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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근대 제국주의 질서 속에서 태어난 개혁의 씨앗
1.동남아시아의 근대 제국주의 국제법과 시암의 개혁 조선과의 비교 (김봉철) Part 2. 두 차례의 유럽 방문과 근대화 개혁의 구상 1.출라롱콘 대왕의 유럽 방문과 시암 근대화 및 국제관계 구축 (이하얀) 2.라마 5세 유럽 순방의 입구와 출구 이탈리아 (박문정) 3.출라롱콘 시대 시암의 균형외교와 전략적 근대화 - 영국·프랑스와의 관계 및 유럽 방문의 영향 (최정애) 4.출라롱콘 왕의 노르웨이 여행과 시암의 근대화 (홍재웅) Part 3. 근대 국가로서 제도 및 사회 개혁의 추진 1.출라롱콘 대왕 시대 시암의 인프라 개발과 국가 근대화 (옹지인) 2.지도·법·의례와 타이니스의 표준화 (이채문) 3.출라롱콘 대왕과 태국 근대 법치의 탄생 (이준표) 4.라마 5세 시기 위생국 설립과 방콕의 도시 근대화 (껫사라펀 한 개우) Part 4. 근대 국가로서 외교의 변화 1. 출라롱콘 시대의 시암과 영국령 말라야(김유미) 2. 19세기 영국령 인도와 시암의 주권 정치(박종호) 3. 전통적 천하질서에서 근대 국제질서로-아편전쟁 전후 청-시암 관계의 변동 (이재승) 4. 출라롱콘과 러시아: 제국주의 시대, 시암을 지킨 북방 외교 (이은경) Part 5.개혁과 근대화에 대한 평가 1. 출라롱콘 대왕의 생애와 평가(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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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는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폭력과 불평등한 권력에 기반한 질서를 만들었다. 근대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제국주의 강대국들은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아시아를 포함한 여러 지역으로 진출하며 식민지 지배를 확대하였고, 이는 많은 사회에 깊은 상처와 단절을 남겼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시아는 종종 외부 세력에 의해 무기력하게 식민화된 공간으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실제 역사 속에서는 다양한 대응과 선택이 존재하였다. 일부 국가는 외부 압력 속에서도 저항과 수용, 협상과 조정을 병행하며 자국의 생존과 변화를 동시에 모색하였다. 이 책은 제국주의를 미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구조적 제약 속에서 나타난 다양한 대응과 전략, 그리고 그 결과를 입체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제국주의 시대를 단순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아니라, 선택과 가능성이 교차한 복합적 역사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 책의 주된 내용인 태국의 사례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잘 보여준다. 19세기 동남아시아 지역의 대부분 국가가 유럽식 제국주의 세력의 식민지로 편입되는 상황 속에서도, 태국(당시 시암)은 내부 개혁과 외교 전략을 결합하여 독립을 유지하였다. 이 시기에 시암의 군주였던 출라롱콘 대왕은 행정, 법제, 교육, 인프라 등 전반에 걸친 근대화 개혁을 추진하는 한편,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는 외교 전략으로 외부 압력에 유연하게 대응하였다. 그는 단순히 여러 상황에 대응한 군주가 아니라, 제약된 조건 속에서도 국가의 방향을 주도적으로 설계한 지도자였다. 이러한 태국의 경험은 아시아가 결코 수동적인 대상에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주며, 오늘날에도 국가의 자율성과 전략적 선택, 그리고 리더십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이 책은 제국주의 국제질서의 형성과 그 속에서 태국이 직면한 역사적 환경을 출발점으로 삼아, 개혁의 리더인 출라롱콘 대왕의 유럽 방문을 계기로 형성된 근대화 구상과 그 전개 과정을 살펴본다. 