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늘 푸르게, 더 푸르게
1976년, 이문1동 동사무소 건물에서 시작된 희망의 푸른 교실
최대천
행복에너지 2026.07.27.
가격
22,000
5 20,900
YES포인트?
440원 (2%)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배송안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11(여의도동, 일신빌딩) 변경
배송비?
무료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국내배송만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분야의 이벤트

카드뉴스로 보는 책

카드뉴스0
카드뉴스1
카드뉴스2
카드뉴스3
카드뉴스4
카드뉴스5

상세 이미지

책소개

관련 동영상

목차

추천사·4

제1부 늘 푸르게, 더 푸르게
프롤로그·24
세상을 크게 품어라·28
호박꽃 향기와 시금치 냄새·31
울 아버지·34
여름광목 겨울담요·38
재미있는 가족생활·41
난류와 편서풍·44
장군의 소개팅·46
기찻길 따라·48
가짜 결혼·50
군대가 체질?·53
누나가 애인이 되고·57
서울로 가다·60
슬기로운 공무원 생활·62
늘 푸르게 더 푸르게!·65
자전거에 풀통을 싣고·70
발발이·73
돼지엄마의 추억·75
상록은 오르간을 타고·79
시련을 딛고·81
영혼까지 끌어모아·83
내가 곧 시련·85
푸를 대로 푸르른·89
사랑의 불이 밑거름이 되어·94
푸른 그루·98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123
기억은 추억이 되고·126
총각 주례자·132
에필로그·135


제2부 언론에 비친 최대천
인간승리·140
이 시대 이 사람 17·154
자랑스런 청고인들·180
응달 속 헌신에 보람 가득·191
30년 상록야학맨이자 ‘대천장’ 주인인 최대천 선생님·194
30년 넘게 상록야학당 꾸려온 최대천 씨·197
47년간 만학도 8000명 恨 풀어준 ‘상록야학’, 우정선행상 대상·203
사랑하는 동료와 제자들의 편지 모음·207

주요 경력·242

출간후기·245

저자 소개 1

1948년 9월 11일 충청북도 청원군 북일면 마산리(현 청주시)에서 5남 4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배움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던 그는 내수초등학교, 청주중학교,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성실함과 책임감을 키웠다. 1970년 육군에 입대하여 논산훈련소와 광주 포병학교를 거쳐 제32보병사단과 한미 제1군단 포병부대에서 복무했다. 당시 군에서 사용하던 최첨단 무기인 8인치 자주포 영어 교범을 우리나라 최초로 한글로 번역하여 교범을 발간함으로써 뛰어난 외국어 실력과 실무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는 군 전력 향상과 장병 교육에 크게 기여한 의미 있는 성과로
1948년 9월 11일 충청북도 청원군 북일면 마산리(현 청주시)에서 5남 4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배움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던 그는 내수초등학교, 청주중학교,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성실함과 책임감을 키웠다.

1970년 육군에 입대하여 논산훈련소와 광주 포병학교를 거쳐 제32보병사단과 한미 제1군단 포병부대에서 복무했다. 당시 군에서 사용하던 최첨단 무기인 8인치 자주포 영어 교범을 우리나라 최초로 한글로 번역하여 교범을 발간함으로써 뛰어난 외국어 실력과 실무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는 군 전력 향상과 장병 교육에 크게 기여한 의미 있는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1975년 서울특별시 지방행정공무원으로 임용된 이후 동대문구청, 중구보건소,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특별시청 등에서 25년간 근무하며 시민을 위한 행정을 실천하였다. 언제나 청렴과 봉사를 공직자의 첫 번째 가치로 삼았으며 맡은 자리마다 책임과 신뢰를 바탕으로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하였다.
1976년, 교육의 기회를 놓친 청소년과 어려운 환경의 성인들을 위해 상록야학을 설립하였다. 낮에는 공직자로 일하고 밤에는 교단에 서며, 학비조차 마련하기 어려웠던 이웃들에게 무료로 공부를 가르쳤다. 수많은 제자들이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으며 대학에 진학했고 사회의 든든한 일꾼으로 성장하였다.

