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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말
문화 변동 속의 전통과 문화 06 ◑ 서론: 전통을 편집하라! 14 01 전통문화, 비판적으로 보기 · ‘국풍 81’과 ‘한국적 디자인’의 추억 25 · 벌거숭이 임금님과 한복 37 · 여행, 관광, 기념품 49 02 전통문화, 현대적으로 읽기 · 문화재를 보는 법 65 · 순응과 위반의 미학 73 · 고졸한 스투디움, 모던한 푼크툼 97 · 흙으로 빚은 백색 신화 107 03 전통문화, 새롭게 창조하기 · 지화의 문화 콘텐츠화 125 · 무늬 ‘이후’의 무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137 - 장응복의 패턴 작업에 대하여 · 리얼리즘으로서의 전통 147 - 형태냐 기능이냐? · 융합·횡단·혼종으로 빚어낸 한국적 포스트모던 감성의 조향사(調香士), 류종대 155 ◑ 보론 긍정의 미학을 찾아서 1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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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수문장 교대식이 전통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전통이 과거의 사실 꼭 그대로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수문장 교대식은 전통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전통은 세상에 없다. 전통이란 현재의 관점에서 해석된 과거일 뿐이다.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전통은 전통적이지 않다. 오히려 매우 현대적이다. 그런 점에서 고궁 수문장 교대식은 매우 훌륭한 전통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과거의 재료(왕궁, 복식, 의례 등)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이지만, 또 관광이라는 현재의 필요에 맞추어 재구성한 것이라는 점에서 현대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발명된 전통’이며 곧 전통이다.
---p. 15 20세기 초 민족주의 운동의 일환으로 출발했던 전통의 근대적 변용이라는 장정은, 마침내 20세기 말에 이르러 그 정치적 의미를 완전히 탈각하고 순수한 경제적 관심의 대상으로 전화하였다. 전통의 변용은 곧 근대의 변용이었으며, 그와 더불어 한국의 근대와 자본주의 역시 자신을 편집해 나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은 역사 속에서 이렇게 ‘편집’된 것이었다. ---p. 20 ‘한국적 디자인’이라고 불리는 시각적 형식에서 전통적 소재는 한국 근대의 내적 특질을, 현대적 기법은 외적 특질을 각기 반영하는 것으로써, 이러한 전통(소재)과 현대(기법)의 결합이 바로 전근대성(내면)과 근대성(외형)의 혼종으로 이루어진 한국 근대성의 특질을 뚜렷하게 가시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른바 ‘한국적 디자인’은 한국 근대의 혼종성(hybridity)을 잘 보여주는 시각적 형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pp. 27~28 한국인에게 근대는 그냥 물질적인 것이다. 한국의 정신과 문화는 근대 이전에만 존재한다. 그 이유는 물론 근대화의 시간이 짧아서일 수도 있지만, 그 못지않게 과거의 역사가 무거운 관성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근대화의 경험을 어떻게 의미화하고 새로운 전통으로 직면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남긴다. 그런 점에서 정신과 물질이 하나로 통합된 문명태로서의 한국 근대는 여전히 미래의 과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한국적 디자인’이 단지 추억으로 그치지 않고 지금까지도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p. 36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디어는 ‘한국의 미’ 운운하며 한복 놀이를 민족주의의 영토에 다시 가두려고 한다. 한복의 탈영토화를 재영토화하려고 한다. 나는 바로 이 부분을 비판한 것이다. 나는 이제 한복 입기가 민족의 숭고한 행위가 아니라 그로부터 해방되는, 그냥 하나의 놀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복을 해방시켜야 민족이 해방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복을 가지고 놀아야 한다. ---p. 40 이제 더 이상 한복에서 ‘한국의 미’ 운운하는 딱지는 떼어도 좋다. 한복의 미래는 ‘제대로’ 입는 것이 아니라 ‘제멋대로’ 입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p. 46 기념품으로서의 공예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은 한국 근대공예는 물론이고 한국의 근대화 자체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의 정체성은 근대화 과정에서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형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무조건적으로 부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비판적으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p. 61 무엇을 표명했든 간에 실제 조선인의 삶은 철저히 현세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민중의 삶은 더욱 그랬다. 민중의 삶에는 어떠한 초월도 없었다. 사실 ‘세계 가치관 조사’ 같은 것을 보면 한국은 세계에서도 최고 수준의 현세적 가치관을 가진 나라이다. 여기에는 지배층과 민중이 다르지 않다. 다만 지배 층은 문인화가 보여주는 것 같은 이념적 위장막을 두르고 있었을 뿐이다. ---p. 81 재료의 변화는 형태에도 영향을 미쳤다. 초기의 기괴한 도철문과 기형(器形)이 점차 부드럽고 단순한 형태로 변해 가면서 마침내 조선 스타일로 완성되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단순하고 소박한 형태였다. 가히 ‘조선식 고전주의’라 할 만하다. ---p. 114 조선의 백자 제기 또한 그런 백색주의 신화의 일부를 구성한다는 사실은 굳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꿈결 속에서 흘낏 비친 흰 그림자 같은 조상의 혼을 담은, 그릇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작은 신전은 아니었을까. 