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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인간, 마침내 신에게서 고개를 돌리다 - 15세기 그림 이야기
1422-1432년경 : 천사가 방문한 시민의 거실 - 로베르 캉팽, 「메로드 제단화」 1434년 : 초상화, 공적인 문서와 사적인 고백 사이 - 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1450년경 : 흰 피부의 성모, 인간과 신성 사이 - 장 푸케, 「세라핌과 케루빔에 둘러싸인 마돈나」 1490년경 : “나의 딸기코 할아버지, 사랑해요” -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노인과 손자」 1495-1505년 : 상상의 동물, 중세의 진실이 되다 - 브뤼셀 공방, 「유니콘」 태피스트리 연작 2장.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유럽이 뒤집히다 - 16세기 그림 이야기 1500년 : 세상에서 가장 건방진 초상화가 나타났다 - 알브레히트 뒤러, 「자화상」 1545년경 :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왕가의 초상 - 작자 미상, 「헨리 8세의 가족」 1551년 : 푸줏간 진열대를 그린 ‘먹방’ 그림, 정물화의 탄생 - 피터르 아르첸, 「이집트로의 피신이 그려진 푸줏간의 진열대」 1567년 : 신나게 먹고 마시고 취한 잔칫날, 신랑은 어디에 있나 - 대 피터르 브뤼헐, 「농민의 결혼식」 3장. 바로크와 절대왕정, 번영과 상실의 공존 - 17세기 그림 이야기 1623-1624년경 : 웃음 짓는 초상화, 흔들리는 질서 - 프란스 할스, 「류트를 연주하는 광대」 1656년 :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광 그리고 역변의 아이콘 - 디에고 벨라스케스, 「어린 마르가리타 공주」 1657-1658년 : 굳은 빵을 적시는 우유, 네덜란드의 어떤 하루 -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우유 따르는 여인」 1660년 : 아들과 연인, 골동품에 미친 화가를 지키다 - 렘브란트 판 레인, 「수도사 복장을 한 티투스의 초상」 1660년경 : 흰 빵과 검은 빵의 사회학 - 가브리엘 메취, 「뿔 나팔을 부는 제빵사」 4장. 궁정과 살롱, 로코코와 낭만주의를 낳다 - 18세기 그림 이야기 1730년경 : 관광 엽서와 카메라의 원조 - 카날레토, 「베네치아 대운하 입구」 1762년 : 명마의 초상, 인간 중심주의에 도전장을 던지다 - 조지 스터브스, 「휘슬재킷」 1770년경 : 소녀의 위험한 오후, 읽는 몸의 탄생 - 장-오노레 프라고나르, 「책 읽는 소녀」 1776년 : 독신남, 영원한 아버지가 되다 - 조슈아 레이놀즈, 「어린 사무엘」 1778년 : 18세기 병원에서는 환자를 어떻게 맞이했을까 - 얀 밥티스트 비어블록, 「성 요한 병원의 병동 모습」 1787년 : 괴테, 그랜드 투어를 떠나다 - 요한 티슈바인, 「로마 캄파냐에 있는 괴테」 5장. 혁명과 산업화, 시민이 주역이 되다 - 19세기 그림 이야기 1800년 : 19세기 파티걸의 초상화가 미완성인 이유 - 자크-루이 다비드, 「레카미에 부인의 초상」 1839년 : 깊은 숲속 우산 아래, 별 일 없이 삽니다 - 카를 슈피츠베크, 「가난한 시인」 1848-1850년 : 임신한 매춘부는 왜 다리에서 몸을 던졌을까 - 조지 프레드릭 와츠, 「익사한 여성 발견」 1863년 : 빅토리아인들이 가장 사랑한 아이, 그러나 미운털 박힌 엄마 - 존 에버렛 밀레이, 「나의 첫 번째 설교」 1875년 : 어쩌다 부부가 된 모네 이야기 - 클로드 모네, 「양산을 든 여인-산책」 1879년 : 산업사회의 산물, 월급과 일요일 - 에두아르 마네, 「카페 콩세르 코너」 6장. 