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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생애 마지막 편도여행 존엄사 동행을 시작하며 _13 스위스 조력사 동행 제안을 받았습니다 _22 2021. 7. 25(일) 영혼의 내시경 _25 8. 10(화) 스위스행 항공권을 받다 _29 8. 13(금) 생애 마지막 생일 _33 8. 21(토) 죽기 위한 코로나 검사 _35 8. 22(일) 죽음의 대기 번호 ‘444’ _40 8. 23(월) 네덜란드를 경유하여 스위스로 _49 8. 24 새벽(화) 드디어 그를 만나다 _56 8. 24 오후(화) 귀천을 하루 앞둔 날 _62 8. 25(수) 조력사로 생을 마감하다 _75 8. 26(목) Part 2 수목장으로 잠들다 죽음을 두렵지 않게 맞으려면 _111 죽어가는 사람과 함께한 5개월 _115 공주 수목장으로 영원히 잠들다 _119 죽은 후의 얼굴이 말하는 ‘이것’ _125 죽음을 준비할 적절한 나이는? _129 내 생애 마지막 한 달, 돌아볼 다섯 가지 _134 예수, “다 이루었다” VS 소크라테스, “닭 한 마리” _137 동행을 마치며 _141 Part 3 존엄한 죽음을 위하여 시작하는 말 _147 철학도 장윤지가 묻고, 철학자 황도수가 답하다 죽음 선택 권리와 생명 보존 의무 중 무엇이 더 중한가요? _152 내 결정의 죽음이 종교적 가치관과 충돌한다면? _155 죽음은 왜 두려운 것일까요? _160 선과 악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지요? _161 신은 항상 선한 존재인가요? _164 인간의 삶은 유한한데 왜 도덕적으로 살아야 할까요? _167 함께 잘 살 수 있는 ‘공동 가치관’은 무엇인가요? _171 작가 신아연이 묻고, 법학자 황도수가 답하다 안락사는 무엇인가요? _174 조력사는 무엇인가요? _177 안락사와 조력사의 차이는? _178 존엄사란 무엇인가요? _179 조력존엄사 합법화는 바람직한가요? _181 조력존엄사가 합법화된다면 어떤 사회적 파장이 생길까요? _183 맺는 말 _186 |
Shin, Ayoun,申娥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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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는 2021년 8월 26일 목요일, 한국 시각 오후 7시경, 스위스 바젤에서 64세로 생을 마감한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저의 오랜 독자라는 인연으로 스위스까지 동행했지만, 그전에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던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폐암 말기 환자로, 몇 차례 수술 및 시술을 받았지만 2년 후 재발했고 저와 연결이 되었을 때는 주치의가 예상한 여명에서 석 달 정도를 더 지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두렵지는 않은데 어릴 때 달리기 출발선에 섰을 때처럼, 아니면 대중 앞에서 연설하기 전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되네요. 어떤 면에선 설레기도 해요. 내일 아침에 데리러 온다고 했어요. 저승사자가 찾아오는 거지만 엄밀히는 내가 저승사자를 찾아가는 거지.”라고 하셔서 우리를 또 한 번 망연한 두려움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오늘 밤은 잠들지 않으려고 해요. 생의 마지막 밤을 잠으로 보내고 싶지 않으니까. 모든 순간을 깨어서 느껴보려고 해요. 지상의 모든 순간, 모든 마지막을.” 안락사와 조력사는 둘 다 인위적으로 생명을 마무리하는 방법이지만, 안락사는 타인에 의한 생명 중단임으로 ‘타살’이며, 조력사는 타인의 도움을 받되, 본인 스스로 결정하여 선택하는 ‘자살’입니다. 이 개념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자살을 가장한 살인이 벌어질 수 있고, 안 죽을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게 됩니다. ‘존엄사’는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면서(death with dignity) 죽는 것을 말합니다. 불치의 병이나 장애로 인해 의식 불명이나 심한 고통 상태에 있는 환자에 대하여, 연명만을 목적으로 하는 치료를 중지하고 인간으로서의 명예와 품위를 유지하면서 죽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조력존엄사란 말은 있어도, 안락존엄사란 말은 없죠. 나의 죽음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의미에서 '조력사는 존엄사'라고 할 수 있지만, 내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내 죽음을 타인이 결정하게 되는 '안락사는 존엄사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개, 고양이의 안락사를 존엄사라고 하진 않잖아요. 그저 편안하게 죽게 한 것일 뿐. 안락사는 타살입니다. 살인이라고요. 살인이 존엄하다는 건 어불성설이죠. 조력사 확대의 오용과 위험성은 제도적으로 보완하면 되는 사안입니다. 자칫 고령자들에게 간접적으로 강제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장할 수 있다고 하지만, 조력사는 고려장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분위기에 주눅 들어 떠밀리듯 죽음을 선택한다면 우리 모두 존엄성 상실, 주체성 망각의 사회에 살고 있음을 의미할 뿐입니다. 조력사 확대 논의는 타인의 시선이나 눈치에 개의치 않고 내 삶은 내가 결정한다는 주체성, 존엄성 교육의 실현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국가는 조력사 확충 제안을 통해 국민 생명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철저히 깨닫는 실험대를 마련해야 합니다. 신이란 '있다, 없다'의 대상이 아니라 '모르는 대상'입니다. 자, 신이란 존재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지만, 인간은 알 수 없다. 여기까지 이해가 되었다면 이제 학생의 질문으로 돌아갈게요. 신은 항상 선한 존재인가? 역시 '모른다'입니다. 인간의 인식으로는 신의 성품을 알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인간은 3차원 시공간에 갇힌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차원을 벗어나 있는 존재에 대한 인식을 할 수가 없어요. 신이 있는지 없는지 인식을 할 수 없는데, 그 신이 선한 존재인지, 악한 존재인지를 어떻게 알겠어요?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거나, 안다고 확신해서는 안됩니다. 모르니까 없다고 해서도 안됩니다. 그것이 올바른 태도입니다. 있는 사람에겐 있고, 없는 사람에겐 없는, 그것이 신존재입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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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행 편도티켓을 쥔, 일면식도 없던 조력자살 희망자와 동행한 저자는
당신은 조력사로 생을 마감하려는 사람과 스위스까지 함께 가 줄 수 있는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처한다면 본인도 조력사를 택하겠는가? 란 물음에 내밀한 시선과 섬세한 필체로, 충격적이면서도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담담히 답을 써내려가고 있다. 생명은 인간 각자의 것일 뿐, 생명의 결정권자는 신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라는 사고의 과정이 진솔하고 진지하다. “2022년 8월 이 책의 초판 격인,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를 낼 때, 저는 종교적 이유로 조력사를 반대했지만, 4년이 지난 지금은 조력사에 대해 긍정하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이유는 신앙을 등졌거나, 단순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마음이 변해서가 아닙니다. 삶과 죽음은 연장선에 있기에, 자기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주체적으로 책임감 있게 살아온 사람이라면, 삶의 마무리인 죽음 역시도 같은 태도와 자세로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기인해서입니다. ‘내 생명은 나의 것이라는 확고한 주체성이 조력사의 핵심 키‘라는 합리적 사고로 돌이키는 데에는 철학자이자 법학자인 황도수 변호사의 도움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이 책의 세 번째 파트에 그 내용을 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