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작가의 말
신호 비밀 얼굴 새우검 허상 성북동 계략 소유물 고통 집으로 가는 길 보물찾기 파문 회상 기억 새우검이 울다 숨 해설 숨, 존재의 처음이자 마지막 자리에 있는 것 _ 연용흠 |
이경의 다른 상품
|
어떤 것은,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그 무게를 알게 된다.
달이 높이 떠 있는 밤. 산 위로 번진 희미한 달빛 속에서 검 한 자루가 서 있었다. 차갑게 내려앉은 달빛이 검의 날을 따라 흐르다가 형체가 서서히 사라졌다. 어쩌면 사라지는 것인지, 아니면 나에게서 멀어지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바다 한가운데 홀로 떠 있는 것처럼 막막하고, 점점 숨통이 조여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울음을 토해냈다. 가슴이 텅 비고 몸이 무거워질 무렵에서야 나는 겨우 눈을 떴다. 오늘도 같은 꿈을 꾸었다. 새우검이 그 어떤 신호도 보내오지 않았다. 검이 감쪽같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면서부터였다. 도대체 누가, 왜 검을 가져갔는지. 그 사실을 알아챘을 때, 나는 죄책감으로 온몸을 떨었다. 긴 더듬이를 힘껏 펼친 두 마리의 새우가 그려져 있는 새우검, 오랫동안 집의 터줏대감이라고 믿었다.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물려준 벽사의 의미가 깊었던 그 검은 단순한 무기가 아닌, 우리 가문의 상징물이었다. 아버지도 나처럼, 몸 안에 거대한 나무가 기생하고 있었을까. 젊은 시절엔 기골이 장대하고 힘 자랑하던 아버지였다. 아마도 아버지의 몸에서 자라난 나무는 내 몸속 그 푸른 나무보다 훨씬 강력했을지도 모른다. 우람한 몸통, 힘이 들어간 큰 가지들은 사사로운 일에 꿈쩍하지 않을 그런 태도를 보인 믿음직한 나무였을 것이다. 아버지의 집 언저리에는 지금도 은행나무가 터줏대감처럼 서 있다. 어림잡아 내 나이와 비슷할 것으로 추측된다. 그 은행나무는 아버지가 오래전에 심은 나무였다. 아버지의 나이 마흔이 넘어 어렵게 아들을 낳았다는 기념으로, 두 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었다고. 매년 열매를 맺던 암나무는 어느 여름날 벼락을 맞고 쓰러졌고, 수컷 은행나무 한 그루만이 홀로 살아남아 하늘을 향해 몸통을 키우며 가지를 뻗어갔다. 아버지의 몸에 자라고 있던 나무에 대한 진실을 정확히 알게 된 것은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일기장 때문이었다. 늘 자상하고 섬세한 성품으로 앉은 자리조차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했던 아버지였지만, 그 속에는 또 다른 아버지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은 인생에 또 다른 출구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푸른 나무와의 동거가, 결코 나만의 비밀이 아니었음을 확인하는 순간 깊은 동지애를 느꼈다.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을까, 솟구친 눈물이 두 눈에서 왈칵 쏟아져 내렸다. 새우검은 괘방령을 지켜냈던 박이룡 장군의 검이었다. 그는 김천에서 추풍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요충지에 의병을 모아, 임진왜란 때 이백 번이 넘는 전투를 치렀다고 했다. 그때 ‘벽사검’이라 불리던 새우검은 사당에 모셔졌고, 괘방령과 매곡 들판에서 싸움이 벌어질 때마다 깊은 울음소리를 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나는 아버지의 말을 단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모두 녹음해 두었다. 그 칼자루에는 ‘벽사검’이라는 글자가 깊이 새겨져 있었다. 집안을 지키고, 군신의 의리를 다짐하는 이름. 그 이름을 쥔 채 싸움터에 나섰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서로를 믿었다.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숨을 고르듯 말을 멈추곤 했다. 마치 그 자리에 직접 서 있었던 사람처럼. “그건 그냥 칼이 아니다.” 그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새우검의 손잡이에는 새우 한 쌍과 ‘하검’이라는 글자가 금문으로 새겨져 있었다. 손에 쥐면 차갑기보다 따뜻한 기운이 돈다고 했다. 마치 누군가의 숨결이 손바닥으로 스며드는 것처럼. 새우검의 칼날에는 스물여덟 수의 별자리와 스물아홉 글자의 금문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글자가 아니라 기운을 불러들이는 주문 같은 것이었다. 검을 쥔 사람과 집안을 지키기 위한 오래된 약속 같은 것. ‘누군가의 손에 쥐어지는 순간, 그 안에 담긴 시간과 의미까지 함께 짊어져야 하는 것.’ 아버지는 끝내 그 말을 남기려는 사람처럼 몇 번이고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나는 평생 두 여인을 사랑했다.” 그 말이 내 머릿속에서 오래 울렸다. 아버지는 그 사랑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늘 균형을 잡으려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함께 고백했다. 사랑이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채 수평을 유지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말을 하던 아버지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두 여인의 마음과 눈빛은 언제나 허허로웠고 그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 애쓰다 보니 늘 감정의 갈등 속에서 살아야 했다고 했다. 