거를 앞두고 교회 예배 중 정승윤 후보와 대담을 하고, 관련 영상을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에 게재한 바 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6월, 교회에서 열린 기도회 및 예배에서 “김문수 후보를 당선시키고 이재명 후보를 낙선시켜야 한다”고 발언한 것도 문제가 됐다. 그러나 선거법 위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사례였다. 그것도 매주 또는 매일 예배를 인도해야 하는 대형교회 담임목회자를 “도주 우려”를 이유로 구속한다는 것은 1970~1980년대에도 엄두를 못 낸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손현보 목사가 시무하는 세계로교회는 사전 예고도 없이 압수수색을 당하기도 했다. 이 책 『손현보 목사의 항소이유서』는 이 압수수색 시점에서부터 출발한다. 월요일 아침 7시쯤, 교회 사무실 한쪽에 놓인 1인용 침대에서 잠시 쉬고 있던 그는 갑작스런 경찰들의 습격에 눈을 떴다. 경찰들은 충분한 설명도 없이 이것저것 확인하고 가져갔다. 그러나 손 목사는 숨길 것 없다는 생각에 따지지도 막지도 않고 휴대폰을 내주고, 비밀번호도 알려줬다. 하지만 설교와 기도, 교회 안에서의 ‘몇 마디 말’이 문제가 됐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지난 수년간 교회를 찾아오는 후보자들에게 차별금지법, 학생인권조례 같은 질문을 했고, 지금도 영상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일이 어느 시점 이후에는 위반이 되었다. 특히 전체 맥락과 의도는 무시한 채 문장 하나, 말 한마디로 전혀 다른 의미를 도출해내는 답답한 흐름이 이어졌다. 책에는 이후의 구속 판결과 구치소에서의 생활, 각종 고발로 인한 법원 출석 등의 과정도 기록돼 있다. 손현보 목사는 코로나19 이후 이번 건까지 20번의 고발, 39번의 재판에 시달려야 했다. 저자는 수사와 재판을 받으면 받을수록 법이라는 것이 과연 공정하게 작동하는지, 과연 절차와 증거에 따라 재판이 공정하게 진행되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비슷한 발언을 했던 다른 사례들은 별다른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것을 보면서 그 의문은 커져갔고, 법이 자신에게만 훨씬 엄격히 적용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한 의구심은 ‘표적’이라는 가능성으로까지 생각이 닿게 했다. 그것은 단순히 감정적 결론이 아니라 경험이 쌓이면서 떠오른 단어였다. 국가 시스템이 사람에 따라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면 누구도 안전하다고 말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이를 개인적 불만으로 넘어가지 않고,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로 삼기로 한 것이다. 심지어 누군가로부터 “손현보 목사의 구속은 이미 정해져 있는 시나리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수감 동안에도 독방 생활을 통해 많은 것을 경험하고 생각하고 묵상했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느낀 것이 바로 ‘자유’였다. “자유라는 것은 평소에는 크게 의식하지 않지만, 그것이 제한되는 순간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는 사실이었다. 이전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이곳에서는 전혀 당연하지 않았다. 움직이는 것, 말하는 것, 시간을 보내는 방식까지 모두 새롭게 인식되었다.” 2026년 1월 30일, 1심에서 손현보 목사에게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이 선고됐다. 비록 석방되어 자유의 몸이 됐지만, 분명한 ‘유죄’였다. 10가지 죄목 전체가 죄로 인정됐고, 특히 부목사의 기도 내용까지 손 목사와의 ‘공모’로 인정됐다. 손현보 목사는 석방 이후 ‘정교분리’를 화두로 꺼냈다. 그가 구속된 직접적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지만, 그가 자유의 몸이 되기 직전인 1월 21일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교분리’를 언급하며 자신의 설교를 콕 짚어 지목했기 때문이다. 이에 ‘정교분리’에 대한 성경적 기준과 현 정치권의 오용에 대해서도 상술했다. 책에는 손 목사를 위한 ‘바깥’의 여러 도움의 손길, 특히 미국에서의 반응도 소개되어 있다. 두 아들이 미국에 가서 백악관 등에 이번 사태를 설명했고, 미국 목회자 1만 8천여 명이 손 목사의 석방을 위한 서명을 보내오기도 했다. 