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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이별은 슬픈 영화처럼
베스트셀러 작가의 봄
창문너머 에펠탑이 보인다
별이 되어라
점괘를 짚어보니…
끝없는 사랑(Endless Love)

해설
사랑이라는 환상, 그리고 그 이후의 형식들
장두영(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저자 소개 1

이화여자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했고, 1988년 <월간문학>에 소설로, 199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동화로 등단했다. 그 후 ‘계몽아동문학상’, ‘제3회 한국소설가협회상’을 수상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는 사랑했을까』 『아담 숲으로 가다』 『바다는 넘치지 않는다』 『대머리 만만세』 『열아홉 번째 그린』 『첫사랑 첫키스』 『신이 내린 스포츠 Golf & Sex』 『오늘 골프 어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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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7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44쪽 | 135*200*20mm
ISBN13
9791124052204

책 속으로

나의 영화감상 수준은, 관객이 많이 들었다는 영화로 부화뇌동하여 몰려가거나 짬이 나는 시간에 걸려드는 영화를 보는 정도이다. 날씨가 꿀꿀하면 벌떡 일어나 동네 영화관으로 터덜터덜 가기도 한다.

그날은 밤새 비가 내렸고, 아침에도 그칠 기미가 없었다. 검색을 해보니 장동채가 출연한 영화가 집에서 가까운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었다. 조조할인 표를 샀다. 컴컴한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다. 어둠에 눈이 익기를 기다려 실내를 휘둘러보았다. 관객이 나 한 명뿐이었다. 관객이 한 명뿐인데도 영화는 상영되었다. 습하고 곰팡내가 풍기는 어둡고 넓은 공간에 혼자 남았다. 공포가 엄습했다. 몸을 옹송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한 시간 반을 보냈다. 밖으로 나오니 비는 개어 청명했지만 나만 비를 맞은 듯이 식은땀으로 젖어있었다.

영화의 흥행의 성공여부는 누적 관람객 수로 결정한다. 상업성 면에서 그럴 것이다. 그러나 문학성 예술성에 있어서 전문가가 뽑은 열손가락 안으로 꼽히는 영화가 개봉 상영관에서 관객이 20명이 안 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예술성과 상업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가 어려운 가보다.

구질구질 비가 내리는 날 아침, 조조할인 영화 보러 갈 사람이 나 말고 또 어디 있겠는가. 그 뒤로도 나는 그가 출연한 영화의 모니터링은 하나, 그에게 언급은 안했다. 유명한 배우나 작가도 성공사례에서 오디션을 보고 떨어지고 또 보고 떨어지고를 반복했다고 밝힌다. 7전 8기 정도면 행운아이고 70전 71기라 할지라도 행운의 신의 윙크는 낚은 것이다. 장동채도 가야할 방향을 연기자의 길로 정하였음에, 완전군장하고 거북이처럼 뚜벅뚜벅 전진하고 있었다. 7전 8기라고 해도 8번 일어난 그 앞에 탄탄대로가 펼쳐져있지도 않았다. 고달픈 인생을 살고 있는 사내다.
--- 「이별은 슬픈 영화처럼」 중에서

검은 하늘을 찌르며 솟아오른 화줏머리 같은 고층건물의 모서리에 푸른 보름달이 찢긴 듯 걸려있었다. 길모퉁이에서 회오리쳐 돌고 있던 낙엽 한 무더기가 앞으로 내딛는 걸음을 방해하며 족쇄처럼 발목을 묶는다. 낙엽을 발길로 차내며 앞으로 걸었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연애는 일에 굴복한다. 연자매를 가는 당나귀모양으로 곁눈질할 겨를도 없이 총망하다면 연애는 도망간다. 연애로부터 빠져 나오기를 원한다면 바쁜 삶을 살아야 한다.

나는 밀실에 처박혀 그동안 구상만하고 손을 못 댔던 장편소설 집필을 시작했다. 낮이건 밤이건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렸다. 연애로부터 벗어나 안전지대까지 세월을 달려왔다고 한숨을 돌릴 즈음이었다. 작품의 대미에 마침표를 찍고 창밖 멀리로 시선을 던졌다.

