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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도서 드골
프랑스의 자존심과 자유를 지킨 위대한 거인
원서
De Gaulle
판매자
죽림선비
판매자 평가 5 8명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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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시작하는 말

Chapter 1 플랑드르의 아이
어린 시절부터 확고한 목적의식을 키운 준비된 리더십
운명의 사나이 / 프랑스의 장엄함과 화려함에 이끌린 어린 시절 / 확고한
목적의식을 지니고 미래를 준비하다 / 드레퓌스 사건의 망령

Chapter 2 전쟁의 도가니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로이 피력하는 직설적 리더십
사관학교 시절 / 페탱을 만나다 / 초급장교 드골 / 첫 번째 부상 / 독일군
의 포로가 되다 / 탈출 시도 / 종전

Chapter 3 젊은 사자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는 불굴의 용기와 기회를 놓치지 않는 리더십
폴란드에서 / 가정을 꾸리다 / 육군대학으로

Chapter 4 부단한 고집불통
자신이 믿는 바를 강하게 주장하는 자기 확신의 리더십
페탱의 비호 아래 새로운 일을 시작하다 / 명예 회복 / 명예로운 샤쇠르 /
드골과 페탱의 불화 / 프랑스 식민 제국의 본성을 통찰하다 / 정치적 인맥
을 쌓고 전술 이론을 확고히 하다 / 기갑전력의 필요를 인식하다 / 전차부
대 지휘관 / 페탱과 갈라선 드골

Chapter 5 프랑스의 정신
적에게 투항하기를 거부하고 잘못된 정책을 비판한 명예로운 리더십
피할 수 없는 전쟁 / 드골의 비판 / 시작부터 잘못된 전쟁 / 무너지는 정부
의 각료 / 프랑스의 명예를 싣고 영국으로

Chapter 6 잿더미에서
곤경 속에서도 결코 타협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리더십
프랑스는 혼자가 아닙니다 / 프랑스 저항운동의 지도자를 찾다 / 자유 프
랑스 운동의 지도자, 드골 / 임시정부 수립 노력 / 메르스엘케비르의 비극
/ 영국 정부의 협력 / 프랑스 식민지의 향방 / 분열의 조짐 / 지로와 드골 /
처칠과 루스벨트의 골칫거리

Chapter 7 의기양양한 복귀
위험 속에서도 두려움을 보이지 않는 침착하고 대범한 리더십
프랑스 해방과 드골의 귀환 / 비시 정부 척결 / 전후 프랑스의 지위 보장

Chapter 8 프랑스 만세
혼돈과 격변으로부터 나라를 강국으로 이끄는 단호한 리더십
일반 시민이 된 드골 / 사막에서의 방랑 / 작가 드골 / 프랑스 식민 제국의
몰락과 드골의 정계 복귀 / 프랑스의 국가원수 / 죽음

끝맺는 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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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자 : 마이클 E. 해스큐 Michael E. Haskew
『WWⅡ 히스토리 매거진(WWⅡ History magazine)』의 편집자다. 『전장의 저격수(The Sniper at War)』, 『전투편제: 서부전선의 연합군(Order of Battle: Western Allied Forces of WWⅡ)』을 비롯한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 또한 아이젠하워 센터(Eisenhower Center for American Studies)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 편람(The World War Ⅱ Desk Reference)』의 편집을 맡았다. 테네시(Tennessee) 주 힉슨(Hixson)에 살고 있다
역자 : 박희성
아주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사학과에서 「러일전쟁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군 36기로 임관하여 육군 정보학교 중국어 과정을 수료했으며 수방사, 7사단, 3사관학교 등에서 근무했다. 현재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에서 러일전쟁 전후의 국제관계를 연구하고, 두원공과대학교 군사학과 학생들에게 전쟁사를 가르치고 있다. 「러일전쟁 기간 국제관계와 한국」(2011) 등 연구 논문을 저술하고, 『전쟁 영웅들의 멘토, 천재 전략가 마셜』(2011)을 번역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7월 1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520g | 153*224*30mm
ISBN13
9788997094165

출판사 리뷰

“위대하지 않은 프랑스는 프랑스라고 할 수 없다.”