결국 이 사건은 더 이상 한 개인의 문제로 보기 어려워졌고, 그가 이 책을 펴내는 계기가 됐다. “누군가의 말 한 줄이 언제든지 다른 의미로 묶일 수 있다면, 그것은 특정한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닿을 수 있는 문제다.” 설교와 기도라는 가장 기본적인 신앙 행위가 법에 의해 재단되고, 말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지고, 기도조차 어떻게 기록될지 의식해야 한다면, 이미 상황은 달라진 것 아닐까? 신앙의 자리가 법의 시선에 의해 다시 구성되는 가운데, 손 목사는 그 과정에서 무엇이 빠졌고 무엇이 덧씌워졌는지를 하나씩 확인하며 그 과정을 남기기로 했다. 이는 곧 ‘설교와 기도가 어떻게 죄가 되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그래서 손현보 목사는 사법부에, 그리고 국민들에게 항소하기로 한 것이다. 예배는 왜 선거운동이 될 수 없는가? 설교가 죄가 된 시간, 손현보 목사의 147일 독방 구금이 던진 질문 제2부에서는 부산시 교육감 후보로서 손현보 목사와 대담을 펼쳤던 정승윤 교수(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법적 측면에서 손 목사의 ‘국민을 향한’ 항소이유서를 펼쳐놓는다. 교회 강단과 공직선거법의 경계, 종교 발언과 공직선거 규율의 한계, 종교단체 직무를 활용한 선거운동 여부, 부정선거운동과 관련된 선거법의 맹점, 사법의 이름으로 가하는 종교 탄압, 무죄 호소 및 최후 변론 등의 차례로 구성돼 있다. 정승윤 교수는 자신 때문에 옥고까지 치른 손현보 목사에 대한 미안함을 담아 ‘국민 항소장’ 작성에 열과 성을 다했다. 그는 ‘선거운동’이라는 용어의 정의와 개념 자체부터 들여다본다. 이 말이 너무 넓게 쓰여 불필요한 오해가 쌓이고 있다는 것이다. 선거 전에는 다양한 담론과 의견이 오가야 하는데 오히려 자기 검열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 투표 참여 권유 역시 자칫 선거운동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예배 설교는 ‘내부 공동체를 향한 발언’인데, 이것이 외부를 향한 선거운동에 해당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도 제기한다. 성경과 교리를 이야기하다 자연스럽게 선거에 대한 이야기가 한두 마디 나온다고 해서, 그것을 정치적 행동으로 보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 말이 실제로 선거운동이 되려면 특정 행동을 적극 요구하거나, 따르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떠올리게 만들 정도의 압박은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또한 교회와 비슷한 구조인 노동조합과의 불균형 문제도 비교해 다룬다. 정승윤 교수는 손현보 목사에게 제기된 혐의를 놓고 예배 중 발언, 선거사무소 발언, 세이브코리아 집회 발언 등으로 나눠 해당 발언이 설교인지 선거운동인지, 그리고 종교단체 직무를 활용한 선거운동에 해당하는지 등을 꼼꼼히 따져보고 있다. 이를 통해 정 교수는 “예배 중 설교를 기본적인 지지나 반대 표현이라는 이유만으로 바로 선거운동으로 묶는 것은 무리가 있다. 손현보 목사의 경우도 비슷하다”며, “설교는 신앙의 기준을 설명하는 자리이고, 그 안에서 현실 이야기가 함께 나오는 건 자연스러운 모습에 가깝다”고 정리한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의 선거 규제 형성 및 변화의 역사도 살피면서, 사람이 아니라 행동을 보는 것으로 변화한 독일 사례 등과 비교해 국가 발전과 환경 변화에 따라 선거법도 변화해야 함을 조리 있게 설명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교분리에는 정교분리가 시작된 미국의 전통이 아니라 일제의 잔재가 남아 있다는 주장도 펼친다. 국가가 종교를 건드리지 못하게 막는 안전장치가 아니라 종교 활동을 규제하고 억압할 위험이 있다는 것. 저자는 “정교분리는 종교의 의무가 아니라 국가의 한계를 정하는 개념이 돼야 한다”고 일침을 놓는다. 또 ‘말’은 허용하고 ‘마이크’는 금지하거나, 사전선거운동이 지나치게 폭넓게 금지되는 등 불합리한 선거 규정의 개정 필요성도 제기하고 있다. 여기에 유권자들의 자유로운 선거운동이 전면 금지되고 후보자 중심 선거가 이뤄진 계기가 1952년 부산 정치파동이었다는 사실도 짚어준다. 한편, 재판 과정에서 부산시 선거관리위원회를 비롯해 경찰과 검찰, 법원에서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손현보 목사가 당했던 부당한 대우와 조치에 대해서도 상세히 고발하고 있다. 정 교수는 다음 말로 최후 변론을 끝맺는다. “국민 배심원 여러분, 손현보 목사에게 무죄를 선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