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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민 정치의 기원과 전개
이황직
신서원 2026.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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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 역사적 실재로서 시민과 시민 정치
1장 서장- 왜 시민 정치인가
위기의 민주주의
새로운 권위주의의 도전
양극화와 ‘힘의 정치’
한국 민주주의의 반성
2장 이론적 논의- 시민 정치의 개념과 원리
민주주의에서 시민 정치로
새로운 사회 갈등과 참여민주주의의 한계
권력 정치와 대비되는 시민 정치
기존 정치 개념과 대비되는 시민 정치
권력 정치를 넘어서
시민 정치 이론의 분석적 재구성
정치사 연구의 준거로서 시민 정치
시민 정치의 이념형

1부 한국 시민 정치의 원형과 기원- 조선 후기와 구한말의 시민 정치
3장 시민 정치의 원형 1- 왕도의 민본적 전환
조선 유교 정치의 원리와 실제
왕도정치 쇄신의 출처, 『맹자』
왕도정치의 민본적 전유- 정약용의 방식
유교 조선, 스스로 변화할 수 있었을까?
4장 시민 정치의 원형 2- 개혁 엘리트와 불복하는 백성
개혁주의 엘리트의 대응
시민 정치의 민중적 원형- 불복하는 백성
1880년대 개혁 관료, 시민에 주목하다- 『한성순보』와 『미속습유』
박영효의 ‘건백서’- 뒤늦은 개혁 구상
시민 없는 개혁의 한계- 엘리트의 실패
개화파 시민 정치 구상의 역설
불복하는 백성과 동학의 평등주의
유교 정치의 민중적 전유, 동학혁명
5장 시민 정치의 기원- 서재필과 독립협회
서재필, 김옥균의 권력 정치를 넘어서다
서재필, 자치 문화에서 시민 정치를 배우다
목민 대신 시민 자치를 주장하다
“공사 간에 문을 열고”- 공론장의 시민 정치
시민 정치의 기원- 평등한 시민의 출현과 독립협회
만민공동회의 시민 정치
6장 시민 정치와 권력 정치의 분화
시민 정치의 완결- 제1차 만민공동회
만민공동회와 의회의 사이- 시민 정치와 권력 정치의 분화
권력 정치로의 변질과 독립협회 운동의 결말
구한말 시민 정치의 평가
초기 시민 정치의 유형화

2부 국권 위기에서 시민 정치의 전개- 입헌·자강에서 자치·자강으로
7장 전제군주의 실패와 국권 위기
입헌·자강과 자치·자강- 자강운동의 단계
서학에의 관심과 천주교 교권 정치
고종과 이승만
8장 입헌·자강의 시민 정치- 헌정연구회와 개신 유림
자강운동에서 헌정연구회의 의의
헌정연구회 결성 과정과 종교계 배치
개혁파와 보수파의 연대, 윤효정과 심의성
개신 유림의 원형, 이기와 홍필주
헌정연구회 유림의 서구 정치학 접합
『헌정요의』에 담긴 개신 유림의 사상
『황성신문』의 유교적 경장 노선과의 친화력
개신 유림의 형성과 표훈원 농성
시민 정치 역사에서 헌정연구회의 의의
9장 자강운동의 유교적 시민 정치
자강의 유교적 설명
자치·자강, 국채보상운동의 국민 주체
량치차오의 변법과 신민의 영향
자강운동 개신 유림의 량치차오 수용
자강의 실천 원리, 합군
박은식, 제왕의 유교에서 인민의 유교로
10장자치·자강의 시민 정치- 자치민의소와 영남 유림
국채보상운동과 민의소의 자치 시도
영남 유림의 서구 수용과 이인재
이인재의 유교적 자치 논리와 실험
자치민의소 실험의 의의
2부 평가- 시민 정치에서 자강운동의 의의

