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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짐의 기억을 되살리며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_ 달마 · 혜가 먼저 네 마음을 부숴라|그 마음을 가져와봐라|얻은 것들을 내놔라|마음의 바위|죄를 보여다오 부처의 깨달음은 오로지 부처의 것 _ 승찬 · 도신 · 홍인 부처님 마음|누가 널 붙잡더냐|네 성이 뭐꼬?|노승과 나무꾼|벼는 익었느냐 깨닫겠다는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_ 혜능 · 신회 · 혜충 · 행사 · 회양 힘으로 깨달음을 얻겠느냐|바람이냐 깃발이냐|자, 여기 극락이있다|보이십니까|허공이 아는 눈짓이라도 하더이까|옛 부처는 갔다|물병이나 갖다 주십시오|요즘 쌀값이 얼마요?|좌선만 한다고 부처가 되느냐 그는 나를 닮지 않고 나는 그를 닮지 않았네 _ 희천 · 약산 · 천연 · 도오 자네를 버리게나|설법이 말로만 하는 겐가|하늘에 뭐가 보이나|부처를 뽑는 과거|사리를 찾는 중이오| 있는 그대로 보란 말이다 네 안에서 찾으라 _ 마조 · 백장 · 남전 · 대주 · 혜장 자신을 잡는 화살|넌 뭐냐|네놈이 보물창고 아니냐|얻었으면 지켜야지|병 속에 갇힌 선비|도 닦는 법|어떤 마음으로 도를 닦습니까|부엌에서 소를 치다|허공은 이렇게 잡는 거야 마음에 갇히지 말라 _ 조주 스승을 구하러 온 사미승|빈손으로 왔다 빈 마음으로 간 사나이|밥은 먹었느냐|차나 마시게|오줌 좀 누고 오겠네|개한테 물어봐|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지금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_ 황벽 · 임제 · 위산 · 앙산 다른 일로 왔겠습니까?|제 새끼들 다 죽이겠습니다|너는 어디에 있느냐|부처님 이름 짓기|왕자의 뺨을 후려치다|스승의 뺨을 때린 제자|뺨 한 대의 법문|딱!|네 화로에 불이 있느냐|물병은 물병인가|세수나 하시지요|덫|그대는 산을 모르는구먼 겨울은 겨울처럼 살고, 여름은 여름처럼 살라 _ 운암 · 동산 · 도응 · 조산 늦으면 깊지요|초목의 법문은 초목이 듣는다|내가 곧 그다|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추위도 더위도 없게 하는 법|세상에서 가장 큰 떡|너는 무슨 경전이냐|젊은 보살 좁쌀이 어찌 우주보다 작으랴 _ 용담 · 덕산 · 암두 · 설봉 · 운문 · 법안 금강경의 대가|어둠 속의 깨침|사자 잡는 스님|문에서 들어오는 것은 가보가 아니다|늑대에게 물린 호랑이|그물을 뚫고 나간 고기|우주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항상 좋은 날이지|부처는 똥막대기다|바위를 안고 다니는 사람|부처는 바로 자네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 _ 혜공 · 범일 · 지눌 · 나옹 · 무학 원효의 똥은 내 고기다|해와 달에게 무슨 길이 필요한가|주인은 어디 있느냐|한 선비의 출가|칼 한 자루|너 죽었느냐|가장 먼저 놓은 돌은? 우리의 삶 자체가 참선이다 _ 경허 · 만공 · 혜월 · 경봉 · 성철 콧구멍 없는 소|경전으로 도배를 하다|단청불사|아직도 쌀이 무거우냐?|여기 토시와 부채가 있다|너도 없고, 나도 없으면, 누가 보느냐?|그놈의 부처는 다리병신인가?|큰스님|바람이 어디서 왔느냐?|이 풀의 이름을 지어주시오|화두는 성성하십니까?|주먹질|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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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깨달음은 오로지 부처의 것”
중국 당나라 때의 선승 회양이 좌선을 하고 있는 제자에게 다가갔다. “왜 매일같이 좌선을 하느냐?” 제자는 주저 없이 부처가 되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회양이 제자 곁에서 벽돌을 돌에 갈기 시작했다. 제자가 무엇을 하는 거냐고 묻자 회양이 대답했다. “거울을 만드는 중이다.” 제자가 다시 묻는다. “벽돌을 간다고 거울이 됩니까?” 그러자 회양이 일침을 놓았다. “좌선만 한다고 부처가 되느냐?” 선종 불교는 참선과 참구를 통해 자기에게 내재해 있는 불성(佛性)을 깨닫는 것을 본질로 한다. 때문에 선승들은 화두에 매달리고 좌선을 하면서 부처에 이르는 길을 찾는다. 