그는 늘 말했다. “배움은 사람을 살리고, 사람은 세상을 바꾼다.” 이 신념은 평생 그의 삶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이었다. 공직과 교육봉사라는 두 길을 함께 걸으며 그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었다.
그의 헌신은 사회로부터도 높이 평가받았다. 1977년 서울특별시장 모범공무원 표창을 시작으로 1982년 서울특별시 유공공무원 표창과 서울특별시 교육감상을 수상하였으며 1993년에는 시민을 위한 봉사정신을 인정받아 청룡봉사상을 수상하였다. 1997년에는 모교인 청주고등학교 총동문회가 선정한 제1회 자랑스러운 청고인상을 수상하며 지역사회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인물로 인정받았다.

그는 평생 명예보다 책임을 먼저 생각했고 성공보다 사람을 먼저 사랑했으며, 경쟁보다 나눔을 실천하였다. 공직자는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하고 교육자는 사람을 키워야 하며 봉사자는 조건 없이 사랑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삶에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퇴직 이후에도 배움과 봉사의 가치를 전하며 후학을 격려하고,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삶으로 이렇게 증명해 왔다.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교육은 한 가정을 바꾸고, 한 가정을 변화시키는 사랑은 결국 사회를 바꾼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7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268쪽 | 178*251*20mm
ISBN13
9791124134320

책 속으로

벌컥!

문을 열고 들어선 나는 얼른 바닥부터 만져보았다. 차가웠다. 그래, 시멘트 바닥이 따뜻할 리가 없겠지… 아무래도 이대로는 겨울 한 철 나기도 힘들 듯 싶었다. 어떻게 한다… 한참을 머리를 굴리던 난, 문득 건물 뒤편에 낡은 거적떼기 같은 것들이 잔뜩 쌓여있는 걸 본 생각이 났다.

“저기, 미안한데, 일단 나랑 같이들 좀 나가봅시다.”

난 일행들을 앞세워 건물 뒤편으로 돌아나갔다. 내가 봤던 거적떼기 같은 것들이 어둠 속에서 희멀겋게 빛을 내고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가마니였다. 그랬다. 볏짚으로 만든 가마니.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나왔다.

“야, 이거 제대로인데…”
“뭐가 제대로라는 겁니까, 선생님? 하기야 대충 봐도 가마니를 제대로 만들긴 했네요. 이게 왜 여기 있는진 모르겠지만요.”
“하하, 자 지금부터 이걸 둘이서 한 개씩 들고 날라볼까요. 제대로 쓸 수 있겠어.”

뭔지도 모르고 덩달아 신들이 난 직원들과 자원한 여대생 선생님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까지 싣고 우리는 부지런히 가마니를 날라댔다.

이것이 우리가 그 추운 겨울, 이문동 낡은 목조건물 2층에서 시작한 일이다. 가마니부터 깔고 시작한 일… 야학이다. 1976년, 내 나이 28살 때 일이다. 당시 난, 공무원에 막 취직해 1년을 채우지 못한 햇병아리 시절이었다.

그렇게 바닥이 마무리되어 갈 무렵, 한 선생님이 소리쳤다.

“그런데 선생님, 우리 이름은 뭐예요?”
“우리… 이름?”
“네, 학교 이름이요. 학교 맞죠, 우리?”
“아, 맞다. 그럼, 학교 맞지. 학교 맞아. 음, 이름은…”

난 사실 진작에 지어둔 이름이 있었다. 애당초 우리 젊은이들의 푸른 꿈과 소망이 언제까지나 이어지고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 그래서 더욱 기회가 없을지도 모를, 아니 주어지지조차 않을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그들은 언제나 푸르러야만 했기 때문이다. 실제 그 시절, 칠판 앞에 처음 섰을 때 내 마음을 가장 크게 채웠던 건 ‘미안함’과 ‘조바심’이었던 것 같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단지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배움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그 뒷모습들을 보며,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정말 컸었다.