3부 국외 이주민 자치의 시민 정치
11장 안창호와 미주 한인의 시민 정치- 신민회와 대한인국민회
공화정의 시민 정치- 신민회에서 임시정부로
대한인국민회의 미주 독립운동과 시민 정치
안창호의 시민 정치와 윤리적 주체
독립운동의 위기와 대공주의
12장 망명 유림의 규약 공동체- 관일약과 공리회
유림 의병의 비밀결사, 독립의군부
의병과 자강운동의 결합, 광복회와 박상진
국경 너머의 자치- 화서학파 의병의 ‘관일약’
안동 혁신 유림의 공화주의적 전환
공리회, 유교적 공화의 시민 정치
평가- 조선 유교의 마지막 도전
13장 북간도 자치의 시민 정치와 권력 정치
시민 정치에서 북간도의 보편성과 특수성
북간도 개척사와 이주민 자치 역량
종교와 민족주의의 접합
간민회의 자치 실험- 과정과 결말
종교-정치 접합 측면에서 본 간민회와 농무계의 갈등
시민 정치와 권력 정치 개념 틀에서 본 실패 요인
북간도 시민 정치의 마지막 모습
3부 평가- 시민 정치에서 국외 이주민 자치의 의의

14장 맺음과 이음- 3·1운동과 재생하는 시민 정치
정복된 국민은 자치할 수 있는가?
3·1운동과 독립선언서의 시민 정치
유교 시민 정치의 공고화- 류인식과 김은동
후기감사의 글
참고문헌
역사 인물 찾아보기

저자 소개 1

충북 보은에서 나서 대전에서 자랐다.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고전강독모임 작은대학(1기)을 수료했다. 대학 재학 중 ??세계의 문학??에 “푸른 별” 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연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로 진학하여 사회사상과 문화·종교사회학을 전공했고, “근대 한국의 윤리적 개인주의 사상과 문학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작은대학 총무교수, 독서대학 르네21 기획위원을 맡아 대안교육과 독서운동에 힘을 보탰고, 근현대 유교정치운동사 연구로 한국인문사회과학회 학술상(2017)을 수상했다. 한국사회이론학회와 한국인문사회과학회의 총무이사와 편집위원으
충북 보은에서 나서 대전에서 자랐다.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고전강독모임 작은대학(1기)을 수료했다. 대학 재학 중 ??세계의 문학??에 “푸른 별” 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연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로 진학하여 사회사상과 문화·종교사회학을 전공했고, “근대 한국의 윤리적 개인주의 사상과 문학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작은대학 총무교수, 독서대학 르네21 기획위원을 맡아 대안교육과 독서운동에 힘을 보탰고, 근현대 유교정치운동사 연구로 한국인문사회과학회 학술상(2017)을 수상했다. 한국사회이론학회와 한국인문사회과학회의 총무이사와 편집위원으로 오랫동안 봉사했고, 현재는 동양사회사상학회와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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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6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654쪽 | 944g | 153*224*33mm
ISBN13
9788979401530

책 속으로

“민주주의 정치에서는 일단 다수가 되기만 하면 행정 권력뿐만 아니라 지식계와 공론장까지 쉽게 굴복시킬 수 있다. 정치사회는 처음에는 민중의 불만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이 민중을 여전히 지도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수는 나머지 소수에게 위력을 행사하고 또한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정치 세력을 교체해 간다. 플라톤이 우려했던 상황, 곧 민중의 교사를 자처하며 자신이 민중을 이끈다고 생각했던 소피스트들이 거꾸로 민중이 원하는 바에 맞춰 진리와 아름다움을 규정해 주는 기술자에 지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 p.33

“피치자의 동의와 협력을 구하지 않은 채 권력으로 강제하는 정치 행태를 ‘권력 정치(power politics)’라고 개념화할 수 있다. 민주적 방식으로 집권했으나 토론과 타협 없이 일방적으로 통치하는 권위주의 정부가 대표적인 권력 정치 형태이지만, 집단화한 주권자가 직접 위력을 행사하여 대중과 정치적 소수의 내면을 억압하는 광장 정치도 권력 정치에 속한다. (……) 반면에 누가 권력을 획득하는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그 대신 그 권력의 형성과 행사 과정에 주목하는 정치 개념이 있을 수 있다. 여기서 정치는 합법적인 제도와 절차에 의해 권력을 통제하고 시민이 참여와 협력을 통해 권력을 행사하는 일련의 과정인데, 앞서 권력 정치 개념과 대비하여 ‘시민 정치(civic politics)’로 개념화할 수 있다.”
--- p.71

