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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그녀로 존재하게 하라, 신사임당 / 조혜란
임금 앞에 서고 싶었던 규방의 부인, 송덕봉 / 김경미 서리 맞은 푸룬 연꽃, 허난설헌 / 박무영 여성적 필화 사건의 주인공, 이옥봉 / 박무영 일상의 삶을 역사로 만든 여인, 안동 장씨 / 조혜란 생애는 석 자 칼, 마음은 내건 등불, 김호연재 / 박무영 조선 시대의 여성 철학자, 임윤지당 / 김경미 제주에서 금강산을 꿈꾼 여인, 김만덕 / 조혜란 시골 색시의 환상과 욕망, 김삼의당 / 박무영 기억으로 자기의 역사를 새긴 보통 여성, 풍양 조씨 / 김경미 남편의 스승이 된 여인, 강정일당 / 조혜란 외씨버선발로 금강산을 밟은 남장 처녀, 김금원 / 김경미 미칠 수 있는 에너지를 지닌 여인, 윤희순 / 조혜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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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여성들은 현모양처와 열녀라는 두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한 욕망과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 책은 그들을 그들로서 이야기하고자 기획되었다. 역사 기록 속에는 적으나마 조선 시대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균열시킬 만한 보석 같은 사람들이 숨어 있다. 사회가 가한 금제와 폭력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찾기 위해 애쓴 그녀들의 모습은, 현모양처로 덧칠된 신화를 벗겨내고 우리의 그릇된 고정관념을 깨트린다.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주체적 인간으로서 자각하고, 포기하지 않고 열렬히 살았던 여자들, 이 범상치 않은 여자들의 아름다운 약전이 바로 이 책이다.
◆ 현모양처, 타자의 시선으로 덧칠된 그 신화를 벗겨내다 근대 이전의 인물들을 떠올려보자.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제도교육을 받으면서 자라온 사람들에게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위인 중 기억에 남는 인물이 누구냐고 물어보자. 머릿속에 떠올려 답변할 수 있는 전시대의 역할모델 가운데 혹시 ‘여성’이 있는가? 다시 물어보자. ‘조선 시대의 여성’ 하면 무엇이 떠오르냐고. 현모양처? 열녀? 장희빈? 신사임당? 신사임당이 누구냐고 또 물어볼까? 아마도 십중팔구는 율곡의 어머니라 대답하리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동안 수많은 위인들의 이야기를 듣지만, 그 가운데 여성의 역할모델로 회자된 이름은 신사임당, 퀴리 부인, 나이팅게일 정도였다. 나이팅케일은 ‘백의의 천사’, 신사임당은 ‘율곡의 모친, 현모양처’……. 유명세가 오히려 박제시킨 이러한 인식은, 신사임당을 신사임당 그 자체로, 고뇌하고 눈물짓고 욕망하는 한 여자로 바라보는 것을 완강히 막아버린다. 그 닉네임에선 피가 도는 인간의 숨소리를 들을 수 없다. ◆ ‘그들’의 시대에 태어나 ‘나’로서 당당히 살아갔던 도도한 영혼들의 숨소리 이 책은 ‘위대한 여인들의 열전’도 아니고, ‘조선 시대 여성 생활사’도 아니다. 『이덕일의 여인 열전』이나 『한국사를 바꾼 여성들』 등과는 내용에서나 관점에서나 매우 거리가 있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식의 생활사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의 시선은, ‘위대한 여성’을 내세워 여성의 우월성을 억지 증명하는 것과 현모양처의 깃발 자리에 근사한 영웅주의를 치켜올리는 것에 반대한다. ‘위대하다’는 수식어는 필연적으로 추상화와 일종의 폭력적인 위압감을 내포하게 된다. 그것은 삶의 구체적인 숨결을 죽이고 그 당사자들을 추상화시킨다. 여성이 사회적인 타자로 젠더화된 세상에서 우리는 그런 위압감에 익숙하다. 우리에게 그런 위압적인 여성이 또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 이 책은, 충·효·열이라는 ‘그들’이 만든 도덕률에 억눌려 살아야 했던 사회적 약자였지만 사람다운 품위를 잃지 않고 당당히 ‘나’로서 살아갔던 개별 여성들의 인생을 드러내고자 했다. 제도와 사상과 관습의 개념적 이해로가 아니라, 한 여자가 자기의 삶을 최선을 다해 견디고 살아가고 장악했던 다양한 방식들, 그들에게는 ‘단 한 가지 방법’이었던 그것을 만나고자 했다. ◆ 여성 이야기, 이제 자의적으로 윤색된 픽션들을 넘어설 때 사회적으로 여성 담론들이 범람하고, 역사 속의 여성들을 이야기하는 다양한 출판물들도 쏟아져 나오고, 문화인물이나 지역의 인물로 여성이 선정되는 등 다양한 ‘선양’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편의 노파심을 접을 수 없다. ‘현모양처’라는 오래된 덧칠이 신사임당이란 여성의 참모습을 빼앗았듯이, 이 정치적 기획들과 출판물들은 여전히 남성적인, 혹은 상업적인 덧칠이 되고 있는 건 아닌가? 그것이 더 중요한 어떤 삶을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