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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시대의 한양은 어떤 곳인가
한양의 지정학적 성격 한성부가 하는 일 한양의 모습 2. 한양 주변은 어떠했나 조선시대의 경기 한양의 배도 유수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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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는 고대국가 이래 여러 왕조가 흥망성쇠를 거듭하여 왔으며 이 과정에서 평양, 경주, 개성, 한양 등이 왕도로서 정치의 중심을 이루었고, 오늘날에도 그 곳에서 古都로서의 문화적 흔적이 찬연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공주, 부여, 철원, 강화 등도 한때 왕도로서의 지위를 유지한 바 있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도읍지들 중에서도 조선 시대에 한양으로 도읍이 정해진 것이 그후 역사적으로 보아 어떠한 의미가 있었느냐를 살피고자 한다.
첫째, 한양은 통일된, 통합된 민족의 수도였다. 민족의 통일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통일신라나 고려의 경우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통일신라는 분명히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을 통일하고 단일 왕조를 건설·통치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반도 북쪽에는 발해가 존재하고 있었다. 따라서 삼국통일은 영토와 인민의 통일이라는 면에서는 아쉬움을 많이 남겼다. 특히 고구려의 영토와 인민을 상당수 상실한 채 이루어진 통일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당시 경주가 통일된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대표성을 지닌 수도라고 보는 데는 문제가 있다. --- p. 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