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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모험에 앞서 일어난 일들과 모험의 이유들을 모호하게나마 설명하다 9
1. 정보 처리 장치를 발견하고, 탈출하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내는 디아나에 대하여 28 2. 척추에 도달하여 의미도 목적지도 없이 방황하는 디아나와 피델에 대하여 73 3. 하나같이 제복을 맞춰 입은 경비대에 붙잡힌 디아나와 피델에 대하여 90 4. 외딴 감시 요새의 우주를 온통 뒤흔들어 버린 디아나와 피델에 대하여 115 5. 서로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즐거움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걷고 또 걷기만 하는 디아나와 피델에 대하여 159 6. 과잉과 연회와 추격전이 기다리고 있는 그 무엇도 영원히 끝나지 않는 나라에 온 디아나와 피델에 대하여 182 7. 말로는 못다 설명할 훌륭한 교통 체계를 마주한 디아나와 피델에 대하여 209 8. 영혼을 찾아 나선 디아나와 피델에 대하여, 그러나 아뿔싸! 영혼이 그들로부터 달아나 버리다 228 9. 어느 바의 사장과 손님들을 만난 디아나와 피델에 대하여 240 10. 가장 저급한 바이러스처럼 쫓겨나 버린 디아나와 피델에 대하여 252 11. 세상의 어떠한 무관심을 증언하고 찬미하다 267 감사의 말 273 |
Irene Pujad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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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것이 바로 디아나이다. 안 할래요, 라고 말한 뒤 문제들에 휘말리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안 할 이유도 없죠, 라고 말한 데에서 디아나의 모험이 시작되었다.
--- p.9 디아나는 정신에 관한 문제들로 시간을 버리는 걸 끔찍하게 싫어했다. 죄다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뿐이니까. 손으로 이리저리 만져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면, 그렇지 않아도 짧은 인생을 굳이 낭비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바와 블라이는 끊임없이 우겼고, 이들은 디아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고집을 꺾지 않았다. 설명은 잘 안 되지만 너라는 사람 자체의 무언가가 변한 것 같아. 알바가 말했다. 마치 내면의 지각 판들이 서로 잘 안 맞고 삐걱거리는 느낌이야. 네 분위기가 언젠가부터 갑자기 좀 애매모호해졌달까. 이것이 바로 두 번째였다. --- p.12 이 순간부터 디아나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것은 타들어 가는 미뢰와 엄청나게 빨라지는 속도, 수축되었다가 이완되는 근육, 그리고 속도가 확 붙더니 세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우르르르르르릉, 분열과 수축, 천문학적으로 줄어드는 질량, 이제 앞으로 몸을 기울이고 꽉 잡으렴, (...) 몇 번째인지도 모를 소용돌이, 플라스틱 미끄럼틀, 부드러운 물체들과 거친 물체들, 액체와 덩어리들과 깔때기의 저편과 칠흑 같은 밤, 그리고 그 칠흑 같은 밤을 지나 눈을 감고, 벤치에 걸터앉은 채, 배꼽 안으로 들어와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26~27쪽) 디아나와 피델은 척추를 따라 안으로 안으로, 쥐라기 시대처럼 황폐한 풍경을 따라 걸어 들어갔고, 오늘에서야 디아나는, 그때 거기서, 이미 무릎까지 늪에 빠져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다. 둘은 계속 걸었다. (...) 피델은 가장 깊은 곳 아무도 없는 어딘가를 한두 번 떠올려 본 적 이 있었고, 거기서는 온갖 종류의 재난들만 일어날 것이라고 언제나 상상했다. 이런 장관이 펼쳐질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에 정신을 빼앗길 여유는 추호도 없었다. 산악회에서 처음 만난 아마추어 등산가들처럼, 디아나와 피델은 아주 조심스럽게 앞으로 걸어 나갔다. --- p.76 만약 싫어하는 걸 보게 되신다면...... 경비병 하나가 말했다. 미생물이라거나, 병원균이라거나, 침입자라거나....... 다른 경비병이 말했다. 노발대발하시겠지, 다른 경비병이 말했다. 만약 노발대발하신다면......! 다른 경비병이 펄쩍 뛰며 미친 듯이 손을 휘저었고, 다른 경비병 셋도 함께 손을 휘저었다. 쓸개즙이 나오고, 유황이 들끓고, 분노가 폭발할 거야. 머리 속에서는 파리 떼가 붕붕 날아다니고, 코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내릴 거야. --- p.93 창자를 통과하는 몇 날 며칠 동안 디아나가 느낀 외로움은 거칠었고 가시가 돋쳐 있었다. 물론 바깥세상에서도 디아나는 외로움과 아주 가까웠고, 아주 오랫동안 외로움과 함께 살았다. 하지만 이 안에서만큼 외로웠던 적은 없었다. 이 안에서 느끼는 것만큼 거칠고 가시 돋친 외로움은 처음이었다. --- p.176 청년은 알겠다는 듯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고는, 연미복을 입고 커다란 식칼을 든 여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분은 영양소를 으깨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그러고는 한쪽 구석에서 시를 낭송하는 무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분들은 영양소입니다. 그러고는 격하게 키스를 나누는 한 커플을 가리켰다. 저분들은 위액이고요. 그러고 나서 청년은 갈고리로 디아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고객님은요? 디아나가 대답했다. 전부 다라니까요! --- p.1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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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꼽을 통해 들어간 내 몸속 미로, 자아 탐색 서사의 기발한 공간적 확장
