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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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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자
창연출판사 2026.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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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시인의 말 · 5

1부

무꽃 · 13
고백 · 14
저의 기도 소리 풀벌레 울음 같을지라도 · 15
주모와 남해 씨 · 16
냉이꽃 필 무렵 · 17
나무동무 · 18
도깨비바늘 · 19
은목서 꽃말 · 20
믿음 · 21
방죽 위 물냉이꽃 · 22
별미 · 23
보물과 고물 · 24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 25
섬마을에 보내는 편지 · 26

2부

치자꽃 · 29
호미가 아는 것들 · 30
옥잠화 · 31
보름 보름 사이 · 32
착각 · 33
산 · 34
어떤 자백 · 35
뜨거운 이슬 · 36
옛말 때문에 · 37
오월이라 셋째 날 · 38
어떤 투신 · 39
순례지의 천사 · 40
못 고치는 병 · 41
찔레야 · 42

3부

감사 편지 · 45
새살 돋은 그 자리에 · 46
숨겨 둔 말 · 48
추억의 맛 · 49
씨동무 못자리에서 · 50
소금의 효능 · 52
함께 평화 · 53
색다른 조미료 · 54
은인들 이름 · 55
새날 어서 오게 하소서 · 56
부담스런 미소 · 57
빛의 새길 · 58
어린 새소리가 · 59
평화비 소녀에게 · 60

4부

파친코 · 63
남은 길도 은혜롭게 · 64
유등을 타고 · 65
꽃 그림엽서 · 66
자린고비 푸념 · 67
진주성에서 · 68
꽃과 할머니 · 69
젬마가 딛고 선 이름들 · 70
되살이 · 72
뗏목다리에서 · 73
말도 안 되는 시 · 74
성광집 이야기 · 75

시집 해설

“순진무구한 전원시인” 이창하(시인·문학평론가) · 79

저자 소개 1

이영자 시인은 경상남도 함안에서 태어나 1989년 첫 시집 『초승달 연가』를 펴내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삶의 현장과 농촌의 풍경, 사람들의 일상을 따뜻하면서도 깊이 있는 시선으로 담아내며 꾸준한 작품세계를 펼쳐왔다. 경남문협 우수작품집상과 제8회 경남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며, 제1시집 『초승달 연가』, 제2시집 『개망초꽃도 시가 될 줄은』, 제3시집 『식당일기』, 제4시집 『그 여자네 집』, 제5시집 『땅심』, 제6시집 『따라 부를 수 없는 풍년가』, 제7시집 『미리 달다』, 제8시집 『무꽃』, 시선집 『씨동무 못자리』 등을 출간했다. 현재 경상남도문인
이영자 시인은 경상남도 함안에서 태어나 1989년 첫 시집 『초승달 연가』를 펴내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삶의 현장과 농촌의 풍경, 사람들의 일상을 따뜻하면서도 깊이 있는 시선으로 담아내며 꾸준한 작품세계를 펼쳐왔다. 경남문협 우수작품집상과 제8회 경남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며, 제1시집 『초승달 연가』, 제2시집 『개망초꽃도 시가 될 줄은』, 제3시집 『식당일기』, 제4시집 『그 여자네 집』, 제5시집 『땅심』, 제6시집 『따라 부를 수 없는 풍년가』, 제7시집 『미리 달다』, 제8시집 『무꽃』, 시선집 『씨동무 못자리』 등을 출간했다. 현재 경상남도문인협회, 마산문인협회, 경남시인협회, 경남아동문학회, 마산교구가톨릭문인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활발한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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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7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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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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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수/ 페이지 수
약 98쪽 ?
ISBN13
9791194987949

출판사 리뷰

[해설] 순진무구한 전원시인 이창하(시인·문학평론가)

1.

