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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수직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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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향
창연출판사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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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1부

바람꽃
아버지의 주름 속에 고인 웃음
돋보기안경
숨바꼭질
칸나꽃의 당당함
스마트 폰
상족암에서
고성 남산에는
서비스의 덫
진북면 정현리 291번지
아들과 엄마 사이
배둔 장터
명예퇴직
남편의 길
헌혈
또다시, 접시꽃
부당처우
오각형의 모양들
건재상에서
아로니아

2부

수직의 힘
문화동 연애다리
목욕탕에서 1
목욕탕에서 2
목욕탕에서 3
하루의 끝
복숭아
하필이면
사춘기와 갱년기
오늘 하루를 건너가는 것은
도서관에서
고성 철둑에는
8월 그날
국수 한 그릇
융프라우
신발
친구
새로운 기계는 무서운 개처럼 보인다
매미소리

3부

배웅
거미가 된 어머니
수선집에서
수술방 앞에서
병상일기 2
병상일기 3
신축건물 공사 중
남자의 등
납작한 폐지
우연히 나타난 바퀴벌레
소가야 고분에서
당신의 현재 속도는
콜리의 비애
신용카드
문밖의 아이
흔적
마지막 일기
호박
건너가다

4부

쉬옹성에서
부고장
시인의 조건
빨간 울음
네일아트
박노정 선생님
출근길에서
해롱이
공구상에서
활자 놀이
부치지 못하는 편지
보랏빛 가지
계란 프라이
복지매장
눈물 한쪽
광명역에서
우리집 성모
부엉이 웃음
공구상에서 2

해설
늙어가는 일상에 대응하는 존재의 활시위 -정이향 시의 의미
김경복(문학평론가,경남대교수)
시인의 말 / 정이향

저자 소개 1

마산 출생. 2009년 『시에』 등단. 시집 『좌회전 화살표』 『수직의 힘』 등. 경남문인협회 회원, 고성문인협회회원, 한국디카시연구소 사무국장, 고성디카시인협회 회장, 문덕수문학관 총괄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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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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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22쪽 ?
ISBN13
9791124885574

출판사 리뷰

시인의 말

사람들은 마음속에 많은 꽃을 키우고 산다

해를 머금은 울긋불긋한 꽃들부터 잎 넓은 꽃,
시들지 않고 하루 종일 웃는 꽃...

나의 마음속 꽃들은 어떤 모습일까?

욕심 탓인지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는 내 것들을 살포시 정원이란 책 속에 심어 본다

내보내는 아쉬움을 알면서도 다듬어서 이름표를 달아주는 것이 어미의 마음이다

어느 누구의 가슴속을 비집고 들어갈지 모르지만 내 시들이 이 세상에 흩어져 잘 살아가기를 바라며 훗날 그들이 튼실하게 다시 찾아오기도 하고 종종 안부를 물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통해 방생한다
- 정이향 시인

시집 해설

늙어가는 일상에 대응하는 존재의 활시위 - 정이향 시의 의미


김경복(문학평론가, 경남대 교수)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살고 있는 하루하루가 참으로 비루(鄙陋)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일상이 무미건조해져 한 생애가 덧없어져 보이고, 존재 자체가 팍 삭아버린 느낌이 드는 때가 있는 것이다. 여태 의식하지 못했던 시간이 메말라 까칠까칠하게 느껴지고, 주위가 그 생의 활기를 잃은 듯 바래 보인다. 이것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늙어버린 시간? 죽어가는 공간?

시간이 느슨해진다는 것은 삶에 활력이 없어져 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존재의 무력감이 반영된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늙어가는 일상’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하루하루의 일상이 활기와 탄력을 잃고 퇴색되어 가는 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는 법이다. 곧 생에 지쳐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어쩌면 그것은 역설적으로 이 지루한 생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계기가 발생했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현상을 아무나 감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여기 그와 같은 계기를 맞아 예민한 의식과 감각을 가지고 자신의 삶과 존재성을 성찰하는 시인이 있다. 정이향 시인이 바로 그다.