돌담장에는 한창 피어오르는 연분홍색 진달래꽃이 떨기떨기 앉아있고 멀리 아지랑이가 자욱했다. 매화와 산수유, 상아빛 목련까지 흐드러지게 피어 봄을 화사하게 비추었다. 봄소식을 알리는 전령사로 벚꽃만큼 화려하고 아련함을 그리고 가슴 두근거리는 설렘을 안겨주는 꽃이 있을까.
--- 「베스트셀러 작가의 봄」 중에서

창문 너머로 에펠탑이 보인다. 에펠탑이라는 긴 다리를 가진 철제 거인이 아이와 나를 내려다본다. 파리 여행을 계획하면서 세 가지 버킷리스트 실행을 목표로 세웠다. 첫째는 에펠탑이 보이는 음식점, 길거리 작은 카페, 룩셈부르크 정원의 노천식당에서, 파리지앵처럼 좀 한가하고 게으르게 식사하는 것이다. 여행이 즐거운 이유 중의 하나가 내 밥 안차려먹고 가족에게 밥상을 진상하지 않아도 되는 일탈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평생을 여일하게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고 진설해야 하는 대부분의 주부들은 ‘남이 차려주는 밥상’을 소원한다.

언젠가 한겨울에 홀로 부산으로 취재여행을 갔었는데 몇 년 만에 처음이라는 한파가 해운대 바닷가에도 몰아쳤다. 으르렁거리며 진군하다 방파제에서 몸부림치며 부서지던 파도를 바라보며 나는 노천에서 실컷 낭만에 젖어 와인을 마시고 스테이크를 썰었고, 커피와 샌드위치로 브런치도 즐겼다. 몸에 담요를 두르고 난로도 피웠지만 혹한은 피할 수 없었다. 그래도 좋았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여름은 과하게 덥고 겨울은 또한 과하게 추워서, 그보다도 맑은 날이 뜸해서 야외에서 식사할 만한 날을 잡기 어렵다. 그렇다 하더라도, 맘만 먹으면 일주일에 한번은 야외에서 요리사가 차려주는 식사를 받을 수도 있을 텐데, 선뜻 이루어지지 않는 까닭은 내게는 분에 넘치는 사치라는 생각이 들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늘 급한 일과 중요한 일 사이에서 급한 일을 쫓다가 중요한 일 놓치고, 하고 싶은 일은 더욱 뒷전으로 밀리게 되어버린다. 그러고도 또 다시 쳇바퀴 돌 듯 살아간다.
--- 「창문 너머 에펠탑이 보인다」 중에서

59살
대낮인데도 하늘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대 빗자루 같은 흰 꼬리를 늘인 별똥별이 길게 지나갔다. 무르춤하게 넋을 놓고 창밖을 바라보다가 화들짝 놀랐다.
“하늘의 별이 하나 지면 사람의 죽은 영혼이 하늘에 올라 별이 된단다.”
어릴 적 마당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밤하늘을 바라보면 별똥별이 수도 없이 떨어졌다.

초인종이 화급하게 울렸다. 곧 현관문을 쾅쾅쾅 두드리는 울림이 공기를 휘저었다. 인터폰을 들었다. 여자는 앞치마를 입고 플라스틱 빨래바구니를 옆에 끼고 있었다. 초조한 표정과 발을 동동거리는 품이 분명 도움이 청하고 있었다.
“저, 무서워죽겠어요. 사람이 계단 난간에 매달려있어요. 옥상에 빨래를 널고 집에 계신 주인할머니 점심 챙겨 드리러 내려가는데 사람이 매달려있어서 못 내려가고 위로 올라왔어요. 아이고 무서워라.”

자기는 701호 가사도우미라고 했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발밑을 가리켰다. 우리 집은 901호다. 나는 숨을 죽이고 계단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8층에서 7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의 철제난간에 필시 사람이며 남자이지 싶은 물체가 매달려 있었다. 그 물체는 끄트머리에 콘센트가 달린 가정용 흰 전선에 목이 조여 있었다. 몸은 추욱 늘어졌고, 눈은 질끈 감았다. 입가로 진한 침방울이 흘러내려 목 근처에서 목걸이의 추처럼 흔들거렸다. 발에서 벗겨진 슬리퍼 한 짝은 계단참에 엎어져 있었고, 한 짝은 난간사이 아래층으로 추락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주머니가 최초 발견자니까 119에 전화하세요.”
끔찍한 현장을 직시하지 않으려고 내 뒤에 숨어서 벽만 바라보던 아래층 가사도우미 아줌마는 앞치마에서 핸드폰을 꺼내 119를 눌렀다. 그녀는 자신이 마주친 현실이 ‘죽음’임을 아직 인식하지 못했다. 그녀는 핸드폰에 대고 아파트 동 호수와 계단 난간사이에 사람이 끼어있다고 말했다.
--- 「별이 되어라」 중에서

딩동, 핸드폰 메시지에 부고가 떴다. 부고 발송자는 ‘한의용’이었다. 한의용이 누구지? 그렇군. 한의용은 선화의 전 남편이다. 선화와 의용은, 언제였더라, 10년보다 더 먼 과거에 이혼했으므로, 그 이름이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오늘 선화와 만날 약속 때문에 그 이름이 기억의 곳간에서 떠올랐나 보다.