샤를 드골이 누구야?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떠나 프랑스 수도 파리에 도착하면 샤를드골국제공항에 내리게 된다. 이 공항의 이름은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샤를 드골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더욱이 그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대항하는 ‘자유 프랑스(Free French)’ 운동의 지도자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프랑스는 전투에서 패배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에서 패배한 것은 아닙니다. … 어떠한 일이 생기더라도 프랑스에서 저항의 불꽃은 꺼져서는 안 되며 꺼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1940년 6월 18일, 드골은 BBC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이렇게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군에 패한 프랑스의 항복이 임박한 혼돈 속에서, 드골은 영국으로 망명해 스스로를 ‘자유 프랑스’의 지도자라고 선언했다. 그에게는 참모, 군대, 자금은 물론 국가도 없었다. 하지만 드골에게 이는 숙명이었다. 이후 4년 동안 그는 프랑스인을 결집시키고, 기회를 잡고, 책략을 펼치면서 자신만의 길을 나아갔다. 거만하고 비협조적인 그는 영미 양측에는 골칫거리였지만, 드골에게는 자기 자신이 곧 프랑스였다. 현대 프랑스의 이야기는 곧 드골의 이야기다.

고집불통에 반항적인, 그러나 누구보다 프랑스의 명예를 중히 여긴 지도자

샤를 드골은 언제나 자신이 숭고한 목적을 위해 태어났다고 믿었고, 자신의 인생과 프랑스의 역사가 서로 얽혀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의 행동은 강한 신념과 역경을 견뎌내는 견고함, 강인한 성격,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드골은 순응에 불복종하고 거부하는 것 모두가 필수적이며 고귀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가 군인의 길을 택한 것은 다소 역설적인데, 엄격한 삶과 다른 사람의 명령을 따르는 것은 드골의 반항적인 성향에 반대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군대에는 지휘를 하고 자신의 용기를 펼칠 기회가 분명히 있었고, 프랑스를 수호하는 일보다 더 고결한 것은 없었다.

타고난 지도자였던 샤를 드골은 명령을 무조건 따르라는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권위와 맞서는 것은 드골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일생 동안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을 밀고 나갔다. 병장의 분노를 견디는 것이든 다른 열강의 수장들 사이에서 홀로 고집스럽게 모국의 이해를 관철하는 것이든지 간에 때로는 그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드골의 자기 과신과 개인적인 확신은 그러한 방향을 계속 추구하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공포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기갑사단을 지휘할 때에는 항상 최전선에 있었고, 적기의 공격에 시달리면서도 항상 자신의 전차 해치를 열어두었다. 서 있을 때도 폭탄에 신경 쓰지 않았고, 군인들이 땅바닥에 바짝 엎드릴 때면 불호령을 내렸다.

샤를 드골은 여러 책을 저술한 작가였다. 그는 평생 동안 13권의 간행본과 3만 5,000통의 편지, 5권 분량의 연설문을 저술했다. 그는 정확하게 구두점을 찍었고, 언제나 검정 잉크를 묻혀 직접 손으로 글을 썼다. 한편, 그는 결코 부와 헛된 명성을 탐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드골은 일반 시민으로 돌아가, 보잘것없는 연금만으로 생활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정작 그를 진급시키려는 계획은 거절했다. 이러한 품성은 그의 유언에도 잘 나타났다. 그는 국장을 원하지 않았다. 장례식에서 음악, 팡파르, 종소리는 물론 애도사조차 거부했다.

