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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추종자 놀이
양장
김경환
목도리소굴 2026.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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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 패션 추종자 놀이

- 작가의 말 - 옷과 패션과 글을 엮는 일

저자 소개 1

의류학을 전공하였다. 옷을 만드는 대신 옷을 읽고 쓰는 일을 하고 있다. 단편소설 『패션 추종자 놀이』를 쓰고, 이동시 총서『절멸』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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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6월 22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80쪽 | 128*188mm
ISBN13
9791199919303

책 속으로

저곳에 진실이 있을 것이다. 그토록 내가 찾아다닌 패션 초월 집단. 지구를 뒤덮는 유행 기류를 손가락 하나로 뒤엎는 존재들. 패션을 지배하는 패션의 외부자들, 패션 비욘더(Fashion Beyonder).
저곳에서 작은 촛불 호 불어 없애듯 낡은 유행은 사라진다. 동시에 작은 불씨 호 불어 산불 퍼지듯 새로운 유행을 퍼트린다. 모든 새로움은 저곳에서 죽고 탄생한다.
--- p.9

정면에는 인간의 간을 닮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가 새파란 하늘을 가렸다. 차가운 도시의 색을 먹이 삼아 은색을 빨아낸 거대 유기체는 희상을 내려보았다. 희상도 눈을 크게 뜨고 마주했다. 건물의 수만 장이나 되는 외부 패널은 바닥에서 천장으로 쭉 이어졌다. 수십 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한 명의 인간처럼 제각기 크기가 다른 패널은 하나의 거대한 구체를 만들었다. '전체는 하나, 하나는 전체, 모든 것 위에 하나'. 혼자 되뇌며 희상은 사건이 발생한 명백한 증거 장소를 찍듯 신중히 카메라를 들었다.
--- p.15

희상은 광장으로 이어진 내리막길 정상에서 광장을 한눈에 바라보았다. 침을 길게 삼켰다. 아까 자신이 찍은 화려한 사람들을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을 만큼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수백만 마리가 군집을 이뤄 동그랗게 회전하는 정어리 떼가 하나의 거대한 생물체 같듯이 군중은 광장 중심을 기점으로 동그랗게 움직였다. '패션이라는 리바이어던'. 희상은 혼잣말을 하며 수림을 떠올렸다.
--- p.21

인간들은 옷 예쁘다는 말을 들으면 기뻐서 어찌할 줄 모른다. 옷이 예쁜 건데 자기가 예쁘고 멋있는 줄 알기 때문이다. 그만큼 옷은 자아보다 더 자아답다. 옷으로 자신의 허접한 내면과 주름진 육체는 철저히 숨기며, 뽐내고 싶은 부위와 과시하고 싶은 마음은 은밀히 드러낸다. 자기가 입은 옷이 자기 자신이라고 느낀다.
--- p.25

개성은 방직기에 비틀리고 화학제에 표백되어 본래 모양과 색을 잃는다. 유행 놀이로 휘갈긴 작업지시서에 맞춰 가장 첨단의 것으로 개조된다. 대중은 그것들이 길거리에 나오면 소리치고 환호한다. 그 시대를 입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안도한다. 누군가가 새로움을 만들어주고 대중은 지갑을 열어 그것들을 입으면 그것이 곧 개성이다. 개성은 유행에 맡기면 된다. 참으로 편리하고 마음 편하다.
--- p.27

작업지시서에는 무슨 내용이 있고, 어떤 방식으로 쓰이는가? 개인들은 왜 스스로 유행이라는 아이언 메이든에 들어가 날카로운 꼬챙이에 짓눌려 살점과 피가 엉겨 붙어 알아볼 수 없는 한 개의 덩어리가 되는가? 누가 쇠창살 달린 문을 닫아 개성을 제거하는가?
--- p.28