우리 고전시가의 기원은 고조선 때 곽리자고의 부인인 여옥의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가 최초의 작품이라 할 수 있고 고구려 유리왕이 그의 후비 치희를 그리워하는 내용인 “황조가(黃鳥歌)”가 뒤를 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둘은 시기적으로는 긴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인 점이 있다. 둘 다 이별한 부부간의 사랑이 주된 내용이다. 남편을 사랑하는 여인과 아내를 사랑한 왕은 신분을 초월한 인간 본연의 공통된 감정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서정을 표현하는 방법 중에서 가장 절실한 부분이 이별이라고 할 때, 이 두 작품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 고전시가의 출발점은 인간의 성정을 다룬 작품에서 비롯되었고 문학은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최고의 도구가 될 수 있었다.

이 두 작품에 대해 오늘날처럼 문학이 고도로 발달한 시대의 시각으로 본다면 다소 유치한 내용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 문학이 막 시작될 태동기의 상황임을 고려한다면 감동 이상의 충격이 되었으리라 생각해 본다. 그러므로 문학은 지금까지 인간의 심성을 다루면서 사람의 감정을 순화시키는 역할을 충분히 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동양의 철학자 공자는 “시경의 시 삼백 편은 사람의 감정에 사악함을 없애준다. (詩三百 一言以蔽之 思無邪)”라고 말하여 문학 활동을 거의 종교의 반열에 버금가게 여겼다고 볼 수 있다.

문학 특히, 시의 근원이 이러한데, 최근에는 모더니즘(modernism)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문학의 본원을 경시하고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기교를 내세우는 경향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시의 본원인 서정을 제대로 감상할 기회는 자꾸만 멀어지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이러한 경향은 독자들에게 달을 보여주고자 하는데 가리키는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바라보게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이러한 와중에 우리 지역 사회의 원로이신 이영자 시인은 오랫동안 꿋꿋하게 전통적인 서정을 고집하면서 시의 본연이라고 할 수 있는 서정을 다루는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고 있어서 주목받고 있다.

그녀의 시를 읽어보면, 한편으로는 노자의 자연사상을 감상하는가 싶다가도 다른 한편으로는 도연명의 귀거래(歸去來)를 읽는가 싶기도 하다. 그러다가 다시 오랜 신앙심으로 단련된 독실한 천주교인의 관점에서 서서, 세상의 모든 가식이나 욕심을 묻어버리고 인간 본연의 심성을 수양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이 세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마음을 가볍게 하면서 자연 귀속적이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자연이란, 세상 만물의 배경을 의미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인간의 심성에 대한 의미로서 인위적으로 때가 없는 순진무구한 상태를 말한다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시를 보면 쓸데없는 미사여구는 거의 없고 대부분 직설적인 감성을 표현하는 무 여과적인 시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평소 시인의 삶의 방식을 알 수 있게 하여서 그녀의 시를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편안해지고 시에서 말하는 동작이나 환경이 자연스럽게 머리에 그려지게 되기도 한다.

2.

이영자 시인은 오랫동안 마산에서 생활을 하시다가 수년 전 경남 산청으로 이주하게 된다. 도회지에서 생활하다가 시골에 들어오게 되면 문화적으로나 생활 방식 면에서 많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것 같은데 시인은 용케도 잘 적응하고 있다. 그러한 생활에 대해서 어떠한 방법으로 전원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지 짐작되는 시가 있는데, 다음에 인용되는 시는 그녀의 전원생활에 대한 만족도를 쉽게 확인 할 수 있다.

붉은 꽃무늬 크게 박힌 옷을 입고
밭일하는데 나비가 붙는다
나비야 나 꽃 아니야
돌아서나 했는데 다시 앉는다
나비야 너 제정신이 아니구나

(중략)

생화보다 붉은 꽃 때문에
부모님 기일에도 못 입었는데

너는 알면서 눈먼 듯 붙는구나
니 덕에 나 백일홍 기분이다

내일도 오너라 남은 이야기 하게
성광집 이야기는 끝이 없단다
- 「성광집 이야기」 부분

시인이 오래전 마산에서 식당을 운영한 적이 있었는데, 성광집은 그 당시 식당의 상호인 듯하다. 비록 식당은 오래전에 접었지만, 그 당호는 귀촌한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시인 자신으로 귀촌 생활을 통해 겪게 되는 재미있는 일들이 수없이 많다는 의미로 시골 생활하는 하루하루가 새롭고 만족스러워서 그 모든 이야기를 짧은 시간에 다할 수 없어 끝없이 이어갈 수 있다고 한다.

