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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 나의 일터는 ‘그런 데’입니다
1장. 그런 데에서 마주한 얼굴 · 새벽 배송 ·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 · 야, 사장님, 이쁜이, 혜주 양 · 환대의 물결 · 당신을 알아가는 중입니다 · 덩어리는 작지만, 마음은 크다 · 매화 같은 K 할머니께 · 100세 할머니의 휴대폰 · 너와 나의 연결고리 2장. 들리지 않아도 닿는 말 · 말씀으로 인사해 주세요, “안녕” · 당신에게 나를 포개고 싶습니다 ·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요 · 대문에 붙은 메모 ·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 어르신을 위해서라는 말 · 아들과 딸을 팝니다 · 단 한 번만 불린 이름 · 아가 시나브로 혀라 3장. 끝까지 당신답게 · 화장실에는 잘생긴 남자 친구가 있다 · 존재감이 빛나도록 · 나는 어리석지 않다 · 그저 받아 줄 누군가가 있다면 · 마음을 알아봐 주는 일 · 비녀와 커트 머리 · 똥칠하는 할머니, 품위를 지키는 할머니 · 꼬부라진 등도 쓸모가 있다 4장. 돌보는 나를 돌보며 · 내 안의 폭력성 · 하마터면 당신을 포기할 뻔했습니다 · 변화는 어디에 있었을까 · 심판이 아닌 응원 · 문제 종합 선물 세트 · 마주한 사람에게 맞는 답 · 할 일은 해야지 · 가랑비 젖는 예배 5장. 그런데도, 살아간다는 것 · 한 걸음이 번질 때 · 세 시간짜리 파란색 · 슬쩍 찌르는 힘 · 그리움은 동무이다 · 나는 막내아들 집에 간다 · 죽고 싶다는 말, 살고 싶다는 마음 · 선생님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여요 · 이별을 배우는 시간 · 우주먼지의 행복 닫는 글 — 꾸역꾸역 살고 있는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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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데’가 ‘그런데’로 바뀝니다. 자식으로서 불효인 줄 알았는데 사실 가장 큰 효도였습니다. 어르신은 버려진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천국이었습니다. 제게 치매 어르신은 단순히 돌봄의 대상인 줄 알았는데, 함께 지내며 인생을 배우는 반전이 일어납니다.
--- p.13 홍구 할아버지는 센터에 나오는 것을 출근으로 생각하고 계신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치매 진단을 받기 전까지 작은 공장에서 일하셨고, 여전히 자신이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책임감에서 벗어나지 못하십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냥 걸으시는 게 아니라 비뚤어진 의자를 바로 하고, 떨어진 쓰레기를 주우셨고, 자신이 뭔가 해야 할 게 없는지 두리번거리셨습니다. --- p.34 사람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끈이 있습니다. 어떤 끈은 철사처럼 강력하게, 또 어떤 끈은 거미줄처럼 희미한 듯 보이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자체가 중요합니다. 그것이 물건이든, 동네든, 사람이든 상관없습니다. 특히 우리 어르신들처럼 가족과 떨어져 있거나 기억이 흐릿해져 불안할 때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은 그 어떤 약보다 치료 효과가 뛰어납니다. 그 어떤 재활 프로그램보다 일상의 활력이 되고, 그 어떤 심리상담보다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줍니다. 연결은 이렇게 강력하며 생기 있고, 다정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르신들과 더 연결되기 위해, 다양한 기종의 휴대폰을 상시 충전할 수 있는 여러 개의 충전기를 준비합니다. 어르신들의 고향, 예전 직업, 좋아하는 음식, 습관, 18번 노래를 파악합니다. 삼남매든 오남매든 칠남매든 자녀들의 이름을 모조리 외웁니다. 그리고 그들의 제일 친한 친구가 됩니다. 이렇게 어르신과 저의 연결고리는 계속 이어집니다. --- p.60 이렇게 아들과 딸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는 방법을 상담에서는 ‘관계성 질문’이라고 합니다. 나에게 중요한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지,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나를 보고 뭐라 말할지 생각해 보게 하는 거지요.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관계로 문제가 생기기도 하지만, 역으로 관계를 생각하며 문제를 풀 수도 있습니다. 어르신들에게 가장 중요한 관계는내 살 같고 피 같은 아들이고 딸이지요. 당신에게도 타인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는 고집을 부리던 어르신도, 아들딸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면 그렇게 무섭던 고집들을 슬며시 내려놓으십니다. --- p.102 돌봄은 일방적인 게 아닙니다. 시간마다 깨서 울어대는 아이지만 분명치 않은 발음으로 엄마 또는 아빠라고 부르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습니다. 피로가 순식간에 녹아내립니다. 아이 역시 최선을 다해 엄마와 아빠를 돌보는 겁니다. 부모에 대한 돌봄도 다르지 않습니다. 일방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부모 역시 온 힘을 다해 자녀를 돌보고 있습니다. --- p.116 우리가 최선으로 돌보듯, 어르신 역시 최선으로 돌봄종사자를 돌보고 계십니다. 