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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떠나기 전
첩보길_ 목숨을 건 외로운 길, 후창군 장교들의 만주지역 정탐기 장례길_ 아내의 죽음이 마음속으로 50리 길을 내다 상소길_서원 빼앗긴 안동사림의 처절한 항의 유배길_ 조희룡, 고통 속에서 피운 성찰의 꽃 휴가길_ 하급관리 황윤석의 금쪽같은 휴가 암행어사길_ 1822년 평안남도 암행어사 박내겸의 고뇌 요양길_75세의 큰 스승 한강 정구의 화려한 온천행 과거길_조선시대, 출세를 향한 먼 여정 마중길_어느 지방 수령의 손님맞이 장길·보부상길_짚신에 감발 치고 이 장 저 장 뛰어다니니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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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를 설명하는 추상적인 이론을 제시하는 대신, 실제 그들의 삶의 이모저모를 구체적인 인물이나 사건, 대상을 중심으로 소개함으로써 조선의 실체를 경험하게 하자는 것이 이 책의 취지이자 바람이다. …… 어느 곳이 머물 만한 곳이며 무엇이 가치 있는지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역사와 미래를 잇는 시간의 이정표가 창조된다. 자기만의 인생길을 찾는 모든 분들께, 그리고 사라지지 않는 빛으로 그 길을 터준 옛사람들께 이 글을 바친다.”
--- p.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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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말하고 있나?】
하늘이 흐리면 덩치가 큰 몇몇 별밖에 보이지 않는다. 설령 다른 별들이 보이더라도 희미하다. 하지만 하늘에 잡티가 없는 티벳 같은 곳에 가면 모든 별들이 그 속까지 다 투명하게 비치는 것처럼 반짝거린다. 이 책은 조선시대를 그런 식으로 조명하고자 했다. 이 책은 열 갈래의 길을 통해, 조선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구체적인 인생행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잘 살고 있는데 청천벽력처럼 유배의 명령이 떨어졌을 때(유배길), 적이 자꾸 국경을 침범해 도대체 어떤 놈들인지 살펴보러 떠나야 했을 때(첩보길), 억울하고 자존심이 상해 견딜 수가 없어 집단으로 항명을 할 때(상소길), 단짝과도 같은 아내가 죽어서 그 어찌할 수 없는 상실의 고통을 견뎌야 할 때(장례길), 평생을 괴롭힌 병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급적 산길을 피하고 평지와 물길을 이용해 쉴 곳을 찾아 떠날 때(요양길) 길 위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을 롱테이크로 잡았다. 고담준론의 조선도 아니고, 처참하고 비참한 조선도 아니며,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거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역사화된 조선이 아니다. 단지 그들의 손짓 하나, 몸짓 하나에 담겨있는 의미를 포착하고자 했다. 길을 걸어가면서 멍하게 그들의 머릿속을 맴돌았던 생각, 아침에 일어나 세수할 때 머릿속을 채운 걱정거리, 부탁을 거절당했을 때의 굴욕감과 대안을 찾기 위한 부산함,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날것 그대로의 공포를 살려냈다. 그림으로 말하자면 이 책은 일상적인 삶을 그린 풍속화나 풍경화도 아니고, 개념이나 담론의 구조를 보여주는 추상화도 아니며, 펜으로 하나하나 따라가면서 느낌들을 살려낸 극사실화에 가깝다. 하나 특이한 점이 있다면,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많은 경우 일선 실무자들이라는 점이다. 몸이 축날 정도로 일을 해서 겨우 휴가길을 떠날 수 있었던 하급관리의 사례나, 수령의 명령에 따라 국경을 건너 거칠고 무서운 야행을 감행해야 했던 후창군의 장교들과 행정관속들이 그렇다. 