“정약용이 제기한 왕도정치의 민본적 전환론이 한국의 시민 정치 역사에서 갖는 의의는 분명하다. 조선의 사림파가 왕도정치론을 통해 지배 체제를 합리화했던 것과 달리, 정약용은 왕도정치라는 전통적인 유교 정치의 틀에서 그것을 재해석해서 조선의 병통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길이 백성을 주체로 하는 새 의미의 민본주의에 있다는 논리를 체계화했다. 정약용에게서 마침내 전통적인 왕도정치를 근대적인 시민 정치로 전환할 수 있는 언어가 생성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재해석된 민본 이상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민족의 위기에서 자강운동과 독립운동에서 서구 민주주의의 원리를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변용하는 데 필요한 정신적·사상적 자원을 제공했다.”
--- p.112

“만민공동회의 경험을 통해서 민중은 의견을 결집해서 정부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었고, 동시에 국가 수호의 의무를 정부에만 맡기지 않고 먼저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의식을 갖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민중은 만민공동회의 경험을 통해서 권리와 의무를 갖는 시민의 자격(citizenship)을 갖는 주제로 거듭나게 되었다.”
--- p.199

“시민 정치 세력이 권력 정치에 맞서 승리할 경우, 어떻게든 새롭게 제도 권력의 한 축으로 자리할 수밖에 없다. 이때 권력을 제도 개혁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시민 정치의 최종 단계로서 권장할 일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제도에 새롭게 포섭된 이들이 또 다른 권력 집단으로 자리하게 될 때 다시 권력 정치의 사이클이 시작된다. 시민의 세력일지라도 이들이 기존 권력을 무너뜨린 후에 새롭게 권력의 자리를 대체한다면, 어떤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그들은 결국 권력 정치의 가담자로 전락하게 된다. 현실 정치는 늘 신진 세력을 통해 구체제의 세력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권력 정치를 영속화하기 때문이다.”
--- p.222

“자강운동에서 주목할 것은 크게 두 흐름이다. 하나는 입헌정체로의 전환이라는 위로부터의 정치제도 개혁을 통한 자강이고, 다른 하나는 아래로부터 자치를 통한 시민의 주체적 정치 역량으로서의 자강이다. 개념적으로는 전자를 입헌·자강으로, 후자를 자치·자강으로 각각 분리할 수 있지만, 실제 역사로는 이 두 흐름이 연속적 발전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입헌과 자치는 자강운동을 한국 시민 정치의 발전사에서 이해하는 핵심 개념이다. 따라서 시민 정치 측면에서 유교 계열의 자강운동을 분석할 때도 입헌과 자치의 두 개념을 기본 분석 범주로 활용할 수 있다.”
--- p.247

“1906~1907년 무렵에는 이미 의병 유림과 그 밖의 다양한 애국 세력을 포괄할 만큼 자강운동의 폭이 넓어져 있었고, 그 가운데 자신회(自新會)처럼 국권 회복 목표에 초점을 맞춰 의혈 투쟁을 전개하는 분파의 존재도 자연스럽다고 하겠다. 우리가 자강운동을 그 목표인 국권회복 대신 그 방법인 교육·계몽과 식산(경제) 부문에 치우치는 편견을 갖다 보니, 자강운동 내부의 항일 정치 투쟁에 미처 눈길을 주지 못했을 뿐이다. 그동안 자신회의 매국대신 격살 의거에 주목했던 데서 벗어나서, 이제 자신회를 입헌·자강 측면에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 p.368

“국채보상운동 참여자들은 무능하고 무력한 제국의 주권자를 대신해서 시민이 국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을 자명한 시민의 권리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이 운동은 시민 정치의 조건인 민권(民權)을 전 민족적 차원에서 승인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국채보상운동 전개 과정에서 민의를 결집하고 실행하려는 목적으로 민의소(民議所) 또는 민회(民會)가 설치되었는데, 이는 전통적 자치 기관인 향회(鄕會)를 시민 스스로 근대적으로 전환해서 시민 정치의 기초인 자치를 실현한 것으로 큰 의미가 있다.”
--- p.400

“고령의 국채보상운동에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이인재는 신학문에 관한 학문적 호기심에 더해 자강운동의 배경으로서 서구 정치사상과 제도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때부터 이인재의 학문 탐구는 실천적 삶과 일관하게 되었다. 입헌정체와 자치에 관한 탐구에 그치지 않고, 이인재는 이를 향촌 사회에서 실행하고자 했다. 이와 관련해서 주목할 문서가 바로 이인재가 쓴 “자치민의회취지서(自治民議會趣旨書)”이다.”
--- p.416

