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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부 정화수의 아이 1. 먼저 간 아이들 2. 이름을 받은 밤 3. 참꽃 피는 산 4. 맏이의 밥 5. 개고기 냄새가 나던 날 6. 열네 살의 갱도 2부 전쟁이 내려온 마을 7. 해방 뒤의 가난 8. 종이 한 장 9. 송아지 10. 피난길의 보따리 11. 마을로 들어온 군화 소리 12. 바위틈의 연기 13. 묶인 채 내려온 길 14. 엎드려 자는 사람 15. 다시 끌려간 젊음 16. 고성의 밤 17. 전멸한 막사 18. 부산 국군병원 19. 사망 통보 20. 죽은 아들이 돌아온 날 21. 상이군인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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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발에 물이 담긴 밤이 있었다.”
막내아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물이요?” 칠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손끝으로 사발 가장자리를 천천히 쓸었다. 오래된 흠 하나가 걸렸다. 그는 그 작은 흠을 만지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네 할머니가 그 물 앞에서 오래 앉아 있었다.” “왜요?” 칠성은 막내아들을 보지 않았다. “누군가를 붙잡으려고.” - ---p.7 “이번에는 이름을 주겠습니다.” 남편이 고개를 들었다. 여자는 물을 보고 있었다. “이름을 부르면 붙잡을 수 있겠지요.” 남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있다가 또 빼앗길 수는 없었다. “칠성.” 남편이 되물었다. “칠성?” “칠성님께 빌어서 얻은 아이니까.” ---p.19~20 그는 문득 어머니를 생각했다. 정화수 한 그릇을 떠 놓고 밤마다 빌었다던 사람. 먼저 간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아직 오지 않은 아이의 목숨을 붙잡으려 했던 사람. 물그릇 앞에 서면 오래도록 엎드려 있던 어머니의 등이 떠올랐다. 자신이 오래 살아야 한다고, 낮에 동생에게 말했었다. 너 시집갈 때까지. 막내 장가갈 때까지. 그보다 더. 칠성은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작은 손이었다. 그러나 그 손으로 불을 살리고, 물을 긷고, 나물을 캐고, 꽃을 지켜냈다. 아직 무엇 하나 제대로 잡을 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놓지 않아야 할 것들이 벌써 많았다. ---p.35~36 아무렇지 않은 척. 그것도 갱도에서 배우는 일이었다. 돌이 무너지는 소리가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했다. 손가락을 찧어도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했다. 어두운 곳에서 쥐가 발등을 스치고 지나가도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했다. 숨이 막혀도, 집이 그리워도, 어머니 얼굴이 떠올라도, 막내가 책보를 메고 학교 가는 모습이 생각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했다. 갱도는 그런 곳이었다. 사람을 어른으로 키우는 곳이 아니라, 아이인 것을 들키지 않게 만드는 곳. ---p.66~68 “우리 딸…….” 그 말은 아주 작았다. 칠성은 그의 손을 잡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괜찮다고 할 수 없었다. 살 수 있다고도 할 수 없었다. 전쟁터에서 그런 말은 너무 가벼웠다. “병장님.” 칠성은 그저 불렀다. 박 병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손에서 힘이 조금씩 빠졌다. 칠성은 붙잡은 손을 놓지 못했다. 놓으면 정말 끝날 것 같았다. 놓으면 박 병장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무너질 것 같았다. ---p.187~190 주인공 칠성은 나의 아버지다. 아버지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 4월,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전쟁 이야기가 나오면 담배를 찾았고, 오래된 상처가 욱신거리는 날이면 조용히 마당으로 나갔다. 자식들이 묻는 말에도 많은 것을 삼키셨다. 나는 오랫동안 그 침묵을 몰랐다. 그저 말이 적은 아버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아버지의 침묵은 잊어서 생긴 것이 아니었다. 너무 많이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p.240~2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