그나저나 본인 핸드폰으로 본인의 부고를 치는 세상이라니. 아마 한의용 씨의 유족이 한의용 씨 핸드폰 주소록에 등재되어 있는 지인들에게 한의용 씨의 번호로 부고를 띄웠을 것이다. 의용 씨의 유족이라면 현재의 아내, 선화가 말하던 ‘요사한 귀신’일까. 그리고 그의 전화번호부에 왜 나는 아직 남아있었을까. 하긴 내 핸드폰에 발송자의 이름이 뜨는 사실로 미루어 내 전화번호부에도 그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남아 있었다는 뜻이다.

--- 「끝없는 사랑」 중에서

출판사 리뷰

김영두 작가의 소설집 『별이 되어라』에는 「이별은 슬픈 영화처럼」, 「베스트셀러 작가의 봄」, 「창문 너머 에펠탑이 보인다」, 「점괘를 짚어보니」, 「별이 되어라」, 「끝없는 사랑」 등 모두 여섯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됐다. 각기 다른 인물과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여섯 편을 차례로 읽고 나면 독자는 이상하리만큼 한 사람의 생애를 오래 들여다본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작품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면서도 일관된 시선으로 삶과 사랑을 바라보는 한 여성 화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 여성은 「끝없는 사랑」에서 친구의 사랑과 그 파탄을 지켜보고, 「점괘를 짚어보니」에서는 친구의 운명을 점쳐본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봄」에서는 결혼과 이혼의 시간을 복기하고, 「이별은 슬픈 영화처럼」에서는 한 시절의 은밀했던 관계를 정리한다. 표제작 「별이 되어라」에 이르면 자신의 일생을 십 년 단위로 되짚어보며 지나온 삶의 의미를 묻고, 「창문 너머 에펠탑이 보인다」에서는 손자의 몸을 씻기는 할머니가 되어 생의 또 다른 자리에 서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별이 되어라』는 여섯 편의 독립된 단편을 묶은 소설집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주제를 여섯 가지 각도에서 비추는 ‘느슨한 연작소설’의 외양을 띤다. 친구와 연인, 남편과 가족, 지나가 버린 청춘과 노년에 이르기까지 시간과 관계는 달라지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의 중심에는 한결같이 ‘사랑’이 놓여 있다.

「이별은 슬픈 영화처럼」의 주제는 만남과 이별, 그중에서도 ‘어떻게 아름답게 떠나보낼 것인가’에 있다. 작품은 영화의 형식을 참조함으로써 미학적인 형상화를 시도한다. 제목 그대로, 이 작품에서 사랑은 한 편의 슬픈 영화처럼 시작되고 또 끝난다. 소설은 과거 연인이었던 배우 장동채의 사망 소식으로 시작한다. 영화 촬영 중 그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 보도 직후, 서사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나’와 그가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서서히 사랑이 깊어지고, 종내 사랑에 지쳐 이별하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되짚는 식이다. 소설의 전반적인 서술이 고인과의 추억을 반추하는 형식을 띠고 있어, 글 전체가 한 편의 추도사처럼 읽힌다. 이미 ‘죽음’이라는 결말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탓에, 아무리 열정적인 순간을 회고할 때조차 한없이 차분하고 처연한 분위기를 유지한다는 점이 이 작품의 고유한 특징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봄」에서는 베스트셀러 만들기 비법에 얽힌 풍문과 함주간의 모닥불 지피는 운세 에피소드에 베스트셀러 작가를 꿈꾸는 주인공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사랑의 이름으로 만나고 헤어지는 운명의 궤적은 출판 시장의 논리와 겹쳐지며 ‘거래로서의 사랑’이라는 독특한 주제로 확장된다. 이 소설집의 다른 작품들에서 보여주는 사랑의 환상과 환멸과 같은 또 하나의 사랑 테마다.
「별이 되어라」는 운명이 한 여자에게 거듭 들이미는 가혹한 악연의 반복과 죽음을 응시하되, 그 운명의 무게에 끝내 짓눌리지 않는 강인한 인간에 관한 관찰로서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제목 ‘별이 되어라’라는 명령형 문장은 악연으로 얽혔던 진영석을 향한 진혼곡이자, 운명을 꿋꿋이 견뎌낸 자기 자신에게 건네는 축원이기도 하다. 몸서리쳐지는 ‘아홉수’들을 겪었으면서도 ‘59살+1살’이 되어 자기 나이를 꼽아보는 ‘나’의 모습에서 운명에 맞서는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그 지독한 악연 속에서도 “생의 순정이 불꽃처럼 빛나던 찰나”의 순간들이 무수히 존재했었음을 결코 잊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의 좌절과 환멸, 굴욕적인 운명의 반복 앞에서도 생의 눈부신 순간을 기억하려는 ‘나’의 모습은 짙은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는 희망의 징조로 읽힌다.