그 사이에서 하루하루를 버텨 온 세월이 얼마나 지치고 힘겨웠는지 그의 말속에 그대로 묻어 있었다. 삶의 무게와 얽혀 있던 감정들이 결국 그렇게 흘러왔다는 듯 아버지는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 갔다. 어머니에게는 의무를 다해야 했고, 연인에게는 지키지 못한 약속에 대한 죄책감이 남아 있었다. 그 감정은 오랫동안 아버지의 가슴에 눌러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스스로 죄를 지었다고 생각했고 그 죄책감이 평생 자신을 따라다녔다고 했다. “여자를 너무 오래 사귀지 마라. 세월의 부피만큼 책임도 커지는 법이다.” 그 말은 아버지가 살아온 삶의 무게를 그대로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아버지는 또 한마디를 덧붙였다. “부부가 오래 같이 살다 보면 서로 속이 너무 훤히 보이게 된다.” 그 말에는 어머니와의 관계가 어느 순간부터 무겁고 서글픈 것으로 변해 버렸다는 씁쓸함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는 평생 어머니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그 긴 시간 속에서 느껴 온 고독과 외로움 또한 적지 않았던 듯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떤 사이였을까. 어느 한쪽도 등을 돌리고 떠날 수 없는 관계, 아마 그런 사이였을 것이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는 일도 없었고, 집안 행사 때 부부가 함께 대문 밖을 나서는 모습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으면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고, 어머니를 보고 있으면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괘방령에 내려와 마을 앞산을 바라볼 때도 그랬다. 마당에 핀 백일홍 나무를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늘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말없이 같은 시간을 견디며 살아온 사람들처럼. “세상에서 제일 독종, 그 긴 세월을 어떻게 딴 년을 가슴에 품고 살았을까.” 어머니가 정신이 또렷해질 때면 혼잣말처럼 아버지를 향해 내뱉던 말이었다. 새우검은 본래 조선에서 건너온 오래된 유물이었다. 그 기원에는 여러 갈래의 설이 얽혀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사용하던 검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졌고, 실제로 칼자루에는 그의 이름과 연도가 새겨져 있었다. 오래된 글자였지만 또렷하게 남아 있어 그것이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분명한 시간을 지나온 물건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으로 넘어온 경위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해졌다. 조선의 한 신하가 몰래 그 검을 빼돌려 일본으로 건너왔고, 그것을 M 가문의 최고 어른에게 바쳤다는 것이다. 충성이라는 이름을 빌린 거래였고 권력을 향한 은밀한 협상이었다. 그 일을 기점으로 M 가문은 급격히 세력을 넓혀 갔다. 사람들은 그 변화를 단순한 우연으로 보지 않았다. 새우검이 가져온 힘이라고 믿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검은 가문의 상징이 되었고, 혈통과 운명을 지키는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다른 명문가들 사이에서도 그 존재가 회자 되자 그것을 손에 넣으려는 움직임 또한 끊이지 않았다. M 가문은 새우검을 단순한 무기로 여기지 않았다. 사당에 모셔두고 절기마다 제사를 올렸으며, 검을 지키는 일 자체가 하나의 의식처럼 이어졌다. 리코가 그 검의 의미를 입에 올리는 순간부터, 두 사람 사이에 놓인 문제는 이미 개인의 선택으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고 있었다. 그때였다. 잎을 모두 떨군 홍단풍 가지 위로 참새 몇 마리가 날아와 내려앉았다. 잠시 흔들리던 가지가 이내 멈췄다. 나는 현관 앞으로 걸어가 버튼을 눌렀다. 집 안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나는 더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리고 곧바로 수장고 쪽으로 향했다. 어둠 속에서도 윤곽은 또렷했다. 그곳에는 여전히 오랜 시간 벽사검으로 존재해 온 새우검이 옻칠 상자 안에 고요히 놓여 있었다. 상자 안의 검이 아주 미세하게 빛을 머금고 있었다. 푸른 기운이었다. 빛이라기보다는, 안쪽에서 스며 나오는 기색에 가까웠다. 잠들어 있던 무엇이 서서히 깨어나는 듯한, 느리고 깊은 움직임. 나는 손을 뻗었다. 손잡이를 쥐는 순간 차가운 금속이 손바닥에 닿았다. 그러나 그 감각은 곧 미세한 진동으로 바뀌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검을 들어 올렸다. 짧고 날 선 소리가 한 번, 허공을 스쳤다. 그 울림은 점점 더 또렷해졌고 일정한 리듬으로 이어지며 내 안쪽 어딘가를 건드렸다. 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천천히 검을 거두어 칼집에 넣었다. 옻칠 상자 안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자 방 안을 채우던 떨림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나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메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만 이어졌다. 