돌봄은 일방적일 수 없습니다. 나의 고생에만 매몰되다 보면 상대방이 최선으로 고마워하고 표현하는 작은 몸짓을 지나치기 쉽습니다. 지친다고 생각할 때, 억울하다고 느껴질 때 잠깐 멈추어, 어르신의 고마움이 시나브로 전해지는 매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p.118 혹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분을 만날 때 그분을 그저 받기만 하는 수동적인 자세로 만들지는 않는지,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분을 ‘가만히 있게’ 하여 존재감을 끌어내리지는 않는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그분의 존재감이 빛날 수 있게 역할을 남겨 주세요.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도록, 내가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도록 말이죠. --- p.127 사람은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감춰진 폭력성이 있습니다. 한계를 만나면 언제든 성난 사자가 발톱을 드러내듯 거친 폭력성에 통제력을 잃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나 역시 이런 한계를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저렇게 착한 사람이, 평소 친절했던 사람이, 다정했던 사람이…. 이렇게 프레임을 씌우면 안 됩니다. 폭력성이 나를 휘감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지 않도록, 평소 나의 감정을 잘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불편한 감정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더 솟구치는지, 누구와 함께 있으면 숨이 막히는지. 그리고 그때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이성을 되찾을 수 있는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내용을 동료들과도 공유해야 합니다. 내가 손을 번쩍 들면 나를 도와 달라, 내가 머리를 쥐어짜면 빨리 달려와 달라. 서로 신호를 정하고, 컨디션이 상대적으로 괜찮은 동료가 대신 어르신을 응대해야 합니다. --- p.164 정답과 해답은 우리 인생에도 적용됩니다. 사회적으로 약속된 정답을 지키는 것은 중요합니다. 관계를 유지하고 질서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옳다고 생각하는 정답을 찾거나 이뤄가는 것이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빨리 정답을 찾지 못하면 불안해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 해답이 도움이 됩니다. 내 삶의 숙제를 풀기 위해 깊이 생각하고, 남과 비교하지 않은 나의 경험이 바탕이 된 답이니까요. --- p.190 따뜻한 말로 위로해 드리고 싶어도 미자 할머니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우리 마음을 전해 드리기 어렵습니다. 글을 써서 위로해 드리려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꼭 안아 드립니다. 그 마음 다 알지 못해도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이 품에서 품으로 전해지도록 정성껏 안아 드립니다. 어르신 얼굴에 웃음이 살며시 나오면 제 마음이 전해졌구나 싶습니다. --- p.231 가끔 사람들이 제게 묻습니다. 치매 어르신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힘들고 고되지 않냐고. 당연히 힘들어요. 어제는 딸처럼 예뻐해 주시다가 오늘은 망할 년이라고 소리 지르는 어르신을 보면 자괴감도 듭니다. 그러나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이 공간에서 먼지 같은 회복력이 보입니다. 밥숟가락도 들지 못했던 분이 밥 한 공기를 뚝딱하시고, 걷지 못했던 분이 한 걸음씩 아기처럼 걷기 시작하며, 혈압약을 반으로 잘라 드셔도 되는 회복의 순간들. 너무 작은 찰나의 순간이라 자칫 지나치기 쉬운 감격의 순간들. 그 먼지 같은 순간 하나하나가 모여 우주 같은 행복을 이룹니다. 그러니 이 일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p.2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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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는 사람의 마음을 돌보는 책"
대한민국은 2024년 말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중앙치매센터 추산에 따르면 2025년 65세 이상 치매 환자는 100만 명을 넘어섰다. 가족 누군가는 결국 돌봄의 자리에 서게 된다는 뜻이고, 돌봄은 더 이상 누군가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몇 번을 처음 만나도 좋은 사람』은 치매에 대한 정보서도, 돌봄 매뉴얼도 아니다. 24년차 사회복지사가 노인주간보호센터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얼굴을 한 사람씩 기록한 책이다. 말씀이 사라진 어르신께 한마디를 듣기 위해 수차례 대화를 시도하고, 자식들이 갖다 버렸다고 오해하며 화를 내시는 어르신의 마음을 풀어드리며 발견하는 작은 반전의 순간들을 담았다.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남는 것은 기억은 흐려져도 사람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돌봄은 한 방향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