「점괘를 짚어보니」는 ‘점괘’를 언급하는 제목이 가리키듯 운명론적 이야기이다. ‘나’가 암에 걸린 친구에게 “내가 점괘를 짚어보니, 니가 암에 걸릴 운이더라”라고 말하는 대목이 단적인 예이다. 그러나 작품은 이때의 운명론이 사주팔자나 초자연적인 예지 능력과는 거리가 먼, 다분히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추론의 영역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대수의 법칙’ 혹은 ‘큰 수의 법칙’이라고 하는 라플라스의 정리가 운명론의 근본 원리로 제시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운명론을 냉소하던 ‘나’가 정작 무당이 된 친구 선화 앞에서는 깊은 연민의 시선을 보낸다는 것이다. 신내림을 받아 다른 존재로 빙의된 듯한 선화에게서 ‘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이 잠시 중단되는 순간이다. 결국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진 선화를 보며 “나에게만 보이는 것인지, 선화는 머리에 숯덩이처럼 까만 구름모자를 쓰고 다닌다.”라며 인간에게 진정 운명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어렴풋한 인식에 도달한다. ‘나’는 비록 운명을 믿지 않지만 운명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인간의 가련한 처지를 끝내 외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점괘를 짚어보니」는 사랑의 좌절과 환멸 이후 인간이 무엇을 붙들고 살아가는지를 연민의 시선으로 관찰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인간적인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당위적 명제를 재확인하는 작품이다.

「끝없는 사랑」은 느닷없는 부고(訃告) 문자메시지로 시작한다. 그것도 죽은 사람의 휴대폰 번호로 전송된 부고다. “본인 휴대폰으로 본인의 부고를 치는 세상이라니.” 낯선 것을 접했을 때의 놀라움과 뭔가 어긋난 것을 접했을 때의 못마땅함이 뒤섞인 이 문장은 작품 전체의 아이러니를 압축한다. 죽은 자가 자기 죽음을 알리는 이 기묘한 전도 현상은 이미 끝난 사랑을 끝나지 않았다고 우기는 ‘선화’라는 인물과 닿아있다. 환상의 허위성을 사물의 디테일로 폭로하는 이 작품은 외도, 상간녀, 이혼 같은 통속적 소재를 다루면서도 감상에 빠지지 않는 관찰의 냉정함이 돋보인다.

