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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예술과 학교 저에게 재능이 있나요? 예술과 학교 너의 절망을 말해봐 나무와 눈과 심장과 사람과 코끼리 글쓰기의 천적들 지우개 달린 연필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 탁구나 한 판 스무 살의 자화상 너의 네 번째 이름은 짧은 소설 - 히든 라이터 2 예술과 인생 다정한 무관심 메이드 인 택시 분노도 연민도 없이 창의적 공기 사전에 없는 단어만 있는 사전 달 위를 걷는 기분 인터내셔널 택시 보고타의 원배 씨에게 카프카적인, 너무나 카프카적인 짧은 소설 - 아임 유어 3 예술과 기술 싸우지도 달아나지도 않고 이야기의 열역학법칙 작가, 화자, 주인공 수학과 불 플롯이란 무엇인가 소설가의 기억력 황소가 하는 일, 전갈이 하는 일 발로 쓴다는 것 코리아, 사우스 코리아 작가입니다 도움받은 책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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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롯이 꼭 있어야 하나요?”
“이 소설이 좋았던 이유요? 좋은 데 이유가 필요한가요?” “소설이 꼭 뭘 말해야 하나요?” 그런 질문이 날아오면 밑도 끝도 없이 울고 싶어졌다. 억울한 일을 당한 기분이었다. 수업 도중 울면서 뛰쳐나갔다는 작가들의 심정을 알 것도 같았다. --- p.24 예술 학교라는 안드로메다에 불시착한 나는 그곳이 어떤 행성인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소설을 써온 십수 년 동안 한 번도 품어보지 못한 물음이었다. 예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으니. --- p.26 처음에는 영상 세대, 라는 라벨이 싫지 않았다. 싫을 것도 좋을 것도 없이 그냥 자연스러웠다. 나는 영상 세대였으니까. 그것이 떼어내고 싶은 꼬리표처럼 느껴진 건 세상이 한 편의 영화가 아니라 읽어야 할 책이 가득한 도서관으로 다가오고부터였다. --- p.34 상상은 세상에 없던 것을 발명하는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재배치하는 일에 가까울지 모른다. 몽상가의 꿈꾸는 눈이 아니라 탐험가의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일인지 모른다. --- p.38 자기도취에 빠져 쓴 기막힌 에피소드(라고 생각한 불필요한 에피소드)나 멋진 문장(이라고 착각한 겉멋 든 문장)을 끝내 버리지 못해 나중에 후회한 기억이 얼마나 많았던가. --- p.42 글쓰기는 말하기가 아닌 보여주기라고 배웠다. 그러나 내가 『이방인』에서 읽은 것은 말하기도 보여주기도 아니면서 둘 다이기도 한 문장이었다. --- p.84 자기만의 골방에서는 자기 안의 푸른 별을 발견할 수 없다. 신비롭게 빛나는 푸른 지구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달이라는 타자로 건너가야 한다. 산책을 완성하는 존재는 산책자가 아니라 산책길 어딘가에서 맞닥뜨리는 또 다른 나이기에. --- p.121 소설이 하는 일은 어딘가 존재하는 이름을 어떻게든 기억해내 불러주는 것인지도 몰라요. 소설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어떤 존재는 잃어버린 이름을 기억해내는지도 몰라요. 소설과 현실은 마주 보는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고 되비추기에 마술은 더 리얼해지고 현실은 더 마술 같아지는 것 아닐까요. --- p.133 좋은 이야기들은 대개 축조의 서사가 아니라 붕괴의 서사다. 축적의 서사가 아니라 탕진의 서사다. 그러나 그 붕괴와 탕진의 끝이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 p.165 한바탕 쏟아진 비를 머금어 검게 반들거리는 참나무들 사이를 걷고 또 걷는다. 눈송이가 눈사람의 주인이 아니듯 내 글의 주인은 내가 아님을, 나는 그저 온 세상을 떠도는 이야기, 그 작은 새의 발가락이 잠시 움키는 나뭇가지에 지나지 않음을 온몸으로 느끼며. --- p.1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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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과의 20년,