정이향 시인은 이번 두 번째 시집에 와서, 그녀의 나이가 50을 넘게 됨에 연유한 것인지 존재의 본질적 조건에 대한 사유와 함께 일상의 무기력함을 아주 실감나게 그려 보여주고 있다. 그 감각에 깊이 맺혀있는 것은 삶과 존재에 대한 사유와 함께 죽음이나 늙음에 대한 어찌할 수 없는 두려움과 수긍, 그와 함께 되돌릴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의 감정들이 짙게 배여 있다. 때문에 그 감정의 섬세함과 깊이에 대해 어떻게 세세하게 독자가 공감할 수 있겠는가? 그 감정의 편린이나마 공유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것이 보는 독자의 마음을 정화하게 한다는 긍정적 차원에서 그녀가 그리고 있는 시적 풍경 속으로 우리 모두 들어가 볼 일이다.

늙어가는 일상과 반성의식

모든 시인의 의식은 자신의 현존에 대해 날카롭게 서 있다. 자신의 실존적 상태를 통한 존재의 본질에 대한 인식이 바로 그와 같은 일일 것이다. 추측건대 정이향 시인은 이제 중년을 지나면서 막 늙음에 대해 의식하는 순간에 접어든 모양이다. 젊음과 활기가 한정 없이 지속되리라 생각하고 있다가 막상 어느 순간 삶의 모습이 예전과 같지 않고, 더 이상 활기차고 싱싱했던 젊은 날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을 때 마음속에 드는 낭패감 내지 상실감은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의 숙명적 모습이다. 그러한 의식과 감정을 정이향 시인은 이번 시집 곳곳에서 표출하고 있다. 다음 시편이 가장 대표적인 한 사례일 것이다.

용서 받지 못하는 가혹한 벌로
제일 먼저 눈을 흐리게 했다
안경을 손에 들고 안 보인다고 허둥대는 내 모습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만 바라보고 살았던 벌칙이다
돋보기 속에 내가 얌전히 들어간다
큰 글씨를 작게 읽는다
근시가 아닌 원시라고 우겨대는
안 보이는 작은 글씨가
마음을 숨기기 좋은 곳이라는 것을 알기에
때로는 안 보이는 것도
아직은 슬프지 않는 일로
기억하고 싶은 나이
- 「돋보기안경」 부분

이 시는 흔히 늙음의 한 사례로 일컬어지는 ‘노안(老眼)’에 대해 쓰고 있다. 노안이 오게 됨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상하게 ‘돋보기안경’을 끼게 되는데, 이 시의 시적 화자는 그것에 대해 매우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자신이 나이 들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문제는 그 마음의 한 자락에 자신의 삶에 대한 평가가 덧붙여져 있다는 사실이다. 화자는 ‘늙음’의 한 현상을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한 ‘벌(罰)’로, 즉 “용서 받지 못하는 가혹한 벌로/ 제일 먼저 눈을 흐리게 했다”는 인식을 한다. 이것은 젊은 시절을 조금 허랑방탕하게 보냈다는 통상적 차원에서의 자기반성을 넘어 가혹할 정도로 엄한 자기비판 내지 자학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시적 화자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존재의 한 형상을 ‘벌’로 인식하게 되었을까? 매우 궁금한 사항이 아닐 수 없다. ‘벌’의 의미는 그 원인에 해당하는 ‘죄(罪)’라는 전제를 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에 따라 생각해 본다면 시적 화자에게 늙음은 젊은 시절 지었던 여러 죄에 대한 형벌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어떤 형체인 셈이다. 강도의 측면에서 단순한 반성의 차원을 넘어섰다 하더라도 시적 화자가 젊은 시절 지었다고 판단하는 죄의 모습은 젊었기에 지을 수밖에 없는 현상, 아니 좀 더 내밀히 들어가 보면 젊음이라는 속성 자체가 지을 수밖에 없는 형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것은 존재론의 차원에서 상태의 변화에 대한 근원적 의미부여로 연결된다. 즉 늙음이 방탕한 젊음에 대한 벌의 의미일지 모르나, 이는 젊음 그 자체가 짓는 죄에 대한 무인지 상태에서 이를 인지하는, 다시 말해 인지하게 되는 상태로의 진전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상태를 객관화해 재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삶과 존재에 대한 진정한 의식의 싹틈 내지 도약이라 부를 만하다. 그렇기에 자신을 진지하고도 가혹하게 반성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그 벌을 받고 있는 현재의 처지에 대해 외면하고 있지 않은 모습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시적 화자는 자신의 현존 모습을 ‘벌’의 형상을 띠고 있다 하더라도 “때로는 안 보이는 것도/ 아직은 슬프지 않는 일로/ 기억하고 싶은 나이”로 정위하고 싶어 한다. 이는 수긍이자 수용이다. 그러나 그 수긍과 수용은 얼마나 처연하고 씁쓸할 것인가. 그런 점에서 늙음에 대한 자기비판 내지 자학은 정이향 시인의 지나친 자기 염결성의 발로인 셈이다.

