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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i Of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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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를레네는 손에 든 늑대 가면을 천천히 쓸어내린 뒤 얼굴에 썼다. 그리고 거울 속 자신을 보며 미소 지었다. “안녕, 문제늑대야!” 거울 속 늑대는 미동도 없었다. 하지만 가면의 좁은 틈새로 보이는 눈동자는 결연한 의지로 빛나고 있었다. “오늘 준비됐어?” 늑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온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 p.7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 왔다. 가슴속 작은 새는 겁에 질린 채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사방에 날개를 부딪치고 있었다. 이 상태로는 학교에 갈 수 없었다. 그곳에는 요나스가 모르는 사람들, 그리고 요나스를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수업 시간은 그나마 나았다. 적어도 자신이 어디에 앉아야 하는지는 알 수 있으니까. 세 번째 줄, 맨 왼쪽 자리. 좋아, 쉽다. 하지만 쉬는 시간에는 어떻게 할지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땐 정해진 자리가 없으니까. --- p.22 가끔 아말은 마를레네가 가진 영향력을 조금이라도 나눠 받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게도 그런 힘이 있다면, 아말은 정반대로 쓸 것이다. 상대의 기를 꺾는 대신, 모두의 마음을 환하게 밝히는 쪽으로 말이다. 하지만 아말은 마를레네가 아니다. 그저 아말일 뿐이다. 누군가가 자신을 이상하거나 별나게 볼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감수하느니, 노트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관심 없는 척하는 사람. 두려움과 아말의 승부는 언제나 0대 0이다. 애초에 시합에 나서지 않으니까. --- p.36 훌륭한 양치기는 자기 양 떼를 잘 안다. 루디는 첫 번째 양이 달아나기도 전에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아차리고, 곧바로 달려 나갔다. 점점 더 많은 양이 루디 쪽으로 몰려왔다. 공포에 눈이 먼 몇몇은 루디의 다리에 부딪히기까지 했다. 루디는 숨을 죽이고 주변을 훑었다. 그러다 뾰족한 하얀 귀를 보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지금은 안 돼. 제발 지금만은! 늑대를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들었던 이야기들이 미친 듯이 머릿속을 스쳤다. 루디는 있는 힘껏 몸을 크게 부풀리고,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 p.90 사스키아-마테아는 코웃음을 쳤다. 안 그래도 골치 아픈 일이 한둘이 아닌데, 여기서 일을 더 키울 수는 없었다. 그때 아말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넌 스키 수업에서 도망쳤고, 지금 경찰이 찾고 있지.” 사스키아-마테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이 널 찾고 나서 어떻게 될지 무서운 거잖아.” 말없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평생 여기 숨어 살 수는 없어. 언젠가는 들키거나, 결국 제 발로 돌아가야 하겠지.”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지만, 아말의 말이 맞다는 건 사스키아-마테아도 알고 있었다. 짜증 나게도. --- p.178 요나스는 자신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자신도 그 ‘다른 사람들’ 중 하나인 걸까? 아니면 또 다른 ‘다른 사람들’이 있는 걸까?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살아갈 수도 있는 걸까? 그리고 모든 건 꼭 지금 그대로여야만 하는 걸까? 변화는 정말 나쁜 걸까? 아니면 가끔은 좋은 변화도 있는 걸까? 요나스의 머릿속은 온통 엉킨 실타래 같았다. --- p.231 총성은 멀리서 들려왔다. 산 위쪽, 꽤 떨어진 곳이었다. 그래도 늑대를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늑대는 눈을 크게 뜨고 루디를 바라보았다. 마치 심장 한가운데를 꿰뚫어 보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숲속으로 사라졌다. --- p.264 상상해 봐. 갑자기 다섯 사람이 침대에 모여 앉아 머리를 맞대고 있다고. 물론 그렇게 평화로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애쓰고 있었다. 가장 어려운 건 목적을 정하는 일이었다. 유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으려면, 먼저 무엇을 위해 싸울지부터 정해야 했다. “사소한 거라도 좋아. 우리가 다 같이 동의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아말이 물었다. --- p.2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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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늑대가 드러낸 마을의 균열, 그리고 이를 마주한 다섯 아이의 뜨거운 하루.
