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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세계 - 근본적인 의문
1.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2. 존재 전체가 ‘나’로 화하고, ‘내’가 존재 전체로 화하다 3. 현실 세계는 실재하는 세계인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사유 4. 현상계는 그림자의 세계 5. 인간은 분별지의 감옥에 갇혀 사는 존재 -붓다, 장자의 초월적 세계 6. 인식의 한계를 초월한 물자체(物自體, Ding an sich) 1) 칸트의 사유 2) 후설의 사유 3) 존재의 영원성과 신(神)의 문제 4) 죽음을 초월한 참된 ‘나’ 7. 물자체, 근원적 생명의 힘 II. 현상現象으로서의 세계 - 생명으로서의 대우주 1. 위기의 시대 - 존재의 물질화 2. 우주에 시작과 끝은 있는가? 우주는 궁극적으로 물질인가, 정신인가? 1) 우주의 실체는 물질도 정신도 아니다 3. 시작과 끝이 없는 존재 세계 전체로서의 우주 4. 존재의 영원성(永遠性)과 무한성(無限性) 5. 별들의 운명 6. 하늘에 떠도는 구름이나 발아래 돌덩이 이 모두가 우리와 형제간이다 7. 대우주는 영원하고 무한한 장엄한 생명 III. 생명으로서의 미학 1. 예술은 우주=존재의 신비를 향한 영혼의 눈빛 2. 불가사의한 세계로부터 울려 나오는 영원한 생명의 진동을 느끼게 하는 예술 3. 예술은 어떻게 궁극적 목적을 성취하는가? 1) 지극한 미적 표현이 가져오는 몰아 상태의 초월 현상 2) 세계의 신비를 여는 독특한 예술의 힘 3) 숭고한 아름다움이 가져오는 자아의 초월적 각성 맺는말 참고문헌 도판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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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당연한 듯 일상생활 속에서 수없이 나를 지칭하지만, 그 나를 근본적으로 의문시하고 자문하는 사람은 거의 전무하다. 내가 수영을 하고, 책을 읽고, 어디를 다녀왔다는 등의 말을 사람들은 당연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만, 정작 그 ‘나’가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의문을 품고 질문하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동물은 이러한 의문을 품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그것도 극소수의 인간만이 이러한 의문을 품는다. 그런데 ‘나’라는 존재의 근원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없이 산다는 것은 그저 동물적으로 욕망에 따라 사는 존재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진정한 나를 깨닫지 못하고 산다는 것은 잠자고 있는 상태나 다를 바 없다. 덧없는 인생을 정말 덧없게 살아가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 「I.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세계 - 근본적인 의문」 중에서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했다면 빅뱅 이전에는 무(無)가 있었다는 결론이 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로부터 빅뱅이 있고 찰나에 급팽창하며 우주가 생성되었다는 이론은 심각한 철학적 오류이다. 완전한 무가 존재했다고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측 결과는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이점에서 빅뱅이 있었고 대단히 짧은 순간에 급팽창이 일어나 우주가 탄생했다는 것, 그래서 우주는 계속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면 빅뱅 이전에 절대적인 무(無)가 존재했다는 모순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당연히 무는 존재할 수 없다. 나는 1986년에 빅뱅으로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면, 언젠가는 팽창의 정점에서 다시 수축하여 특이점까지 수축되었다가, 또다시 빅뱅을 일으켜 팽창하고 팽창의 정점에서 다시 수축하는 과정을 우주가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 주장한 적이 있다. (이것은 성리학의 우주론적 해석을 현대 우주론에 적용시킨 나의 견해였다) 다시 말해서 우주는 끊임없이 팽창과 수축을 되풀이하면서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었다. 이렇게 하면 빅뱅 이전에 절대적 무(無)가 존재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있다. 