결코 완벽하지 않은 인간 드골의 모습

그렇다고 드골이 완벽한 인간이었던 것은 아니다. 여느 사람처럼 그도 모순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완벽함만을 취급했으며, 회색분자를 인정하지 않았다. 정부에서 독재적이었으며, 두 번이나 자진해서 권력에서 물러났다. 조국의 위기에서 비타협적인 태도를 통해 세력을 갖추었다. 종종 차갑고, 무심하며, 분명히 냉정했지만 장애를 가진 딸에 대한 부드러움은 감동적이었다. 자신의 지시에 대해서 모순되는 행동을 보이거나 명령에 불복종한 부하들을 용서하지 않았으나, 정작 자신이 똑같은 행동을 저질렀을 때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후원자에게 의지했다. 하지만 그는 프랑스의 이익을 위해서 통치했으며, 조국이 세계무대에서 단역배우로 전락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비난만 하지 말고 행동하라! 지도자를 향한 희망과 바람은 자석을 향한 철과도 같다. 위기가 닥치면 대중을 이끌고, 비록 부러질지라도 자신의 두 팔로 그 짐을 떠맡는 사람이 바로 지도자다. 또한 그 밑에 깔릴지라도 짐을 자신의 두 어깨로 받치는 사람이 지도자다.” - 124쪽

샤를 드골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인해 복잡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오만함과 높은 자존심 모두는 프랑스를 위한 것이었고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는 언제나 위대한 국가였다. 샤를 드골은 현대 프랑스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에 국가의 양심으로 부각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프랑스였고, 드골은 프랑스의 성스러운 수호자였다. 선택의 기로에서 드골의 비타협적인 태도는 외교적 무기였고, 일처리에 있어서 어떤 때에는 유일한 무기이기도 했다.

유럽에서 있었던 사건을 볼 때, 프랑스를 세계무대의 일원으로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드골과 같은 인물이 필요했다. 그가 없었다면 프랑스는 나치에게 점령당하거나 열강에게 지배당하고, 마지막에 가서는 서유럽에서 월등한 영국에게 단번에 지위를 빼앗기는 단역 배우의 역할로 전락했을 것이다. 도전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면서 드골은 인격의 힘과 성격의 강력함을 보여주었고, 이를 통해 프랑스는 다른 정부들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가능한 최고 수준까지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어떤 때에는 무례하고, 논쟁을 좋아하며, 감사할 줄 모르고 타협하지 않는 그의 단호함은 리더십이 꼭 좋은 유머나 호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한다. 마이클 E. 해스큐(Michael E. Haskew)의 이 책은 드골과 그의 리더십을 이해하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Chapter 1 플랑드르의 아이
어린 시절부터 확고한 목적의식을 키운 준비된 리더십


드골은 어릴 때부터 죽는 날까지 스스로를 ‘운명의 사나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운명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프랑스의 과거,현재,미래와 밀접하게 얽혀 있었다. 특히 문화적으로 우수한 프랑스의 장엄함과 화려함은 어린 샤를 드골의 마음속에서 절대 떠난 적이 없었다. 10대 시절이 끝나갈 무렵, 샤를 드골은 확고한 목적의식을 지니기 시작했다. 언젠가 조국 프랑스를 위해 몸 바치는 것이었다.

“나는 프랑스가 거대한 시련을 겪게 될 때, 내 인생의 보람은 그 시련 앞에서 조국 을 위해 몸을 바치는 데 있으며, 내가 그러한 기회를 반드시 갖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 샤를 드골 [37쪽]

Chapter 2 전쟁의 도가니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로이 피력하는 직설적 리더십


생시르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동안 드골은 종종 교관들에게 의문을 제기하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로이 피력했다. 권위에 의견을 달리하는 확실한 의사표현은 프랑스 장교단에서 이제 막 시작하는 드골의 진급에 방해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런 반면 이것은 1940년의 어두운 시절 동안에 그가 권력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든 가장 중요한 특성이 되었다.

“뛰어난 분석력과 운명에 대한 믿음은 사람들의 인내를 시험하는 그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따라서 다른 군인들에게는 복종과 순종이 요구된다 하더라도 드골은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고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며 인내심을 가지고 이를 관철시키는 것이 의무라고 믿었다.” - 56쪽

Chapter 3 젊은 사자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는 불굴의 용기와 기회를 놓치지 않는 리더십


제1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드골의 포로 생활도 끝이 났다. 앞날을 모색하던 그는 신생 폴란드군을 지원하게 되었다. 드골은 이 일이 자신을 지도자로 구별해 주며, 영감을 불어넣고 조직하고 지휘하는 자신의 능력을 확실하게 보여줄 기회라고 생각했다. 또한 드골은 폴란드에서 강력한 지도자인 피우수트스키(Piłsudski) 원수의 등장을 목격했다. 기회가 찾아왔을 때 이를 붙잡고, 혼란스러운 순간 중에도 권력의 계승자가 된 피우수트스키의 단호한 태도는 인상적이었다. 또한 위험에 처한 국가의 국민들이 조국의 수호를 위해서 결집하는 것도 보았다. 이 교훈들은 샤를 드골에게 자신들을 이끌어줄 지도자만 있다면 프랑스 국민들 또한 국가적 좌절과 위기의 순간에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었다.

