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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1부 소셜 미디어와 정념의 조각들 1. 언젠가는 꼭 ‘단톡방’ free life 2. 무엇을 위하여 리뷰 알람은 울리나 3. 죽지도 않고 자꾸 오는 사물의 생명력 4. 현대인의 SNS 사용법: 돌진하는 주체와 파라소셜한 것 5. 어떤 욕망의 (여러) 이름 (중 하나)인 오마카세 2부 영상 이미지의 조각들 1. 의적 로빈 후드, 로빈 후드, 후드 2. 잘 죽는 법: 제보당의 야수와 토마 답체 3. 방황으로서의 삶과 그 한가운데의 사랑: 앙투안 두아넬 연작 4. 딜레마를 통과하는 선(善) 5. 오래 사는 법: 기억과 시시한 유산 3부 통념과 의식의 조각들 1. 무엇이든 체험해야 하고 체험하면 안다는 믿음 1. ‘사실상 한국인’은 대체 어느 나라 사람? 1. 연애 잘하는 비법 알려 드립니다: 픽업 아트 읽기 1. ‘있는 그대로의 나’의 ‘내면을 보’고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해줄’ 사람 1. 독을 삼키는 법: 복어를 먹듯 전부를 수용하기 4부 일상과 생활 양식의 조각들 1. 여행, 좋아하세요? 2. 취미 원예론 (1): 취미란 무용해서 취미인 것 3. 취미 원예론 (2): 꺾여도 괜찮은 마음에 더해 숙련하기 4. 취미 원예론 (3): 자연스러움을 곁들인 문명의 안쪽에서 5. 나라에서 허락하는 유일한 마약이니까 원고 출처 참고 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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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 SNS가 매개하는 과잉 연결 자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를 제안합니다. 첫머리에서 이야기했듯 비단 임금 노동뿐 아니라 일상의 온갖 영역에서 사람과 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많고도 잦은 연결이 보편적 상태로 고착했으며 우리의 지각과 반응도 그에 맞게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점에서 한 번쯤 “모두가 항상 연결되어 있는 것이 정말 좋은 일인가? 의사소통과 일 처리의 효율은 사람들이 연결되어 있는 정도에 비례하는가? 관계 전반의 경우는 어떠한가? 장소를 공유하고 빈번히 말을 건넬수록 서로의 유대도 깊어지는가?”를 물을 필요가 있습니다.
--- p25~26 따라서 전시해 놓은 의사소통의 박제들은 고객과 미용사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제3자, 즉 ‘잠재적 고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진열품으로서 그곳에 놓입니다. --- p31 그러므로 지금 고안해야 할 것은 급속한 체중 감량을 위한 전략의 거짓 다양성이 아니라 몸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하나의 새로운 기술art입니다. 기술의 고안에는 늘 성찰하는 질문이 앞섭니다. 왜 다이어트를 하며 이를 무엇이라 정의하는가, 그 정의는 적합한가, 사회의 시선과 자아 사이의 긴장 혹은 불화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는 다이어트를 하는 주체의 자문자답이 필요한 물음입니다. 일정 기간에 고행하듯 체중을 감량한 후 이전의 생활로 재빨리 돌아간다면 그에 맞춰 체중도 신속히 복구됩니다. 이러한 요요 현상은 신비한 저주도 다이어트의 부작용도 아닙니다. 한계를 내재한 다이어트 전략에 따르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 p50 SNS에 만연한 것은 관계의 가능성이 아니라 관계를 향한 욕망, 그중에도 ‘자기가 편하고 즐거운 관계를 향한 욕망’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것은 관계가 아닙니다. SNS는 준사회적 관계가 곧 사회적 관계라는 환상을 선사합니다. 하지만 준사회적 관계는 사회적 관계가 아닙니다. 