디아나는 건강했고 엉덩이에 방석을 서너 개 깔고 앉은 듯 편안한 상태였다. 하지만 디아나를 보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기 일쑤였다. 너 뭐 했어? 자세가 좀 삐딱해진 것 같기도 하고, 갑자기 다리 하나가 다른 쪽보다 길어진 것 같기도 하고, 영혼에 칼슘이 부족한 것 같기도 해. 네 모습 그대로 변하지 말아 줘, 오리올이 디아나에게 말했다. 너 코 수술했니? 머리 염색했어? 성격에 미묘하지만 눈부신 변화를 줘 본 건가? 말할 때 모음을 더 이상 안 쓰기로 한 거야? 신장에 결석이라도 생겼니? 아니면 유부남이랑 사랑에 빠지기라도 한 거야? 그럴 수도 있어, 뭔가가 제자리에서 벗어난 것 같거든, 디아나가 생각했다. 그리고 차츰 불안감이 디아나를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 본문에서 『침입자』는 ‘나를 찾는 여정’이라는 문학의 오래된 클리셰를 가장 현대적이고 파격적인 방식으로 변주해 낸 소설이다. 작품은 주인공 디아나가 마음속 복잡한 위화감의 정체를 깨닫기 위해 의문의 약을 마시고 배꼽을 통해 자기 몸속으로 들어가는 기상천외한 모험을 그린다. 기존의 자아 성찰 서사들이 기억이나 감정을 처리하는 공간을 주로 머리나 뇌라는 정신적 영역에 한정했다면, 푸자다스는 이를 몸 전체의 공간으로 대담하게 확장한다. 정체성의 핵심을 다루는 ‘정보처리부서’는 디아나가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이다. 이곳에서는 디아나의 삶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성격에 따라 세 개의 깃발로 나누는데, ‘초록 깃발’은 기존 정체성을 강화하는 사건에, ‘노란 깃발’은 기존 정체성을 의심하게 만들지만 완전히 뒤흔들지는 않는 경우, ‘빨간 깃발’은 완전한 붕괴와 재건을 요구하는 경우에 부여된다. 디아나의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뭔가 이상한데.”라고 느끼게 하면서 이번 여행의 계기가 된 ‘그 사건’은 정말 이 ‘빨간 깃발’ 감인 것일까? 이 소설을 관통하는 본격적인 여정은 이 ‘정보처리부서’ 즉 노른자를 벗어나면서 시작된다. 지금까지 주인공의 내면 여행을 다룬 많은 작품들이 ‘기억’ 내지는 ‘과거 사건’이 만들어 낸 ‘감정’이나 ‘자아상’에 천착해 그것을 발견하고 위로하는 데 집중했다면 디아나는 이 정보처리부서의 최종 담당자(이자 또 다른 자신인) 피델과 함께 자기 핵심을 떠나 척추, 콧구멍, 내장, 모공 등 뇌에 비해 정체성 형성에 덜 중요해 보이는 부분들을 모험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문제는 디아나의 신체의 각 부분에 살고 있는 ‘직원들’이 존재론적 자아인 그녀를 환대하기는커녕 ‘침입자’이자 ‘공공의 적’으로 인식하고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복을 입은 경비대와 창을 든 감시자들은 사방에서 숨통을 조여 오고, 디아나와 피델은 자신의 신체 기관들을 재난 현장처럼 종횡무진하며 목숨을 건 추격전을 벌여야만 한다. 문제를 고치러 들어간 내면이 도리어 자신을 삼키려는 기상천외한 사자 굴로 변해 버린 상황 속에서, 디아나와 피델은 과연 끈질긴 추적을 따돌리고 살아서 무사히 몸 밖으로 탈출할 수 있을까? · 블랙 유머, 냉소 그리고 진짜 웃음이 기다린다! “보라, 여기 엉뚱함과 엉터리의 여왕, 될 대로 돼라의 대장, 덤벙댐의 교과서와도 같은 디아나와 그녀의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를. 문제들이 어떻게 모습을 드러냈고, 디아나가 어떻게 이들을 마주했으며, 어떻게 파고들어서, 또 어떻게, 위풍당당한 모습은 아닐지라도, 물론 그마저도 쉽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한 몸 온전히 빠져나왔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본 것은 본 것이고 이제 와서 보았던 것을 못 봤다고 할 수는 없으니,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디아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걸 다 잊어버리기 전에, 나 스스로에게 설명을 좀 해야겠어.” - 본문에서 세상이 온통 무한 긍정과 완벽함을 강요할 때, 가식의 겉포장을 사정없이 찢고 들어오는 낯선 침입자가 있다. 카탈루냐 문학의 생생한 음악성과 독특한 서사로 무장한 이 소설은 영웅의 위업을 기리는 고전 기사도 소설의 형식을 영리하게 차용하면서도, 정작 주인공으로는 '엉뚱함과 덤벙댐의 교과서' 같은 평범한 인물 '디아나'를 내세워 지독한 블랙 유머를 선사한다. 사뮈엘 베케트의 부조리극이나 카프카의 악몽 같은 지옥을 닮은 어둡고 축축한 몸속 세계에서, 규칙만 따르던 시종 같은 관료 '피델'이 흔들리고 주인공 ‘디아나’가 온갖 위기에 직면하는 과정은 서스펜스 넘치는 완급조절을 통해 독자를 단숨에 매료시킨다. 이 숨 막히는 여정의 끝에서 터져 나오는 진짜 웃음은 ‘너의 문제를 바로잡았니?’라고 다그치지 않는 세계의 초연한 무관심에서 기인한다. “너 하나 바뀐다고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라는 이 서늘하고도 담담한 무관심은, 역설적으로 완전한 자아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던 우리에게 기묘한 해방감과 위로를 건넨다. 내면을 마주하고 사투를 벌이는 과정 그 자체를 받아들이며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일상으로 걸어 나가는 디아나의 모습은, 오늘날 자아를 끌어안고 고군분투하는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안정형 자아’란 과연 무엇인지 묵직한 실존적 질문을 던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