늙어가는 실존의 하루하루는 결코 행복한 날들의 연속은 아닐 것이다. 어떨 때는 지난 젊은 날들을 간절히 그리워했다가, 어떨 때는 늙어가는 이 삶의 의미를 보다 충만하게 하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고민으로 시간을 채웠을 것이다. 그것은 존재 전환의 시기에 보여줄 법한 삶과 인식의 전형이다. 정이향의 이번 시집의 문제작이라 할 수 있는 다음 시편이 바로 이점을 잘 보여준다. 그 시는 이렇다.

오늘 하루를 건너가는 것은
발목을 부러뜨리고 손목을 부러뜨리고 모가지를 부러뜨리는 일이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로
아픈 하루가 지나간다

하루를 건너가는 것은
슬픔과 기쁨이
한 통로를 지나가는 것을
말라버린 장미 잎을 펴다가 부러뜨리면서 마음 아파하는 일
압화를 만들기 위해 꽃봉오리를 꺾어서 책 속에 가두는 일이다

하루를 건너가는 것은
어제 일들을 지우고 새로운 날들로
우리를 묶는 일이지
그 세월 속에 묵묵히 걸어갈 수밖에 없는 세상 안에서

하루를 건너가는 것은
발목에 힘을 주며
손아귀에 주먹을 쥐는 일로
익숙한 나를 돌아보는 일이다
부러뜨린 손과 발목,
모가지를 다시 부여잡고
밤마다 다른 하루가 문밖에서 기다리며
달력 한 장 넘길 수 있는,

또 다른
한 달을 꿈꾸는 것이다
- 「오늘 하루를 건너가는 것은」 전문

너무나 충격적인 언사로 자신의 현존 삶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놀랍다 못해 기괴하다. 아니 어떻게 “오늘 하루를 건너가는 것(이)/ 발목을 부러뜨리고 손목을 부러뜨리고 모가지를 부러뜨리는 일”이 될 수 있는가? 삶을 평탄하게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나날의 삶의 모습을 도저히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시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경악에서 처량으로, 그리고 끝내 애틋함으로 심리적 변화를 맛보다 시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들고 말 것이다. 참으로 슬프면서도 강인한 삶의 실존을 목도한다는 점에서 존재의 한 국면을 수긍할 수밖에 없게 하는 느낌을 준다.

이 시의 감상은 앞의 「돋보기안경」 시의 연장선상에서 할 때 보다 분명해진다. 늙음을 고통스러워하는 화자는 ‘오늘 하루를 건너가는 것’, 즉 오늘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행복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늙음에 따른 상실감과 낭패감이 점차 삶의 현실에서 전면화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발목을 부러뜨리고 손목을 부러뜨리고 모가지를 부러뜨리는 일”처럼 존재의 외형적 차원에서 불구화와 불모화가 진행된다는 의미이다.