양반들의 이야기도 나오지만 대부분 권력자라기보다는 과중한 업무에 짓눌린 고을 수령이나, 인조반정 이후 서인세력에게 밀려 서원을 빼앗을 위기에 처한 안동사림의 이야기가 나온다. 요즘 말로 하면 대한민국 1%의 정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떠받치고 있는 중산층의 삶과 고뇌를 조선시대에서 찾은 것이다. 【어떻게 말하고 있나?】 이 책은 길과 역사의 결합이다. 길을 테마로 해서 조선시대 삶의 구체적인 모습을 재구성한 것이기도 하지만, 길의 굴곡과 험한 모습, 시작과 끝이 있는 길의 구조적 속성, 낯선 사람들과 마주치듯이 우연적 사건들이 개입해 들어오는 삶을 보여주는 등 길의 속성을 잘 살리고자 했다. 첫째,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글들은 특정 개인이 남긴 일기나 일지를 바탕으로 1~2달간의 삶을 재구성한 것이다. 첩보길, 휴가길, 상소길, 마중길, 과거길, 암행어사길이 그러하다. 일기이기 때문에 매우 솔직하고 내밀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매일매일의 기록이기 때문에 자세하고 상세하다. 외부의 여러 사건과 정황들이 한 사람의 시선에서 정리되고 평가되고 우리에게 전달된다는 특징도 있다. 둘째, 길을 떠나서 목적지에 닿을 때까지의 일정 혹은 집을 나서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일정을 다루고 있다. 왜 길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가 대개 첫 부분에 등장하며, 중간부분은 길 위에서 고생스러웠던 일, 목적지에 빨리 닿기 위해 했던 노력들, 조선의 풍속과 풍물, 자연이 그려지며, 여행에서 느끼기 마련인 여러 가지 삶에 대한 단상과 낯설음에 대한 토로 등이 나온다. 셋째, 철저한 사료비평의 바탕 위에서 일기 속에 그려진 조선인들의 삶이 객관적으로 조망된다. 일기의 기록은 한 개인의 여과되지 않은 슬픔과 분노, 소소한 느낌들이 모두 나타나 있다. 조선시대라고 해서 일기까지 에헴! 하면서 격식을 차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필자들은 그런 주관적 감정들을 그대로 본문 속에 살려내면서도 그 사람이 처한 정치적 상황, 신분적 위치, 개인적 연륜까지 따져가면서 왜 그런 말이 나오는지를 짚어주고 있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암행어사길>에서 주인공 박내겸이 어명을 받고 지체없이 길을 떠나야 했으나 친구들과 떠들썩하게 송별연을 갖고 떠났다거나, 그래서 그 기간이 일지에서 삭제돼 있다거나 하는 부분을 필자는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즉, 이 책은 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일기이기 때문에 자칫 역사가 협소하게 초점화되는 일이 없도록 신경썼다. 【누가 말하고 있나?】 요즘 학자들의 공저서의 경우 학술대회 결과물을 묶어낸 경우가 대부분이고, 팀의 공부내용을 모아낸 경우가 가끔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서로를 잘 모른다. 하지만 해당 주제에 대해서는 최고의 전문가들이 기획의도에 공감하며 상당한 공을 들여 개개의 글을 작성했다. 이 책의 필자들은 학계의 주목받는 중진 소장학자들이다. 모두 맡은 분야에서 최고의 연구성과를 내는 학자들이 글을 썼다. <첩보길>을 쓴 강석화 경인교대 교수는 조선시대 첩보활동에 대해서는 국내 유일한 전문가이고, <상소길>을 작성한 설석규 국학진흥원 연구원은 안동 민가에 떠돌아다니는 문중일기를 어렵사리 찾아내 아직 학계에 보고조차 되지 않은 내용을 흥미진진하게 대중화하여 풀어냈다. <마중길>을 쓴 이선희 국민대 연구교수는 가장 젊은 소장 연구자로 지방수령의 일상생활로 박사논문을 제출해서 그 참신함과 개척적인 도전정신으로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휴가길>을 쓴 이지양 부산대 인문학연구소 연구원은 벽사 이우성 선생의 실시학사(實是學舍) 멤버로 지난 10여년 참여하면서 수많은 고전을 섭렵한 박람강기로 유명한 여성 한문학자이다. 