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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특별성명 및 광주시민에게 전하는 담화
들어가며 1부 「광주사태 진상보고서」 원문 2부 CIA 극비문서 80년 광주 상황에 대한 정보기관의 인식 향후 90일간의 잠재적 경보 사안 전두환 대통령의 반대세력 반미 사건의 증가 반체제 운동의 급진화 한국에서 미국에 대한 분노 확산 올림픽 이후의 한국 정치안정의 요인 발행인의 글 부록_원문 용어 해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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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 사례
해남지역 전개대대 보병 제93연대 2대대 1980년 5월 21일 19시 30분부터 5월 22일 16시 05분까지, 해남지역에 전개 중이던 보병 제93연대 2대대는 세 차례에 걸쳐 긴박한 상황을 맞았다. 무장한 시위대 약 300여 명이 무기 탈취를 목적으로 군부대 습격을 시도했고, 부대 정문 80미터 지점까지 접근해 경비초병들과 전투태세로 대치하였다. 당시 부대의 주력 병력 2개 중대 40여 명은 목포지역 시위 저지를 위해 모두 출동한 상태였다. 부대 안에는 행정요원 20여 명과 방위병 120여 명만 남아 있었다. 실제 교전이 벌어질 경우 부대가 습격당할 수 있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이에 대대장은 부대 안의 중화기를 시위대가 볼 수 있는 위치에 위장 배치하고, 방위병 전원을 군복으로 갈아입혔다. 마치 중화기로 무장한 병력이 다수 주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이어 대대장은 단신으로 전투태세를 갖춘 시위대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한 걸음이라도 더 전진할 경우 중화기로 발사하겠다고 경고하는 한편, 시위대 대표에게 군부대 주둔의 목적은 주민 보호와 지역 방위에 있음을 설명했다. 또한 군부대 습격은 성공할 수 없으며, 더 큰 피해만 부를 것이라고 설득하였다. 그 결과 시위대는 교전 없이 물러났다. 대대장은 소수 병력만으로 부대 피습을 사전에 막았고, 병력과 무기를 보호하는 데 성공하였다. 광주교도소 광주교도소장 한XX 교정관은 시위대의 공격 징후에 대비하여 휘하 직원 320명과 함께 교도소를 끝까지 사수하기로 결의하였다. 5월 19일 12시경, 통신이 두절되면서 외부기관과의 연락이 끊겼다. 교도소는 고립에 가까운 상황에 놓였고, 앞으로 있을 수 있는 공격에 대비해 정확한 정보가 절실했다. 한도희 교정관은 교도관 6명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외부 동향과 공격 가능성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도록 했다. 5월 20일, 시위대가 교도소를 습격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자 교도소 측은 주벽 내부에서 방어하기로 했다. 주벽 외부 시설을 폐쇄하고, 주요 지점마다 바리케이드를 설치했으며, 방어 진지를 구축해 대비태세를 강화하였다. 5월 21일에는 시위대가 여러 차례 파상적으로 접근했다. 교도소 측은 계엄군과 협조하여 설득과 사격을 병행했고, 모두 다섯 차례에 걸친 반복 공격을 퇴각시켰다. 그 결과 광주교도소는 방어에 성공하였다. 도청 폭파기도를 저지한 시민들 시위대가 화순광업소에서 탈취한 폭발물을 전남도청 지하실에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 폭발물을 이용해 도청 청사를 폭파하고 최후 저항을 벌이려는 징후가 감돌자, 도청 안팎의 긴장은 극도로 높아졌다. 이를 알게 된 온건파 학생 양XX, 박XX, 김XX, 이XX 등 4명은 더 참혹한 사태를 막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5월 24일 13시경, TNT 뇌관 2,300개를 전남북 계엄분소에 반납하였다. 그러나 도청 지하실에는 여전히 수류탄이 남아 있었다. 이들은 수류탄을 무용화하기 위해 교육사 병기근무대 소속 5급 갑 배XX을 대동하고 지하실로 다시 들어갔다. 배XX과 학생들은 수류탄 뇌관을 분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날 23시경, 강경파 시위대가 이 장면을 목격하고 총격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이XX은 현장에서 사망했고, 나머지 3명은 잠시 몸을 피했다. 하지만 이들은 다시 지하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끝내 수류탄 496발의 뇌관을 분리해 무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 조치로 5월 27일 계엄군의 도청 진입 작전 당시 대규모 폭발 위험을 막을 수 있었다. 화순광업소 5월 21일 12시경, 시위대 50여 명이 버스 1대를 타고 화순광업소에 도착했다. 이들은 광업소 측에 폭약을 요구했다. 소장 이하 관리직원들은 폭약 반출의 위험성을 설명하며 시위대를 설득했고 시위대는 광업소 예비군 중대장만 납치한 뒤 일단 철수했다. 