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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몸으로 들어오는 시
그땐 그랬다 시는 몸으로 걸어와 길을 낸다 빗소리 속절없다 아날로그 여백 책방의 시 다정했던 사람들 목도리 미련 천년의 미소 불안 첫사랑 2부 - 자연의 시나브르 가을 햇살 가을엔 가을 이별 낮달 단풍 첫눈 봄의 속살 감미로워라 폭설 아포가토커피 국밥집에 앉아서 딸기 쨈과 식빵 커피 혼술 3부│유리잔의 행복 누나야 사랑방 아버지의 수의 아버지의 혼 엄마의 빨랫줄 엄마의 손 엄마 엄마의 방 배낭 속의 산 부석사 설악산 일붕사 종소리 지리산 화대 무박종주 한라산 가야산 만물상을 오르며 덕유산 그 설산에 서면 독도 방이섬 섬 소매물도 파도 홍도의 밤 흑산도 단청 반지 속세를 품은 항아리 재봉틀 유리잔의 행복 4부 │ 꽃과 열매, 존재의 은유 감자꽃 겨울 연밥 금계국 냉이 동백 장미 매화 꽃길 찔레꽃 강 나만의 의식이 존재하는 곳 영월 동강은 말없이 흐르고 옛 철로길 태화강변 통도사 여행 해설 /일상과 여가가 공존하는 시 쓰기 - 양왕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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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몸으로 걸어와 길을 낸다
올 때는 뭉텅 와 휑하니 돌아간다 꽃처럼 핀 말들 떨어질까 사라질까 문간에 서서 활자보다 먼저 내려온 나의 노래 내가 걷는 모든 길 모두 사랑의 노래 손끝 바람 발밑 빗방울 햇살 흩뿌린 먼지 모두 시 숨결마다 깃든 순간 스쳐간 마음 노래 꽃 빛 다시 태어난다 --------------------------------------------- 책방의 시 서점 문을 열면 익숙한 종이 냄새가 코끝에 닿는다 겹겹이 서가를 메운 책들 사이에서 누군가는 신간을 고르고 누군가는 옥구슬 같은 문장 속으로 잠긴다 한 권의 등에 기대어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 책방은 당신 영혼이 말없이 걸어가는 숲길이다 --------------------------------------------- 지리산 화대무박종주 내가 부르지 않아도 당신은 먼저 거기 계셨다 화엄사 들머리 어둠을 건너 우리는 당신의 살결에 첫발을 올렸다 몸을 길게 맡기자 코재와 무넹기는 어둠에 잠기고 노고단은 말을 거두는 문처럼 열렸다 반야에는 신의 숨결 같은 운무 내려앉고 연화천 물은 기억을 씻는다 벽소령 간신히 의식을 붙들고 세석의 넓은 등허리엔 별들이 잠시 내려앉아 사람의 이름을 덮는다 장터목에 이르자 바람마저 숨을 내려놓고 신선들도 거쳐 간다는 통천문 그 경계 위에 천왕봉 당신의 이마 능선은 꺾이고 중봉과 써리봉을 지나 치밭목골 깊은 부름 따라 우리는 조금씩 낮아진다 대원사 계곡 물소리 들으며 한 발 또 한 발 버리고 또 비우며 내려왔다 끝내 나는 알았다 걷고 있었던 것은 길이 아니라 당신의 몸이었다는 것을 사람으로 왔다가 신의 품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아직 그 안에 있다 ------------------------------------------------------------ 일붕사 종소리 새벽이 종을 흔들고 해거름이 다시 흔든다 종 속에는 우리 엄마가 살고 있다 고요히 두 손 모은 정성 그 모든 정성이 울림이 되어 들릴 듯 말 듯 종이 엄마를 부르고 엄마가 종이 된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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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나는 오래도록 시를 쓰기보다 시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산을 오를 때도 바다 앞에 설 때도 도시의 하루를 건널 때도 세상은 늘 먼저 말을 걸어왔다. 나는 다만 그 곁에 서 있었을 뿐이다. 어떤 순간은 한 편의 시가 되었고 어떤 순간은 끝내 시가 되지 못한 채 몸에 남았다. 그러나 그 모든 시간은 나를 시의 바다로 데려갔다. 이 시집은 잘 쓴 말들의 모음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았던 순간들, 지나오며 숨을 고르던 자리들에 대한 기억의 기록이다. 내가 바라본 모든 세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였다. 그 시들 앞에 이제 겸손의 책을 놓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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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대표적 대형서점인 영광도서에서 40여 년 서점인으로 살아온 서홍석 시인이 첫시집 『내가 바라본 모든 세상은 시였다』(작가마을)를 펴냈다. 서홍석 시인은 경남 의령 출생으로 2015년 월간 《문학세계》 신인상을 받으면서 등단했다. 서시인은 이번 첫 시집에서 평생 책 읽는 독자들만 만나온 자신이 시집의 저자가 되어 독자를 만나 작가로 우뚝 선 기분을 그대로 전달한다. 그래서 시집 제목도 『내가 바라본 모든 세상은 시였다』고 명명하고 있다. 전체 4부로 구성한 이 시집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부분은 3부의 시들이다. ‘누나’, ‘아버지’, ‘엄마’ 등 가족들의 그리움을 소환하거나 부석사, 설악산, 한라산, 독도, 방아섬, 소매물도, 홍도, 흑산도 등 평소 등산을 즐겨운 시인이 전국의 크고 작은 산들과 바다를 걸으며 보고 느낀 감성들이 서경적 감성들로 풍부하게 묘사한다. 하지만 단순히 서정적이고 서경적 감성들만 담은 것이 아니다. “하얀 비애들은 상고대를 떠날 듯/가지마다 붙잡힌/영혼의 눈물로 맺혀있다”(「덕유산 그 설산에 서면」), “님이 오라하여 갔건만/님은 없고//무량수전/배흘림기둥만//나를 붙들더라”(「부석사」) 등 삶의 연륜에서만 보여지는 인간의 내면적 철학적 사유를 보여준다. 그만큼 그는 이번 시집에서 자신의 삶을 송두리 독자들을 위해 獻詩하는 것이다.
- 양왕용 (부산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