“옥돌은 겉모습이 돌과 같아 그 진면목을 알기 어렵다. 반면에 물고기 눈깔은 언뜻 진주처럼 빛난다. 사람들은 겉만 보고 옥돌 대신 물고기 눈깔을 선택하곤 한다. 대한협회의 취지에 공감한 김대락은, 인용한 시구의 비유를 통해서, 겉으로 화려하나 내실이 없었던 조선의 유학 전통을 비판하고, 세상을 바로잡는 실천에 비로소 유학의 정수가 있다고 선언한다. 이 점에서 김대락의 관점은 이기, 박은식, 장지연 같은 자강운동 개신 유림과 차이가 없다.”
--- p.511

“자치가 반드시 시민 정치 원리에 의해 작동되는 것만은 아니다. 자치가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협력으로 운영되지 않을 때, 다시 말해 자치가 특정 세력의 이념이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될 때 이는 권력 정치로 전락하게 된다. 그동안 이주민 자치의 모범으로만 알려진 17세기 뉴잉글랜드 정착지 자치가 실제로는 다수 종파의 종교적 권력 정치로 점철되어 있었던 것처럼, 북간도의 자치 시도는 이주민의 자발적 참여와 결합을 생략한 채 특정 종교 세력의 의지를 관철하는 권력 정치에 의존했다고 하겠다.”

--- p.559

출판사 리뷰

왜 ‘민주주의’가 아니라 ‘시민 정치’인가?

오늘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진 지 오래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단지 신생 민주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성숙한 민주 국가들에까지 확산하고 있다. 현재 민주주의의 붕괴는 과거 군사 쿠데타나 민중혁명 같은 비제도적 방식이 아니라 민주적 선거로 집권한 지도자와 정당이 지극히 민주적 절차에 따르는 제도적 방식으로 진행된다. ‘민주주의의 승리’ 또는 ‘국민의 명령’을 외치면서 민주주의 정치제도가 보장한 ‘다수 권력’을 제약 없이 행사해서 공화국의 헌정 체제를 무너뜨린 데서 공통적이다.

이 책은 ‘누가 통치하는가’ 대신 ‘어떻게 통치하는가’를 묻는 데서 시작한다. 통치자의 수가 1명이든 여러 명이든 아니면 다수이든, 위협과 폭력을 행사해서 피치자를 통치하는 것은 ‘권력 정치’이다. 민주주의 정체(政體)를 맹목적으로 숭배하게 될 때 이는 집권 다수 세력의 전횡을 억제하지 못하는 권력 정치로 전락하게 된다. 이 책은 권력 정치로 전락한 현대 민주주의의 속성을 비판하고 그 대안으로 ‘시민 정치’를 새롭게 개념화하고, 그 역사적 실재로서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를 탐색했다. 시민의 정치 결사체로 폴리스의 시민은 ‘스스로 통치’[자치]하는 자이고, 그는 민회에서 자율적으로 만든 규칙에 의해서만 통치될 수 있었다. 이처럼 ‘통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은 시민 정치의 핵심 원리이고 자율과 자치는 그 실행 원칙이다(1~2장). 한국 시민 정치의 역사를 다룬 이 책이 구한말 개혁주의 세력의 사상과 행동을 통해서 자율과 자치의 원칙이 어떻게 관철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을 핵심 과제로 삼은 까닭이다.

한국 시민 정치의 원형과 기원(1부)

서구 사회과학계의 시민 개념을 금과옥조로 여기던 한국 학계는 정작 한국사에서 서구와 다른 방식으로 탄생한 시민의 존재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한국 시민 정치의 역사가 장구하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 이 책 1부에서는 한국 시민 정치의 초기 형성 과정을 ‘원형’과 ‘기원’으로 구별해서 서술한다.