앞선 다섯 편의 작품이 사랑의 환상과 환멸, 욕망의 좌절과 죽음을 그려 왔다면, 「창문 너머 에펠탑이 보인다」는 그 모든 어두움을 비껴간 자리에 마련된 일종의 정서적 출구에 해당한다. 여기서 사랑은 더 이상 남녀 간의 조건이나 거래, 혹은 환상이 아니다. 세대를 초월해 가닿는 희생과 헌신으로 모습을 바꾼다. 이 작품에서는‘에펠탑 효과’가 특히 눈길을 끈다. 에펠탑 효과란 “처음에는 싫어하거나 무관심했지만 대상에 대한 반복 노출이 거듭될수록 호감도가 증가하는 현상”이다. 자주 보면 정이 들고, 정이 들면 좋아진다는 이 평범한 진실은 사랑의 본질을 향한 퍽 설득력 있는 모범 답안이다. 격정적 욕망이나 환상을 좇는 맹목이 아니라, 무수한 상호 작용과 오랜 시간의 누적이 만들어 낸 정(情)이야말로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환멸을 견디게 하는 하나의 대안이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에서 돋보이는 지점은 주체적인 여성의 삶을 촉구하는 강력한 메시지다. “대통령 부인이 되기를 꿈꾸지 말고, 대통령이 되는 꿈을 꾸라”라고 딸에게 건네는 조언이나, “배우자에게 종속된 삶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앞날을 개척하는 성숙한 자아”를 주문하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이는 앞선 다섯 작품에서 사랑에 종속된 채 무너져 내렸던 여성들의 서사에 대한 명확한 해답처럼 다가온다. 결국 우리는 이를 통해 다른 작품들에서 읽은 이별과 환멸, 좌절의 기록들이 실은 여성의 주체적 자각과 연대를 촉구하기 위한 작가의 치열한 문제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이 소설집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김영두 작가가 그리는 사랑은 낭만적인 감정에만 머물지 않는다. 사랑은 때로 집착이 되고 상처가 되며, 배신과 이별을 거쳐 회한으로 남는다. 어떤 사랑은 끝났음에도 기억 속에서 계속되고, 어떤 관계는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그 의미를 드러낸다. 작가는 사랑의 시작보다 오히려 사랑이 지나간 자리를 오래 바라본다. 그곳에 남겨진 기억과 상처, 미련과 용서, 그리고 끝내 지워지지 않는 인간에 대한 연민을 들여다본다. 사랑의 환희를 찬미하는 대신 사랑이라는 환상이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어떻게 부서지는지, 그리고 그 환멸의 폐허 위에서 우리는 무엇을 붙잡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묵직하게 묻는다. 따라서 여섯 작품은 결국 두 개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사랑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그리고 사랑이 깨어진 자리에는 무엇이 남는가?”

『별이 되어라』에 실린 여섯 편의 소설은 이 질문에 대한 여섯 개의 서로 다른 응답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소설집이 독자에게 건네는 것은 사랑에 대한 정답이 아니다. 사랑 때문에 흔들리고, 사랑 때문에 상처받고, 그 사랑이 사라진 뒤에도 다시 삶을 살아내야 하는 인간에 대한 질문이다. 그리고 여섯 편의 이야기가 모두 끝난 자리에서 독자는 어쩌면 자신의 삶에 남아 있는 사랑의 흔적을 돌아보게 된다.

“사랑은 사라지는가. 아니면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한 사람의 삶이 되는가.”

소설집 『별이 되어라』는 그 오래된 질문을 여섯 편의 이야기로 다시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작가의 말

가끔 생각한다.
어쩌면 나는 그때 이미 평생 써야 할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것이 아닐까.
사람들은 내게 왜 그렇게 사랑 이야기를 많이 쓰느냐고 묻는다. 때로는 연애소설만 쓴다는 말도 듣는다. 그러나 나는 변명하고 싶지 않다.

나는 처음부터 사랑을 써온 사람이다.
정확히 말하면 사랑을 통해 인간을 써온 사람이다.
사랑은 남녀 사이의 설렘만을 뜻하지 않는다. 부모와 자식의 마음이고, 친구를 향한 믿음이며,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는 기다림이고, 끝내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희망이다. 나는 그 수많은 사랑의 얼굴을 따라가며 결국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싶었다.

열여섯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아직도 내 마음에 온전히 흡족한 작품은 없다.
젊은 날에는 언젠가 그런 작품을 쓰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세월은 내게 문학에는 도착이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작가는 목표 지점에 이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방향을 향해 평생 걸어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그 길을 거북이처럼 걸어왔다.
느리지만 멈추지 않았고, 화려하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오늘 한 줄, 내일 한 줄을 쓰며 여기까지 왔다. 뒤를 돌아보니 나를 이곳까지 데려온 것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오래도록 원고지 앞에 앉아 있었던 시간이었다.

내게 가장 행복한 시간도 여전히 글을 쓰는 시간이다.
등장인물들이 내 곁으로 걸어오고, 이야기가 스스로 숨을 쉬기 시작하는 순간이면, 나는 가장 나다운 사람이 된다. 소설은 내 직업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 되었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 되었다.

추천평

「별이 되어라」의 첫 장면에서 ‘나’는 한낮의 하늘을 가르는 별똥별을 본다. 별이 진다는 건 누군가의 영혼이 하늘의 별이 되는 일이라는 할머니의 담담한 말처럼, 이 소설집은 떨어지는 별들에 관한 기록이다. 무너진 사랑과 좌절한 욕망, 그리고 떠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럼에도 작가는 별똥별이 남기고 간 궤적에서 끝내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인물과 사건들이 빚어낸 시끌벅적한 삶의 풍경에서 한 걸음 물러나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환멸의 짙은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는 작은 빛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 장두영 (문학평론가·아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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