그는 <매천야록> 같은 고전번역을 주도해낸 바 있다. 그리고 <장례길>을 맡은 김종서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 계간지 <문헌과해석> 팀의 일원으로 <문헌과해석>의 산문정신을 대표하는 낙수여적을 집필하는 등 정민->안대회의 계보를 잇는 뛰어난 글쓰기와 감성의 소유자로 그 실력을 이번 책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그 외에 차미희 이화여대 교수와 오수창 한림대 교수는 각각 조선시대 과거제도, 조선시대 평안도 사회발전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저술도 낸 중진 학자들이다. <요양길>을 담당한 강민구 경북대 교수는 조선시대의 과학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송남잡지』 같은 고전을 최근 역주했으며(미출간), 이런 열정과 역량을 살려 <요양길>에서도 한강 정구가 몸에 맞은 침의 종류, 한약의 명칭과 효과 같은 것을 세밀하게 복원해내었다. <유배길>을 쓴 최기숙 연세대 교수는 조선시대의 민담이나 귀신이야기 등으로 많은 논문을 발표했고, 이를 바탕으로 최근에는 <문밖을 나서니 갈곳이 없구나>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마치 잘 쓰여진 평전의 클라이맥스 대목을 보는 듯한, 탱탱하게 당겨진 활시위 같은 글쓰기로 <유배길>의 주인공인 조희룡의 내면을 담아냈다. 【왜 이 책은 읽어볼 가치가 있나?】 이 책은, 안에 소개된 사료의 참신함도 돋보이지만, 글만으로도 충분히 승부를 볼 수 있는 책이다. 겉보기에는 화려해도 막상 읽어보면 재미없는 논문 같은 경우가 얼마나 많았는가. 이 책은 절대로 그런 배신행위는 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되기도 했지만 이 책은 다음 몇 가지 측면에서 일독의 가치가 있다. 첫째, <휴가길>에는 주인공인 정7품 관리 이재 황윤석이 한양에서 겪었던 일이 소상하게 밝혀져 있다. 특히 영조 치세 시기의 한양의 지식인들의 독서문화가 책 이름까지 소상하게 밝혀져 있으며 이것은 아직 학계에서도 알지 못하는 내용이며 조선시대 문화사에 관심있는 전공자라면 이 한 대목만으로도 책을 구해보고자 할 만큼 1급 정보가 실려있다. 둘째, <상소길>에서 안동사림이 서원철폐 문제로 서울에 올라와 상소를 올리는 내용 또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상소문은 독자가 임금이니만큼 조선 지식인들이 가장 공들여서 작성하는 문장으로, 온갖 박학과 논리가 다 동원되는 글쓰기다. 그리고 상소문을 임금이 올리기까지 거쳐야 할 절차와 격식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복잡하고 엄격하다. 이 모든 과정이 드라마틱한 권력투쟁의 내러티브 속에 훌륭하게 녹아 있어서 읽고 나면 조선시대 의 핵심을 마치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해했다는 뿌듯함 자부심을 줄 정도다. 셋째, 이 책의 첫 장인 <첩보길> 또한 마찬가지로 19세기 후반 조선사회의 분위기는 물론, 압록강 국경 지역에서 청나라와 끊임없는 분쟁에 시달려야 했던 당시의 상황을 상당히 밀도깊게 전해주는 일급 자료를 원전으로 삼아 충실하게 복원하고 있다. 특히 압록강 이북으로 넘어가 한 달 넘게 그곳의 마을, 사람의 숫자, 생활의 정도, 월경한 조선인과 청인의 관계 등까지 세밀하게 기록으로 남기고 있기 때문에 일단 그 구체적인 자료의 참신함과 낯섦 때문에 약간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읽어보면 “과연 이랬단 말인가” 하는 탄성이 터져나온다. 넷째, <장례길>과 <유배길>은 그 문체의 아름다움이 뛰어나다.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 학계의 전문성이 유감없이 발휘되면서도, 소설가나 에세이스트 못지않은 글의 구성이나 문체의 개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인문대중서 출판이 일반화되고 어느 수준으로 올라서면서 학계의 글쓰기 능력이 어느 정도까지 올라섰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할 것이며, 이 책의 필자들이 얼마나 엄선된 분들로 이뤄져 있는지를 짐작케도 하는 대목이다. 