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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제1부 011 플라세보 plasebo 014 수술015 집중 016 식탐 018 거짓말이라는 산 020 동백이 더 붉은 건021 물의 힘022 노도櫓島를 떠나며024 엄마의 마당026 그 집 앞027 우주여행제2부 031 봉림사지 鳳林寺址 033 어떤 죽음034 버스킹 busking035 세병관 洗兵館 036 호객꾼037 누가 주인인가?038 수양식당040 시금치꽃041 안도 다다오 Ando Tadao042 덴푸라 tenpura044 2019년 오디세이 odyssey045 배롱나무 제3부 049 향유고래의 소멸050 늙어가는 집051 바다를 처음보다052 꽃 한 송이 피고 지는 시간에053 포도054 마산역은 향기가 난다 055 포스트모더니즘056 짝사랑057 사월의 노래058 사랑의 증세059 신혼여행060 아파트를 베다062 재규어의 소리064 꽃을 위한 헌시제4부 069 깎다070 영혼결혼식071 명탯국072 낮달073 제망모가 祭亡母歌074 퇴산리 일기075 첨성대076 숨구멍078 이팝나무 사이로 비둘기 날다079 목련은 잘 참는다080 노을082 마지막 선물084 꽃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087 시집 해설 시로 꿈을 꾸다 - 이소정 시집 『깎다』를 말하다 임창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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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찰나를 보았고 또 다른 세계를 본다 시는 나의 미래이다2023년 10월 이소정 시인시로 꿈을 꾸다- 이소정 시집 『깎다』를 말하다―임창연(시인 · 문학평론가) 1. 시인시는 영감(靈感-inspiration)을 통해 오고 시인은 그 영감을 문장으로 완성하는 사람이다. 특별히 시의 첫문장은 참으로 중요하다. 만약 첫 행이 읽는 사람의 마음을 붙잡는다면 그 문장 성공한 작품일 것이다. 그래야만 두 번째 행으로 마음을 끌어들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완성된 시를 쓰게 되려면 남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시인의 시를 읽게 되면 그 행간의 사이사이의 흔적에서 지(智)적인 역량(力量)을 한눈에 보게 되는 것이다. 시 쓰기에서 쓰이는 시어(詩語)나 문장(文章)들은 창조적이어야 한다.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변용(變容)으로 나타내야 한다. 시는 언어의 의미와 소리의 융합으로 이루어진 언어 예술(藝術)이다. 예술이라 함은 어떤 재주나 능력이 탁월하여 아름답고 숭고해 보이는 경지에 이른 것을 말한다. 평범한 문장을 가지고 시를 쓰는 우(愚)를 범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렇게 장황하게 시의 기초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직도 많은 시인들 중에는 너무도 쉽게 문장을 만드는 것을 숱하게 보아왔다. 그래서 시의 기본은 늘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시인은 현실을 문장으로 이야기하면서도 시어로 표현하기 때문에 언어 예술이 되는 것이다. 이소정의 첫 시집 『깎다』(창연출판사, 2023)에서 시인의 말을 통해 선언을 한 문장을 먼저 보자. ‘찰나를 보았고// 또 다른 세계를 본다// 시는/ 나의 미래이다’라고 말한다. 참으로 당찬 선언으로 읽힌다. 시인은 어떤 찰나를 만나고 보았을까? 그리고 어떤 다른 세계를 보았을까? 그리고 시는 나의 미래라고 말할 수 있는 이소정시인은 어떤 시를 쓰는 사람인지 궁금해진다. 그의 시집 『깎다』에는 50편의 시가 실려있다. 이제 이소정 시인의 작품들을 읽으며 행간에 숨은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2. 거짓말 살아가면서 수많은 것들 중에 반드시 없어져야 할 것이 거짓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초처럼 뽑아내어도 없어지지 않고 다시 자라나는 끈질긴 존재이다. 