그 점에서 이 시의 기본적인 정서는 시 속에서 “아픈 하루”로 집약되어 나타나듯이 매우 슬프고도 고통스러운 감정이다. 그런데 이 시의 문제성은 시적 화자가 그 고통 속에서 자신의 실존에 가해오는 슬픔과 고통을 ‘직시’하고 있는 데서 발생한다. 즉 ‘하루를 건너가는 것’이 “부러뜨린 손과 발목,/ 모가지를 다시 부여잡고/ 밤마다 다른 하루가 문밖에서 기다리며/ 달력 한 장 넘길 수 있는,// 또 다른/ 한 달을 꿈꾸는 것이다”로 전화되는 지점의 발견이다. 이는 슬픔과 고통의 힘을 또 다른 미래를 위한 원동력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매우 역설적인 의미를 드러내는 현상이다. 슬픔이 기쁨으로, 고통이 즐거움으로 전환되는 변증법적 도약의 의미가, 그 기이한 생성의 힘이 이 시 구절들 속에 매우 역설적인 상태로 들어있다는 말이다.

이 지점에 오면 늙음은 결코 슬픈 현상에 그치는 것은 분명 아니다. 오히려 젊음이라는 속성의 질적 전환이자 필연적 승화에 가까운 의미를 띤다. 그것은 존재의 성스러운 상태로의 도약에 가까운 의미다. 그 과정이 고통스럽고 슬프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고통과 슬픔이 역설적으로 보다 한 차원 높은 존재성을 터득하게 해주는 추동력이 돼주고 있다는 말이다. 그 점에서 시인의 이번 시집의 다른 시, 가령 “하루라도 닦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 때문에/ 엄숙하게/ 하얀 처방전을 받고/ 박박 문지르고 있다/ 나의 잘못을 하나씩 나열하면서”(「하루의 끝」)에 보이는 ‘나의 잘못을 하나씩 나열’하는 행동이나 ‘박박 문지름’의 반성적 행동은 정이향 시인이 보여주는 의식의 염결성에 비추어 볼 때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것은 더 초라한 상태로 늙어가기 보다 진정한 실존적 정체성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기 위한 방편으로 자신의 일상에 가하는 의식적 분투 행위인 것이다. ‘늙어가는 일상’에 대해 자신의 의식마저 늙어갈 수 없다는 치열한 자기검열 내지 반성인 것이다. 그 점에서 시인의 의식은 매우 날 서 있다.

죽음에 대한 의식과 존재에의 수긍

늙음은 죽음에 이르는 통로다. 늙음에 대한 실존적 인식은 필연적으로 죽음에 대한 사유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죽음에 대한 의식은 그것이 소멸이라는 점의 특수성 때문에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불안과 공포로 현존의 삶의 의미를 더욱 예민하게 하거나 풍부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평탄으로 지속되는 삶의 결에 출렁대는 무늬를 새겨지게 함으로써 그것이 아름답던 추하던 하나의 놀라움을 발생하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음 시가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닐까?

등을 말고 앉은 할머니의 등을 밀어드렸다
고맙다는 말과 누구냐고 묻는다
아무런 말을 건네지 못하고 살짝 웃음을 얹는다
세신 하는 은숙 동생이
근래에 할머니들이 안보이면
요양원으로 혹은 갑자기 세상을 떠나신다고 말했다
등이 말린 할머니를 보았다
저 할머니도 목욕을 하고 난 뒤 갈 곳은 집이 아니구나
아무것도 모르는 할머니는 지금 충실히 목욕 중이다
씻은 곳을 몇 번이고 다시 물을 껴 얹고
나가지 않는다
헐렁해진 뱃가죽이 이리저리 출렁거린다
목욕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불안하다
늙어가고 싶지 않은 저 길
가고 싶지 않은 저 길이 미끄러운 물길이다
- 「목욕탕에서 3」 전문

이 시는 극히 일상적 현실 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하나의 현상을 통해 존재의 본질에 대해 사유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시적 도정으로 볼 때 늙어가는 화자는 더 늙은 존재, 곧 죽음에 이를지도 모를 ‘할머니’의 등을 밀면서 삶과 존재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내용상으로 보면 늙은 할머니는 “목욕을 하고 난 뒤 갈 곳은 집이 아니구나”에서 확인할 수 있듯 곧 요양원 아니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시적 화자는 그것이 지금은 자신보다 늙은 할머니의 일이지만 곧 그것이 나의 일이 될 것이기도 하다는 인식으로 인해 현존에 대한 인식이 달라짐을 보여준다. 곧 “목욕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불안하다/ 늙어가고 싶지 않은 저 길/ 가고 싶지 않은 저 길이 미끄러운 물길이다”라는 표현은 불안으로 인해 현재의 실존이 ‘미끄러운 길’로 탈바꿈하게 된다는 사실적 인식의 드러냄이다.

