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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면서
제1장. 제헌국회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I. 국가 제도 건설 1. 분단과 국가 건설 2. 국가 건설의 요건 II. 의회정치의 기원 1. 제헌국회 이전의 의회정치 2. 의회의 기능 제2장. 국가 건설 I. 헌법 제정 1. 제헌국회의 개원 2. 헌법기초위원회 3. 본회의 심의 II. 정부 구성 1. 정부조직법 2. 정부 구성 3. 사법 조항과 법원조직법 4. 국군조직법 III. 일체감 1. 국호의 결정 2. 국기, 국가, 국경일, 연호 (1) 국기와 국가 (2) 국경일과 연호 3. 인민과 국민 IV. 참여와 정통성 1. 제헌국회 선거 (1) 보통선거법 제정 (2) 5·10 선거 2. 국회의원선거법 제정 (1) 선거구의 크기와 당선자 결정 방식 (2) 피선거권 제약 (3) 특별선거구 (4) 선거운동 (5) 동점자 처리, 지역 연고 (6) 선거법 재의 3. 정치적 평등, 남녀평등 V. 경제와 분배 1. 경제조항 2. 농지개혁 제3장. 의회정치 I. 제헌국회의 구성 II. 정당정치 III. 의회정치 1. 단원제와 양원제 2. 국회법 제정 3. 교섭단체 4. 예산안 심의 5. 국정감사 IV. 대통령과 국회 1.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2. 반민특위 3. 내각제 개헌 논란 4. 평가 제4장. 결론: 제헌국회의 역사적 의미 부록 | 제헌국회 의원 명단 참고문헌 미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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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해 남쪽의 대한민국은 국가 건설 과정에서 어려움이 컸다. 안보상 위협이 되는 적대적 공산국가와의 대치, 공업이 집중된 북한 경제와의 단절, 해방 이후 환국한 인구와 월남민으로 인한 인구의 급증 등이 모두 초기 국가 건설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었다. 또한, 분단으로 인한 일체감(identity)이나 정통성과 관련된 남북 간의 정치 갈등 역시 국가 건설에 어려움을 더했다(Kim 2009: 133). 이처럼 신생국 대한민국은 국가 경계, 국가 기관, 체제에 대한 무조건적 정당성의 결여, 불충분한 사회 통합(cohesion), 국가의 근본 이슈에 대한 합의의 부재(Kim 2009: 123-124) 등으로 인해 고충을 겪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새로운 국가 수립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이나 요구는 높았지만, 국가 역량은 대단히 미흡한(Kim 2009: 124) ‘취약 국가’(이택선 2020)였다.
--- p.21 행정부 각료의 명단을 보면 한민당 출신이 눈에 많이 띈다. 김도연, 민희식, 전진한, 이인, 장택상, 윤치영, 허정 등이 한민당계 인사들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윤치영은 한민당을 탈당했고 김도연은 이 대통령과의 개인적인 친분으로 입각했다. 전진한, 민희식 등은 한민당의 비정통파였고 허정은 이승만의 추종자로 알려져 있었다. 또한, 이인과 장택상도 이미 한민당과 관계를 끊어 사실상 관련이 없는 상태였다(심지연 1987: 198). 외형상 한민당계가 여러 명 입각한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한민당이 철저하게 배제된 것이었다. 한편, 국무총리를 원했던 김성수에게 이승만은 재무장관직을 권했지만, 김성수는 이를 거절했다. --- p.126 농지개혁법은 1950년 2월에야 최종 확정되었지만,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인 헌법 제정 과정에서 이미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한다는 헌법 규정이 만들어졌다. 또 1948년 9월 30일 이승만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서도 농지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가 표출되었다. 국회에서 농지개혁법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 것이 1949년 3월 10일이었고, 첫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 1949년 4월 27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당시 사회적으로 농지개혁을 당연한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농촌에서는 지주와 소작인 간의 농지 매매가 이미 이뤄지고 있었고, 정부에서도 상당한 실무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 p.281 30인 이상으로 교섭단체를 구성하자는 주장은 소수파 의사 반영, 그리고 정당정치의 미약함이라는 현실적 이유, 그리고 충분한 토의 시간을 보장받아 전문적 지식을 발표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에 부딪혀 좌절되었다. […] 교섭단체 구성원을 20인 이상, 30인 이상 두 개의 안을 놓고 표결한 결과 재석 133, 가 67, 부 37로 20인으로 결정되었다. 