시인은 이 거짓말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다음 작품을 보기로 하자. 산자를 위한 저녁이 오고 있다죽음은 언제나 손에 잡힐 듯곁에 머물고 있다정결한 새 두 마리한 마리는 피를 흘리며 한 마리는 살아서 들을 향해 날아간다신전에 머문다고신이 될 수는 없듯이왕의 처소에 머문다고왕이 될 수는 없다애초에 평등은 없었다이념이란 인간이 만든 규칙출발부터가 모순인데구원이 없는 파라다이스는 신기루일 뿐제사장은 새의 피를 옷에 뿌리며 정결을 선언했다나병에서 자유로워진 그는사람들 속으로 다시 걸어서 들어갔다시너를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인 그는죽기 전 결백과 자유를 외쳤다그 곁에서 기자도 동료도 말리지 않았다그가 간 곳이 천국인지 지옥인지 아무도 증명해 보이지 않았다혁명의 불꽃이 연기를 피우자그들은 재빨리 원탁회의를 열었다저마다 왕을 꿈꾸는 자들은핸드폰 번호를 누르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그들도 머잖아 벌거벗은 채날개 없는 새처럼 날아야 할 시간을 맞을 것이다영혼이 영원히 산다는 말은끔찍한 형벌인 동시에 축복으로 들렸다거짓 혀를 놀리는 자에게영원한 삶이란지옥을 초대하는 악기 같은 것이다- 「플라세보 시인은 시의 부제목에 ‘누군가 나를 대신해 죽을 수 있다면’이라고 말한다. 제목 「플라세보 placebo」는 - 1.죽은 이를 위한 저녁 기도 2.가짜 약 3.일시적인 위안의 말 4.위로 5.발림말(flattery) - 다의적(多義的)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이 모든 의미를 문장 속에 다 내포하고 사용한다.‘산자를 위한 저녁이 오고 있다’로 시작되는 문장은 강렬하다. 매일 다가오는 저녁을 죽은 자들은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은 언제나 손에 잡힐 듯/ 곁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삶과 죽음이란 가장 가까운 친구 같은 존재이다. ‘정결한 새 두 마리/ 한 마리는 피를 흘리며/ 한 마리는 살아서 들을 향해 날아간다’는 문장의 새는 사람으로 바꾸어 읽어도 내용은 달라지지 않는다. 새의 죽음이든 사람의 죽음이든 생명의 소중함은 인간의 편에서나 신의 눈으로 보아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참새 한 마리가 떨어져 죽는 것도 하나님 뜻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Assarion : 로마의 화폐 단위인데, 작은 수량이나 매우 하찮은 것을 비유할 때 쓰이는 단어)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태복음 10장 29~31절)’ - 하물며 사람의 머리털까지도 기억하는 하나님이 인간의 억울함도 외면치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죽음(생명)을 가지고 시체팔이를 하는 부류가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 ‘시너를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인 그는/ 죽기 전 결백과 자유를 외쳤다/ 그 곁에서 기자도 동료도 말리지 않았다/ (중략) / 혁명의 불꽃이 연기를 피우자/ 그들은 재빨리 원탁회의를 열었다’는 문장은 누군가의 분신자살(焚身自殺)을 하는 현장을 기자와 동료가 보고는 말리지 않고 방치한 상황을 보여준다. 그리고는 언론과 야합을 통해 여론을 만들어 정치적인 변화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었던 과거를 우리는 너무나도 많이 보아 왔다. 타인의 죽음을 부추기며 이용하는 비정한 현실은 개인의 살해인 동시에 사회적인 타살이라고 명명할 수가 있다. 지하드(jihad-이슬람교에서 말하는 이교도를 대상으로 하는 성전聖戰)라는 이름으로 벌이는 테러는 수많은 불특정 다수를 살해하기도 한다. 그 테러리스트를 부추기는 방법이 신념과 함께 거짓말로 세뇌를 시킨다. 정상적인 생각으로는 설득이 되지 않을 내용으로 말이다. 