무대는 알프스 산간의 작은 마을. 숲에 늑대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고, 산 위 목초지에는 리조트 개발 계획이 잡혀 있다. 마을은 ‘늑대를 보호해야 하는가’, ‘양치기와 주민의 생계가 먼저인가’, ‘리조트 개발은 지역 경제인가 자연 파괴인가’를 둘러싸고 갈등한다. 그 한가운데에 다섯 아이가 있다. 다섯 아이는 각각 다른 압박을 안고 있다. 마를레네는 확신과 분노를 가진 행동가에 가깝고, 아말은 친구를 실망시킬까 두려워하며, 루디는 아버지의 생계 불안과 양 떼 피해의 공포 속에서 늑대를 원망한다. 요나스는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을 갈등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관계와 감정에 휘말리고, 사스키아-마테아는 스키캠프 중 집단 조롱과 소외를 피하려다 상황에 들어간다. ‘양극화된 사회에서 살아가는 청소년들은 과연 어떻게 자기 견해를 확립할까?’ 이 소설은 하루 24시간 동안에 벌어지는 이야기로, 빠른 전개와 복잡한 구성이 특징이다. 작가는 다섯 아이의 시점을 교차 구성하여 모두의 입장과 생각을 번갈아 드러내며 다층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짧은 장면들이 인물 이름과 장소를 달고 빠르게 전환된다. 이 방식은 다성소설의 특징으로 독자에게는 전체 상황을 조금씩 조립하게 하고, 등장인물에게는 서로가 모르는 정보가 남아 긴장감을 만든다. 이야기는 늑대 보호, 지역 생계, 관광 개발, 기후·생태 문제, 청소년의 소속감과 배제, 친구 관계의 압박이 한꺼번에 얽힌다. 하지만 논쟁적 소재를 선악 구도로 단순화하지 않고 ‘나와 다른 입장에 동의하지 않아도 상대 입장의 가치를 인정하는 태도’를 중심에 놓는다. 생태 갈등을 출발점으로, 청소년의 우정과 분노와 소외, 정치적 각성과 민주주의적 공존 능력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청소년 소설. 이 소설의 핵심은 늑대 자체가 아니다. 이 책에서 늑대는 ‘상실과 상처와 걱정과 두려움과 채워지지 않은 욕망’을 투사한다. 즉, 늑대는 갈등의 원인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이 자기 불안과 분노를 쏟아붓는 상징이다. 원제 Problemwölfe(문제늑대들)은 독일어권에서 사람과 충돌하는 늑대를 가리키는 사회적 표현이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는 실제 늑대뿐 아니라 사회가 ‘문제’로 낙인찍는 존재들, 그리고 서로를 문제로 여기는 인간들까지 겹쳐 표현하고 있다. 이 소설이 담고 있는 큰 주제는 다원주의와 민주주의이다. 오스트리아 아동·청소년문학상 심사에서 이 소설을 “다원주의에 관한 뛰어난 작품”으로 설명하며, 집단 압력, 정체성, 생태 문제를 함께 다루었다고 높게 평가했다. 이 소설은 누군가가 완벽하게 성장하거나 정답에 도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 다른 입장과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느끼게 하는 과정에 더 가깝다. 2020년과 2026년 두 차례 오스트리아 아동·청소년문학상을 받은 아기 오프너의 대표작 “공존의 복잡성과 민주주의의 도전을 생생하게 그려내면서도, 마치 흥미진진한 모험으로 가득한 로드무비처럼 읽히는 탁월한 청소년소설.” - 2026년 오스트리아 아동·청소년문학상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