그때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메이였다. ‘린이 가져간 검은 가짜다.’ 린은 새우검을 누구보다 집요하게 쫓아온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실수가 아니라 선택이었다. 린이 가짜를 가져갔다면 진짜를 남겨두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혹은 시간을 벌기 위해서. 나는 곧바로 택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메이의 위치 잡을 수 있지.” 잠시 뒤 택이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앱 깔아놨다. 전원만 켜져 있으면 잡힌다.” “지금 바로 확인해.”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 본문 중에서 |
|
작가의 말
나는 오래도록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사라졌다고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해 써왔다. 완전히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그것은 다른 형태로 남아 우리를 붙잡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왔다. 『숨』은 그 믿음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이 소설의 중심에는 한 자루의 검, ‘새우검’이 있다. 임진왜란이라는 거대한 역사 속에서 한 번 끊어진 인연이 세대를 건너 다시 이어지고, 또 다른 형태로 반복되는지, 나는 그 흐름을 따라다녔다. 그리고, 이 소설에는 세 개의 시간이 겹쳐져 있다. 검을 되찾아온 할아버지의 시간, 그것을 지키려 했던 아버지의 시간, 그리고 그것의 의미를 의심하는 아들의 시간들이다. 나는 그 연결의 방식에 오랫동안 주목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의무라는 이름으로, 혹은 설명할 수 없는 끌림으로. 리코와 메이 그리고 린으로 이어지는 여성들의 존재 또한 그러한 연결의 또 다른 얼굴이다. 『숨』을 쓰는 동안, ‘소유’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검은 누구의 것인가. 가문에 속한 것인가, 역사의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붙잡고 살아가는 개인의 것인가. 나는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다. 역사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현재의 몸속으로 스며들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계속해서 작동한다고. 그리고 이 소설의 마지막에 ‘숨’이라는 단어를 남겼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계속되기 위한 가장 최소한의 움직임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이 이야기가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다면, 그것은 아마 거창한 해답이 아니라 하나의 감각일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2026년 5월 작약꽃이 ‘숨’처럼 터진 그 밤에…. |
|
이 소설은 그 보이지 않는 숨을 통해 인간의 존재를 되묻는다.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기억인가, 사랑인가, 관계인가. 그 모든 것이 무너진 자리에서도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결국 숨뿐이다. 그래서 숨은 생에 대한 선언이 아니라, 붕괴 속에서도 이어지는 존재의 증거다. 흔들리고 부서지면서도 끝내 끊어지지 않는 것, 그 미약하고도 집요한 지속-그것이 바로 이 소설이 말하는 ‘숨’이다. - 연용흠 (소설가)
|
|
다. 시대의 굴절된 세상사를 다층적 접근하여 〈생로병사〉까지 파고든다. 또한 감정의 지뢰를 요소요소에 매설하고 터트려, 긴 소설의 여정을 빠른 속도로 전개하니 읽는 맛이 있다. 더구나 유물인 새우검을 조상들과 관통시켜 현실로 끌어낸 마술적 착상조차 자연스럽다. 이는 솜씨 있게 축약과 확장을 넘나드는 좋은 소설의 진가가 드러난 것일 터.
공유된 과거와 현재의 시간에서 삶의 본질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 행복이 순식간에 불행으로 바뀌는 일은 생각의 같음과 다름에서 온다. 인간의 유전자가 우주의 내막을 측정할 수 있을까. 살아있는 자의 파생된 기억은 죽었던 인물들과의 소통을 염원한다. 그럼에도 두려움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타인의 주검에서 우리의 죽음을 엿보는 위기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목숨에서 ‘숨’이란, 꺼지지 않은 지금을 일컫는다. 그래서 주술사가 된 작가는, 욕망과 슬픔을 서사의 옷자락으로 휘감아 환영을 불러낸다. 작가의 씻김굿으로 말미암아 〈새우검〉의 주인이 바로 우리라는 것을. - 최성배 (소설가, 한국소설가협회 이사) |
|
무엇보다 이경 작가의 문장은 독특하다. 화가이기도 한 작가는 언어를 붓처럼 사용한다. 인물들의 침묵과 상처, 시대의 냄새와 스러져가는 숨결까지도 색채처럼 번져 나온다. 장면마다 스며 있는 빛과 어둠, 회색의 감각은 독자로 하여금 활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한 폭의 거대한 그림 속을 걸어가는 듯한 체험을 하게 만든다. - 김성달 (소설가, 한국문인협회 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