가령 지하드로 자살폭탄 테러로 성공하고 죽으면 천국에 가서 수많은 아름다운 여인들의 시중을 받으며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거짓말은 이처럼 숭고해야 할 인간의 목숨도 하찮게 소비되게 만드는 범죄이다. 시인은 시에서 이렇게 거짓에 대한 결론을 ‘거짓 혀를 놀리는 자에게/ 영원한 삶이란/ 지옥을 초대하는 악기 같은 것이다’라고 맺는다. 참으로 무서운 말이다. 지옥은 불구덩이에 갇혀 죽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영혼이 영원히 산다는’ 고통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형벌인 것이다. 거짓말에 대한 또 다른 「거짓말이라는 산」이라는 작품을 보자. 해양드라마 세트장 입구솜사탕을 파는 이가 있다색이 입혀진 설탕을 넣으면영롱한 빛깔의 구름과자가 만들어진다현란한 기술로 손을 놀리면먹음직한 솜사탕이 부풀어 오른다그가 쌓아 올린 명성은 위태롭다입에서 나오는 현란한 어휘들은 매혹적이지만비가 내리면 녹아내릴 소금산이다소금이 몸으로 들어가 녹아내리면보약처럼 맛으로 전해지고황산을 만나면 염산이 되어사람의 살과 뼈도 녹이는 맹독이 된다거짓말은 설탕처럼달다독이 되어 영혼을 녹이는 암석이다가볍게 귀로 들어와 먼지처럼 쌓이는맹독의 암석이다솜사탕을 혀에 대지 말고 손으로 눌러보라납작하게 눌러진 솜사탕은 다만 맹독의 설탕덩어리거짓말 산은 아무리 높게 올려도백주에 사라지는 맹독의 허상- 「거짓말이라는 산」 전문 설탕과 소금은 눈으로 보아서는 쉽게 구별이 안된다. 맛을 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소금과 설탕은 물에 녹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소금은 짜고 설탕은 달다. 시인은 소금과 설탕을 맹독이라고 말한다. 일상생활에서 꼭 필요한 것들이지만 사람에게 독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거짓말이라는 것도 귀에는 달콤하게 다가와 속삭이지만 결국에는 영혼도 팔게 만드는 맹독이라는 말이다. 화려해 보이고 부풀어진 솜사탕도 눌러보면 찌그러지는 것처럼 거짓도 이와 같다고 말한다. 거짓의 삶은 해양드라마 세트장처럼 연극무대일 뿐이다. 죄 없이 사라진 절이 있다진경대사 사리를 봉안했던 보월능공탑일제강점기에 서울로 가서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 뜰에서하염없이 비를 맞는 중이다탑의 운명이야 죽을 때까지 비를 맞을 테지소박맞은 여자처럼 집에서 쫓겨나객지에서 떠돌고 있다죄 없이 무너진 절이 있다한 집안의 번영을 위해 빈관으로스님들을 속이고절 근처 땅에 관을 묻자절은 무너지고 그 집안도 결국 망했다가끔 내가 당신의 마음을 훔친 후당신의 인생이 무너질까달아났던 기억의 파랑이 부표처럼 떠올랐다신우대 흔들리는 자드락길을 따라폐사지를 등지고 돌아서는 길오고 가는 바람이 단어들을 소환하여종이 도마에 올리고 칼질을 하여 전을 부친다한 상을 조촐하게 차려 그대에게 내어 놓는다- 「봉림사지」 전문봉림사지는 창원시 의창구 봉림동에 위치한 절터이다. 창원 봉림사지는 나말여초 구산선문 중 여덟 번째 선문인 봉림산 선문이 있던 유서 깊은 절터다. 봉림사지에 있던 진경대사보월능공탑(보물 제362호)과 탑비(보물 제363호)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이전돼 있다. 또 삼층석탑(경남도 유형문화재 제26호)은 의창구 상북초등학교로 이전된 상태다. 임진왜란 화재로 소실이 되어 사라졌다고 전해온다. 또한 시인이 말한 설화도 전해지고 있다.인간의 욕심은 죽음 이후에도 영화를 누리려는 어리석음을 갖고 있다. 그나마 종교는 인간의 욕망을 다스릴 수 있는 가장 이성적인 행위이다. 예부터 종교 건물이 들어선 곳을 성지(聖地)라고 부른다. 그래서 죄인들은 피난처로 도망하여 이곳에서 자신의 목숨을 보존하기도 했다. 또한 부정한 것은 절대로 들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집안의 부유함을 얻고자 시체를 들였으니 그 성지는 오염이 된 것이다. 세상이 오염되는 것은 끝없는 욕심의 결과인 것이다. 3. 세상시인은 그 시대를 살아가면서 시대의 중심을 읽어야 하는 숙명이 있다. 그것이 시인된 자가 안고 가는 고통이기도 하다. 이소정 시인은 그의 시에서 어떤 눈으로 세상을 읽고 있을까?