예술, 시대의 불안과 가능성을 증언하다 - 20세기 그림 이야기 1905년 : 창문 너머, 세계대전의 검은 그림자 - 앙리 마티스, 「열린 창, 콜리우르」 1909년 : 햇빛이 가족이 되는 순간 - 호아킨 소로야, 「바닷가 산책」 1913년 : 미국판 ‘달동네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조지 벨로스, 「절벽 거주자들」 1916년 : 부잣집 사모님, 바지를 입고 비스듬히 눕다 - 로버트 헨라이,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의 초상」 1939년 : 철의 신전, ‘신세계’ 미국의 꿈 - 조셉 스텔라, 「브루클린 다리: 오래된 주제의 변주곡」 참고문헌 참조 미술관 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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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핌과 케루빔에 둘러싸인 마돈나」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이례적으로 희고 빛나는 성모의 피부다. 성모의 피부는 자연광 아래에서 살아 숨 쉬는 살결이라기보다 차가운 상아나 대리석 표면에 가깝다. 이는 단순한 미적 선택이 아니라 당대 미백 문화와 깊이 연결된 표현 방식이었다.
이 극단적인 미백에 대한 염원은 15세기 프랑스 사회에서 추구하는 미적 기준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15세기 프랑스와 북유럽 사회에서 하얀 피부는 귀족의 상징이자 도덕적 순결의 상징이었다. 햇볕에 그을리지 않은 피부는 노동하지 않는 높은 신분을 의미했고, 여성의 도덕성과 미덕은 피부의 밝기로 평가되었다. 실제로 당시 여성들은 납 성분이 포함된 미백 파우더나 식초 등을 사용해 피부를 희게 유지하려 안간힘을 썼다. 푸케가 그린 성모는 당시 미적 기준을 극단적으로 추구한 결과물이며, 동시에 인간 세계의 아름다움을 초월한 초현실적 존재가 되었다. --- p.41~42 제인 시모어는 이 초상화가 그려질 무렵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제인은 에드워드를 낳다가 12일 만에 산후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세상을 떠난 지 8년이나 지난 제인 시모어가 차기 왕의 어머니로 등장한 것이다. 제인 시모어는 살아 있는 가족이 아니라, 왕조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상징적 존재로만 등장한다. 제인 시모어는 아들을 낳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상적인 왕비로 기억되었고, 헨리 8세는 이미 사망한 왕비를 자신의 곁에 두었다. 이 가족 그림은 왕의 정통성, 안정적인 계승을 확인하려는 의도로 제작되었으며 정치적 의도로 만들어진 합성 그림인 셈이다. --- p.85~86 한때 암스테르담을 주름잡던 화가가 어쩌다 파산에 이르게 된 것일까. 그 답은 렘브란트 하우스 2층, ‘캐비닛’이라고 불리던 수집의 방에 있었다.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으로도 불리는 이 수집 문화는 대항해 시대 이후 유럽 전역으로 퍼진 유행이었다. 신대륙에서 진귀한 물품들이 쏟아지기 시작하자, 16세기 유럽의 왕족들은 자연물과 고고학 유물, 예술품을 한 방에 모아두는 경쟁을 벌였다. (중략) 렘브란트도 캐비닛 유행에 깊이 빠져든 사람 중 하나였다. 그의 집 2층에는 그가 직접 수집한 조류 및 해양 생물 박제, 곤충, 파충류 표본, 산호 및 광물, 조각품, 미술 작품 등이 가득했다. 렘브란트는 고대 로마 장군, 르네상스 상인, 동양의 황제풍의 옷을 입은 초상화로 인기를 끌었고, 그는 작업에 꼭 필요한 골동품과 소품들을 끊임없이 사 모았다. 부르는 게 값인 골동품에 대한 욕망은 갈수록 커졌다. 과도한 수집 습관과 사치스러운 생활, 불규칙한 수입이 맞물리면서 결국 그는 파산으로 내몰렸다. --- p.153~154 「빵 굽는 사람」에서 제빵사는 뿔 나팔을 불어 방금 구워진 빵과 프레첼이 준비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판매대에는 거친 호밀빵과 부드러운 흰 밀빵, 8자 형태의 프레첼이 나란히 놓여 있다. 