개인은 자아 탐구에 귀찮고, 다수는 개성을 거세하며, 패션 산업은 똑같은 옷만 만든다. 이것이 우리 모습이다. 리바이어던(Leviathan). 왕관을 쓰고 지팡이를 들고 도시를 둘러싼 산 뒤에서 정면을 쳐다보는 거인. 거인의 팔, 다리, 몸통을 잘 보면 수많은 개인의 얼굴이 있다. 패션은 리바이어던이다. 전체는 하나고, 하나는 전체며, 전체를 지배하는 하나가 존재한다. 그 하나를 찾아 없애야 한다. 그래야 개인은 개성을 찾고 진정한 옷 입는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 p.26

"그런 사람들이 돈이 된다고 누누이 말했지? 나만 아는 브랜드와 스타일을 입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이야. 그런 사람들은 남들과 같음을 극심히 혐오해서 온갖 새로운 옷과 브랜드를 찾아내는 사람들이야.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 섬에 세상에서 유일한 옷이 있다고 하면 기꺼이 갈라파고스를 헤엄쳐 갈 사람들이야. 다만 그 옷이 유행하는 스타일에서 조금만 특이해야 해. 남들과 너무 다르면 외로움에 사무쳐 못 견디거든. 그런 사람들을 찍어서 팔면 돈이 돼. 모두가 새로운 걸 찾고, 새로움은 돈이 돼. 어글리 슈즈는 못생겼는데 사람들이 예쁘다고 환장했어. 새로운 거거든. 못생겨서 좋아하는 게 아니야. 새로워서 좋아하는 거야."
--- p.33

출판사 리뷰

유행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입히는 것이다.


매 시즌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찾아 거리를 배회한다.


더 새로운 옷.
더 새로운 브랜드.
더 새로운 개성.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모두는 점점 더 비슷해진다.


『패션 추종자 놀이』는 바로 이 역설에서 출발한다. 현대 패션 산업을 배경으로 하지만, 이 작품이 겨누는 대상은 옷이 아니다. 우리가 아무 의심 없이 소비하는 유행, 타인의 시선, 인정 욕구, 그리고 개성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되는 집단 추종 심리다.


작품 속 서울패션위크는 단순한 패션 행사가 아니다. 수많은 사람이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모이는 공간이지만, 주인공의 눈에는 모두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처럼 움직이는 군집으로 보인다. 유행은 살아 있는 생물처럼 번식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으며 기꺼이 따른다.


"그토록 내가 찾아다닌 패션 초월 집단. 지구를 뒤덮는 유행 기류를 손가락 하나로 뒤엎는 존재들. 패션을 지배하는 패션의 외부자들, 패션 비욘더(Fashion Beyonder).저곳에서 작은 촛불 호 불어 없애듯 낡은 유행은 사라진다. 동시에 작은 불씨 호 불어 산불 퍼지듯 새로운 유행을 퍼트린다. 모든 새로움은 저곳에서 죽고 탄생한다."(본문 중에서)


10년 전 실종된 친구 수림은 이를 '패션 비욘더'라는 존재의 흔적이라고 불렀다.
유행의 시작을 만드는 자들.
시대를 갈아 끼우는 자들.
그리고 그들을 추적하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람들.


그것은 망상이었을까.
아니면 아무도 믿지 않았던 진실이었을까.


이 작품은 현실의 패션 브랜드와 스트리트 문화, 소비 트렌드를 치밀하게 관찰한 리얼리즘 위에 오컬트와 미스터리를 겹쳐 놓는다. 그래서 독자는 허구를 읽고 있으면서도 현실을 의심하게 된다.
우리가 오늘 입은 옷 역시 누군가가 오래전 설계한 선택은 아니었을까.


『패션 추종자 놀이』의 공포는 귀신이나 괴물이 아니다.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사실은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을 숭배하고 있다는 깨달음. 그 불안은 책장을 덮은 뒤에도 오래도록 독자의 마음속에 남는다.


패션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누구보다 낯익은 세계가, 호러 독자에게는 전에 없던 오컬트 미스터리가, 사회파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현대 소비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우화가 될 것이다.


옷은 몸을 감싸는 가장 가까운 물건이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오래 우리를 지배해 온 물건이기도 하다.


다음 유행이 시작되는 순간,
당신은 그것을 선택하는가.
아니면 이미 선택당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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