그 후 “단체교섭회는 각 단체의 소속 의원수의 비율에 의하여 발언권을 지명하여 의장에게 발언을 통지할 수 있다”는 조항을 두고 논란이 일었는데, 결국 원안 그대로 통과되었다. --- pp.337-338 2년이라는 짧은 임기와 시간의 촉박함, 안보의 불안정이 계속된 상황,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 처음 겪어야 했던 미지의 영역 등 제헌국회를 둘러싼 여러 조건을 감안할 때, 이들은 ‘혁혁한 노력’ 그리고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의 서두에서 인용한 글처럼, 제헌국회 의원들은 허허벌판, 황무지에 들어가 그 땅을 갈고 개척하는 일을 해야 했다. 제헌국회는 “황무지에 나라를 만드는”(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4: 178), 곧 국가 건설의 시대적 사명을 부여받았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신생 독립국 대한민국이 국가로서 기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 p.4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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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정을 넘어 국가 건설의 주체로서 제헌국회를 다시 보다
대한민국의 토대가 이루어진 생생한 현장의 기록 대한민국의 시작을 이야기할 때 대개 헌법과 정부 수립을 떠올린다. 그러나 한 나라가 실제로 ‘국가’로 작동하려면 헌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행정과 사법과 국방의 조직을 세우고, 세금을 걷고 치안을 확립하며, 국민이 정치에 참여할 통로를 만들고, 토지와 부(富)의 분배 질서를 다시 짜야 한다. 이 방대한 작업을 2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그것도 경험 없는 신생국의 조건에서 감당한 것이 바로 제헌국회였다. 저자는 미국 비교정치학자들이 제시한 국가 건설의 다섯 가지 요건인 침투(행정력), 참여, 일체감, 정통성, 분배의 틀을 빌려 제헌국회의 성과를 체계적으로 재구성한다. 헌법 제정과 정부 구성으로 국가 제도를 세우고(침투), 보통선거와 선거법으로 정치 참여의 원리를 확립했으며(참여), 국호·국기·연호를 정해 공동체의 상징을 마련하고(일체감), 절차적 민주주의의 규범을 다졌으며(정통성), 농지개혁과 경제조항으로 분배의 기틀을 놓았다(분배)는 것이다. 이 책은 흩어져 있던 제헌국회의 업적을 이 틀 안에서 하나의 국가 건설 서사로 꿰었다. 그리고 이 책은 제헌국회를 ‘의회’로서 진지하게 평가했다. 제헌국회는 남조선과도입법의원 등 앞선 기구와 달리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로 구성된 최초의 대의기구였다. 의장단과 상임위원회 체계, 국회법과 교섭단체, 예산 심의와 국정감사 등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의회 운영의 기본 틀을 이 시기에 확립했다. 대통령과 행정부에 일방적으로 휘둘리지 않은 ‘의회 우위형’ 국회였음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체계에서 이승만 대통령조차 국회를 자주 찾아 설득하고 협조를 구해야 했다. 이 사실은 이후 대통령 우위로 굳어진 한국 정치의 현실과 비교하는 흥미로운 계기가 된다. 제헌국회 회의록의 생생한 발언과 당시 신문 기사를 풍부하게 인용해, 논쟁하고 타협하며 나라의 기틀을 세워간 사람들의 목소리를 오늘의 독자에게 들려주는 『국가의 탄생』은 대한민국의 기원을 새롭게 이해하려는 시민과 연구자 모두에게, 우리 정치 시스템의 뿌리를 향한 정확하고도 애정 어린 안내가 되어 줄 것이다. 제헌국회의 사명과 역할 해방과 분단 속에서 출발한 신생국 대한민국은 ‘국가 건설(state building)’의 과제를 안았다. 이는 국민국가 수립(nation building)과 구분된다. 침투·참여·일체감·정통성·분배라는 국가 건설의 다섯 요건에 비추어볼 때 제헌국회는 한국 의회정치의 진정한 출발점으로써 대표·입법·감시·숙의·예산·정부 구성·불만 해소라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신생국의 제도적 골격을 어떻게 세웠나? 제헌국회는 헌법 제정(개원, 헌법기초위원회, 본회의 심의)에서 시작해 정부조직법·법원조직법·국군조직법을 통한 정부 구성,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의 결정과 국기·국가·국경일·연호의 확립, ‘인민’과 ‘국민’을 둘러싼 논쟁 등 공동체의 일체감을 만드는 상징 작업을 살핀다. 또한, 보통선거법 제정과 5·10 선거, 정치적 평등과 남녀평등 등 참여와 정통성의 문제, 그리고 경제조항과 농지개혁을 통한 분배의 기틀까지, 국가의 골격을 잡아나갔다. 명실상부한 의회 이 책은 5·10 선거로 구성된 제헌국회의 인적·정치적 구성(대한독립촉성국민회·한국민주당·무소속 등 세력 분포와 여성 후보의 도전)을 분석하고, 초기 정당정치의 태동을 살핀다. 이어 단원제 채택, 국회법 제정, 교섭단체, 예산안 심의, 국정감사 등 의회 운영의 제도화 과정을 정리하고,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행사, 반민특위 활동, 내각제 개헌 논란을 통해 대통령과 국회의 관계를 짚는다. 이 책에 따르면 제헌국회는 행정부를 실질적으로 견제한 ‘의회 우위형’ 국회였다 제헌국회를 어떻게 평가할까? 안보 불안과 경제적 궁핍, 경험의 부재라는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제헌국회는 ‘혁혁한 노력’과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으며, ‘황무지에 나라를 만드는’ 국가 건설의 시대적 사명을 완수해 신생 독립국이 국가로서 기능할 토대를 놓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우리 정치 시스템의 기초를 마련한 ‘건국의 아버지들’로서 제헌국회에 대한 더 면밀한 분석과 애정 어린 재평가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