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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암·7
진정한 무소유·37 함석헌과 등불·56 거울 사연·64 스님, 한 말씀만 써주세요·69 초콜릿 하나 드릴까요?·81 수녀의 출가·90 너의 발을 씻어주마·98 3장 불속의 꽃이 되어인과·103 어머니·108 미소 지으며 가노라·112 자야의 사랑·118 텅 빈 충만·134 수류산방·138 연못에 연꽃이 없더라·161 해탈의 해방구·183 연꽃, 드디어 피다·190 정년이 없다·195 올챙이의 항변·199 병마·203 이제 돌아가노라·207 세상과의 이별·223 불속에 피는 꽃·227 에필로그·233 법정 스님 연보·2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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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야라는 여인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대원각 요정의 주인이었다. 천재 시인 백석과 사랑하다 헤어진 뒤 곡절 많게 살아온 여인은, 어느 날 《무소유》라는 글을 읽고 그 글을 쓴 스님에게 대원각 요정을 조건 없이 내놓겠다고 했다. 대지가 무려 7천 평이나 되는 엄청난 재산이었다.
--- p.16 늙은 승이 물었다. “속가의 이름이 재철이라고 했느냐?” “예.” 늙은 승이 지필묵을 당기더니 흰 화선지에 무슨 글인가를 썼다. 재철이 내려다보니 ‘법정(法頂)’이란 글자였다. “네 법명이니라. 세상 만물의 이치가 부처의 법에 있나니 그 정수리를 틀어쥔다면 바로 부처가 될 수 있으리라.” “법정……!” 재철은 낮게 부르짖었다. 기분이 훨훨 날아갈 듯했다. --- p.81 효봉스님이 일갈했다. “수행자는 탐욕을 털어내는데 그 본분이 있는 것이야. 무엇에 욕심을 부린다면 수행자라 할 수 있겠느냐.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본래 네 것이요, 또한 무(無)한 것이라…….” 그렇게 알 길 없는 말로 제자들의 기를 꺾어놓았다. 자연히 그의 무소유 정신은 제자들의 뇌리에 박히게 되었고, 훗날 법정 스님이 수필집에 ‘무소유’라는 제목을 붙일 정도였다. 스승의 무소유 정신이 무의식중에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효봉 스님의 무소유 정신은 상수 제자 구산에게 먼저 전해졌다. 법정보다 구산이 먼저 축발하고 효봉 스님을 모셨기 때문이다. --- p.94 방문이 벌컥 열리며 스승이 들이닥쳤다. “네놈이 글을 쓰고 있다고?” 스승이 노트를 집어 보더니, 어이가 없는 듯 입을 벌렸다. “이놈, 여기가 사가 방이냐. 여기는 부처를 공부하는 승방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냐?” 법정은 할 말이 없었다. “내 뭐라고 했느냐? 속가의 학문은 필요가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오히려 네놈이 배운 알음알이를 몰아내지 않고는 불교의 본의를 깨칠 수 없다고 했거늘. 그런데 또 속가의 책을 들고 앉아 있다 못해 글을 써. 네놈이 정신이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여봐라, 이놈의 소지품을 뒤져라.” --- p.103 어느 날 법정 사미가 쌀을 씻다가 몇 알 흘리자 수챗구멍에 알알이 박힌 쌀알을 한 알도 남기지 않고 주워 먹게 했다. 등산객이나 신도들이 가끔 올라와 밥찌꺼기를 수채에 버리고 가면 그릇과 젓가락을 가져오게 하여 자신이 모두 건져 먹었다. 촛불의 촛농조차 마음대로 버리지 못했다. 그것을 모아 다시 써야 했다. 하룻밤에 성냥 한 개비 이상은 쓸 수 없었다. 첫 불을 일으키면 초에 붙인 뒤 재빨리 돌아가며 붙여야 했다. 그 불은 잠자리에 들 때까지 켜져 있어야 했고, 그러면 다시 성냥을 쓸 일이 없었다. --- p.127 성철 스님은 법정이 보는 앞에서 대필묵을 휘둘러댔다.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풍경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래서 물었다. “스님, 스님이 지금 쓰시는 글은 문자가 아닙니까?” 성철 스님은 눈썹도 까딱하지 않았다. 그대로 대필을 휘두르다가 불쑥 한마디 내뱉었다. “무방(無方)이다.” “무방?” 법정은 자신도 모르게 되뇌었다. 