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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 길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
01 과학적 근대 등반의 아버지 - 오라스 베네딕트 드 소쉬르(1740~1799) 02 지식인이라면 마땅히 산에 올라야 한다 - 레슬리 스티븐(1832~1904) 03 영원불멸의 마터호른맨 - 에드워드 윔퍼(1840~1911) 04 신神은 죽었지만 산은 영원하다 -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1844~1900) 05 더 어렵고 다양한 루트로 올라라 - 앨버트 머메리(1855~1895) 06 알프스 가이드의 독립 선언 - 마티아스 추르브리겐(1856~1917) 07 알프스의 소박한 일상을 그리다 - 지오바니 세간티니(1858~1899) 08 왕족으로 태어나 산악인으로 살다 - 아브루치 공(1873~1933) 09 외다리로 알프스의 시를 쓰다 - 제프리 윈스럽 영(1876~1958) 10 에베레스트의 유령이 된 사나이 - 조지 리 맬로리(1886~1924) 11 친구를 위하여 정상을 버리다 - 프리츠 비스너(1900~1988) 12 나는 고상한 영국 신사들이 싫다 - 에릭 십턴(1907~1977) 13 나는 나 자신을 위하여 오를 뿐이다 - 주스토 제르바수티(1909~1946) 14 대장장이의 육신과 시인의 정신 - 리카르도 카신(1909~2009) 15 산악문학의 빌리언셀러 작가 - 하인리히 하러(1912~2006) 16 마차푸차레의 정상에는 여신이 산다 - 윌프리드 노이스(1917~1962) 17 겸손과 헌신의 정상에 서다 - 에드문드 힐러리(1919~2008) 18 무상의 정복자는 새처럼 날아오른다 - 리오넬 테레이(1921~1965) 19 내 생애는 당신을 만나기 위한 준비 - 헤르만 불(1924~1957) 20 현대 등반의 메피스토펠레스 - 워렌 하딩(1924~2002) 21 단독 거벽등반의 일인자 - 발터 보나티(1930~2011) 22 우울한 히피의 노래 - 개리 헤밍(1933~1969) 23 20세기 최고의 원정대장 - 크리스 보닝턴(1934~) 24 이 놀이에도 지켜야 할 윤리가 있다 - 로열 로빈스(1935~) 25 동중선을 추구하는 바위 위의 곡예사 - 존 길(1938~) 26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하라 - 이본 취나드(1938~) 27 성차별의 산에 맞서다 - 반다 루트키에비치(1943~1992) 28 인류를 대표하는 단 한 사람 - 라인홀트 메스너(1944~) 29 굳이 정상에 오를 필요 없다 - 보이테크 쿠르티카(1947~) 30 히말라야의 거벽에 오른 히피들 - 피터 보드맨(1950~1982) & 조 태스커(1948~1982) 31 산 위에서 펼치는 극한의 퍼포먼스 - 장 마르크 부아뱅(1951~1990) 32 학교를 때려치우고 등반 부랑아가 되다 - 그렉 차일드(1957~) 33 산은 경기장이 아니라 교회당이다 - 아나톨리 부크레에프(1958~1997) 34 실패할 수 있는 꿈을 꾸어라 - 제프 태빈(1958~) 35 나는 등반계의 바비인형이 아니다 - 카트린 데스티벨(1960~) 36 더 높은 난이도의 바위를 찾아서 - 볼프강 귈리히(1960~1992) 37 여자가 아니라 인간일 뿐 - 린 힐(1961~) 부록 - 세계등반사 100대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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윔퍼는 그 이후 5년 동안 마터호른에만 여덟 번의 도전장을 내민다. 말 그대로 청춘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이 산에 쏟아부은 것이다. 그 모습이 아름답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다. 풍찬노숙과 끝없는 좌절의 나날들. 그럼에도 도저히 잠재울 수 없는 비이성적인 욕망과 열정. 어쩌면 청춘은 무모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그는 1865년 7월 14일, 기어코 마터호른의 정상에 올라서고야 만다. 세계등반사는 물론이거니와 윔퍼 자신도 이 날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윔퍼는 그러나 생애 최고의 영광과 가장 쓰라린 비극을 이날 하루에 모두 맛본다. _03 영원불멸의 마터호른맨(36쪽) 그는 다리를 잃은 지 7년 만에 피나는 재활 훈련을 거쳐 기어코 몬테로사에 올랐다. 오버행(암벽의 일부가 돌출되어 머리 위를 덮은 형태의 바위)과 침니(몸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바위 틈)로 가득한 돌로미티의 침봉들 위로 올라선 다음에는 ‘꿈에 그리던’ 바이스호른으로 눈을 돌렸다. 자신의 청년 시절, 여섯 개의 루트로 도합 여덟 번을 등정했고, 이때 남벽과 북벽에 낸 네 개의 루트는 그 자신이 개척한 초등 루트였다. 한마디로 그의 청춘을 다 바쳤던 산이다. 