현실에서 사회적 관계의 결핍을 느낀다면 현실의 사회적 관계로써 이를 해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려운 일이고 막막한 말임을 압니다. 하지만 길이 아닌 곳에서 길은 찾기 어렵습니다. --- p60 오마카세의 유행은 저무는 중입니다. “코드에 지배된 차이화/개성화 도식의 논리”와 그 구조 안에서 주체가 체험하는 긴장을 동력으로 삼는 이상 각 유행의 수명은 필연적으로 유한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조건 덕분에 유행 자체는 시작되고 지나가고 조금 다르게 돌아오기를 반복합니다. 오마카세, 파인다이닝, 호캉스, 골프 라운딩, 팝업 스토어, 다음에 올 어떤 것…. 유행의 내용을 채우는 낱낱의 이름들보다 이름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욕망의 형식에 집중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종국에는 도덕적, 윤리적, 심미적 차원 모두를 포괄하는 좋은 삶의 추구 역시 가치에 관한 사유와 실천의 형식적 전환을 경유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전혀 다른 형식을 상상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그러한 상상을 구하고 계발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 p69 요즘은 영화도 남이 대신 봐주는 것이 예사가 되었습니다. 영화 한 편을 15분 안팎으로 요약한 영화 리뷰 영상과 ‘작품 속 상징, 복선, 반전 완벽 분석’을 제공하는 영화 리뷰 영상은 높은 조회 수를 보장하는 인기 콘텐츠입니다. 전자는 매끄럽게 간추린 줄거리와 몇몇 주요 장면을 뽑아 ‘세 줄 요약’을 하는 방식으로, 후자는 화면에 등장한 사물과 그것이 지시하는 추상적 관념 그리고 표현으로 가시화된 것과 숨겨진 창작자의 의도 사이의 일 대 일 대응 관계들을 정리해 도식화하는 방식으로 ‘대리 관람’을 해줍니다. --- p88 이 지점에서 1767년의 야수의 죽음과 토마 답체의 죽음이 교차됩니다. 인위적 이종 교배의 결과물인 제보당의 야수는 살아 있는 동안 사람들을 해쳤고 마지막에는 깊은 상처를 입어 고통스러워하다 이 모습을 가엾이 여긴 프롱삭의 손에 죽임을 당합니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다음 자신을 훈련시킨 인간의 지시를 따랐을 뿐인 불쌍한 동물의 가련한 최후입니다. 어쩌다 보니 태어났으며 때가 되면 사멸한다는 것은 동물과 인간동물 전부를 묶는 유기체의 숙명입니다. 다만 토마 답체는 무엇으로서 어떻게 죽을지를 자신의 신념에 의거해 정했습니다. 하인이 재촉할 때 몸을 피했더라면 며칠이라도 더 생존했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토마 답체는 인간-동물의 생존 본능 대신 ‘일관된 삶의 연장선에서 죽음을 산다.’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의지를 좇았습니다. --- p96 착하다. 이 말의 외연은 몹시 넓고 그렇기에 용례도 제각각입니다. 남에게 미움을 받을까 무서워 매사에 굴종만 하는 사람도, 돈을 잘 빌려주거나 적선을 즐겨하는 사람도 착하다는 평을 듣습니다. 어쩌면 전자는 그저 갈등 상황에서 자아가 겪을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애쓸 따름이고, 후자는 시혜를 베푸는 자신의 모습에서 만족감을 얻는 것뿐일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아무튼 착하다는 가치 판단의 언어는 넘치는 범용성 때문에 자주 모호하고 공허한 말이 됩니다. 착한 사람이 되기를 다짐하거나 타인과 자신에 대해 착하다는 평을 내리기 이전에 착함이라는 가치 자체를 탐구의 대상으로 설정해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 p111 많은 사람이 오래 살기를 바랍니다. 한데 이 욕망은 좌절되기 마련입니다. 발달한 의학과 과학 기술 덕분에 치명적이었던 질병 대다수를 예방, 관리, 치료할 수 있게 된들, 노화를 늦추는 법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고 그대로 따른들 당장 내일 길을 건너다 트럭에 치여 다할 수도 있는 것이 인간의 수명입니다. 