또한 이 책은 그가 주도한 행정, 법제, 인프라, 교육 등 다양한 제도적 개혁을 통해서 시암이 근대 국가를 구축해 가는 과정을 분석하고, 이러한 태국의 경험을 다른 지역과의 비교 속에서 조명함으로써 아시아 근대화의 다양한 경로를 드러낸다. 나아가 이 책은 출라롱콘 대왕의 생애와 통치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며 아시아의 개혁 군주로서 그의 삶과 업적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평가한다. 이러한 이 책의 흐름은 독자들이 태국이라는 개별 사례에 대한 이해를 넘어, 제국주의 시대의 구조와 그 속에서 이루어진 아시아 국가의 전략적 선택을 함께 조망할 수 있도록 한다. 한국태국학회는 2025년 이후 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과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모색하며 다양한 연구를 수행해 왔다. 그중에서도 제국주의는 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 근대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등 여러 분야의 변화를 아우르는 핵심 주제였으며, 연구자들은 이를 통해 학문적 탐구를 넘어 사회적 의미를 확장하고자 하였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2025년부터 여러 학술대회와 연구 활동을 통해 축적된 성과를 바탕으로 하였으며, 학술 연구를 일반 독자와 공유하려는 노력으로 여러 차례 재검토하며 만들어낸 결실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 나아가 국제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한국 사회의 태국 연구자들 그리고 한국태국학회가 존재하는 이유라는 인식에서 이 책의 기획이 시작되었다. 따라서 이 책의 저자들은 최대한 어려운 전문용어를 사용하기보다는,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고 가깝게 느끼도록 하려고 노력하였다. 예를 들어, 이 책은 주인공인 ‘출라롱콘’ 대왕을 원어에 가까운 ‘쭐라롱컨’, ‘출라롱컨’, ‘쭐랄롱껀’ 등의 표현보다는 비교적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인식되는 ’출라롱콘‘으로 통일하여 표기하였다. 일반 독자들께서는 이 책을 통하여 단순히 잘 알려지지 않은 태국의 근대화와 개혁의 이야기를 수월하게 이해하시면서, 당시 아시아의 상황과 변화의 노력이 여러 각도에서 시도되어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셨으면 한다. 이 책은 일반 독자들이 출라롱콘 대왕이라는 개혁 군주의 삶을 통해서 태국과 아시아의 근대역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수월하게 이해하도록 하는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또한 이 책은 당시 아시아 지역에 개혁과 근대화를 이끌었던 리더가 있었다는 점을 부각하여, 아시아가 식민제국주의에 의한 소극적 대응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이러한 기획 의도를 반영하여,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구성하였다. 제1부는 ‘근대 제국주의 질서 속에서 태어난 개혁의 씨앗’이라는 제목의 도입부로, 독자들에게 이 책의 역사적·물리적 배경을 소개하고자 하였다. ‘동남아시아의 근대 제국주의 국제법과 시암 개혁의 배경: 조선과의 비교’는, 동남아시아에서 유럽 제국주의가 확장되면서 형성된 국제법 질서와 시암의 개혁을 당시 한반도의 조선과 비교하였다. 15세기 이후 유럽 세력은 해상 진출을 통해 동남아시아 무역망을 장악하고, 식민지적 권력관계를 법적으로 고정하는 수단으로 조약을 체결하면서 항로와 경제를 통제하였다. 