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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1부 ‘절전 상태’의 청년들: 고독 사각지대에 갇히다 세상을 떠난 청년 방 | 쓰레기와 동거하는 청년들 |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고립을 선택하다 | ‘쉬었음’ 청년은 쉬지 않는다 | 외롭거나, 서서히 외로워지거나 | 이토록 평범한 고립 [전문가 인터뷰] ‘풍요로운 고립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수영 교수 2부 벼랑 위 ‘징검다리 게임’: 은둔·고립에 빠지는 무수한 경로들 ‘성공 공식’은 어떻게 ‘생존 공식’이 되었나 | IMF로 무너진 가정, 10년의 ‘은둔 공백’ | 노력으로는 고립을 예방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다 | 고립·은둔은 교실에서 시작된다 | 조용히 고립되는 여성들 | 차별이 쌓은 이중 담장 [전문가 인터뷰] ‘요람에서 무덤까지’ 경쟁하는 사회 오찬호 사회학자 3부 ‘완전 고립’과 환대의 기로에서 사랑과 압박 사이의 가족 | 은둔청년은 어떻게 은둔중년으로 이어지는가 | 고립된 우리가 연결되려면 [전문가 인터뷰]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의존한다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이현정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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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하면 낙오되고 이겨도 불안한,
‘요람부터 무덤까지’ 경합하는 무한경쟁 사회 “많은 청년이 자신을 패배자라고 느끼더라고요.” 청년 고독사 현장을 수습하던 김새별 대표는 청년들을 안쓰러워하며 말한다. 고독사가 노년층만의 문제였던 것은 옛날이야기다. 자연사가 대부분인 노년층과 달리 청년 고독사는 대부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이며, 취업 실패, 실직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무력감이 주원인이다. 수십 장의 이력서, 밀린 월세와 생활비, ‘남들처럼’ 취업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조하는 일기,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 청년들의 고독사 현장에는 치열한 경쟁의 흔적과 좌절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저자들이 만난 청년들은 좌절을 겪었을 때 쉽게 도움을 청하지 못했다. “목표와 무관한 것을 하지 않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한국 사회의 ‘무한경쟁’은 청년들의 좌절을 노력이 부족한 탓으로 돌리기 때문이다. 대학 입시 때부터 각자도생의 경쟁 규칙을 체화한 청년들은 청년 일자리가 감소하고 불안정 노동이 증가하는 부조리한 사회에서 좌절의 원인을 찾기보다, 어제 조금이라도 더 공부하지 않는 자신을 탓했다. 사회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누가 그렇게 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 ‘할 거 없으면 상하차라도 하든가’라는 조롱 섞인 말이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런 사회에서는 ‘승리’한 사람도 불안하다. 남들이 선망하는 기업에 취직한 얻은 이들도 직장 내 괴롭힘과 같은 부조리를 겪거나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도,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이 돌이킬 수 없이 상해도 그만두지 못한다. 당연히 ‘버티지 못한’ 자신의 책임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건강검진을 해주는 것처럼 마음 검진도 해줘요. 경우에 따라서 상담 센터를 연계해주기도 하지만, 그러다 주변에 소문이라도 나면요? 정신병력이 알려져서 승진에서 밀리면 어떡해요. 저 정도의 우울감에 젖은 수건들은 상담조차 받으러 가는 건 사치예요. 내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먼저 다가가는 건 힘든 일인 것 같아요. _본문에서 “한국 사회는 양극화를 ‘해소할’ 정서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오찬호 사회학자의 말처럼, 과도한 경쟁은 경쟁을 줄이자는 합의마저 방해한다. “내가 (여기까지 오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노력이 ‘부족해’ 실패한 사람들에게 세금을 써서 지원한단 말인가. 이러한 사회에서 대학 입시, 취업 준비, 직장 생활 등 어느 시기든 좌절을 겪고 멈춰 서는 순간, ‘아무도 나를 도와줄 리 없다’는 사회적 고립감을 느끼고 자기 혐오에 시달리며 서서히 은둔을 내몰리고 마는 것이다. 연결되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는 ‘풍요로운 고립의 시대’에 갇힌 청년들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남들보다 빠르게 성공하는 것이다. 