개별 유기체로서의 자신을 계속 유지하는 식의 장수니 불로장생이니 하는 것들은 인간의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근본적 불가능성의 영역에 해당합니다. 그저 오래 살기만 한다면 과연 그것이 좋은 일인지도 의문입니다. --- p135 어찌 보면 만남 이후의 절차에 충실하며 계산 없이 주는 주체가 되는 것이야말로 외모, 학벌, 직업, 소득, 재능의 제약을 받지 않고 누구나 평등하게 추구할 수 있는 목표입니다. 하지만 많은 이가 ‘올바른 상대’를 골라 자아의 안전을 확보한 상태에서 받는 증여를 사랑의 증표라 간주합니다. 물론 이 지경이 된 데는 모든 것을 합리적 예측과 셈을 동반하는 교환으로 환원하는 세계의 경향이 기여한 바가 큽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사랑은 그러한 세계의 경향에까지 저항할 수 있습니다. 억압 아래서 아직 죽지 않은 사랑을 위해 사랑의 외양을 지녔지만 사랑이 아닌 유사 사랑을 지움으로써 사랑이라는 말과 개념을 재발명하는 작업이 첫 단추입니다. 그러려면 “있는 그대로의 나의 내면을 보고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해줄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자아도취적 태도를 가장 먼저 소거해야 할 것입니다. --- p193~194 그러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똑같이 들이닥치는 강제가 아니고 오히려 독을 받아들이리라는 적극적 결단을 전제한다는 점에서는 미식가의 실천과 유사합니다. 다만 미식가의 실천이 심미적으로 탁월한 인간이라는 자아상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는 것과 달리 이 또 다른 형태의 독 맛의 경험을 감수하겠다는 결단은 자아의 파괴와 재구성을 야기합니다. --- p.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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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이라는 정의, 관점, 표현
『독을 삼키고 잘 죽되 오래 사는 기술』에서 다루는 사물, 작품, 기술, 현상, 인식, 행위 등 모두는 ‘문제적’이기 때문에 글감으로 꼽혔다. 일부는 어딘가 잘못된 말썽거리라는 의미에서 문제적이고, 나머지 일부는 지금의 우리에게 까다롭고 어렵지만 필히 상대해야 할 질문을 제기함에 따라 진지한 독해와 논의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에서 문제적이다. 문화/정치는 상호 대립적 원칙들의 존재와 양자를 조화, 화해, 타협하려는 시도들의 공통 형식 그리고 불화한 채 남은 것들을 재현하는 영역이기에 구슬아 연구자는 욕망과 현실, 허구와 실제, 특수와 보편, 내부와 외부, 주어진 조건에 순응하는 경향과 저항하려는 경향,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등의 대립 도식과 그것이 내포하는 모순, 불화, 긴장을 밝히는 일이 중요하다고 믿고 대상의 좋고 나쁨을 따지기 이전에 이를 면밀히 살피는 작업에 집중했다. 저자는 종국에는 일종의 가치 판단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독을 삼키고 잘 죽되 오래 사는 기술』은 저자의 ‘자기 이야기’고 저자가 마뜩잖게 혹은 마땅하게 여기는 문제들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모아 놓은 책이다. 만연한 플랫폼 글쓰기와는 다른 글쓰기를 전개해야겠다는 의지가 곧 행위로 이어졌다. 저자는 장르나 형식, 내용의 다름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저자의 ‘자기 이야기’가 그저 폐쇄적 자아를 강화하며 “순전히 개인적이라는 점에서 자의성을 벗어날 수 없기에 일회적 대증요법에 그칠 뿐”인 글로 남는 일만은 경계하겠다는 다짐을 실천에 옮긴 결과물이다. 저자는 이 책이 독자에게 다가가 부딪히는 ‘저의’ 자의식이기를, 하나의 말 건넴이기를, 또 실효성이 있는 질문이자 제안이 되기를 바란다고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