한편, 드골은 전투 경험을 통해서 기관총과 중포 같은 현대식 무기들의 치명적인 위력과 기동전 지원에 활용할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프랑스 고위 장교들은 제1차 세계대전 동안의 대학살로 인해 강한 고정 방어시설과 난공불락의 강력한 방어선 구축이 미래 전쟁에서 주효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현대전에 대해서 드골이 발전시킨 이론들은 그와 전후 군사체제와의 대립을 증가시켰다.

“드골은 이 교훈을 자신의 경력에도 적용해 기회가 오면 그것을 붙잡아 자신의 길에 도움이 되게 했다. 그는 실패라고 여기는 상황에서도 강인한 성격을 보여주었으며, 포로수용소에서 나온 지 몇 달 만에 전투에서 병력을 지휘하기까지 했다.” - 99쪽
“드골은 습관적으로 교관들의 실수를 지적하고 그들의 생각에 도전했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참호전을 곧 다가올 전쟁의 우수한 전술적 방어라고 보는 토의에 관해서는 더욱더 그랬다.” - 109쪽

Chapter 4 부단한 고집불통
자신이 믿는 바를 강하게 주장하는 자기 확신의 리더십


보통 군에서는 명령에 대한 복종을 최선으로 생각하지만 드골은 불복종하고 거부하는 것 모두가 필수적이며 고귀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의 이런 성향과 당시 프랑스군의 기조와는 달리 자신이 저술한 책에서 기계화를 옹호한 것 등으로 드골은 일부 다른 장교들 사이에서 소외되었다. 특히 강력한 참모단과 그가 여전히 혐오하고 있는 육군대학 간부단의 장교들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현대 전쟁에 대한 드골의 이론들은 대부분 그 정당성을 충분히 입증했다.

“자신의 저작에 대한 반응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드골은 자신의 경력이 위태로워지더라도 만약 필요하다면 이를 혼자 힘으로라도 할 의지가 있었다. 왜일까? 그는 자신이 옳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만의 길을 가기로 결정했다. 그는 편의와 사리추구를 위해서 묵인하고 단순히 협력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의 불같은 성미와 한없이 높은 자존심에 대해서 뭐라고 하든, 그가 가진 인내심과 확신은 다가올 어려운 시기 가운데서도 그를 지탱해 주었다.” - 149~150쪽

Chapter 5 프랑스의 정신
적에게 투항하기를 거부하고 잘못된 정책을 비판한 명예로운 리더십


나치가 부각하기 전부터 샤를 드골은 독일과의 또 다른 전쟁은 피할 수 없으며, 프랑스는 전쟁 준비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경고했지만 무시당했다. 뮌헨 협정 이후 만연한 유화정책은 드골의 눈에 프랑스가 위대한 국가가 되기를 포기한 것으로 비쳤다. 독일이 저지대 국가를 통과하여 프랑스를 침공했을 때 기갑사단 지휘관이었던 드골은, 정부가 몰락하는 동안 보여준 그의 용기 있는 행동 덕분에 프랑스군 지휘계통을 뛰어넘어 국방차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패배 후 항복이 임박한 혼돈 속에서 조만간 독일의 꼭두각시가 될 것이 뻔한 정부에서 일하는 대신에, 런던으로 망명을 택했다.