시적 화자에게 ‘미끄러운 길’은 평탄한 삶의 길에서 벗어난 불안한 길의 의미를 갖는 것이지만 그것은 시적 내용의 전개로 볼 때 아무런 의식없이 살았던 삶의 모습에서 존재의 본질과 삶의 진정성에 대한 자각을 하게 되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즉 의식의 깨어남을 전제로 한 존재의식의 도약인 것이다. 이 점에서 이러한 시들의 의미는 앞 절에서 보았던 늙은 일상에 대한 반성의식과 겹쳐지면서 보다 숭고한 존재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점을 시적 화자가 탐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의식은 존재의 본질이나 필연성에 대한 납득과 수긍을 불러온다. 그것은 보다 고차원적 차원에서 존재의 본질에 대한 특성을 수용하는 것이기에 자신의 현존 삶의 모습이나 앞으로 올 늙음이나 죽음에 대한 태도를 보다 담백하게 하고 초연하게 만든다. 다음 시가 바로 그런 경우를 잘 보여준다.

먼저 보내야 하는 사람이 있다
차례 없이 간다는 길
어둑해지는 그림자가 깔려있다
배웅을 준비하는 지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눈으로 듣는 소리로
바람으로 지나온 것들이 쓸려간다
담장 밖으로 나온 능소화
온몸이 지치는 줄 모르고 핀다
주황색담장이 된 줄 모르고
하루 밤 자고나면 뭉텅 떨어지는 꽃들
침상에 누운 머리엔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자리를 떠나고
병실복도 간간이
웃음과 울음을 거두고
남은 달력 숫자가 검은
상장을 달고 있다
- 「배웅」 전문

어조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는 작품이다. 내용으로 볼 때 이 시는 죽음을 통한 이별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으로 풀이된다. 죽음으로 인한 이별을 통해 시적 화자는 “먼저 보내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깨달음을 담담하게 인식한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쉬이 이루어지는 ‘마중’과 ‘배웅’이 어떻게 존재의 본질이나 존재성의 한 국면에 대응될 수 있는지를 암암리에 체득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보다 높은 차원으로의 눈뜸이다. 그런 점에서 평소 볼 수 없었던 시간의 얼룩이나 그림자를 볼 수 있게 됨으로써, 즉 “남은 달력 숫자가 검은/ 상장을 달고 있”는 것을 예민하고 놀라운 감각으로 발견하게 됨으로써 삶의 본질에 대해 시인 나름의 의미를 통찰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늙어가는 존재가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존재성일 것이다.

그랬을 때 정이향 시인이 추구하는 존재의 본성은 무엇일까 하는 점을 생각해보는 것은 이 시점에서 필요한 일이다. 그것을 알게 해주는 시적 구절이 이번 시집에 있다. 그것은 “호박은 하루가 다르게 땀을 뻘뻘 흘리며/ 노랗게 꽃을 피운다/ 뱃속이 노랗게 물들어간다/ 장마 통에 호박열매는/ 매달다 떨어지고/ 매달다 떨어지고 반복하다/ 앞만 보고 가는 저 이파리/ 상세불명의 불임으로/ 바다가 없는 곳에서/ 빈 배를 젓고 항해 중이다”(「호박」)에 나타난다. 곧 무(無)에서 탄생된 존재는 ‘호박’에 비유된 사물처럼 “앞만 보고 가는” 본능성에, “상세불명의 불임”에 해당하는 결여와 결핍을 본질로 두고, “바다가 없는 곳에서/ 빈 배를 젓고 항해 중”인 고난과 불가해성의 대상이 된다. 참으로 불행하고 안타까운 존재인 것이다.