윈스럽 영은 한쪽 발로 암탑과 눈처마를 통과하고 허리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며 기어코 바이스호른의 정상에 다시 올라선 다음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결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인 적이 없는 ‘영국 신사’ 윈스럽 영이었지만 이때만큼은 알프스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_09 외다리로 알프스의 시를 쓰다(86쪽) 헤르만 불이 낭가파르바트의 정상에 선 것은 1953년 7월 3일 오후 7시였다. 간단히 말해서 되돌아오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다. 그는 캄캄한 밤에 저 홀로 하산을 시작한다. 언제나 그렇듯 등정보다 힘든 것이 하산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이젠 한 짝이 등산화에서 벗겨져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사라져 버린다. 그에게 남은 장비라고는 이제 등산용 스틱 두 개와 아이젠 한 짝뿐이다. 정상 부근에는 잠시 궁둥이를 대고 앉아서 쉴 만한 공간도 없다. 그는 이 상태에서 꼿꼿이 선 채로 비바크에 돌입한다. 세계등반사상 가장 유명한 죽음의 비바크이다. 헤르만 불의 자서전 《8000미터의 위와 아래》에는 이 장면에 대한 묘사가 압권이다. 그는 마치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훌쩍 넘어 버린 초인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이렇게 말한다. 내게는 추위를 막을 비바크색도, 추락을 예방해 주는 확보용 자일도 없었으나, 앞으로 다가올 밤이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편안했다. 모든 일이 그저 당연하기만 했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_19 내 생애는 당신을 만나기 위한 준비(174~176쪽) 그것은 끔찍한 사투였다. 일찍이 그 벽에 직등 루트를 뚫었던 헤밍조차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해 손발이 얼어 갔고 기력은 쇠진해 갔다. 조난자와 구조자들이 내지르는 절망과 고통의 울부짖음이 알프스 전역에 쩌렁쩌렁 울렸다. 이들의 비극적인 조난 상황과 헌신적인 구조 활동은 당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신문에 연일 대서특필됐다. 이를테면 실시간 생중계되는 ‘핫 이슈’가 되어 버린 것이다. 마침내 헤밍은 조난 상황 발생 후 일주일 만에 거의 가사 상태에 빠져 있는 그들과 조우하는 데 성공했다. 헤밍은 쉬어 버린 목소리로 무전기에 대고 외쳤다. “아직 죽지 않았어. 내가 그들을 데리고 내려갈게! _22 우울한 히피의 노래(198~199쪽)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등반이란 ‘블라인드 코너를 통과하는 일’이다. 저 너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 현재의 지위를 버리고 그곳에 달라붙을 때의 그 과감한 결단, 그리고 그 너머에서 숨겨져 있던 새로운 길을 찾아냈을 때의 그 자랑스러운 성취감. 블라인드 코너에 도전할 때 성공의 가능성을 점쳐 보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다. 우리 삶의 모든 분야가 그렇듯이 성공과 실패의 확률은 언제나 반반이다. 성공이 아니면 실패다. 그리고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영역에 속한다. 그래서 우리의 옛 선조들은 ‘진인사 대천명’이라 말했다. 유대인들의 속담은 보다 문학적이다. “인간은 생각하고 신은 웃는다.” _34 실패할 수 있는 꿈을 꾸어라(315쪽) 끝내 자신만의 새로운 루트로 프티 드뤼의 정상에 올라섰을 때 그녀는 한없이 울었다. 그 고운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손발의 상처에서는 피고름이 흘러나왔으며, 그 아름다웠던 육체는 뒤틀린 장작개비처럼 말라붙어 있었다. 이제 그 누구도 그녀의 이름 앞에 ‘여성’이나 ‘예쁜’이라는 수식어를 갖다 붙이지 못한다. 데스티벨은 일그러진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클라이머예요, 그뿐이죠. _35 나는 등반계의 바비인형이 아니다(31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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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내가 만든다”