이들 식민제국주의 세력은 군사력과 상업 자본을 결합하여 조약 체계를 구축하였는데, 특히 동인도회사와 같은 기업도 국제법적 행위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9세기에는 불평등조약이 확대되며 치외법권과 관세 제한 등이 제도화되었는데, 결과적으로 동남아시아 국제질서는 유럽 제국들의 경쟁과 조약 체계에 의해 구조적으로 재편되었다. 시암은 이러한 압박 속에서도 일부 주권을 양보하면서 형식적 독립을 유지하는 전략을 취하였다. 제2부는 ‘두 차례의 유럽 방문과 근대화 개혁의 구상’은, 출라롱콘 대왕의 유럽 방문 이야기를 서술하였다. 두 번의 유럽 방문은 그에게 시암의개혁과 근대화, 그리고 주권 보호라는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지와 방향성을 제공하였다. 첫 글인 1장은 ‘출라롱콘 대왕의 유럽 방문과 시암 근대화 및 국제관계 구축’은, 1897년 출라롱콘 대왕의 유럽 순방이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국가 생존을 위한 정치적·외교적 행위였다는 평가에서 출발한다. 이 글은 두 번의 유럽 방문이 오랫동안 지속된 시암의 근대화 전략을 위한 핵심적인 출발점이자 평가를 위한 기회였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출라롱콘 대왕은 이 방문을 통하여 항만, 무역, 행정, 산업 체계를 직접 관찰하며 근대 국가 운영 방식을 학습하였고, 유럽의 다양한 국가를 방문하면서 각국의 제도를 비교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이러한 경험에서 시암은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하나의 모델만 따른 것이 아니라, 여러 모델에서 분야별로 자국의 필요에 따라 선택적인 수용을 할 수 있었다. 2장인 ‘라마 5세 유럽 순방의 입구와 출구 이탈리아‘는, 시암의 근대화와 이탈리아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19세기 말 시암은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외교적 위기에 직면하였는데, 1893년 빡남 사건은 시암의 군사적 한계를 드러내고 영토 상실로 이어졌다. 이를 계기로 출라롱콘 대왕은 서구의 기준을 수용하여 국제법상 주권 국가로 인정받기 위한 ‘씨윌라이’라는 전략으로 국가 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자 하였다. 당시 이탈리아는 식민 야욕이 적으면서 기술과 문화 역량을 갖추었기 때문에, 시암은 외교 다변화와 문화·기술 수용을 통해 주권을 유지하고자 이탈리아와의 협력을 지속하였다. 3장인 ‘출라롱콘 시대 시암의 균형외교와 전략적 근대화: 영국·프랑스와의 관계 및 유럽 방문의 영향’은, 시암이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통해 독립을 유지한 과정에서 시작하였다. 시암은 두 제국 사이에서 지속적인 압박을 받았지만,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면서 다자 외교를 통해서 자율성을 확보하려 했다. 출라롱콘 대왕은 행정 개혁, 노예제 폐지, 법제 정비 등을 통해서 내부 역량을 강화하였고, 영국과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 방문은 이러한 개혁과 외교 전략을 보완하는 학습의 장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시암이 외교와 내부 개혁을 결합하여 식민지화를 피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4장인 ‘출라롱콘 대왕의 노르웨이 여행과 시암의 근대화’는, 1907년 출라롱콘 대왕의 노르웨이 방문을 통해서 시암 근대화를 새롭게 조명하였다. 노르웨이는 강대국은 아니었지만 안정된 근대 국가 체제를 구축한 사례로 평가되었고, 시암이 참고할 수 있는 대안적 발전 모델이 되었다. 따라서 당시 제국주의 강대국들 사이에서 생존을 모색해야 했던 시암의 상황에서, 이 방문은 강대국 중심의 발전 경로를 넘어 다양한 근대성의 가능성을 탐색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이러한 경험은 행정·군사·교육 등 국가 구조 전반의 재편에 영향을 주었으며, 결과적으로 시암의 근대화는 생존 전략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제3부는 ‘근대 국가로서 제도 및 사회 개혁의 추진’이라는 제목으로, 출라롱콘 대왕의 개혁과 근대화 업적에 관하여 설명하였다. 