【각 장별 주요내용 요약】 ■ 첩보길 19세기 후반 평안북도 후창 지역에 청나라 사람들이 넘어야 나무를 벌목해가는 일이 잦고, 이를 제지하자 심지어 총을 들고 쳐들어와 민가에 불을 지르는 등 행패가 심해지자 3명의 장교가 정탐객으로 급파된다. 이들은 압록강을 건너가서 청인들의 무장실태와 당시 유행한 길지설을 믿고 건너간 조선인들의 생활실태를 파악하는 목적으로 한달여간 죽을 고생을 하며 정보를 수집한다. 첫날부터 얼굴을 알아본 청나라 사람들에게 붙잡혔으나 “고생하고 일해도 돌아오는 게 없어 넘어왔다. 우리를 해치면 대국인의 풍도가 아니다”라고 거짓말 해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내륙 깊숙이 들어가 중국인 왕보태의 집에 머물 때는 짐을 조사당한 뒤 아무 것도 나오지 않자 “가난한 거지들”이라며 목숨을 구할 수 있었으며, 길을 가다가 마적떼에게 피해본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는 겁에 질려 복귀를 결심하게 된다. 이들은 비록 자신들의 신분도 노출하고, 청국에 동화된 조선인과 토론을 벌이는 등 여러 면에서 어리숙함을 보였지만, 성실함과 육체적인 건장함을 기반으로 꼼꼼히 정보를 수집하고, 청인들이 대대적인 침략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도 얻어내는 등 목적을 달성한다. ■ 장례길 조선 후기 문인 심노숭의 아내가 젊어서 죽었다. 벼슬에 나아가지도 못해 가장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평소 아내에게 아기자기하게 잘해준 것도 없는 그는 그만 우울증과 비슷한 심각한 불면증이 오고 아내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에 빠지게 된다. 한달이 지나도 잠을 이룰 수 없자, 급기야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짓기 시작했고 점차 안정돼 나중에는 시 짓는 시간보다 잠을 자는 시간이 많아지게 됐다. 그러나 아내에 대한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아 그가 정치적 격변 속에서 벼슬에 나아가 유배도 다녀오고 50대 중반에 한직인 지방수령에 부임했을 때도 계속된다. 근 30여년간 아내는 그의 마음 속에 살아있었던 것이다. 그는 아내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서 “눈물의 근원이 무엇인가”라는 자연철학적인 에세이도 쓰게 되고, “죽으면 아무 것도 알지 못할 텐데 뭐하러 그렇게 계속 시를 써대냐”는 주위의 충고에 “죽으면 아무 것도 모른다는 말은 내가 정녕 견딜 수 없는 말이요”라고 절규하듯이 항변하기도 한다. 필자(김종서)는 놀랍도록 섬세하고 다정하게 죽은 아내를 끌어안고 사는 심노숭의 내면을 역시 놀랍도록 섬세하게, 마치 심노숭을 직접 만나서 술 한잔 해본 사람처럼 써내고 있다. ■ 상소길 17세기 초반 안동에 내려온 암행어사가 안동 김가의 서원 중의 하나를 지목하더니 “사사롭게 지은 것”이라며 철폐해야 한다는 보고를 올리고, 허가가 났다. 안동에선 난리가 났다. 남인이 집권하더니 결국 사단이 난 것인가! 하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대대로 조상의 위패를 모셔둔 이곳을 이름이 서원이라 하여 폐지하는 것은 승복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곧바로 문중회의를 열고 상소일행을 엮어서 서울로 올라가지만 상소의 총책임자인 소두(疏頭)를 정하는 일에서부터 차질이 빚어져 결국 서울에 올라가 안동출신 성균관 생원을 찾아서 겨우 형식을 갖출 수 있었다. 당시 상소문은 반드시 승정원을 거쳐서 임금에게 올라갔는데, 처음엔 임금이 아파서 안된다고 했다가, 누가 불참해서 안된다고 했다가 각종 핑계를 다 대더니 12월에서 그 다음해 1월로 해를 넘기게 되었다. 