「성광집 이야기」를 감상하노라면 곧바로 ‘물아일체(物我一體)’라는 말이 떠오른다. 나비가 큼직한 꽃무늬가 그려진 옷을 입고 밭일하고 있는 시인에게 찾아온다. 이를 두고 시인은 자신을 꽃의 실물로 착각한 나비의 오인(誤認)을 두고 나비에게 “너 제정신이 아니구나”라고 한다. 시인은 자기 일이라 가볍게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비의 입장에서 본다면, 울긋불긋한 꽃무늬 옷을 입은 채 밭일하면서 오랫동안 한 곳에서 쪼그려 앉아 있는 시인을 보게 된다면 당연히 그곳에 커다란 꽃이 피어있는 것으로 오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나비가 속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시인에게는 기심(機心)이 없다는 것일 것이다.

기심이라는 말의 의미부터 알아보자. 옛날에 한 어부가 살았다. 그는 고기잡이하면서 해오라기와 친하게 되어서 해오라기들이 가까이 와서 놀고 어깨에 올라앉기까지 했다. 그는 이러한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고, 아내는 그 해오라기 한 마리를 잡아 오라고 한다. 이튿날 어부는 그렇게 마음을 먹고 강가에 나갔더니 그토록 많이 날아오던 해오라기가 한 마리도 가까이 날아오질 않았다. 이것은 해오라기가 어부로부터 자신을 잡으려는 기심(機心)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장자(莊子)에 등장하는 이 이야기는 이영자 시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상황이 아닐까. 독자들은 평소 시인이 기심이라고는 전혀 없었기에 나비들이 찾아왔던 것이리라 생각할 수 있다. 이처럼 시인은 몸가짐마저 ‘물아일체’의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잔디마당 아끼는 아들 마음
알리없는 토끼풀
상으로 번지고 번지고
그것이 아들 눈엔 눈엣가시고

내가 찾는 네잎클로버는 구석구석 숨었는데
토끼풀 모조리 잡으리라
아들이 왕소금 뿌린 날

풀잎보다 내 마음이 아려서
밤중에 몰래 나가 풀잎의 소금기를 씻어냈다
(하략)
- 「소금의 효능」 부분

때때로 사람들은 자연을 사랑한다는 말을 함부로 한다. 하지만, 어디서 이렇듯 이름 없는 풀 한 포기 그것도 마당 구석에 사랑하는 아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잡초까지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사실은 필자도 오래전부터 전원생활을 해 오고 있지만, 마당에 돋아나는 잡초를 싫어하여 함부로 뽑아내고 있다. “토끼풀 모조리 잡으리라 / 아들이 왕소금 뿌린 날 / 풀잎보다 내 마음이 아려서 / 밤중에 몰래 나가 풀잎의 소금기를 씻어냈다” 풀잎이 상하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린다는 시인의 마음 그래서 몰래 풀잎 가에 있는 소금을 씻어내었다는 이러한 마음이 진정 시인의 마음이요 자연 귀속적인 삶이 아닐까. 이 사건을 두고 일방적으로 ‘완전 범죄’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완전 자연사랑’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필자는 인용하는 시를 읽는 순간 “자연을 사랑한다.”라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어디 이뿐이랴. 다음 시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시인의 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전략)
구절초 필 무렵부터
꿀 따러 간 벌 나비들이 돌아오지 않아서
울타리 밖으로 마중 나가는데
왕거미 태연하게 나의 벗을 묶어놓고
식사에 차에 즐기고 있으니 당장 쳐들어가려다
밥 먹을 때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는
옛말이 생각나서
내일로 미룬다 거미집 철거를
- 「옛말 때문에」 부분