다양한 인프라 건설은 시암의 경제와 산업 그리고 일상의 변화를 낳았고, 법제도 및 정책의 개혁은 안보와 외교 나아가 사회의 안정화 등으로 이어졌다. 1장인 ‘출라롱콘 대왕의 인프라 개발과 국가 근대화 작업’은, 시암의 철도·우편·전신·전기와 같은 인프라 건설에 의한 개혁을 소개하였다. 철도는 전국을 연결하며 중앙 권력을 지방까지 확장시켰고, 우편과 전신은 행정과 정보 전달 속도를 혁신하여 통치의 일원화를 가능하게 했으며, 전기는 도시 생활과 산업 기반을 변화시켰다. 인프라 구축은 기술 도입을 넘어서 영토 통합, 행정 효율화, 경제 성장이라는 효과를 동시에 가져오며 근대 국가 형성의 핵심 토대를 이루었고, 시암이 국제 통신망과 제도에 편입되면서 국제사회에서 주권 국가로 인정받는 결과도 얻었다. 이 시기의 개혁은 제국주의 압력에 대응한 방어적 근대화이자 능동적 국가 건설 전략으로서, 시암이 독립을 유지하고 근대 국가로 전환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2장인 ‘지도·법·의례와 타이니스의 표준화: 시암의 근대 국가정체성 형성’은, 시암의 근대 국가정체성이 지도·법·의례를 중심으로 한 ‘삼중의 표준화’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음을 설명하였다. 지도 제작과 측량, 경계 획정으로 모호한 전근대적 공간이 선으로 구획된 ‘보이는 영토’로 재구성되었고, 지적도와 토지증서는 이를 법적·행정적 공간으로 확정하였다. 테사피반 체제, 문서행정, 인구조사, 노비법, 승가통치법, 교육제도 등은 주민과 지방, 종교와 지식을 표준 단위로 재편하여 지배 구조를 정비하였다. 왕실 의례, 불교 후원, 국왕 이미지의 확산, 건축과 상징 정치는 국가·종교·군왕의 결속을 시각적·정서적으로 내면화시키며 국민의 시간과 감각을 재구성하였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한 제도 개혁을 넘어 공간의 시각화, 사회의 규격화, 국가 질서의 정서적 내면화를 결합한 총체적 국가 형성 프로젝트였으며, 근대 태국의 국가정체성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 결과였다. 3장인 ‘출라롱콘 대왕과 태국 근대 법치의 탄생: 법제·사법 개혁의 전개’는, 시암의 법제 개혁이 국가 생존 전략으로 추진된 ‘방어적 근대화’의 핵심이라고 설명하였다. 시암은 약화된 사법주권을 회복하기 위해서 전통적 사법 체계를 중앙집권적으로 재편하고, 행정·재정 개혁과 함께 근대적 법원 조직과 성문법 체계를 구축하였다. 특히 법전 편찬과 형법전 제정은 죄형법정주의를 확립하고 국제사회에서 ‘문명국’으로 인정받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고, 법학교육과 변호사 제도로 전문 법률가 집단이 형성되어 사법의 자율성도 확보하였다. 이러한 개혁은 전통 질서를 재구성한 주체적 국가 개조 작업이었으며, 전제군주제를 유지하면서 근대적 법치국가로 이행하는 토대가 되었다.4장인 ‘위생국 설립과 방콕의 도시 근대화’는 당시 개혁을 경제적 변화와 권력 집중의 맥락에서 해석하였다. 노예제 폐지는 대외 개방과 경제 확대의 흐름 속에서 화교 노동력의 유입, 세수 확대, 귀족 세력 약화로 이어졌다. 수로 중심 도시였던 방콕은 인구 증가와 상업 발전으로 오염과 전염병 문제에 직면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서구적 위생 개념이 도입되며 위생국이 설립되었다. 이는 공중보건 개선을 위한 조치였지만, 도시 공간과 주민의 신체를 관리·통제하고 중앙집권화를 강화하는 기능을 하였다. 위생 정책은 외국인과 지배층의 시선에서 형성된 ‘청결’ 기준을 강제하면서 주민들의 저항을 낳았는데, 시암의 근대화는 전통 관습과 서구적 가치가 충돌하는 가운데 국가 권력이 사회를 재편하는 과정으로 전개되었다. 제4부는 ‘근대 국가로서 시암의 변화’를 조망하였다. 근대화와 개혁의 결과로 시암은 인접 국가부터 인도, 러시아, 중국 등 여러 국가와 다른 방향으로 변화하였고, 기존의 외교 관계도 변하게 되었다. 1장인 ‘출라롱콘 시대의 시암과 영국령 말라야: 서로 다른 근대화의 길’은, 19세기 제국주의 질서 속에서 시암과 말라야가 서로 다른 근대화 경로를 걸었음을 보여준다. 