이때 시간을 쓰고도 ‘보상’이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는 인간관계는 ‘기회비용’이 큰 선택이 되고, 인간관계를 끊고 성취에 몰두하는 ‘자발적 고립’은 성공을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기숙학원에서 재수를 준비하거나 원룸이나 고시원에서 취업 준비, 공무원 시험에 몰두하는 것은 일상적 풍경이 된 지 오래다. 청년들의 생애주기에 ‘고립’은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자리 잡았다. 고도로 발달한 사회 인프라는 직접 연결되지 않고도 생존을 보장한다. 식사는 문 앞으로 배달받고, 세상일은 온라인으로 파악하며, 타인과는 SNS로 교류한다. 가장 적은 기회비용으로 식사, 연결, 외로움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아직 사회적·경제적 자원을 갖추지 못한 청년들에게 관계의 기회비용은 더욱 무겁게 다가오고, 단절 혹은 고립은 오히려 ‘효율적인’ 선택처럼 다가온다. 고립·은둔청년의 상당수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았다고 말한다. ‘평범하게’ 대학에 진학하고 취업을 준비하다 보면, 그 기간이 점점 길어지면 인간관계에 쏟을 마음도 시간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관계라는 기회비용을 아껴 ‘성공’하더라도 돌봄이라는 과제가 오롯이 자기 책임으로 남는다. 그런데 경쟁의 ‘목표와 무관한 것’인 돌봄의 기술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타인의 돌봄이라는 따뜻한 온기도 남을 돌보는 보람도 없는 자기돌봄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를 효율적으로 ‘먹이고 달래서’ 다시 경쟁의 한복판으로 뛰어드는 노동에 가깝다. 일이 바쁘거나 몸이 아프거나 외부의 사건이 벌어지면 언제든 중단될 수 있는 외나무다리 위의 균형이다.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도록 고도로 발전한 사회는 결국 개인이 알아서 살아남도록 만드는 ‘풍요로운 고립 사회’가 되어버렸고, 그 속에서 청년들은 안전망조차 없이 “절전 상태”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원래는 사람들을 되게 좋아했어요. 그런데 일은 잘렸지 취업은 안 되지, 어느 순간 다 피곤해지더라고요. 제가 사람 말을 잘 들어주는 성격이거든요. 안 그래도 힘든데 자꾸 나한테 기대는 것 같았어요. 요즘은 남에게 먼저 손을 내밀면 내가 먹고살기 힘들어진다는 생각을 해요. 각박하죠? 그런데 사회도 부족한 사람을 받아주지 않잖아요. _본문에서 “청년이 아니라 사회를 ‘고쳐야’ 한다” ‘완전 고립’ 사회에서 환대의 공동체로 나아가려면 저자들이 만난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지금이 골든타임’이라고 말한다. ‘게으르고 무기력’할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고립·은둔청년은 현재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 학업과 구직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것을 여러 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단지 고립·은둔청년을 지원해주는 정책이 미진하고, 그보다 청년들을 고립·은둔으로 빠뜨리는 사회의 부조리가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을 뿐이다. 골든타임을 놓친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일본이다. 한국보다 수십 년 일찍 청년층의 고립·은둔 현상을 겪은 일본은 그들을 사회로 불러들이는 데 실패했고, 청년들이 고립·은둔 상태로 나이 들면서 ‘8050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80대 고령 부모가 50대 히키코모리 자녀를 부양하면서 빈곤에 허덕이거나, 부모의 사망 후에 50대 자녀가 고독사하거나, 간병이 필요해진 노부모를 죽이는 ‘간병살인’까지 벌어지고 있다. 일본의 전문가들은 한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다고 경고한다. 정부의 정책은 청년 개개인의 회복을 도와 다시 취업하도록 만드는, 문제가 있는 ‘쉬었음’ 청년을 ‘생산가능 인구’로 ‘고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미 일본이 시도했다가 크나큰 실패를 경험한 방법이다. 청년을 은둔으로 내모는 무한경쟁과 ‘풍요로운 고립’의 현실이 그대로라면, 다시 방 안에 갇히는 청년은 늘어날 뿐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지금 ‘고쳐야’ 할 것은 청년이 아니라 사회다. 대학 입시, 취업, 직장에서 실패를 경험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이, 실패에 대한 조롱 대신 타인의 안녕이 나의 안녕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이, ‘공정한 경쟁’을 내세우는 능력주의 대신 상호 돌봄의 가치를 추구하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고립과 은둔의 그림자가 청년을 넘어 전 사회를 집어삼키기 전에, 우리는 절실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그 그림자의 가장 어두운 부분에, 청년들이 겪고 있는 현실에 바로 연결과 환대로 나아갈 실마리가 있음을 두 기자의 치열한 기록이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