시인은 생활의 일부라 할 수 있는, 아니 어쩌면 생계 수입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꿀의 채취를 기다리고 있는 입장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왕거미가 꿀을 날라야 할 나비들을 잡아먹고 있단다. 당연히 못된 왕거미를 잡아내어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 나의 벗인 나비를 잡아먹고 있는 왕거미를 두고 “밥 먹을 때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는 / 옛말이 생각나서”라고 하면서 거미집 철거를 미룬다고 한다. 이처럼 시인은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자연과 생명을 사랑하는 인물이다. 이러한 모습에서 시인으로서의 진정한 의식과 삶의 자세를 통해 생명 존중 나아가서 자연 사랑의 정신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자꾸만 다원화되어 가고 있는 이 사회를 두고 사람들은 복잡하고 다양하게 얽히고설킨 형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영자 시인은 그런 사고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녀의 삶은 미니멀리즘 (minimalism)적이다. 즉, 소박하고 내 주변에 남겨진 물건들이나 사물의 존재적 가치가 어떤 것이냐에 따를 뿐 필요 이상의 욕심이나 집착을 가지지 않고 최소한의 가치성을 추구하려는 심성을 지키고 있다. 이러한 의지는 시인이 자연 속에서 살아가면서 물아일체로 돌아가려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해 본다. 당연히 많이 채취하면 할수록 가계 수입이 늘 수 있다는 세속적인 집착을 버리고 오로지 자연과 함께 생활하겠다는 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는 셈이다. 인용 시를 보면, 앞서 언급했듯 기심(機心)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녀는 그야말로 순진무구한 상태의 삶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영자 시인이 이러한 의식을 가지게 된 것은 종교적인 힘이 큰 것 같은데 그녀는 오래전부터 천주교 신앙생활을 해 온 것으로 짐작된다.

온 세상에 역병이 돌아
혼돈으로 모든 질서 무너지고 있습니다
아픈 이의 고통을 살펴 주님께 치유의 은총 갈구하는
성모님 십자가의 신비를 부탁드립니다
갑갑한 마스크 벗고 답답한 가슴을 열고
주님 찬미 우렁찬 그날이 어서 오게 하소서

성모성월 좋은 날에
꽃다발 하나 없이 무거운 기도로 매달리는
당신 자녀 용서하소서
당신은 구원자의 어머니시며 우리의 어머니시니
아픈 자녀 구원을 하느님께 전구하소서
병석에 신음하는 이에게 그들 돌보는 의료진에게
치유와 힘의 은총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 「새날 어서 오게 하소서」 전문

코로나19로 세상이 한창 어수선할 때 쓴 것으로 짐작되는 이 시는 한 편의 기도문을 연상하게 하는데, 노시인이 가지고 있는 의식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세상의 불행이 하루빨리 치유되기를 희망하는 시인의 간절한 기도는 그대로 시심으로 전환되어 독자의 서정에 감동을 주는 상황이다.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고 주장했던 교부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Saint Thomas Aquinas)는 모든 철학은 신앙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시녀란 꼭 주종관계로서의 시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신학의 이론을 정립해 나가는 일종의 동반자요 지침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아퀴나스의 주장이고 이영자 시인의 경우에는 모든 문학 특히 그녀에 대한 “시는 신학의 시녀”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인용된 시뿐 아니라, 그녀의 작품집을 보게 되면 다수의 시에서 간증(干證)과 같은 성격을 띠고 있는데, 이것은 오랫동안 쌓여온 신앙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당연히 내용적으로 ‘내’가 아닌 ‘세상’의 치유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기도를 통해 시인이나 신앙인으로서의 인생관이나 신앙에 대한 깊이를 더욱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다.