“예의 바른 말투로 날아드는 도발적인 질문들”과 함께 골몰한 글쓰기의 본질 소설가로 등단한 지 10여 년, 한국예술종합학교라는 낯선 예술 학교에 부임한 김경욱 작가는 교수라는 우위를 지키며 학생들 앞에 서기보다는 함께 골몰하는 자로서 시간을 보낸다. 먼저 선(先) 날 생(生), 먼저 태어나 앞서 써온 작가로서 김경욱은 예술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글쓰기란 무엇인가’라는 난제에 답을 들려주기 위해 각고한다. 온 마음이 꿀에 적셔진 듯 조용히 기뻤다. 강의실에서 밑도 끝도 없이 울고 싶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학생들은 나를 시험한 게 아니다. 그들은 진정 궁금했던 거다. 색깔도 없고 소리도 없는 글자 더미에 왜 마음이 송두리째 흔들리는지. 그리고 나는 두려웠던 거다. 답을 알지 못하는 질문들이. _본문에서 책에는 소설가를 지망하는 학생들과 생활하며 김경욱이 끝내 가닿은 통찰이 빼곡하다. 그럼에도 온전한 깨달음은 “질문의 양식”인 소설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기에, 김경욱의 깨달음은 언제나 또 다른 질문을 이끈다. 『저에게 재능이 있나요?』에서 질문과 깨달음은 경쾌한 탁구 랠리처럼 이어져 어느새 글에 대한 사유를 풍성하고도 단단하게 공글린다. ‘쓰기’를 지탱하는 ‘읽기’ 기대어 쓴 문장들 『저에게 재능이 있나요?』는 쓰는 사람의 자양분은 읽기라는 것을 일깨운다. 작가는 반 고흐의 편지를 읽으면서 “이야기는 그리거나 적는 게 아니라 들려주는 것”임을 전하고, 팀 오브라이언의 단편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을 읽으면서 자신의 체험을 모두의 이야기로 만들기까지 느꼈을 고통에 탄복한다. 작가만의 관점으로 열일곱 권의 책에서 가져온 각기 다른 문장들은 꾸준히 나아가는 작가에게 무수한 읽기의 시간이 있었음을 독자가 여실히 느끼도록 한다. 내게 소설의 문장이란 (내면) 고백이거나 (세계) 묘사였다. 『이방인』의 첫 줄을 접하기 전까지는. “아니, 어쩌면 어제.” 이것은 묘사인가 고백인가. 그 문장을 만나고야 나는 알았다. 세계에 대한 묘사로도 내면을 고백할 수 있다는 걸. 내면 고백으로도 세계를 묘사할 수 있다는 걸. 고백하면서 동시에 묘사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걸. _본문에서 잇따르는 크고 작은 좌절에도 쓰기를 멈출 수 없는 독자라면 ‘재능’이 결코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창작’이란 꾸준한 노동을 수반함을 말하는 이 책에서 오래 간직할 수 있는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말 지난 ‘작가의 말’들을 하나하나 꺼내 보았다. 열여덟 가지 서로 다른 이야기는 결국 글쓰기의 어려움과 두려움에 관한 거였다. 글을 쓰는 일이 여전히 어렵고 두려움에도 글쓰기에 관한 책을 낸다는 게 부끄럽고 민망하다. 하지만 글쓰기가 더 이상 어렵고 두렵지 않다면 이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글쓰기의 어려움과 두려움만이 글쓰기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기에. 이 책을 쓰는 동안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예술 학교 부임 스무 해 만에 처음으로 야외수업을 했다. 돗자리와 간식거리를 잔뜩 싸 들고 학교 근처 공원에 가서 먹고 읽고 듣고 떠들었다. 끝나지 않는 겨울 같던 지난봄, 학생들과 광장에도 나갔다. 함께 외치고 함께 분노하고 함께 걷고 함께 노래했다. 오염된 말들이 난무하는 병든 세상에 서는 혼자 글을 쓰고 혼자 행복할 수 없다. 글쓰기의 두려 움이 한밤의 어둠처럼 덮쳐 올 때마다 함께한 그 순간들이 빛이 되어주기를. 우리가 빛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어둠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빛을 사랑하기 때문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