알피니즘의 역사를 새로 쓴 위대한 산악인들의 이야기 인생길은 산행길과 닮았다 이 책은 산에 오르는 작가 심산이 말하는 알피니스트들의 이야기이다. 등산을 목적으로 산에 오르는 계기를 마련해준 소쉬르부터 등반의 개념을 바꾼 머메리, 에베레스트 초등자 힐러리, 인류 사상 처음으로 8,000미터 봉 14좌를 모두 오른 메스너를 거쳐 암벽등반의 여제 린 힐까지. 역사 속 알피니스트의 산과 인생 이야기가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것처럼 재미있게 읽힌다. 이 책에 실린 산악인들의 삶과 등반이 꼭 산악인들에게만 어떤 울림을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산을 대하는 태도는 삶을 대하는 태도와 같다. 인생길은 산행길과 닮았다. 그들이 보여 준 용기와 도전, 전혀 새로운 생각과 그것을 실천으로 옮겨 내는 불굴의 의지, 그리고 대세와는 무관하게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며 나아가는 독창적인 삶의 태도는 우리 모두에게 무한한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은 저마다 다른 시대를 살았고 저마다 다른 개성을 가졌지만 그들의 삶과 등반을 통하여 이렇게 웅변하고 있는 듯하다. _서문 그렇게 책을 읽다 보면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던 대로, ‘알피니스트들의 등반길은 인생길과 닮았다.’ 무상(無償)의 가치를 추구했던 리오넬 테레이는 명성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순간에도 양보의 미덕을 발휘했다. 최고의 등반가가 되려고 했던 자신의 목표가 잘못되었다고 서슴없이 말했던 로열 로빈스는 새로운 사업으로 성공하고 나서 자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목표에 너무 집착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책에 소개된 38명의 알피니스트들은 그렇게 저마다 자신의 등반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낱낱이 드러내 보인다. 특히 삶을 산에 맡긴 알피니스트의 도전과 희생정신, 그들이 추구하려 했던 궁극의 희망 그리고 한계를 뛰어넘는 희열과 감동을 그들의 산행을 따라가다 보면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산이 있으니까 오른다 _조지 리 맬로리 산에 오르지 않는 사람들이 산에 오르는 사람들을 향해 자주 하는 질문이 있다. “결국 내려올 거면서 왜 산에 오르는 건가요?” 이에 대한 현답은 산에 오르지 않는 사람들도 잘 알고 있다. “거기에 산이 있으니까.” 이 유명한 말은 조지 리 맬로리의 대답이 조금 와전된 것이다. 맬로리는 같은 산의 정상에 오르기 위해 몇 번이고 도전했다. 등산 원정에 국가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자 직접 강연을 다니며 비용을 마련하면서까지 말이다. 맬로리가 오르고자 했던 산은 에베레스트였다. 왜 그렇게까지 에베레스트에 오르려고 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향해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이 거기에 있으니까.” 그는 에베레스트에 오르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을 했고, 진이 다 빠져버려 희망이 사라진 상황에서도 다시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그들은 단지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오른다. 언젠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텐트를 박차고 나와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그리고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향년 38세. 그가 그렇게 살다 간 이유를 다른 데서 찾는 것은 옳지 않다. 부와 명예 혹은 국가적 숙원사업 따위는 유치한 핑계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유는 단 하나, 단지 에베레스트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_96쪽 누가 먼저 그 산에 올랐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_에드문드 힐러리 사람은 누구나 높은 자리에 앉기를 바란다. 알피니스트들은 더 높은 산, 더 어려운 산에 오르고 싶어 한다. 알다시피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은 에베레스트이다. 1953년 5월 29일. 에베레스트가 초등되었다. 등반계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역사적인 사건이다. 에드문드 힐러리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에베레스트의 초등 기록이다. 1953년 5월 29일 오전 11시 30분, 그는 지구 위에서 가장 높은 산의 정상에 서 있었다. 이튿날 전 세계의 모든 일간지 1면은 그의 차지였다. 