황마리 벨라뎃다 수녀님
수녀님 뵌 적은 없지만 자매 카타리나 수필집
『로마의 단감나무』에 등장했기에
먼 곳의 수녀님 자주 그리워했습니다
이제야 고국으로 왔는데
몹시 아파 왔다는 소식에 놀라
주님께 매달립니다
주님 사랑 믿기에 치유의 은총 더욱 믿기에
그날로 아기돼지 한 마리 키웁니다
반달쯤 자라면 수녀님 보신용으로 드리려고
반달이라 이름 짓고요
약이 되라 산야초 먹이고
꽃도 풀도 없는 골방에선 자비하신 주님께
자비의 기도 올립니다. 반달이 와 둘이서
“주님 저희의 기도가 당신 마음에 드시는 때에
당신께 다다르게 하소서”
마침 가을이라 잘 웃는 반달이를 데리고
쑥부쟁이 향기 동행합니다
수녀님 쾌유를 위하여 빨리 달립니다
- 「저의 기도소리 풀벌레 울음 같을지라도」 전문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수녀님, 먼 이국땅에서 오랫동안 전도(傳導)를 하다가 몸이 상해 병들었다는 수녀님의 치유를 위해 산야초를 먹이면서 키운다는 돼지 이야기이다. ‘잘 웃는 돼지 반달이’를 수녀님의 보신을 위해 키운다는 부분에서 다소 웃음이 간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은 무심히 넘겨도 될 부분인 듯싶지만, 깊은 신앙심이 쌓여있지 않으면 생각하기 어려운 그야말로 평소 신앙심이 충분히 몸에 밴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전하는 말에 의하면 ‘반달이’는 실제 돼지가 아니라, 돼지 저금통장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도 반달이에게 보신용이니, 산야초를 먹인다느니, 반달이를 데리고 쑥부쟁이 향기를 동행한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것은 시인의 최근 생활 동향이 온통 수녀님의 건강 회복에만 정신을 쏟고 있다는 이야기다. 즉, 산야초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얻은 수업은 모두 반달이라는 통장을 통해 모으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그 정성이 대단하지 않은가, 아마, 이러한 선물을 받으실 수녀님 건강은 저절로 완쾌되리라 생각해 본다. 이러한 이야기는 시인의 심성과 연계된 신앙심을 읽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시에서 전반적으로 미사여구나 메타포(metaphor)라고는 거의 없다. 아니, 여기에 무슨 기교나 미사여구가 필요하겠는가. 혹자는 이러한 시를 두고 시적 품격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간증(干證)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신(주님)께 진심을 보여주고 신앙인으로서의 절실한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 그 목적이 아닐까. 그렇게 신께 전달하는 내용을 가지고 지나치게 메타포를 추구하는 것은 옳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렇듯 절실한 마음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이렇듯 인용한 시와 비슷한 내용은 시집 곳곳에서 나타나는데, 이러한 작품을 통해서 노시인의 짙은 신앙심을 충분히 확인할 만하다.

시인의 연세는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추측하건대, 여든은 분명 넘어서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오랫동안 쌓여온 삶의 이력을 통해 볼 때, 그녀는 그야말로 종교인 이상으로 삶에 대해서 충분히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사는 것이 어렵다 싶다는 생각보다는 현실에 만족할 수 있는 안빈낙도(安貧樂道)라는 단순한 진리를 생각해 본다면 분명 이영자 시인의 모습이 보다 분명하게 떠오를 것 같다. 다음의 시를 통해서 그녀가 가지고 있는 평소의 생활 가치관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사방 널린 게 꽃인데
비싼 꽃을 왜 샀노?
꽃 사 오는 며느리에게
퉁명스런 시어미 말투

아들 생일에 한 아름 꽃을 받고서
또 또 사방에 널린 게~ 하다가
뒷말 멈춘다
리본에 적힌 글귀 때문이다

‘멋진 아들 낳아주셔서 사랑하고 고맙습니다’

마음에 넘치는 말 말로써 다 못하여
꽃다발에 새겼는가
나 사랑의 미끼 덥석 받아 물었으니
꼼짝없이 허물 벗자 자린고비 허물을
저 달이 이울기 전에 달님 칭찬받으며
- 「자린고비의 푸념」 전문