하지만 회양은 그 오래된 전통과 관습을 따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제자에게 일침을 가한다. 앞서간 사람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기존의 상식과 지식에 얽매여 오히려 길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 것이다. 대부분의 깨우친 선승들은 지신만의 길을 걸어가 깨달음에 이르렀다. 달마는 9년 동안 면벽 수행을 했고, 성철은 잘 때도 눕지 않는 장좌불와를 10년 동안 행했다. 혜가는 자신의 팔을 잘라내면서까지 깨달음을 갈구했다. 하지만 깨달음을 향한 여정이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경허는 속인들도 하기 힘든 갖가지 기행을 일삼으며 도를 구했고, 천연은 추운 겨울날 목불(木佛)을 땔감으로 불을 피우면서 부처님의 사리를 찾는 중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그들에게는 각자의 길이 있었고, 자신만의 수행 방법이 있었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깨달음을 얻는 참된 길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고승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부처의 깨달음은 부처의 것! 네 안의 부처를 먼저 발견하라.” 죽은 지식과 살아 있는 지혜 선승들이 깨침의 순간에 이르는 도정에서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스승이 제자에게 수수께끼 같은 문장 하나를 던진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 같은 그 말 한 마디에 제자들은 매달린다. 화두다. 화두는 앞선 시대를 살아간 고승과 선지식(善知識)들의 지혜가 켜켜이 쌓인 유물이다. 하지만 이 유물은 비밀에 싸여 있다. 오랜 참구와 수행 끝에 비로소 화두의 의미를 읽어내는 순간, 깨달음이 찾아온다. 세상이 새롭게 열린다. 불가의 스승이 제자에게 수수께끼 같은 화두를 던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자 스스로 답을 찾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깨침은 문자나 언어로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가르쳐준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선승이 깨우친 뒤에 내뱉은 말들을 달달 외운다고 해서 그의 깨달음이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선승들이 깨달음을 얻는 과정은 우리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준다. 경전에 적혀 있는 문자가 곧 깨달음이 아니듯, 지식은 어디까지나 지식일 뿐이라는 점이다. 남이 깨우친 바를 능수능란하게 떠벌리고 써먹는 것은 흉내를 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각성(覺性)은 지식 그 이전이나 이후에 찾아온다. 너무 많이 알아서 지식과 상식에 갇힐 거라면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낫다. 깨달음을 향한 1500여 년의 역사가 말해주는 것 이 책은 44명의 고승과 선지식들이 1500여 년에 걸쳐 만들어온 ‘깨달음의 역사’를 복원하고 있다. 아울러 그들의 깨달음이 갖는 의미를 밝힌다. 우리의 역사를 가장 맛깔스럽게 엮어온 작가 박영규의 솜씨가 빛을 발한다. 또한 삶을 수행으로 받아들인 이의 해석이기에 날카롭다. 인류의 역사가 계승과 전복을 반복하면서 발전해온 것처럼, 깨달음의 역사 역시 받아들이고 거부하는 과정을 거치며 이어져왔다. 선대의 어록과 경전을 공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을 부정함으로써 선승들은 자신만의 길을 열었다. 탐하는 자는 더욱 탐하고, 무너지는 자는 속절없이 계속 무너지는 삶의 관성에 굴복해서는 새로운 가치를 획득할 수 없다. 새로운 세상은 결코 열리지 않는다. ‘깨치는 것은 곧 깨지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가슴을 울리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