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004 작가의 말 - 인생 여행의 경이로움
1부 별로 돌아가는 길 016 꽃잎이 진 자리에서 020 비움으로 채우는 숲 024 숲에서 만난 침묵 028 청산(靑山)은 어디에 있는가 032 인생은 천 줄기 바람이다 036 석양에 보이는 것들 040 한 걸음 앞서 걷던 사람 044 침묵의 암벽 048 마지막에 남는 것 052 별로 돌아가는 길 2부 회한(悔恨)의 강 058 시간의 초상화 062 손 편지 066 시간이 머무는 자리 071 외로움을 건너는 시간 076 가을의 노래 081 진트재에 서서 086 흐르는 시간 앞에서 091 흙은 아직 숨 쉬고 있는가 096 회한(悔恨)의 강 3부 그해 겨울, 순천만 갈대밭 102 숲은 말이 없다 107 늑대의 울음소리 112 맑은 바람이 머무는 자리 117 선암매의 향기 122 그해 겨울, 순천만 갈대밭 4부 나도 하나의 산이다 128 나도 하나의 산이다 133 꿈은 삶이고 삶은 꿈이다 137 삶의 무늬 142 시간의 강물 146 시간이 남긴 여운 150 아내의 숲 155 저녁 숲이 가장 깊다 159 침묵의 사랑 164 화이부동(和而不同) 5부 꺼지지 않는 불빛 170 감나무 아래에서 175 강물은 흘러간다 180 꺼지지 않는 불빛 184 낡은 돛을 다시 올리다 188 다시 걷는 사람 192 묵언(默言)의 길 197 소나무 그늘에 깃든다 201 숲이 남긴 숨결 206 천국의 작은 도서관 210 함께 걷는 길 안규수 론 215 지금 이 순간의 현존 김종완(문학 평론가, 격월간 『에세이스트』 발행인) |
|
1. ‘죽어감’의 절망을 넘어선 완전한 ‘살아있음(Being)’의 선언
인간은 누구나 유한성을 지니지만, 대개는 죽음을 타자의 영역으로 밀어내며 살아간다. 하지만 담도암 발병과 전이라는 가혹한 물리적 한계 앞에서 소멸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노작자는 결코 수동적인 항복을 선택하지 않는다. 안규수에게 주치의가 건넨 “결말까지는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라는 조언은 다가올 소멸을 준비하라는 타협안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지막 순간까지 무수한 선택지를 오직 살아 있는 자의 주체적 권리로 채워 넣으라는 생의 명령이었다. 작가는 4개월 단위로 유예되는 시한부 선고의 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매일 헬스장으로 향하고, 밤낮으로 서실에 앉아 전력을 다해 붓을 잡는다. 이 완강한 행위들은 언어가 만들어낸 ‘죽음’이라는 거짓 명사에 단 한 뼘의 영토도 먼저 내어주지 않겠다는 장엄한 응전이다. 본 수필집은 소멸의 비극을 슬퍼하는 유약한 도구가 아니라, 마지막 1분 1초까지 어떻게 온전히 존재(Being)할 것인가를 치열하게 탐구한 [완전한 '살아있음'의 서사]이다. 2. 석양의 빛 아래서 선명해지는 일상의 기적과 비움의 철학 치기 어린 젊은 날의 생이 수직으로 내리쬐는 한낮의 태양 같았다면, 저무는 석양의 기우는 빛은 이상하게도 삶의 윤곽을 더 또렷하게 드러낸다. 병원 복도에서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무거운 정적 속에서 작가는 인생의 해상도를 최고치로 끌어올린다. 지위나 명예, 소유 같은 세속적 치장들이 암진단서 한 장으로 하루아침에 허상이 되었을 때, 작가가 선택한 첫걸음은 ‘덜어냄’과 ‘비움’이다. 그 처절한 비움의 자리에서 공기처럼 당연했던 일상들은 비로소 기적으로 재발견된다. 친구와 나누던 소주 한 잔, 부엌의 찌개 끓는 소리, 아내의 조곤한 잔소리 같은 지극히 사소한 풍경들이 사실은 생의 가장 찬란한 축복이었음을 고백한다. 깊은 골짜기든 거친 돌밭이든 가리지 않고 아래로만 곧게 파고드는 차나무 뿌리처럼, 작가는 고통의 심연 속으로 정직하게 직립하여 지나온 삶의 무늬를 온전히 긍정하고 누릴 줄 아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의 참뜻을 전한다. 3. 문학적 메타포로 복원한 상징적 세계와 내면의 청산(靑山) 본 도서는 하이데거, 장 보드리야르, 자크 데리다, 롤랑 바르트 등 현대 실존 철학의 사유와 긴밀하게 맞닿아 있으면서도, 이를 아름다운 자연의 메타포로 승화시킨 문학적 성취를 보여준다. 순천만 흑두루미의 날갯짓에서 머묾과 떠남의 본질을 읽어내며 미련 없는 담백한 내려놓음을 배우고, 선산 파묘 과정에서 목격한 어머니의 백골을 통해 인생의 유한함을 날것 그대로 성찰한다. 특히 표제작인 〈청산은 어디에 있는가〉에서 작가가 규정하는 청산은 관습적인 자연 예찬의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세속의 계산이 침범하지 못하는 ‘서늘하고 맑은 정신의 상태’이며, 그 산에 사는 호랑이는 자신을 속이지 못하게 감시하는 엄격한 ‘내면의 눈’이다. 