그제야 성철 스님이 시선을 들어 법정을 쏘아보았다. “그 이치를 알겠느냐?” ‘무방’이라면 모양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모양이 있으되 모양이 없는 세계라는 뜻이다. --- p.140 미소 어느 해던가 욕계 나그네들이 산사의 가을을 찾아왔을 때 구름처럼 피어오른 코스모스를 보고 그들은 때 묻은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이 한때를 위한 오랜 기다림의 가녀로운 보람을 무참히 꺾어버리는 손이 있었다 앞을 다투는 거친 발길이 있었다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지니지 못하는 어둡고 비뚤어진 인정들…… 산그늘도 내리기를 머뭇대던 그러한 어느 날 나는 안타까와하는 코스모스의 눈매를 보고 마음 같은 표지를 써붙여 놓았다. 《대한불교》1964년 9월 27일 (법정 스님 등단작) 이 시가 덜컥 붙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때 선에 든 사람이 셋이었는데, 첫째로 실렸다. 아, 이제 시인이 되었구나. 법정은 자신의 희열을 못 이겨 산으로 내달렸다.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때 같이 뽑힌 이들이 시 〈불상〉을 쓴 석성덕, 〈이 눈물을〉이라는 시를 쓴 김원각이었다. --- p.196 효봉 스님이 가시고 1년 후인 1967년, 법정은 새롭게 시작한다는 각오로 ‘동국역경원’ 개설에 참여했다. 부처님의 말씀을 빨래판으로 두지 않으려면 어려운 한문투성이의 글을 쉬운 언어로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법정은 역경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계속 글을 썼다. 타악기를 두드리듯 그동안 잊고 있던 시어가 터져 나왔다. 이상한 현상이었다. 축복처럼 머릿속에서 마구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 p.2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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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의 출가기와 수행과정을 생생하게 그린 소설!
은사 효봉스님과 사형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기 수행으로 글쓰기를 놓치지 않았던 고독한 수행자. 법정 스님의 손상좌이며 추천사를 쓴 원경스님과 미황사 전 주지이며 승가대학교 교수인 금강스님, 그리고 편집자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눈시울 연신 닦았다고 한다. 그만큼 소설 속의 이야기들은 마음의 울림이 컸다. 글쓰기는 수행에 방해가 된다는 은사 효봉스님의 혹독한 질타 속에서 그의 글쓰기는 고독한 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무도 몰래 문단에 등단한다. 이 소설 속에는 법정 스님의 등단작 〈미소〉가 실려있다. 저자의 말 너는 네 세상 어디에 있느냐? 너에게 주어진 몇몇 해가 지나고 몇몇 날이 지났는데 너는 네 세상 어디쯤에 와 있느냐? (오스트리아 철학자 마르틴 부버가 《인간의 길》에서 한 말로, 법정 스님이 인용하여 거듭 강조하신 말씀) 법정 스님에 관한 한 줄의 자료를 찾아 천 리를 마다하지 않았고, 수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이제 와 생각해봐도 그 과정에서 그분이 쓴 시와 산문을 발굴해낸 것은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한 인간의 행로를 되짚어 볼 수 있었다는 것이 크나큰 행운이었다. 색이 바랜 신문지 속에 박여 있는 그의 글은 매우 순수했고 아름다웠다. 어느 날 그분이 내게 와 물었다. “나는 모두 버렸는데 왜 나를 가지려 하는가.” 내가 대답했다. “스님은 왜 살아 중생을 가지셨습니까? 왜 그들의 마음을 훔치고, 그들의 가슴속에 들어앉으셨습니까? 그래서 거두어 간 것이 아닌가? 그 거두어 감의 세계를 바로 쓰려는 것입니다.”결국 이런 모양새를 알고 있었지만, 후회는 없다. 무서울 것도 없다. 나는 그를 그렸고, 그의 전설은 이제 바람이 되어 흩어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