나중에야 서인 출신인 승정원 도승지의 방해공작이 있었음을 간파한 일행은 상소를 포기하고, 비변사에 유권해석을 구하는 방도를 찾았는데, 비변사에서는 “서원이라는 간판을 떼어내면 유지해도 좋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서울 방방곡곡을 다니며 온갖 인맥로비를 펼치는 광경은 놀라움 그 자체이며, 갖고 온 쌀이 떨어져 식은밥을 얻어 죽을 끓여먹는 모습이라든지, 울분에 찬 가난한 선비의 모습도 꽤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필자(설석규)는 글의 말미에서 아무리 집권 서인세력일지라도, 영남사림을 드러내놓고 박대할 수 없어, 아주 치밀하게 간접적으로 방해공작을 폈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글을 읽어보면 그 팽팽한 긴장관계를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유배길 조희룡이 임자도에 유배를 떠나는 대목부터, 외딴 섬의 초막에서 자리를 잡고, 마음을 다스리는 장면이 감독소개 없이 시작하는 영화처럼 그럴듯하게 시작된다. 벽에 그림도 걸어보고 섬의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풍광도 살펴보지만 억울하고 야속한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단지 시회(詩會)의 일원이란 이유만으로 이런 중죄로 다스린다는 게 말이 된단 말인가. 하지만 초기의 울울한 심정은 우석선생이라는 뛰어난 지식인과의 만남, 총명하고 재기발랄한 젊은 제자 두명을 거두는 행운, 동네 사람들과의 친해짐, 집을 꾸미고 정원을 가꾸면서 차분해진 시점부터 타오르기 시작한 예술창작의 혼은 조희룡을 성숙하게 만들었고, 고향 사람들이나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는 원거리 시회는 또다른 삶의 즐거움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3년간의 유배생활은 조희룡의 예술인생에서 어떤 의미로 작용했는 것인지, 필자 최기숙 선생은 독자 스스로 이 문제를 생각해보게끔 여백을 남겨두고 있다. ■ 휴가길 정7품 하급관리 이재 황윤석은 영조 때 사람이다. 그는 전라도 출신으로 과거급제해 성균관 근처 숙소에서 몇 년 째 하급관리 생활을 하고 있다. 주로 국가적 의례행사를 주도적으로 챙기는 일이었는데, 사실 그가 담당한 중요한 일은 따로 있었다. 다름 아닌 높은 벼슬의 사대부들이 독서를 하다가 막히는 부분을 질문하거나, 책을 묶어낼 때 교정교열을 맡기는 것이었다. 당시 왕의 직속 참모기관의 좌장급이 되는 정존겸 대감은 하루가 멀다하고 황윤석에게 일거리를 맡겼는데 처음엔 겸손하고 꼼꼼하게 처리해주던 그도 나중에는 입에서 “옛말에 천재는 둔재들의 뒤치다꺼리를 할 운명이라더니”라는 한숨이 터져나오고야 만다. 이런 격무 속에서 그는 매일 밤 집에 가는 꿈을 꿨다. 아들과 논을 둘러보다가 깨고, 아버지에게 야단맞다가 눈을 뜨기도 하며 향수병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서 모친이 위독하다는 핑계를 대고 휴가원을 낸 황윤석은 휴가증을 받아 쥐고도 혹시나 내가 없는 사이에 임금이나 높으신 대감이 찾아면 어쩔까 싶어서 고민한 소심한 사람이기도 했다. 결국 눈치를 살피다 고향에 내려가서 한달간 머물다가 다시 올라왔을 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정6품으로의 승진이었다. 정7품에서 정6품으로 승진하는 것은 오늘날로 따지면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큰 차이였는데, 휴가길은 황윤석이 하급관리 생활을 청산하는 마지막 여행길이기도 한 셈이었다. ■ 암행어사길 조선 중기 박내겸은 평안도 암행어사로 발탁돼 떠난다. 그는 결과적으로 보면 성실히 업무를 수행한 편이었지만, 암행에 철저하지 못했고, 출두 이후 신분이 밝혀진 이후에 베풀어지는 각종 연희와 대접을 즐길 줄 아는 타협적인 인물이었다. 특히 평양을 무대로 해서 펼쳐지는 그의 암행어사길은 기생들과의 접촉이 유난히 많았고, 타지에서 잠을 자다가 잠을 이룰 수 없어 기생집을 찾아가는 장면도 등장한다. 때로는 민가에 양해를 구하고 잠을 청하기도 했다. 