가짜 자아를 발가벗기는 호랑이의 매서운 포효를 지나 마침내 가 닿은 내 안의 깊은 고요, 그것이 바로 작가가 독자에게 건네는 궁극의 안식처이다. 4. 밤하늘의 모든 별이 우물이 되는 우주적 카타르시스 수필집의 종장인 〈별로 돌아가는 길〉에 이르러 작가는 죽음이라는 무겁고 공포스러운 단어를 고정된 의미에서 완전히 해방시킨다. 법정 스님의 유서와 어린 왕자의 세계를 경유하여 도달한 그곳에서, 밤하늘에 빛나는 수천억 개의 별들은 통째로 녹슨 도르래를 단 우물이 된다. 모진 세파를 견디며 마모된 육체의 붉은 녹을 있는 그대로 긍정할 때, 지상의 오염과 비극은 천상의 신선한 생명수로 정화(카타르시스)된다. 인간은 떠나도 그가 남긴 시간은 풍경 속에 각인되는 법이다. 작가는 단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워진 자리마저 역사와 미래라는 ‘여백’과 ‘온기’의 이름으로 점유하고자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생의 주권을 놓지 않겠다는 노작자의 숨결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이 묵직한 족적은, 소멸의 공포를 딛고 ‘지금, 여기’를 온전히 살아내고자 하는 모든 나그네들에게 바치는 가장 자비롭고 품격 있는 안내서가 될 것이다. 작가의 말 언덕에는 달맞이꽃이 이슬을 머금고 피어 있었다. 톱니같이 거칠어 보이는 잎사귀와는 판이하게 연한 노란빛의 꽃이 연약하고 귀엽다. 길 왼편으로 잡초가 우거진 논이 펼쳐져 있고, 그곳에서 흑두루미 한 무리가 먹이를 먹고 있었다. 무리 중에는 새 식구인 듯한 어린 흑두루미도 어미 곁에서 연약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노닐고 있었다. 창조의 오묘함이 새삼스럽게 가슴을 친다. 그러나 달맞이꽃은 이내 땅속으로 묻혀 생을 마감할 것이며, 흑두루미는 봄이 오면 식구를 거느리고 먼 길을 떠날 것이다. 여행은 조금 독특하게 시작되었다. 담도암 수술을 받고 그 길로 제주 여행을 떠났다. 아픔을 딛고 여행길에 나섰을 때 몸이 말을 걸어왔다. 안주하던 삶을 떠나 새로운 자신을 찾아가라고. 단테가 『신곡』에서 혼란과 절망의 숲을 헤매다 베아트리체를 만나 구원과 진리를 찾아 나섰듯이, 아내의 손을 잡고 생의 의미를 찾아 나선 길이었다. 남은 인생은 아내와 나란히 보조를 맞추며 걷고 싶었다. 해변의 해맑은 바람을 가슴에 안고 걸으니 문득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차올랐다. 발끝부터 머리카락 한 올까지 온몸의 감각들이 깨어나 격려해 주는 듯했다. “역경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 ‘인간은 마음먹기에 따라 스스로를 재창조하는 존재’라는 사르트르의 말이 비로소 삶의 실감으로 다가왔다. 한라산이 주는 영감을 받으며 생을 어떻게 보람 있게 마무리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했다. 존재에 대한 경이로움이 밀려온다. 길 위에서 간절히 만나고 싶었던 것은 다름 아닌 ‘또 하나의 나’였고, 확인하고 싶었던 것 역시 또 하나의 인생이었다. 나그넷길에서 참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인생에서도 자유인이다. 인생 그 자체가 곧 자유이기 때문이다. 여행의 진정한 소득은 전혀 보지 못했던 풍경을 새로 만나는 게 아니라, 이미 보았던 풍경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새로 고쳐 보는 데 있다. ‘어디로 가느냐’는 물음은 결국 ‘어디서 왔느냐’라는 물음과 통한다. 이번 수필집은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틈틈이 쓰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많았기에, 몸이 허락하는 한 전력을 다했다. 지난 삶을 회고하고 처한 상황을 그리다 보니 죽음에 관한 화두가 많아 글이 다소 무겁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생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길어 올린 진심의 고백이다. 20여 년 전, 문학의 길로 들어선 백면서생을 이끌어 주신 김종완 교수님과 조정은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올린다. 멀리서 따뜻한 사랑으로 아껴주신 임철호, 정승윤 선생님, 그리고 원고 교정에 정성을 다해준 조성현 작가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을 ‘청산’을 찾아 떠나는 이 여정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 2026년 푸른 오월 안규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