너는 오늘썩은 복숭아를 먹는 사람과수원에서 낮에 복숭아를 한 바구니 따다가 우물물로 씻어 부엌 부뚜막에 두었다늦은 밤에서야 생각한다복숭아를 먹는 즐거움이란한 입 두 입 먹다가과육 속의 벌레마저 삼키는 일 너는 오늘 썩은 세상을 먹는 사람장날 좌판에서 토막 낸갈치를 사다가 소금에 절여냉장고에 넣어 두었다늦은 밤 생각 한다바다를 먹는 즐거움이란썩은 생선살을 발라 먹는 일우리가 저질러 놓은 미세 플라스틱마저 먹어 치우는 일- 「식탐」 전문 시인은 복숭아 먹는 일을 썩은 과육 속의 벌레를 먹는 일이라고 말한다. 벌레가 먹었다는 것은 가장 맛있게 잘 익은 과일이라는 말이다. 맛있는 것이 먼저 썩어가는 건 마치 먼저 핀 꽃이 먼저 진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사람이 맛있어 하는 건 벌레도 좋아하는 것이다. 서민들이 좋아하는 갈치는 지금은 고등어보다 비싼 생선이 되었다. 가격 상승의 실질적인 원인은 경쟁적인 남획(濫獲) 때문이다. 갈치가 성어가 되기 전단계인 풀치까지 잡아먹어서 급격하게 개체 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갈치에 관한 속설로는 사람이 바다에 빠져 익사하면 제일 먼저 갈치가 달려들어 그것 때문에 갈치의 맛이 사람 고기 맛과 비슷하다는 말은 괴담일 뿐이다. 갈치는 심해어라서 1 기압 밖에 되지 않는 대기압을 견디지 못해 육지로 올라오면 금방 죽어버린다. 모든 생물은 죽는 순간부터 썩기 시작한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는 희생을 해야 한다. 그것은 삶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시인은 ‘먹는 즐거움이란/ 썩은 생선살을 발라 먹는 일’이라고 말한다. 거기에 더해 ‘미세플라스틱마저 먹어 치우는 일’이라고 말한다. 전 지구적으로 기후 위기를 말하고 있다. 기후위기는 산업화로 인해 발생한 온실가스 배출과 자원 소모로 인한 지구 온난화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바다는 기후위기 이전에 수많은 생활쓰레기로 인하여 병이 들었다. 그중에서 플라스틱으로 수많은 바닷속 생물들이 피해를 입고 그 결과 미세플라스틱이 인간들의 다시 먹게 되는 악순환을 이루고 있다. 시인은 바다 생선을 먹는 일을 이렇게 패러디(parody)로 노래하고 있다. 지구의 수명을 어쩌면 인간들이 스스로 단축시키고 있는 것 일수도 있다.아름답기로 유명한 터키 휴양지 보드럼 해변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지중해를 건너지 못하고 천국으로 떠났다잠들어 있는 듯 해변에 엎드려 있는아일란의 사진이 온 세계에 공개되었다이슬람 극단주의 IS를 피해 지중해를 건너다형과 어머니와 함께 영원한 잠이 들었다어른들의 싸움질에 네 살배기 아일린의 생일은천국에서 촛불을 켜야 하리라세상의 어른들이여당신도 한때는 세 살이었다이제 당신의 어린 시절을 향해 총질을 멈추어라아일린의 죽음은 바로 당신의 꿈을살해하는 일이다- 「어떤 죽음」 전문시인은 종교로 인한 갈등도 다루고 있다. 종교가 믿음이 아닌 신념으로 변질이 되고 정치로 오염된 결과는 전쟁으로 나타난다. 전쟁의 형태는 테러와 혼재되어 섞이면서 불특정 다수에게 무의미한 죽음으로 나타난다. 전쟁의 피해는 군인들이 먼저 나타나지만 그 과정에서 여자들과 아이들이 많은 희생을 하게 된다. 2011년 3월 15일에 발발된 시리아 내전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2015년 9월 2일 터키 보드럼의 한 해수욕장에서 세 살배기 아일란의 익사된 주검이 발견되었다.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인한 파장으로 유럽연합(EU)은 난민을 의무적으로 분산 수용한다는 원칙에 합의하는 등 난민대책을 적극적으로 내놓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하여 내전 해결은 되지 않은 상태이다. 시인은 시에서 ‘아일린의 죽음은 바로 당신의 꿈을/ 살해하는 일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오래전 창원 39사단 앞에는 미나리꽝들이 있었다 봄엔 연두색 지나서 여름 초록빛으로 자라면새벽에 일꾼들은 낫과 볏짚을 들고 논으로 들어간다제일 먼저 반기는 거머리들미나리에서 장딴지로 옮겨 붙어 피를 빤다낫질 세 번에 미나리 한 단볏짚으로 묶어 비닐 포대에 넣어 바깥으로 던지고찰랑찰랑 미나리꽝 물에서는 하늘이 비치고하늘을 보려고 고개 들면 어질어질넓은 곳 미나리꽝 반쯤 일을 마치면다음날 나머지 하고 나면 며칠 후무성하게 연두색에서 초록으로 자라고다시 미나리꽝은 화수분처럼 가득 차기를 반복했다십 년이 지난지금 미나리가 자라던 곳에는고층아파트가 이자처럼 자라고 있는 중이다저 아파트를 베어내려면얼마나 많은 낫질이 필요할까?