그러나 바구니와 선반 위에 따로 보관된 빵들은 색과 질감에서 판매대 위의 것과 분명히 구별된다. 이 흰빵들은 상류층 사람들을 위한 고급 빵이다. 당시 상류층은 부드러운 흰 밀빵인 헤렌부르드(herenbrood)를, 중산층 이하는 밀기울이 섞인 거친 세멜부르드(semelbrood)나 호밀빵을 즐겨 먹었다. 헤렌부르드는 ‘신사의 빵’이라는 뜻으로, 이 명칭 자체가 흰 빵이 상류층의 전유물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림 속 빵 가게에서도 좀 더 비싼 값을 치를 상류층 손님들을 위해 부드러운 빵을 오른편 선반 위에 따로 비치해두었다. --- p.164~165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의 초상」은 당시 미국 미술계에서 보기 드문 형식이었으며 당대 여성 초상의 관습을 정면으로 거스른 그림이었다. 더욱이 거트루드는 당시 상류층 여성에게 드물었던 바지 차림으로 누워 있다. 거트루드가 입은 바지나 당돌하게 바라보는 이 초상화는 당시 매우 이례적인 차림과 자세였다. 왜냐하면 누운 여성은 대부분 비너스를 흉내 낸 매춘부 자세의 전형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치마가 아닌 바지 차림 역시 보수적인 미국 사회에서는 도발로 받아들여졌다. 사람들은 부잣집 사모님의 일탈로 치부하며 수군거렸다. (중략) 초상화가 완성되었을 때 그녀의 남편조차 거실에 걸기를 거부했다. 아내가 단정치 못하게 바지를 입었다는 사실과 훗날 지인들이 그림을 보고 수군거리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 p.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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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그림의 연대기, 일상의 연대기
때로 그림 앞에서 우리는 지레 겁을 먹는다. 작품을 ‘감상’하려 하면 미술 용어, 사조의 이름, 기법의 원리 따위가 그림과 우리 사이에 두꺼운 유리벽을 세운다. 『시간이 흐르는 미술관』은 그 차갑고 투명한 유리벽을 허물어버리는 책이다. 15세기 르네상스부터 20세기 초까지, 서양미술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31편의 명화를 100년 단위로 잘라서 시대순으로 읽어나가면서 그림이 탄생한 시대적 맥락, 화가의 삶, 모델의 사연, 후원자의 욕망까지 파고들며 명화 이면에 숨어 있는 인간의 숨결을 생생하게 복원한다. 『시간이 흐르는 미술관』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500년 전, 300년 전, 100년 전의 것이지만 사랑과 욕망, 권력과 배신이라는 주제는 21세기 우리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림 속 빵 한 조각에도 계급이 나뉘어 있었고, 왕은 왕실 가족 초상화에 멀쩡히 살아 있는 왕비를 제치고 이미 죽은 왕비를 그려넣으라고 명했으며, 꼬마 공주의 초상화는 그림으로 그려진 ‘외교문서’였다. 사라진 시대가 깨어나고 묻혀 있던 일상이 피어난다 15세기가 사랑한 성화에서 20세기 초의 풍속화와 풍경화에 이르기까지, 그림이 추구하는 가치는 시대의 요구에 맞게 다양한 변신을 거듭해왔다. 신화와 성서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던 15세기의 화가들은 「메로드 제단화」에서 예수 잉태를 마리아에게 알리러 온 천사를 서민의 평범한 거실로 불러들였고, 상상의 동물인 유니콘을 진실이라 믿으며 거대하고 화려한 ‘중세판 식물도감’ 「유니콘」 태피스트리를 정성껏 제작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으로 대표되는 16세기에 뒤러는 예수도 아니면서 감히 ‘정면을 똑바로 바라보는’ 발칙한 「자화상」을 선보이며 예술가의 정체성을 세상에 선언했으며, 오랫동안 최고의 지위를 지켜왔던 성화는 쇠퇴하여 「이집트로의 피신이 그려진 푸줏간의 진열대」에서는 고기와 소시지 같은 먹거리를 그린 정물화 속에 ‘숨은그림찾기’ 수준으로 위축되었다. 