한국 시민 정치의 원형은 개혁 엘리트와 불복·저항하는 백성의 두 흐름에서 형성되었다(3~4장). 조선 후기 정약용(丁若鏞)은 보수적인 왕도정치 이상을 민본적으로 전환하는 시도를 통해 위로부터의 변화를 시도했고, 서학과 동학 그리고 민란의 주체들은 유교 정치라는 지배자의 이념을 백성의 편에서 재해석(전유)할 만큼 똑똑했다. 스스로 통치하는 자로서 시민의 자각이 발견되지 않았고 또 근대 시민 정치와 직접적 계승 관계가 없는 까닭에 기원이 아닌 원형으로 규정했지만, 이후 한국 시민 정치의 전개에서 상상력의 원천으로 끊임없이 호출되었다.

서재필의 1차 귀국기 활동은 한국 시민 정치의 독자적 기원으로서, 󰡔독립신문󰡕과 독립협회가 개척한 공론장에서 자발적으로 공론을 형성하고 자치와 의회 개설 등의 정치개혁 운동에 나섰던 청년·학생과 신진 개화 관료들을 시민 정치의 주체로 성장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독립협회가 펼친 조숙한 시민 정치는 두 차례의 만민공동회를 통해서 완결되었다(5~6장).

한국 시민 정치의 초기 전개, ‘입헌·자강’과 ‘자치·자강’(2부)

갑오개혁과 독립협회 활동에 영향받은 재경·상경 유림 집단과 개혁 관료를 중심으로 보수적 유교 정치 이상과 결별하고 시민 정치 원리를 수용하기 시작했다. 이 책 2부에서는 한국 시민 정치의 초기 전개 과정에서 이기(李沂, 호 海鶴), 홍필주(洪弼周) 등 초기 개신 유림의 주도적 역할을 복원하고, 이를 ‘입헌·자강’과 ‘자치·자강’의 두 단계로 구별해서 서술한다.

전제군주로 변모한 고종의 민회 해산 조치로 주춤했던 개혁 성향 유림 세력은 1904년 이후 시민 정치 재생기에 입헌정체 수립을 통한 자강운동(‘입헌·자강’)의 주축으로 부활하게 된다. 한때 독립협회 탄압에 앞장선 충군·보황파 유림 관료 세력이 이즈음 국권 위기 국면에서 개혁 성향 유림과 협력하면서 애국·개혁 유림으로 거듭난 일은 역사의 아이러니였다(7장, 8장). 유교적 시민 정치 이론의 발전에는 국내 정치 세력과의 교섭뿐만 아니라 당대 중국과 일본의 개혁 사상의 영향도 있었는데, 그 가운데 량치차오(梁啓超)의 영향은 절대적이었다(9장).

위로부터의 입헌·자강 흐름과 별도로 지방에서 국채보상운동의 불꽃이 타올랐는데, 이는 시민 정치 원리를 더욱 충실히 반영한 자치·자강 흐름으로 이어졌다(10장). 대구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대구광문사 사장 김광제(金光濟)는 의병 유림 출신으로 자강운동의 중심 인물로 성장했고, 인근 고령군의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이인재(李寅梓)는 한주학파 유림이었다. 김광제와 이인재를 비롯한 지방 유림은 국채보상운동 성과를 바탕으로 민의회(民議會)와 민의소(民議所) 등 자치를 논의·실행할 기관을 설치하는 데 앞장섰다. 이는 동시에 전통적 유교 정치를 시민 정치로 전유하는 거대한 사상적 전환 시도였다.

시민 정치 무대의 이동 - 국권상실 전후 국외 망명·이주민 자치(3부)

국권상실 전후 시민 정치의 무대는 하릴없이 국외로 옮겨갔다. 이때 정치적 망명객과 경제적 이주민이 결합한 지역·단체 자치와 민족 자치를 목표로 하는 공동체가 다수 생겨났는데, 각지의 자치 기관을 연합해서 시민 주체의 새 국가를 건설하는 독립운동 세력의 구상은 이를 토대로 수립되었다. 이 책 3부에서는 미주 지역, 서간도, 북간도, 연해주 등에서 발전한 망명·이주민 자치를 탐색하고, 이를 통해 한국의 시민 정치가 단절되지 않고 새로운 무대에서 사상과 실천 모두 새로운 단계로 발전한 역사를 서술한다.