“아이들은 이름 그대로 늘 푸르러야 하는데, 왜 벌써 세상의 짐을 지고 시들어가야 할까.”

그래서 한시라도 빨리 그들에게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조바심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거창한 교육 철학보다는, 당장 등불 하나가 급한 아이들에게 내가 가진 작은 지식이라도 나누어 그들의 앞길을 비추는 ‘작은 불빛’이 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늘 푸르러야만 하니까.

“학교 이름은… ‘등불’로 할까 하다가 ‘상록’이야! 상, 록, 야, 학! 어때?”
“우와, 그럴듯한데요. 심훈 작가님의 ‘상록수’의 그 ‘상록’이죠?”
“그렇지. 늘 푸르라고 말이지.”
“와, 그럼 내일은 아예 교실도 칠하죠, 뭐. 푸른색으로요.”
“뭐라구? 하하하!”

서울시 공무원으로 첫발을 내딛던 1975년, 당시 내 근무지였던 개천가 이문1동 동사무소 건물 2층에서 그렇게 늘 푸른 교실이 시작됐다.

---본문중에서

추천평

사랑으로 세상을 밝힌 공직자, 최대천

사람 냄새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귀한 일이지만, 가슴 깊이 감동을 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인생의 축복이다.

大天. 그냥 하늘도 아니고 ‘큰 하늘’이라니, 이름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그와 내가 특별히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거의 같은 세월을 서울시 공직사회에서 함께 살아왔다. 나는 비교적 간부의 길에서 출발했고, 그는 동사무소 현장에서 시민들과 호흡하며 공직의 첫걸음을 시작했다. 나는 정책을 다루는 위치에 있었고, 그는 삶의 현장에서 어려운 이웃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살아왔다. 겉으로 보면 내가 더 드러나는 자리에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삶의 깊이만큼은 감히 따라갈 수 없었다.

그가 살아온 발자취를 읽으며 나는 여러 번 가슴이 먹먹해졌고, 한편으로는 부끄러움마저 느꼈다. 자신을 태워 어둠을 밝히는 촛불처럼, 그는 평생을 남을 위해 살아왔다. 이해관계와 경쟁, 그리고 각박한 현실 속에서 사람에 대한 온기가 점점 메말라가는 시대에, 그는 소외된 이웃의 손을 붙잡고 묵묵히 희망의 길을 걸어왔다.

특히 공직자로서 바쁜 삶을 살아가면서도 30년 넘게 상록학교를 통해 배움의 기회를 놓친 청소년들과 어려운 이웃들에게 희망의 꽃을 피워준 헌신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질문을 던진다.

“나는 과연 누구를 위해 어떻게 살아왔는가.”

인생의 가치는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랐는가로 결정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재산을 이루었는가보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가치관으로, 누구를 위해 살아왔는가가 한 사람의 삶을 평가하는 진정한 기준이라 생각한다.

『늘 푸르게, 더 푸르게』는 단순한 자서전이 아니다. 한 사람의 성공담을 넘어, 사랑으로 세상을 밝힌 한 공직자의 기록이며, 헌신과 나눔으로 사람을 살려낸 감동의 역사다. 또한, 이 책은 성공만을 좇으며 방향을 잃어가는 젊은 세대에게는 삶의 의미와 희망을 일깨워주고, 미래 사회를 고민하는 지도자들에게는 공직과 리더십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귀한 울림이 될 것이다. 미국의 시인 에머슨은 진정한 성공을 이렇게 말했다.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더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최대천. 그는 진정 성공한 사람이다. 이 귀한 기록이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희망의 씨앗으로 남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 이원종 (전 서울특별시장,전 충청북도지사)
사람을 품어 세상을 밝힌 큰 스승