그야말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갑작스러운 스타 탄생의 순간이다. 에베레스트에 오르기 전 그의 등반경력은 일천했다. 기껏해야 조국인 뉴질랜드에서 마운트쿡 남릉을 초등했다거나 알프스 몬테로사의 다소 어려운 루트를 올랐다는 것 정도에 불과하다. 당시의 직업은 양봉업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확히 표현하자면 양봉업을 하는 부친의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고 해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무명의 백수였던 것이다. _152~153쪽 저자는 에베레스트 초등보다 더 감격스러운 것은 힐러리의 인품이라고 말한다. 그때까지 등반계의 관행상, 등반을 도와준 셰르파나 가이드는 함께 정상에 있었더라도 그곳에 없었던 사람인 것처럼 그 이름을 등반사에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힐러리는 초등자의 이름으로 셰르파인 텐징 노르가이와 자신의 이름을 함께 올리고 정상 사진으로는 노르가이의 사진만을 제시했다. 또 에베레스트 초등 후 그는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부와 명예를 모두 히말라야의 원주민들에게 돌렸다. 전 세계를 돌며 강연과 모금 활동을 펼쳐 그 수익을 히말라야 원주민들의 교육과 복지, 히말라야 자연환경 보호 등에 사용했다. 힐러리의 인품에 거듭 감탄하게 되는 대목이다.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해서 누구나가 그 사람을 존경하지는 않는다. 높은 산에 올라갔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격까지 높아지는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 남들과는 다른 길로 올라라 _앨버트 머메리 무엇이 되겠다는 목표가 같더라도 거기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은 제각각 다르다. 사람은 누구도 똑같은 생각과 똑같은 방식으로 살지 않는다. 등반에서도 그렇다. 산 하나를 오를 때에도 다양한 루트가 있다. 등반사에서 1854년부터 1865년까지 10여 년의 세월은 149개의 봉우리가 초등된 알프스의 황금시대였다. 눈에 띄는 봉우리에는 모두 사람이 올라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후의 등반은 가치가 없는 것일까? 머메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좀 더 어려운 루트로 오르는 것이 보다 가치 있는 등반이라고. 지도를 보거나 가이드를 따라 오르는 것은 부끄러운 짓이다. 그 누구도 도전해 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며 굳이 가장 어려운 루트를 선택하여 오르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알피니즘의 핵심이다. _53쪽 그의 말은 우리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살다보면 조금은 쉬워 보이는 길이나 남들도 다들 하는 길을 따라갈 때가 있다. 남들이 다들 하니까 영어공부를 하고, 남들이 다들 그러니까 좋은 직장에 들어가려고 하고, 남들이 다들 하니까 결혼을 하고…. 그런 이들에게 머메리는 이렇게 묻는다. ‘그런 인생에 과연 의미가 있을까.’ 이따금씩 너무 타성에 젖어 남들이 닦아 놓은 길, 빤해 보이는 쉬운 길만을 따라가려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머메리는 예의 그 매서운 눈길을 부라리며 단호하게 쐐기를 박는다. 너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며 앞으로 나아가라. 그렇지 못하다면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일이다. _56쪽 8,000미터 고봉 14좌를 모두 완등하다 _라인홀트 메스너 이 자리를 빌려 고백건대 나는 메스너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인류를 대표할 만한 인간이라는 사실은 인정한다. 강인한 의지, 창의적인 생각, 철저한 등반윤리, 한계를 넘어선 체력, 놀라운 인문학적 교양, 묵직한 철학적 사유, 자본에의 불복, 왕성한 집필 활동. 도무지 흠 잡을 데가 없다.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재수 없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청년 시절의 내게 있어서 그는 일종의 ‘초인’처럼 느껴졌었다. 너무 높이 올라가 있어 쳐다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 너무 무거운 철학적 주제를 감당할 수 없는 화두처럼 던져 놓아 나 자신을 한없이 왜소하게 만드는. 그래서 어깨 너머로 곁눈질은 하되 결코 친해지고 싶지는 않은. _262쪽 저자는 솔직하게 고백한다. 