- 「아파트를 베다」 전문시인이 결혼 후 지금까지 살고 있는 소답동 지역은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이다. 미나리꽝에서 부대가 주둔하던 곳이 지금은 고층 아파트단지가 되었다.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가려질 정도의 고층아파트라 시인에게는 미나리대신 그 자리에서 자라나는 존재로 보인 모양이다. ‘저 아파트를 베어내려면/ 얼마나 많은 낫질이 필요할까?’ 아파트를 베어낼 낫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인이 말하는 낫질은 시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초록빛 미나리들이 자라던 그곳에 아파트가 무성한 콘크리트숲이 되어 있는 광경은 낯설기도 하고 아득한 추억도 생각날 것이다. ‘고층아파트가 이자처럼 자라고 있는’ 모습은 도시라는 랜드마크로 이미 익숙해져 있다. 돈으로 쌓아지는 고층아파트는 거기에 들어가 살면서 이자를 내야 하는 대출받은 주인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다른 작품에서도 시인은 자연환경-지심도 이야기를 다룬 ‘전쟁을 모르던 섬/ 일본군은 포대를 들여놓고/ 밤이면 서치라이트로/ 불면의 밤을 밝혔다’ 「동백이 더 붉은 건」 중에서-을 다루고 있다. 거주(居住)에 관한 눈여겨 볼만한 작품으로는-‘아무도 잡을 수 없지만 느끼는 바람처럼/ 공간에 한 권씩 세워지는 집/ 여운 가득한 안도의 시집’ 「안도 다다오」 중에서- 물과 바람과 빛을 요소로 건축을 하는 안도 다다오 이야기가 마음을 사로잡는다.4. 고향 시인의 고향은 경남 창녕이다. 고향은 모든 예술작품에서도 그 영향은 상당하다. 작품의 원천이 바로 여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시골이 고향인 사람은 서정적인 환경에서 자라난 이점(利點)이 있다. 도시에서 볼 수 없는 환경과 관습들이 바로 그것이다. 간밤 우물가에서 처녀·총각이 동반 자살했다 양가에서 결혼을 반대했다 우물은 동네에서 하나뿐새벽에 물 길러 간 안동댁이 주검을 발견했다 서 씨 아재와 동네 남정네들이 시신을 수습했다 우물에 대각선으로 장대를 세우고 그 위에 천막을 덮은 후 시신들을 건졌다 시신들이 보이지 않게 멍석에 말고 덮어주었다 짚으로 남자 인형과 여자 인형을 만들어 영혼결혼식을 했다 그날 오후 남자 인형을 묻고 여자 인형도 묻었다 늦은 저녁 몇 사람은 우물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몇 사람은 횃불을 들고 있었다 아침에서야 짚단에 불을 붙여서 우물물을 소독했다 얼마 후 죽은 총각 쪽 가족이 먼저 이사를 하고 처녀 쪽도 며칠 뒤 이사를 했다 그날 이후에도 우물가는 아낙네들의 수다가 변함없이 이어졌다- 「영혼결혼식」 전문시골은 동네마다 공동으로 쓰는 우물이 있다. 어느 날 결혼을 반대하자 동반자살 사건이 일어났다. 그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동네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벌인 행동이다. 살아서는 못했지만 그 영혼을 달래주려 영혼결혼식을 거행했다. 도시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광경이다. 비슷한 주제의 작품으로 도시에서의 영혼결혼식을 다룬 작품도 있다.고양이들 먼저 발을 들여놓고죽은 처녀·총각 결혼해서 신혼 차렸다- 「늙어가는 집」 부분도시의 빈집에 무당이 따로 죽은 처녀·총각의 영혼결혼식 흔적을 이야기한 시이다. 우연하게도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을 시인의 눈을 통해 만난다. 