요즘 나는 최대천 선생님을 ‘할배’라고 부른다. 그러면 선생님은 웃으며 나를 ‘미친놈’이라고 부르신다. 남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 호칭이지만, 우리에게는 수십 년 세월이 만들어낸 가장 다정한 인사말이다. 『늘 푸르게, 더 푸르게』를 읽으며 나는 그 호칭 속에 담긴 선생님의 삶을 다시 만났다. 책 속에 담긴 이야기는 한 사람의 자서전이었지만, 내게는 스승과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들의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야학 시절 선생님의 사랑을 누구보다 많이 받은 학생이었다. 당시 선생님은 동사무소에서 근무하고 계셨다. 나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책 읽는 일만큼은 포기하지 않았지만, 책을 구하는 것이 늘 고민이었다. 책 한 권 사는 돈조차 아까웠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신기할 만큼 쉽게 책을 구해주셨다. 선생님이 근무하시던 동사무소에서는 매주 수요일 재활용품을 수거했는데, 그때마다 내가 읽을 만한 책들을 하나하나 챙겨 두셨다. 일요일이면 선생님과 탁구를 치고 함께 자전거를 타고 동사무소로 향했다. 나란히 페달을 밟으며 달리던 그 길은 일주일의 피로를 모두 씻어내 주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선생님을 통해 얻은 책들이 차곡차곡 쌓여 어느새 공장 기숙사 한쪽 벽면을 가득 채웠다. 그 덕분에 나는 더 넓은 세상을 책으로 만날 수 있었다. 그 시절 받은 책들 가운데 몇 권은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문동에 사시던 누님이 선생님을 위해 정성껏 끓여 놓은 삼계탕도, 선생님의 저녁 식사로 준비된 딸기도 결국 내 몫이 되곤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다 먹어버렸다. 이런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꺼내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그래서 야학 친구들의 부러움도 늘 내 차지였다.
야학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새벽에는 신문 배달을 하고, 낮에는 봉제공장에서 일하고, 저녁이면 야학으로 향하는 고된 생활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선생님이 늘 챙겨주시던 따뜻한 관심과 사랑 덕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은 하늘이 내게 보내 준 또 한 분의 아버지였는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선물이 있다. 어린 시절 떼를 써서 겨우 얻어낸 윤동주의 「서시」 액자다. 선생님께서 무척 아끼시던 액자인데, 내가 알기로는 세 개뿐이다. 하나는 선생님 댁에, 하나는 야학 학교에, 그리고 하나는 우리 집에 있다. 그 액자는 미국에 거주하시던 오래전 야학교사분께서 선생님께 선물한 것이었다. 선생님은 그분께 여러 번 부탁한 끝에 나의 졸업 선물로 하나를 더 만들어 주셨다. 그만큼 귀하고 의미 있는 선물이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나는 윤동주 시인이 공부했던 학교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다. 학교 백양누리 동문회관 입구에는 윤동주의 「서시」가 새겨진 동판이 있다. 그런데 나는 그 글귀를 볼 때마다 윤동주 시인보다 먼저 선생님이 떠오른다. 어쩌면 이것마저 선생님의 놀라운 예지력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것이다. 왜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최대천 선생님을 잊지 못하는지, 왜 선생님이 걸어온 길이 한 사람의 인생을 넘어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산인지를 말이다. 선생님은 가르침을 직업으로 삼은 분이 아니라, 사람을 희망으로 키워 낸 분이다.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배움을 포기하지 않았던 학생들에게 선생님은 학교였고, 가족이었고, 삶의 등불이었다. 저 역시 그 수많은 제자 중 한 사람이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배움의 힘이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는지, 그리고 진심 어린 한 사람의 사랑이 얼마나 먼 미래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기록이다.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최대천 선생님의 따뜻한 삶과 교육의 가치를 함께 만나 보길 바란다.

나의 영원한 모슈쿠라 최대빵, 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신 침착함과 여유, 그리고 끈기를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겠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사회를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권세종 졸업생(상록야학)

현재 삼성SDS에서 26년째 IT 전문가로 근무하고 있으며, 연세대학교 대학원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저서로는 『봉제공장 시다, 삼성 입성기』(05.열림원)가 있다. - 권세종 (상록야학 졸업생)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20,900
1 2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