시암은 출라롱콘 대왕의 주도로 여러 개혁을 진행하며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를 구축하고 제한적 자율성을 유지하였던 반면, 말라야는 영국 식민지로 편입되어 자원 수출 중심의 구조와 식민 행정 체계에 종속되었다. 이러한 차이는 시암의 ‘반주변부적 자율성’과 말라야의 ‘식민지 주변부 구조’라는 서로 다른 위치를 낳았으며, 이후 국가의 형성과 제도의 운영에 장기적인 영향을 주었다. 2장인 ‘19세기 영국령 인도와 시암의 주권 정치’는, 시암과 인도의 진화를 비교하였다. 19세기 제국주의 질서 속에서 시암은 단순한 완충국이 아니라 제국의 전략과 지역 행정 구조, 그리고 내부 개혁이 결합한 결과로‘관리된 주권’을 유지하였다. 영국령 인도는 비용과 안정성 문제로 직접 병합 대신 완충 공간을 선호했고, 프랑스 역시 확장을 제한했다. 시암은 조약과 무역으로 국제질서에 편입되면서도 행정 개혁으로 국가 역량을 강화해, 사법·경제에서는 제약을 받되 정치적 독립은 유지했다. 이는 제국주의 질서가 식민지와 독립의 이분법이 아니라 다양한 중간적 주권 형태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3장인 ‘전통적 천하질서에서 근대 국제질서로: 아편전쟁 전후 청-시암 관계의 변동’은, 시암과 중국 사이의 변화를 분석하였다. 아편전쟁 이후 천하질서와 조공체제가 붕괴하고 근대 국제질서가 확장되면서, 청-시암 관계는 구조적으로 재편되었다. 시암은 조공체제에서 점차 이탈하고 제국주의 열강과의 불평등 조약을 수용하는 대신 식민지화를 회피하였는데, 이는 지리적 조건과 외교적 선택이 결합한 결과였다. 이러한 과정은 근대 국제질서로의 편입이 선택과 강압이 교차한 불평등한 전환이었음을 보여주며, 이후 출라롱콘 시대 외교의 중요한 기반을 형성하였다. 4장인 ‘출라롱콘과 러시아: 제국주의 시대, 시암을 지킨 북방 외교’는 시암과 러시아 관계를 소개하였다. 러시아의 태평양 진출 과정에서 시작된 양국의 접촉은, 1891년 니콜라이 황태자의 시암 방문과 1897년 출라롱콘 대왕의 러시아 방문에 따라 공식 외교 관계로 발전하였다. 시암은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의 압박 속에서 러시아와의 협력으로 독립을 유지했으며, 이 관계는 군사·교육·문화 교류로 확대되었다. 이후 러시아 혁명으로 이 관계는 일시 단절되었으나, 이는 시암이 식민지화를 피하고 근대 국가로 전환하는 것에 영향을 주었다. 제5부는 ‘개혁과 근대화에 대한 평가’라는 제목으로 출라롱콘 대왕의 근대화 및 개혁에 관한 업적을 평가하였다. ‘출라롱콘 대왕의 생애와 평가: 근대 시암을 설계한 군주의 통치와 역사적 의미’는, 시암이 근대화 개혁과 외교를 결합하여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음을 강조하였다. 출라롱콘 대왕은 내부 개혁을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대나무 외교’를 통해 외부 압력에 유연하게 대응하였다. 이러한 성과는 제국주의적 조건 속에서 이루어진 그의 전략적 판단과 리더십의 결과로 평가되며, 그를 태국 ‘근대화의 아버지’이자 동남아시아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을 이끈 지도자로 자리매김하게 하였다. 21세기는 초연결의 시대이며, 순수성과 단일성 못지않게 혼합과 공존의 가치가 중요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제국주의라는 역사적 경험 속에서도 인간과 사회가 보여준 회복력과 창조적 적응의 가능성에 주목하였다. 독자들께서 이 책을 통해 태국을 포함한 동남아시아에 확장되었던 제국주의의 다양한 양상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스스로 변화와 적응을 모색한 태국의 개혁과 근대화 리더가 어떠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활동하였고, 그 영향이 어떠하였는지 성찰하시기를 바란다. 제국의 그림자는 여전히 현재 속에 남아 있지만, 그 속에서 자주성과 독립성 그리고 융합이라는 새로운 의미와 가능성 또한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다. 이 책이 그러한 복합적 역사 과정을 이해하는 데 작은 길잡이가 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