대한인국민회는 안창호(安昌浩)가 주도한 미주 지역의 한인 자치 발전사를 완결한 기관이다. 안창호는 대한인국민회를 중심으로 국외 각 지역의 민족 자치를 실행하고 각 기관을 통합하는 방식으로 ‘아래로부터의 통일·독립국가 수립’을 계획하고 실천했다(11장). 국망 전후 항일 유림은 한반도에 맞닿은 연해주, 서·북간도로 집단 망명해서 기존 이주민 세력과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했다. 류인석(柳麟錫)이 이끈 보수적인 화서학파 의병 유림은 망명·이주민 세력을 결집하기 위해 자치 규약이자 결사체인 관일약(貫一約)을 결성했는데, 전통적인 향약에서 벗어나 신분적 제약에서 벗어난 근대적 정치 단체를 지향했다. 본래 의병 세력이었다가 뒤늦게 자강운동에 참여한 이상룡(李相龍) 등 영남의 혁신 유림은 서간도로 집단 망명했는데, 이들의 자치기관인 경학사(耕學社)와 공리회(共理會)를 통해서 유교적 시민 정치 원리에 충실한 자치를 실현했더(12장). 북간도에서는 개혁주의적인 기독교 세력과 전통주의적인 유림 세력이 민족 자치의 주도권을 두고 각기 중국의 지방 권력과 중앙 권력에 선을 대고 경쟁하다가 끝내 좌초하기도 했다(13장). 이러한 국외 망명·이주민의 자치는 영국 식민지 시기 청교도 이주민의 타운 자치가 미국 독립혁명에 인적·정신적 자원을 제공한 역사에 비견된다.

한국 시민 정치의 특수성, ‘군자-시민’의 탄생

한국 시민 정치의 구한말 기원 테제는 그것이 조선의 유교 정치 이상과 치열한 이론적 대결을 벌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상상하게 한다. 이 관점에서 한국의 시민 정치 역사는 유교 정치에 대한 도전사이면서 동시에 전유의 역사이다. 이는 구한말에 탄생한 역사적 실체인 시민에게, 서구의 ‘부르주아-시민’과 구별되는, ‘군자-시민’이라는 구체적 규정을 부여한다.

본래 유교의 군자도 스스로 통치하는 자이다. 다만, 통치의 방향이 시민과 다르다. 서구 시민의 자기 통치가 정치 결사체라는 외면으로 뻗어나간 정치적 주체의 실천인 것과 달리, 군자의 자기 통치는 내면의 도덕적 완성을 향했다.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의 균형을 통해서 군자가 통치의 방향을 내부에서 외부로 확충해 간다고 할 수 있지만, 그는 군주의 통치를 보조하는 자이지 통치자는 아니었다. 국권 위기에 닥쳐 뒤늦게 서구 국법과 정치를 탐구한 조선의 유림은 자기 통치 문제에 부딪혀 곤혹스러웠다. 무력한 군주를 대신할 국권 회복의 주체로 신민(臣民)을 깨우쳐 신민(新民) 곧 새로운 시민으로 거듭나게 해야 하는데, 그러면서도 도덕 주체로서 군자 이상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한국 시민 정치의 특수성으로서의 도덕주의 성향은 이러한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대화적 역사관으로 포착한 보수(의병)와 개혁(자강)의 협력

이 책은 민족주의나 민주주의 같은 단일 이념에 입각한 목적론적 서사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성성(多聲性)을 인정하는 대화적 역사관으로 재해석한다. 이 관점에서 한국의 근현대사는 임박한 구체제의 붕괴 앞에서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려 한 다수의 주체가 정해진 각본 없이 저마다 역할을 맡아 경연해 간 장편의 무대이다.

실제로 가장 완고했던 위정척사 또는 의병 유림이 개혁주의적인 자강운동 세력으로 변모하기도 했고, 한때 독립협회 탄압에 앞장선 충군·보황파 유림이 국권 위기 국면에서 애국·개혁 유림으로 거듭나기도 했다. 대립하던 보수와 개혁 세력이 서로 자극받아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고, 특정 국면에서는 화해하고 협력하며 더 높은 수준의 통일을 이뤄냈다. 다수 주체를 상정하는 긴 호흡의 통사 저술은 한국 시민 정치의 전개 과정에서 등장하는 협력과 통일의 사례들과 오랫동안 잊힌 다른 목소리를 새롭게 조명하는 데에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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