인용한 시를 보면 앞서 언급했던 미니멀리즘 (minimalism)적인 시인의 자세를 읽을 수 있으면서도 고부간에만 주고받을 수 있는 소소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다. “사람 사는 것이 별것인가?”라고 한 앞의 물음이 있다면, 그것에 대한 즉답인 것처럼 “사람 사는 것이 별것 아니”라 가족 간의 사랑을 나눌 수 있으면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시의 내용으로 보면 비록 물질적으로는 검소한 생활을 한다지만, 이 얼마나 풍족한 생활이 아니겠는가. 자린고비의 풍족한 생활을 통해 가족 간의 아름답고 사랑으로 넘쳐나는 부분을 충분히 읽을 수 있는데, 이러한 부분은 세인들로부터 부러움을 싸고도 남을 일이 아닐까. 틀림없이 세속적인 삶을 누리고 있는 시인이지만 성세(聖世)적인 삶을 구가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비싼 꽃과 사방 널린 꽃 사이에서 독자들은 분명 가족 간의 사랑이 무엇 것인지 어디에 있는지 충분히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세상은 점차 물질만능주의로 빠져들고 있는데 시인은 여전히 세속적인 물질보다는 가족 간의 사랑이 우선이다. 그래서일까, 시인은 비록 생물학적인 나이는 점차 늘어나도 감성적 연령은 아직도 청춘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 천상 전원에 묻혀 사는 ‘젊은 노시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기 마련이다. 때때로 그녀는 옛 정인에 대한 그리움도 잊지 않고 있다.

흰 저고리 입고 백동 비녀 꽂고
일찍 하늘나라 가신 우리 어머니
팔월이면 오신다 꽃길 꽃길로

장마에 무더위에 어찌 사느냐며
하늘 땅 사잇길 다리 밟고 오신다
한 송이 흰 꽃으로
- 「옥잠화」 전문

세상에 근본 없는 물상이 어디 있을까, 예전에 시인에게도 어머니가 있었고 그 어머니의 기일이 팔월이다. 남들은 피서철이라며 호들갑 떨기도 하지만, 시인은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앓이를 다스리는 기간이다. 한순간, 한순간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고는 하지만 그러다가 문득 생각나는 근본은 누구라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머니는 그러한 존재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어머니 앞에서는 한없이 어린 아이가 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더욱 그리워지는 것이 어머니다. 인용된 시를 통해서 노시인 역시 같은 감정을 숨길 수 없는 가냘픈 인간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인용된 시를 통해 시인이 아닌 인간 이영자의 근원에 대한 그리움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세상 살면서 무엇보다도 그리워지는 것은 배우자다. 남편과는 이미 사별한 지 30년 넘은 넘었건만 시인에게는 「말도 안 되는 시」에서 여전히 부군은 주변에 있는 듯 그립고 허전함을 잊을 수 없단다. 독감이 걸린 시인은 “남편에게 전화했다 / 나 지금 죽을 것 같다고” “편지를 보내”기도 하지만, “저세상에 있는 남편을 / 이 세상에서 찾는”다면서 부군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표현한다. 사별한 지 이미 오래되었지만, 부부간의 믿음과 사랑은 아직도 애틋하다.

매사에 서툰 아내에게 남편이 별명을 달아 주더군요
또덕씨(바보)!
별명이 마음에 들지 않아 토라진 날
저녁밥 지으며 밥을 태우자 별명을 고치더군요
또선생!
그날부터 시댁에서도 처가에 가서도
또선생 또선생 불러대니 영문 모르는 오빠는
여동생 시집 잘 갔다고
친정에 갈 적마다 씨암탉 잡아 주데요
아득한 그날 반성하며
밥상 한 번 제대로 차리고 싶은데
남편이 먼저 하늘나라 가 버렸어요
꿀맛 같은 천상 살이 서른 해 넘게 하고 있는데
요담에 젬마가 찾아가면
알아보기나 할런지 모르겠어요
- 「젬마가 딛고 선 이름들」 부분

젬마는 이영자 시인의 세례명이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시인 자신의 이야기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으며, ‘젬마가 딛고 선 이름’이라고 한다는 것은 시인 주변에서 있거나 있었던 인상 깊은 인물들을 소개하는 부분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아무래도 시인에게 가장 영향이 컸던 인물은 단연코 부부 사이였던 부군이 된다.