아침에 집주인이 일어나 일 나갈 때 집안에 아녀자뿐이라 할 수 없이 함께 나와서 추위에 떨며 음식점이 문열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침을 사먹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박내겸이 암행하면서 관찰하고 들은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많이 소개되는데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산골의 나이많은 노파가 세상을 향해 뿜어내는 놀라운 비판정신과 통찰력이었다. 박내겸이 길에서 만난 백성들은 때로는 지나치게 교활하거나, 때로는 현실을 제대로 분석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도 멍청한 무지렁이들은 아니었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조선왕조의 이념적 지침이 허황된 것이 아니라는 게 이 글에서 확인된다. ■ 요양길 한강 정구는 조선시대 존경받는 유학자이다. 그가 78세의 노구를 이끌고 요양길을 떠날 때 배웅에 따라온 이들만 해도 행렬을 이룰 정도였다. 많은 제자들의 수행을 받으며 부산 동래온천을 향해 긴 여정을 떠나는 정구는 몸이 성한 구석이 없어 일반 가마가 아니라 지붕이 트인 견여나 남여의 푹신한 몸에 의지했으며, 험한 길은 아예 물길을 택해 돌아가는 등 제자들의 배려 속에서 가까스로 동래온천에 도착해 동래부사의 환대 속에서 온천욕을 하게 된다.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서도 지방의 용하다는 의원의 침을 맞고 약도 지어먹는 자세한 과정이 일일이 소개되고 있으며, 올라올 때는 경주에 들려 연희를 베푸는 등 요양길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행차를 보여준다. 하지만 정구는 그러고도 전혀 건강이 나아지지 않아 지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끊임없는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데, 필자는 근엄한 유학자인 정구가 지인들에게 아픔을 호소하는 내용의 글을 심심치 않게 인용함으로써 좀더 내밀하게 한 유학자의 삶에 다가가도록 이끌고 있다. ■ 과거길 오늘날 입시열풍에 못지않게 조선시대 선비들은 과거시험에 목을 매었다. 팀을 조직해서 공부하기는 기본이며, 공부하다가 출출할 때 구운 낙지 같은 것을 먹을 때도 세운다는 뜻의 립(立)을 붙여 “여기 입지 하나 드시오”라고 할 정도였다. 과거길에 나설 때도 죽령을 넘으면 죽죽 미끄러진다 하여 반드시 좋은 소식을 듣는다는 조령문을 통과하는 안동새재를 통해 서울로 올라가는 등 과거시험을 보기까지 엄청난 준비과정과 심리적 부담감 등이 길을 올라가는 일정을 보여주는 틈틈이 드러난다. 필자(차미희)는 이 글에서 당시 과거시험이 깨끗하지 못해 유력자의 자제들에게 유리했다는 점을 사례를 들어 밝히기도 하고, 떨어진 사람들이 바로 내려오는 게 아니라 올라간 김에 한양의 명승지들을 돌아보고 오는 게 일종의 코스였다는 점도, 그렇게 한해 두해 서울구경만 하다가 평생 가도록 급제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도 몇 가지의 사례를 통해 들려준다. 또한 과거제도사 전공자답게 수많은 과거시험의 종류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어 조선시대 과거와 관련한 사회상을 이 글을 통해 선명하게 만나볼 수 있다. ■ 그 외에 마중길은 임진왜란 직후 천안 지역 수령으로 부임한 이유간의 일상을 통해 지방수령의 일상이 손님맞이였다는 점을 매우 세밀하게 복원하여 보여준다. 이유간은 고향친구인 정엽이 관찰사가 되어 내려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예의를 갖춰 정식으로 맞이했고, 정치적은 복선을 깔고 부탁하기 위해 찾아오는 소인배들은 정말 진절머리가 난다고 적어놓기도 했다. 장길·보부상길은 보부상들이 걸었던 길을 중심으로 해서 그들의 일상과 삶을 복원한다. 철령에서 원주로 넘어오는 삼남대로, 뗏목을 만들어서 이동했던 수로 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보여주며 보부상 이외에 어떤 상인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활동하며 떠들썩한 장바닥을 이루었는지 개괄적으로 묘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