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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머리말
프랑스어판 머리말 태초에 유아용 콧물흡입기가 있었다 임신 찰스 잉걸스를 향한 찬가 모든 여자를 위한 한 남자, 한 남자를 위한 모든 여자 잘나가는 여자 A컵과 C컵 좌우지간 『엘르』를 마주하고 4 X 4 분 정자은행 텔레비전 시청 가족의 해체 대디 블루스 위로의 사회 장밋빛 경고 주권 포기 체면 살리기 국경일 더할 나위 없는 중산층 인간박물관 옮긴이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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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하는 건 정말 사내들이나 하는 짓거리다. 다섯살 때에는 장난감 트럭의 크기를 비교한다. 열세살 때에는 성기 크기를 비교한다. 열여덟살이 되면 여자친구의 가슴을 비교한다. 서른다섯에는 전자수첩을 비교한다. 그런 식으로 끝까지 계속된다. 아니다, 끝에 가면 더이상 비교하지 않는다. 멍청이처럼 세상을 뜨니까. // 그러나 오늘날 무척이나 새로운 점은 더이상 남자들끼리는 비교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맥주 250씨씨를 마시거나 축구경기를 보며 한가하게 시간이나 때우는 남자들. 그렇다, 남자들은 집에서 마나님과 비교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별로 유쾌하지 못하다. 몇몇 비교를 예를 들어보겠지만 이기는 건 항상 내 아내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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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시인 루이 아라공의 책 제목이기도 한 ‘여자는 남자의 미래’라는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 이 작품을 썼노라는 다비드 아비께르는 『오, 나의 마나님』에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남성의 위상을 빠리 소재 ‘인간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인류 진화 단계에 빗대 풍자한다. ‘남성제국의 가상적 몰락’이라는 부제처럼 가정에서는 권위를 잃어가는 남편과 아빠, 회사와 사회에서는 여성과의 경쟁에서 밀려나는 남성의 모습을 진솔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그려냈다. 소설이지만 저자 자신의 경험을 바탕삼아 에피쏘드들을 중심으로 현실감있게 써내려간 탓에 얼핏 에쎄이 같은 느낌마저 주는 이 작품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구 건너편 프랑스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삼십대 가장으로 두 딸과 아내와 함께 빠리에 살고 있는 주인공 ‘나’는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는 아내를 대신해 가사과 육아의 대부분을 떠맡고 있는 처지이다. 주말이면 공원에 유모차를 끌고 나가서 아이들을 돌보고, 그림을 걸기 위해 벽에 못을 박다가 떨어져 기절하기도 하고, 집에 놀러온 아내의 친구들을 상대로 못된 상상을 하기도 하고, 아내의 임금 인상 소식에 아내와 상사의 음흉한 뒷거래를 상상하기도 하고, 아내의 호모 남자친구를 시샘하기도 하는 등 초라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남성의 전형이다. ‘나’는 전통적인 사회의 권위에 찬 남성의 모습으로 ?초원의 집?의 아버지 찰스 잉걸스처럼 집 안팎을 스스로 수리하고 모든 일을 척척 해내는 만능 아빠를 꿈꾸기도 하고, 영화 ?대부?에 등장하는 마피아 같은 권위와 카리스마를 동경하기도 한다. 그러나 1968년 학생혁명 이후 여성의 권리가 급속도로 신장된 데에 반해 남성의 권위는 상대적으로 위축되었고, 베유(Veil) 법안으로 낙태가 합법화되면서 섹스가 종족보존보다는 쾌락의 의미가 더 커진 프랑스의 현실에서, 21세기 남성이란 ‘메트로쎅슈얼’(metro-sexual)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대도시의 소외된, 하릴없고, 외모에 신경써야 하고, 인간박물관에서 보게 되는 원시시대의 남성성을 상실한, 극히 왜소화된 모습으로 전락했다. “만일 내가 고를 수만 있다면, 난 마피아가 되지 메트로쎅슈얼은 되지 않으리라” 마음먹은 주인공조차 결국에는 자신의 못난 모습과 아내의 우월성을 스스로 인정하는 길을 택한다. 주인공이 딸들을 데리고 간혹 찾아가는 빠리의 ‘인간박물관’에는 인류 진화 과정을 전시해놓고 있다. 함께 간 딸에게 전시된 유인원과 아빠의 차이점을 묻자, 딸은 서슴없이 “음, 저들과 아빠의 차이는 말이야, 저들은 인간박물관에 들어와 있는데 아빠는 그렇지 않다는 거야. 그러니까 아빠는 인간이 아니야”라고 대답한다. 잔인하기 짝이 없지만 인류 진화에서조차 탈락한 종(種)이 되어버린 아빠, 남편, 그리고 남성들의 위치를 확인한 주인공은 다시 찾은 인간박물관의 벽화 아래쪽에 자신의 증명사진 한 장을 슬쩍 끼워넣음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자리를 확보한 듯한 뿌듯함을 느낀다. 이 소설은 출간과 동시에 독자들의 호평을 받으며 프랑스 각종 서점의 베스트쎌러 목록에 오르기도 했고, 비평계에서는 현실감 넘치는 작품이라는 평가와 마초주의로의 회귀라는 엇갈린 평가로 인해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 책을 성별간의 전쟁에 관한 책이나 혹은 한 성이 다른 성에 대한 승리의 이야기로 보지 않기를 바란다. 부디 휴머니즘의 이야기와 사랑의 이야기를 보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당부한다. 저자는 부부관계를 포함한 남녀관계와, 가족문제 등 다양한 현대 사회의 단면을 시종 시니컬한 어조로 서술하고 남성인 주인공 스스로를 희화화함으로써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을 취한다. 현실의 무력한 자신을 자조적으로 바라보고, 독자들이 자신을 또 바라보게 함으로써 중첩된 시선 속에서 웃음을 유발시키는 동시에 남녀의(부부의) 문제를 사회와 인간의 문제로 인식하는 데에까지 확장한다. 칼럼니스트, 기자,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저자의 폭넓은 사고와 재치를 통해 현대 서구사회, 그리고 나아가 우리 사회의 여러 면모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