사람들에게는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존재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어릴 적 높았던 산은작은 언덕이었다오를 수 없었던 둑은한 발이면 올라설 수 있었다대합면 퇴산리 202번지 집지금은 누가 사는지대문에 인기척도 없다골목길 아재네 돌담은 무너지고무화과는 홀로 익어가고 있었다대합면 퇴산리 노모당어머니 친구들은머리에 양파꽃이 피어있었다- 「퇴산리 일기」 전문시인의 고향이 창녕군 대합면 퇴산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초등학교를 어른이 되어서 찾아가 보면 아주 넓었던 운동장이 저렇게도 작았었나 하는 생각을 누구나 하게 된다. 어릴 적 산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언덕이고 거대하게 보였던 둑은 낮은 땅일 뿐이다. 여느 시골처럼 빈집이며 무너진 담이 현실이다. 아직도 살아계시는 어머니 친구들은 머리에 흰꽃만 무성하게 피어있다. 귀현리 해변에 노을이 지자파도가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바다에 나간 어부가 집으로 돌아오듯파도들도 따라서 돌아오고 있다아버지는 내가 깨기 전늘 과수원으로 일하러 가셨다자두 열매 익은 향에 적셔진아버지가 들어서면 내 코밑까지 달큼함이 밀려 왔다어머니는 아버지를 대청마루에 앉히고흙과 먼지투성이의 발을 씻어주셨다어머니는 노을 빛깔 같은 고추장에 버무린비빔국수를 식탁에 올려놓으셨다비빔국수로 배를 채운 우리들은국수처럼 긴 잠에 빠져들었고막걸리에 불콰해진 아버지는어머니와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셨다귀현리 해변에 노을이 지자파도가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노을」 전문위에 시는 고향을 추억하는 시편 가운데 참으로 아름다운 기억으로 소개된다. 시인은 귀현리에 가서 저녁노을 아래 파도가 밀려오는 장면을 보면서 과거를 회상한다. 파도는 아버지로 의인화되어 있다. 과수원에서 돌아온 아버지의 기억은 자두향이다. 시인은 그 달큼함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다. 노동의 현장에서 묻은 흙과 먼지를 아버지의 발에서 어머니는 씻기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는 아이들은 먼저 사랑을 배웠을 것이다. 노을 빛깔 같은 고추장으로 버무린 비빔국수는 또 어떤가? 배부른 아이들은 긴 국수처럼 늘어져 자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손을 맞잡고 밤을 새우는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다. 5. 마무리 하면서시인이라는 운명은 세상에 살면서 시를 써야 하는 의무를 지고 산다. 등단이라는 과정을 거치는 순간부터 시인이라는 명찰을 마음에 새기고 살게 된다. 그의 표제작인 「깎다」는 이런 시인의 마음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남지읍 박진로에 있는 신 선생님 공방칼이 나무를 깎는다수백 년 시간이 조각나며초 단위로 흩어지고깨어진 마음 돌아갈 곳 없듯부서진 시간은 사라지고단 하나밖에 없는나무로 만든 볼펜흙에서 자란 나무흙으로 돌아갈 사람사람이 나무로 시를 쓴다- 「깎다」 전문나무로 만든 볼펜을 본 적이 있다. 나무는 나무의 고유의 결 때문에 같은 무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무볼펜은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시인의 시도 그런 것이 아닐까? 수많은 문자로 시를 써도 궁극적으로 같은 문장의 시는 없다. 시인 각자의 문장과 결이 있어서 다른 향기와 무늬로 보이게 된다. 이소정 시인의 첫 시집에 나타난 다양성과 개성은 참으로 각별하다. 미처 다 다루지 못했지만 묵직한 힘이 엿보이는 시편들-「노도를 떠나며」, 「덴푸라」-과 고향 서정들이 아름답게 그려진 작품들은 수작으로 평가된다. 그것은 이소정 시인만이 쓸 수 있는 나이테와 무늬일 것이다. 그리고 아직은 절정이 아니라 상승기를 향해가고 있기에 앞으로의 작품들도 기다려진다. 다음 시집에서는 더욱 성숙한 문장과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로 만날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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