바로크와 절대왕정의 시대인 17세기에는 ‘예비 며느리는 건강합니다’라는 소식을 알리는 일종의 외교문서였던 「어린 마르가리타 공주」 같은 궁정 초상화가 그려진 한편, 「우유 따르는 여인」처럼 빵을 굽고 우유를 따르는 소박한 일상을 그린 풍속화가 캔버스로 한껏 스며들었다. 궁정과 살롱, 로코코와 낭만주의로 대변되는 18세기에는 인간의 배경으로만 존재하던 동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동물화의 걸작 「휘슬재킷」이 등장하고 「책 읽는 소녀」와 같은 ‘위험한’ 여성들의 존재가 화폭에 추가된다. 19세기에는 혁명과 산업화에 따른 사회의 커다란 변혁과 그 속에서 소외된 비참한 이들에게 눈길을 주는 「익사한 여성 발견」과 같은 사실주의 그림들이 등장한다. 「가난한 시인」처럼 어지러운 날들에 지친 시민들에게 ‘소확행’을 선사하는 그림이 사랑받는가 하면, 「카페 콩세르 코너」 같은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에서는 산업사회와 월급의 등장이 빚어내는 도심의 새로운 풍경들이 묘사된다. 20세기 그림에서는 두 번의 세계대전과 미국이라는 ‘신세계’를 빠뜨릴 수 없다. 「열린 창, 콜리우르」와 「콜리우르의 프랑스 창」은 전쟁의 공포가 마티스의 화려하고 대담한 색채를 얼마나 극적으로 무채색으로 바꿔버렸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절벽 거주자들」은 미국으로 몰려든 이민자들의 남루하지만 생동감 넘치는 ‘달동네’ 삶을 가감 없이 묘사하고 「브루클린 다리: 오래된 주제의 변주곡」은 중세 성당의 첨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미국의 영광을 캔버스에 구현한다. 페르메이르의 우유, 소로야의 해변… 그림으로 다시 만난 세계 『시간이 흐르는 미술관』은 미술사를 이야기하지만 어려운 양식과 사조를 나열하는 대신, 각 시대에 그려진 작품을 둘러싼 뜨거운 인간의 숨결, 그림이 그려진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맥락, 때로는 스캔들과 정치적 반전까지 파헤치고 들어간다.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100년을 단위로 잡아 그림의 변화를 천천히 따라가면서 그림의 주제, 화풍, 화가의 관심사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추적해나가는 과정에 동참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시간이 흐르는 미술관』의 또 하나의 미덕은 ‘기록되지 않은 이들’을 기억하는 시선이다. 저자는 신화 속 영웅이나 왕족이 아닌, 평범한 노동자와 일상 속의 익명들을 화면 중심으로 끌어들인다. 페르메이르의 하녀, 소로야의 해변을 거니는 인물들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의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의 욕망과 고뇌, 그리고 삶을 향한 치열한 의지를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루브르에서, 메트로폴리탄에서, 런던 국립 갤러리에서 그림 앞에 서는 방식이 달라질 것이다.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살았던 사람을 ‘만나는’ 경험, 그것이 이 책이 독자에게 건네는 가장 큰 선물이다. 미술을 사랑하는 애호가뿐만 아니라, 역사를 통해 오늘을 성찰하고자 하는 모든 인문학 독자들에게 『시간이 흐르는 미술관』은 캔버스라는 창을 통해 들어가는 가장 깊고 즐거운 시간 여행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