시위대가 물러나자 광업소 측은 즉시 보관 중이던 뇌관 전량 41,620개를 긴급 대피시켰다. 또한 폭약 일부도 함께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같은 날 14시경, 이번에는 무장한 시위대 300여 명이 다시 광업소에 들이닥쳤다. 이들은 공포를 쏘며 “광업소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했고, 폭약보관소의 위치를 알려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광업소 전 직원은 끝내 이에 응하지 않았다. 시위대는 결국 무기로 위협한 인근 주민을 통해 폭약보관소의 위치를 확인했다. 이후 화약고 천정 환기창을 파괴하고 침입해 폭약 13상자, 총 292.5킬로그램과 도화선 6,000미터를 탈취했다. 그러나 광업소 측이 뇌관을 미리 대피시킨 덕분에 탈취된 폭약은 즉시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또한 광업소장은 현장 불만계층인 광부들이 시위대에 가세할 가능성을 우려하여 채탄작업을 강행했고, 광부들을 갱내 작업장으로 투입시켰다. 그 결과 광부들과 시위대를 분리하여 화순광업소의 혼란이 더 커지는 것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 고려씨멘트 공장 5월 21일 17시 50분경, 무장한 시위대 50여 명이 군용트럭을 타고 고려씨멘트 공장에 도착했다. 이들은 위협 사격을 하며 공장 안으로 들어왔고, 공장장과 간부사원 10여 명의 목에 총을 들이대며 TNT를 내놓으라고 강요했다. 위급한 상황에서 공장 직원들은 기지를 발휘했다. 이들은 보관 중인 TNT 전량을 이미 군부대에서 사전에 회수해 갔다고 둘러댔다. 시위대는 더 이상 폭약을 확보하지 못한 채 철수했다. 시위대가 물러난 뒤, 공장 측은 즉시 보관 중이던 TNT 전량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이로써 고려씨멘트 공장은 TNT 피탈을 막는 데 성공하였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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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를 다시 읽기 위한 문서의 귀환
5·18을 다룬 책은 많다. 그러나 대부분은 회고, 증언, 고발, 해석의 형식으로 광주를 말해 왔다. 『두 총성의 기억, 두 광주의 눈물』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독자 앞에 선다. 이 책은 주장보다 문서를 앞세운다. 감정보다 기록을 먼저 펼쳐 보인다. 이 책의 중심에는 1980년 6월 작성된 「광주사태 진상보고서」가 있다. 이 보고서는 이광로 소장이 조사단장을 맡은 정부합동조사단이 광주와 전남 일대를 현지 조사한 뒤 작성한 문서다. 책에는 조사계획, 조사단 편성, 조사 목적, 사태 개황, 원인 분석, 문제점, 민심 동향, 대책, 부록 자료가 원문과 함께 실려 있다. 보고서는 당시 조사단이 무엇을 문제로 보았는지, 누구에게 책임을 물으려 했는지, 어떤 피해와 무기 피탈 현황을 파악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 책의 진짜 확장성은 2부에서 드러난다. 출판사는 광주를 국내 기록 안에만 가두지 않고, CIA 기밀해제 문서를 함께 배치했다. 1980년 5월 24일 CIA 일일보고는 광주 도심의 대치, 협상 교착, 추가 유혈 가능성을 다룬다. 5월 27일 상황보고는 도청 진입 이후 광주가 다시 정부 통제하에 들어갔다고 평가하면서, 북한의 공식 반응과 선전 동향도 함께 관찰한다. 6월 NIC 경보 의제는 광주 이후 90일간 남한 정치의 불안정 가능성과 북한의 선택지를 검토한다. 이후 1983년, 1985년, 1987년, 1988년 문서들은 광주가 학생운동, 기독교계 반체제 운동, 반미주의, 야권 정치, 한미관계, 올림픽 이후 정국에 어떤 장기적 그림자를 남겼는지 추적한다. 이 점에서 『두 총성의 기억, 두 광주의 눈물』은 단순한 과거사 자료집이 아니다. 이 책은 광주를 “1980년 5월의 사건”으로만 보지 않고, 그 후 한국 정치와 사회운동, 군의 위상, 미국 인식, 북한 변수, 반미 담론이 어떻게 재편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입체적 문서집이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세 가지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첫째, 당시 국내 조사단은 광주의 원인과 책임을 어떻게 정리했는가. 둘째, 미국 정보기관은 광주와 그 후폭풍을 어떻게 판단했는가. 셋째,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광주의 기억은 어떤 문서와 어떤 해석 위에 세워져 있는가. 이 책은 결론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원문을 보여준다. CIA의 기밀해제 보고서와 정부합동조사단의 진상보고서를 나란히 읽게 함으로써, 독자가 직접 기록의 결을 비교하도록 만든다. 바로 그 점에서 이 책은 5·18을 둘러싼 기존 논쟁의 반복이 아니라 다시 읽기의 출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