내용으로 보면 서툰 신혼 시절 남편은 늘 자신의 실수를 묻어두고 오히려 사랑으로 대해주었던 기억이 생생하여 여전히 그립다는 내용이다. 그동안의 실수를 만회해 보고 싶지만, 이미 고인이 된 지 오래된 지금은 그리움만 쌓인다는 이야기를 통해 끝없는 부부의 정을 확인할 수 있다.

사별한 지 오래되었지만, 부군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은 그녀의 다른 시에도 잘 나타난다. 시인은 생계 수단을 위해 식당을 운영했지만, 술집으로 오인하여 원근에서 찾아오는 객꾼이 “밥뚜껑은 열지도 않고 소주잔만 기울이다 / 걱정하며 돌아보는 주인에게 잔을 건네는데 / 우야노 아직 술을 배우지 못해서 - / 그러면 부어라도 주세요 딱 한 잔만 -/ 우야노 우야노 붓는 법도 배우지 못해서 -”하면서 술 시중을 정중하게 거절하게 된다. 이러한 삶은 비록 생활은 어렵지만 이미 오래전에 고인이 된 부군에 대한 도리를 지키는 자세로 볼 수 있다. 그야말로 그리움이나 사랑이라는 말이 젊은이들만의 소유라고 하기에 무색할 정도다. 시인은 종교와 함께 이러한 애틋한 감성 역시 시를 쓰는데 많은 자양분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

3.

앞서 먼 옛날 “공무도하가”나 “황조가”를 언급한 바가 있다. 이 두 시가는 분명 사랑을 바탕으로 한 애정이 주제가 되지만 그 사랑이 난삽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숭고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철학자 공자가 말한 “삶을 즐기되 전혀 음탕하지 않다.(樂而不淫)”라는 말과 딱 어울리는 내용이 아닐까.

이영자 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연에 대한 사랑을 비롯한 가족에 대한 사랑 신앙의 대상인 절대자에 대한 사랑 그리고 고인에 대한 그리움 등 이영자 시인의 시에서 말하는 사랑에는 참으로 많은 종류가 있다. 시를 통해 그녀의 의식 세계를 살펴보면 그녀의 생활 주변이나 내면에는 온통 이러한 아가페(agap?)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은 그녀의 심성을 순진무구하게 할 뿐 아니라, 신앙심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자양분이 되어 그녀의 시속에 그대로 소화해 내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삶이 시이고 시가 곧 삶이 되는 셈이다.

이상의 사실을 정리해 보면, 이영자 시인의 시론을 한마디로 정의를 내리면 크로노토프(chronotope) 적이라 하겠다. 크로노토프는 문화와 예술을 아우르는 특별한 시공간을 의미하는 말로 모든 문화적 예술적인 것들이 전체적으로 융합된 시공간(視空間)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영자 시인의 크로노토프에서는 생활과 문학과 신앙으로 연결된 특별한 공간으로 볼 수 있는데, 그 특별한 존재인 것이 그리움이고 신앙이며 삶이고 예술이란 논리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융합한 것이 시(詩)인 것이다.

인간의 아름다운 감정을 시로 잘 표현할 수 있는 이영자 시인의 경우를 통해 앞서 언급했듯 “시는 마음속에 있는 사악한 감정을 없애게 하는 데 있다.” 한 공자의 말처럼 독자들은 이영자의 시를 감상하게 되면 저절로 진실로 마음에 힐링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시인의 말

여덟 번째 시집 이름을 지으러 밭으로 갔습니다
그들이 들려준 것을 받아 적었으니
혼자 결정하기 어려웠어요
묵정밭으로 할까
묵정밭 새 이랑으로 할까
대답 대신 내놓는 무꽃을 보고
이것으로 정했습니다
기후 변화로 아픈 지구 생각에
한 겹 포장 없이 드립니다 무꽃다발

2024년 씨동무 못자리에서
이영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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