그런 신전의 미니어처로서의 그릇. 그것은 하얀 영혼에게 바치는 제물이 담긴 하얀 그릇, 흙으로 빚은 백색 신화 자체였던 것이다. ---p. 122 전통이 의미가 있는 것은 과거에 어떠했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 어떠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아무리 의미가 있었던 것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아무런 의미가 없으면, 그것은 말 그대로 의미가 없는 것이다. 살아 있는 것만이 전통이 될 수 있다. ---p. 128 오늘날 한국 사회가 외형적으로 아무리 화려하고 현대적이며 첨단의 모습을 보여줄지라도, 기본적으로 내재적 질서가 부재하다면 그것은 단지 피난민촌을 뻥튀기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p. 172 복고주의 담론은 그러한 관념에 대응하는 현실이 지금 이곳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허위의식이 될 수밖에 없다. 과연 과거에 그러한 현실이 존재했는가 하는 점도 분명하지 않다. 사실 과거란 대부분 현재의 관점에서 재구성된 그림이다. 그중에서도 복고주의는 과거를 이상화하여 만들어낸 그림이며 현재를 판단하는 근거를 과거에 두는 역사적 태도를 가리킨다. ---pp. 179~180 전통을 오로지 과거의 것으로만 묶어 두려는 태도는 전통의 살아 있는 생명력을 박제화함으로써 사실상 과거의 전통 그 자체도 죽여 버리는 일과 다름없다. 오히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동시대의 생활양식에 기반한 새로운 전통을 창출해 냄으로써, 옛 전통과 오늘의 전통을 역사의 지평 위에서 서로 만나게 하고 그것을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이다. ---p. 189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긍정의 미학이다. 정체성이란 결국 삶에 대한 긍정이기 때문이다. 긍정적이지 않은 정체성이란 의미상 모순이다. 부정적 현실에 대한 의식을 정체성이라고 부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짓 정체성은 있을지라도 부정 정체성을 없다고 할 수 있다. 한국 디자인의 정체성에 대한 모색도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태도에서 출발해야 한다. 과거에 대한 편향된 해석에 근거한 복고주의적 의식은 값싼 위안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긍정적 현실을 만들어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없다. ---pp. 205~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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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전통’은 진짜 전통인가, 근대의 편집인가?
한국인의 ‘전통 담론’에 던지는 도발적 질문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한국의 ‘전통문화’는 과연 과거로부터 고스란히 물려받은 유산일까? 아니면 특정한 목적에 의해 사후적으로 재구성된 발명품일까? 저자는 신간 『전통의 편집』을 통해, 그동안 우리 사회가 맹목적으로 신성시해 온 ‘전통’의 실체를 해체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근대적 메커니즘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저자가 이번 책을 통해 던지는 핵심 문제의식은 명징하다. 그것은 바로 ‘한국인에게 전통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왜 이토록 전통에 집착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저자는 서론에서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기획된 전통(invented traditions)’ 개념을 빌려와, 우리가 흔히 유구한 역사의 산물이라 믿는 전통의 상당수가 사실은 ‘근대’라는 시공간 속에서 발명되고 편집된 정치적·문화적 산물임을 폭로한다. 결핍과 희망이 만들어낸 유령, ‘전통’ 정면으로 마주하기 저자가 진단하는 한국인의 전통 담론은 일종의 ‘결핍’과 ‘희망’의 산물이다. 식민지와 분단, 그리고 급격한 현대화를 거치며 축적된 문화적 상실감과 열등감이, 역설적으로 ‘순수하고 위대한 전통’이라는 환상을 붙잡게 했다고 지적한다. 즉, 우리가 말하는 전통은 과거에 실재했던 사실 그 자체라기보다는, 현대인들이 현재의 결핍을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희망하는 것’을 투사하여 만들어낸 ‘이상화된 유령’에 가깝다. 이 책의 가장 도발적인 지점은 한국의 전통론이 지닌 ‘민족주의적 허구성과 이데올로기성’을 정면으로 비판한다는 데 있다. 저자는 서론을 통해 미셸 드 세르토의 일상생활 실천 이론 등을 접목하며, 국가나 권력이 지배 담론으로서 전통을 어떻게 ‘편집’하고 대중에게 주입해 왔는지를 정밀하게 추적한다. 관제 축제, 표준화된 전통예술 그리고 일상에 깊숙이 침투한 국가주의적 에토스가 어떻게 우리를 무비판적인 전통 숭배자로 만들었는지 그 과정을 낱낱이 보여준다. 무비판적 숭배에서 주체적인 ‘편집’의 공간으로 하지만 저자의 목표는 단순히 전통의 가치를 폄하하거나 파괴하는 데 있지 않다. 저자의 진짜 의도는 “전통이 현재의 산물임을 명확히 ‘앎으로써’, 비로소 전통을 더 잘 이해하고 주체적으로 다룰 수 있다”는 해방의 메시지에 있다. 전통이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근대의 편집물임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전통의 노예가 아닌 ‘편집자’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저자는 이제 한국 사회가 무비판적인 신성시와 민족주의적 강박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의 삶에 필요한 문화적 자원으로써 전통을 자유롭게 재해석하고 편집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전통의 편집』은 단순한 역사 비평이나 미술 비평을 넘어, 한국인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거대한 이데올로기인 ‘전통’에 대한 문명사적 해부학 보고서이다. 저자가 제시한 묵직한 질문들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독자들에게 한국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