“이 전쟁은 시작부터 잘못되었다. 그러므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세상은 넓다. 살아있는 한 나는 싸울 것이다. 나는 어디에 있든 적이 패배하고 국가적인 치욕을 씻을 때까지 반드시 싸울 것이다.” - 샤를 드골 [169쪽]
“드골은 작은 비행기에 자신과 프랑스의 명예를 싣고 왔다.” -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93쪽]

Chapter 6 잿더미에서
곤경 속에서도 결코 타협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리더십


페탱이 권력을 차지하고 나치와 휴전협상을 벌이자 드골은 사실상 프랑스 정부에 등을 돌렸다. 그는 망명을 선택했다. 그렇기에 자신의 조국을 대표할 수도, 어떠한 권한을 요구할 수도 없었다. 그는 일개 준장이었으므로 연합국은 처음에 그를 프랑스 저항운동의 지도자로 인정하고 지원하는 것을 주저했지만 달리 대안이 없었다. 드골은 망명중인 프랑스인의 지도자로서 그 위치를 공고히 다지는데 성공했다. 영국 정부와 아프리카의 여러 프랑스 식민지가 자유 프랑스에 협력했다. 하지만 이런 위치에서도 드골은 전쟁이 지속되는 동안, 처칠 정부와 미국을 경계하는 태도를 유지했다.

“어디에 있든 드골 장군을 연합군의 명분을 지키기 위해 가담한 자유 프랑스의 지도자로 인정합니다.” - 윈스턴 처칠 [211쪽]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 뒤에는 단체나 조직 같은 것조차 없었다. … 그러나 나의 곤궁함은 내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었다. … 오직 내가 민족과 국가를 위해 싸우는 투사일 때에 프랑스인의 지지를 얻을 수 있고, 외국으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었다. 나의 비타협적인 태도를 계속해서 비판하고 있던 비평가들은 내가 무수히 많은 마찰의 압력을 통제하고 총체적인 붕괴를 최소화하는 것을 보는 것조차 거부했다. 확실히 나는 혼자였고 아무런 힘도 없었기 때문에 정상에 올라야만 했고, 그 뒤로는 절대로 내려와서는 안 되었다.” - 샤를 드골 [229쪽]

Chapter 7 의기양양한 복귀
위험 속에서도 두려움을 보이지 않는 침착하고 대범한 리더십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드골은 해방된 프랑스로 돌아왔다. 장장 4년만의 귀환이었다. 프랑스를 떠나던 1940년만 해도 그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 뒤로도 프랑스인들은 목소리를 BBC 방송을 통해서만 들었다. 드골의 마음속에는 자신의 노력이 과연 정통성에 부합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프랑스인은 드골을 자신들의 명예를 수호하고, 다른 세계열강으로부터 프랑스의 지위를 보호해줄 사람으로 환영했다. 비시 정부는 이런 드골을 암살하려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쳤고, 그는 이를 세력 과시를 위한 저속한 시도라고 칭했다.

“그 순간 붐비는 거리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숨을 곳을 찾아 흩어졌다. 첫 총성이 울린 방향으로 대응사격을 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행위였다. 냉정을 유지했지만 군중에게 떠밀려 성당 문 쪽에 순간적으로 갇혔던 드골은 마침내 스스로를 추스르고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이어서 성가대석 위에서 두 번째 총성이 났다. 드골은 단념하지 않고, 60미터 정도 떨어진 자신의 좌석을 향해 계속 통로를 걸어갔다.” - 261~262쪽

Chapter 8 프랑스 만세
혼돈과 격변으로부터 나라를 강국으로 이끄는 단호한 리더십


알제리 독립을 둘러싸고 프랑스가 내전의 위기에 휩싸이기 직전, 드골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다시 나타나 대통령이 강력한 권한을 가지는 새로운 정부를 만들었다. 그는 알제리에 대한 식민 지배를 포기했고, 군사 반란을 잠재웠으며, 프랑스의 독자적인 핵 억지력을 확보하고, 나토(NATO)의 통합지휘체계에서 프랑스를 탈퇴시켰다. 그는 80여 년 동안 문제투성이였던 프랑스 민주주의를 바꾸었고, 프랑스에게 새로운 위상과 영향력을 가져다주었다.

“일전에 조국은 깊은 심연으로부터 이 나라를 구원으로 이끌 임무를 저에게 맡겼습니다. 현재 이 나라를 향해 밀려오는 새로운 시련 앞에서, 저는 공화국의 정권을 인수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샤를 드골 [2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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