자신은 메스너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말한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단 한 사람의 산악인은 당연히 라인홀트 메스너다. 나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완벽한 개인을 한 명만 꼽으라고 해도 역시 메스너를 지목할 것이다.” 메스너는 현대의학계가 모두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저었던 ‘에베레스트 무산소등반’에 성공했다. 그리고 인류 사상 최초로 8,000미터 이상 고봉 14좌에 모두 올랐다. 그러면서도 무엇을 얼마나 빠르게 올랐느냐보다 왜, 어떻게 올랐느냐에 주목했다. 세계의 지붕에 모두 오르고 난 후에는 티베트의 무인지구, 남극과 그린란드를 탐사하고 고비사막을 횡단하는 등 모험을 계속했다. 저자의 시샘이 십분 이해된다. 그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위대한 정신의 기록을 60여 권의 책으로 남겼다. 메스너는 어떤 삶이 가치 있는 삶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준 산악인이다. 새가 되어 하늘을 날아오른 산악인_장 마르크 부아뱅 과연 K2의 7,600미터 지점에서 행글라이더를 타고 베이스캠프까지 내려간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누구도 답할 수 없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시도였기 때문이다. 부아뱅이 이윽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의 행글라이더가 위태롭게 펄럭였다. 부아뱅은 지체 없이 절벽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고는 절벽을 박차고 허공으로 뛰어내려 버렸다. _289~290쪽 산악인들은 목숨을 걸고 위험천만한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설맹, 동상,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산사태의 위험을 무릅쓰고 정상을 향하거나 목표로 한 암벽을 오른다. 그런데 거기에 위험을 더하는 사람이 있다. 장 마르크 부아뱅은 특이한 산악인이다. 그는 알프스의 3대 북벽을 단 하루 만에 모두 올랐다. 4시간 10분 만에 마터호른 북벽에 올랐다가 행글라이더로 하강한 다름 다시 다른 루트로 정상에 올라서 스키를 타고 내려오기도 했다.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베이스캠프까지 날아서 하산한 적도 있다. 혹자들은 부아뱅이 지나치게 매스컴을 의식하는 연예인 같다고 비난하기도 했다고 한다. 어쩌면 그는 등반가라기보다 행위예술가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부아뱅이 자신의 인생을 즐겼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누가 뭐라고 하든지 간에 내 등반, 내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왜 그런 짓을 하느냐고요? 당신도 해보세요. 정말 짜릿해요. 온몸의 세포와 신경들이 곤두서서 환희의 노래를 부른다고요! 죽음 따위는 두렵지 않다 다만 삶의 방향을 찾지 못하는 것이 두려울 뿐이다 책에 소개된 알피니스트의 삶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등반이라는 것 자체가 인생과 많이 닮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죽음과 하산이라는 마지막을 알고 있으면서도 오른다는 것, 부분의 사람들이 보다 높은 곳을 추구한다는 것, 하지만 다른 길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과 그렇게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더 큰 명망을 얻는다는 것도. 이 책에 실려 있는 산악인들을 꿰뚫는 하나의 키워드는 무엇일까? 원고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수차례에 걸쳐 읽어 보면서 깨달았다. 그들은 ‘길을 만든 사람들’이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당한 방법으로, 용감하게, 그리고 유쾌하게 뚜벅뚜벅 걸어간 사람들이다. 그들의 산행이 그랬고 그들의 삶이 그랬다. 그래서 그들의 삶과 등반이 나를 매료시켰던 것이다. _서문 자신만의 길을 찾아 자신만의 방식으로 걸어간 사람들,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알피니스트들의 역사는 지금 ‘넘어야 할 산’이 많은 우리 삶에 셰르파가 되어준다. 그들은 온 삶을 통해 지금 현대의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죽음 따위는 두려워하지 말고 당신만의 삶의 방향을 찾아 그 길로 걸어가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