따라서 우주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무한하고 영원한 존재라는 철학적 사고를 수긍할 수가 있는 것이다. (스티븐 호킹도 그 후에 우주는 팽창과 수축을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가정한 바 있었다.) --- 「II. 현상(現象)으로서의 세계 - 생명으로서의 대우주」 중에서 세계는 은폐되어 있는 것이다. 그 은폐되어 있는 세계의 신비를 비추어주는 것이 예술이다. 앞에서의 사색 속에서 우리는 우주의 실체는 물질도 정신도 아닌, 물질과 정신이라는 인간적 사유 방식의 개념적 한계를 초월한 존재인 ‘생명의 힘’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필자가 주장하는 ‘생명의 힘’은 기존의 생명이란 개념을 넘어선 용어로서 칸트 철학에서의 ‘물자체(物自體, Ding an sich)’를 보다 구체적으로 지적한 용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쇼펜하우어 철학에서의 ‘의지’보다도 근원적인 존재이다. 쇼펜하우어는 의지를 물자체(物自體, Ding an sich)로 보았지만, 의지가 현상적 존재 원리의 하나라는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의지는 ‘근원적 생명의 힘’에 의해 나타난 현상적 움직임으로 보아야 한다. 대우주는 ‘근원적 생명의 힘’으로 진동하며 끊임없이 진화하는 신성한 생명으로서의 우주인 것이다. 이 신성한 생명의 진동에 의해 모든 존재자들은 끊임없이 생성과 파괴를 되풀이하며 진화하고 있다. --- 「III. 생명으로서의 미학」 중에서 에너지의 바다에서 하찮은 원소로, 먼지로, 항성과 행성으로, 그리고 생물체로, 인간으로, 이 장엄한 생명의 끊임없는 흐름 속에서 우리는 대우주와 일체의 존재에 대한 신비로운 형제애를 느낀다. 나와 우주는 생명의 근원에서 연결된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이다. 우리는 ‘나’를 찾는 자아 응시의 명상 속에서 나와 너가 사라지고 나와 대상이 사라져 무한한 존재와 몰아 상태의 일체화를 체험한 바 있는데, 현대의 우주 과학이 밝힌 우주적 생명 진화의 역사도 나와 우주는 ‘생명의 힘’이 진동하는 존재의 근원에서 하나라고 하는 사실을, 경이에 찬 시선으로 장엄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나는 우주와 분리할 수 없는 무한한 존재라고 하는 것. 이 부인할 수 없는 진실에 대한 숭고한 자각은 생명으로서의 우주에 대한 경건한 사랑의 진동으로 끊임없이 우리를 고무시키고 있다. 예술은 바로 이런 숭고한 우주적 자각과 사랑을 표현할 때 빛나는 불멸의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다. --- 「맺는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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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을 위한 매혹적인 미학 스토리텔링, 지식인을 위한 정교한 사상적 변증법
우리는 흔히 미술을 ‘감상’의 영역으로, 철학을 ‘이성’의 영역으로 분리하곤 한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가들은 언제나 당대의 가장 치열한 사상가였으며, 사상가들은 예술을 통해 세상의 비밀을 고백해 왔다. 『생명으로서의 세계관과 미학』은 이 두 영역의 경계를 허물며 예술과 사상이 융합될 때 도달할 수 있는 통찰의 최정점을 보여준다. 저자는 오랜 시간 학계와 미술계에서 다져온 깊이 있는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글을 이끌어간다. “왜 서양의 풍경화는 동양에 비해 늦게 출현했을까?”와 같은 미학적 화두를 던지며 대중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한편, 동양의 원초적 에너지인 ‘기(氣)’ 철학과 서양의 생명 의지가 어떻게 일맥상통하는지를 학술적으로 날카롭게 증명한다. 텍스트와 이미지가 유기적으로 맞물리는 ‘범생명적 초월주의’로의 항해 책 속에 수록된 방대한 도판들은 단순한 감상용이 아니다. 그것은 우주의 탄생과 실존의 고뇌, 그리고 구원을 향한 인간의 몸부림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결정적 증거들이다. 작품 속에 감춰진 낭만주의적 숭고함을 철학의 언어로 읽어내고, 고대의 정신이 현대 추상 미술의 조형 언어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해석하는 저자의 문장은 독자에게 보는 것을 넘어 깊이 읽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든다. 이 책은 철학 전문서의 높은 문턱을 낮추면서도, 대중 교양서가 놓치기 쉬운 학술적 깊이가 있다. 시대를 초월한 예술의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인간 정신의 정수를 맛보고 싶은 독자는 물론, 삶의 본질과 예술의 가능성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영원히 닳지 않을 깊은 영감의 샘터가 되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