다만 이 구절에서 위안이 되는 점은 “앞만 보고 가는 저 이파리”에 스며있는 향일성(向日性)이다. ‘향일성’, 혹은 ‘굴광성(屈光性)’은 빛을 향해 나아간다는 점에서 보다 가치 있는 것으로 나아감을 상징하는 지향성이다. 그 점에서 존재의 본질은 그 많은 결핍과 훼손에도 불구하고 보다 지고하고 아름다운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식의 도약에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을 시인 정이향은 이번 시집에서 내내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육친에 대한 사랑과 존재로서의 활시위

죽음에 대한 의식은 살아있는 것에 대한 의식을 예민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미 죽어버린 대상에 대한 그리움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죽음은 소멸이지만 생성의 데칼코마니가 된다는 측면에서, 좀 더 사유를 진전시켜 ‘나’란 존재를 이 지상에 출현케 해준 근원으로서의 부모에 대한 생각을 깊게 만든다. 그것도 특히 돌아가시어 없는 부모님이라면 자신의 죽음에 대한 불안과 슬픔을 그들에 투영하여 참된 위로와 함께 존재 성숙이란 감정에 대해 확인받고자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음 두 편의 시가 바로 그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는 작품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절룩거리는 어머니 다리를 따라
심어진 덩굴장미
꽃이 핀다
어머니가 나가신 대문에는
삐걱거리는 녹슨 못이 마중을 나와 있다
쭉 뻗은 감나무에 매달린 감
늙어 비틀어진 엉덩이가 아무 곳에서 퍼질러 쓰러진다
친구삼아 의지한 중풍
끝내 버리지 못해 한 몸으로 나가신다

빈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와서
오랜만에 들렀던 그곳에
어머니가 살아 있다
- 「흔적」 부분

뜬눈으로 아침을 맞이해도 웃을 수 있는
부엉이 웃음이 그립다
아버지는 밤마다 찾아와
시집 간 딸아이 집을 둘러보시고
오토바이 소리 남기고 간다
월급 없는 경비로
외딴집에 사는 막내딸걱정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맴돌다 가는
무게가 다른 발걸음을 대문 앞에 놓고 가신다
늦게 다니는 사위에게 보내는 경고신호
딸아이에게는 늘 곁에 있어 준다는 황색신호
오토바이 소리는 붉은 등을 켜고
쏜살같이 달아나지만
창밖에서
부엉이 눈을 달고 밤새 졸지 않는다
- 「부엉이 웃음」 전문

참으로 아름다운 시편들이다. 부모님의 사랑뿐만 아니라 그 부모님에 대한 시적 화자의 그리움이 매우 따뜻하면서도 애틋하게 그려져 있다. 우선, 「흔적」의 내용으로 볼 때 어머니는 다리를 다쳤는지 ‘절룩거리는’ 모습을 보인다. 시적 화자에게 그것이 가장 가슴에 맺혀 있던 잔상인 모양이다. 그런데 그 절룩거리는 어머니의 다리를 따라 덩굴장미가 꽃 피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여긴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어머니의 사랑, 즉 어머니란 이름의 모성이 갖는 생성의 힘을 은연중 늘 느껴왔다는 무의식적 토로 아닐까? 시적 화자의 유년 체험에 근거한 이러한 직관은 지금도 빈집에 가 덩굴장미가 꽃피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 즉시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적 화자에게 “빈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와서/ 오랜만에 들렀던 그곳에/ 어머니가 살아 있다”는 감회와 놀라움은 존재의 본질적 측면에서 볼 때 진정한 실감이다. 존재는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하나의 감각으로 주어지고 다가온다. 고향의 빈집과 그 빈집의 덩굴장미는 시간을 초월하는 감각의 상징인 것이다. 그 감각을 보유하고 있는 동안 비록 현실 공간에서는 돌아가신 어머니지만 상징과 영적 공간에서 어머니는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한다. 그 존재성이 현존하는 시적 화자에 흘러넘쳐 가슴 따뜻해져 돌아오는 내용이 이 시의 시적 내용인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부엉이 웃음」도 이 점에서 마찬가지다. 이 시는 흔히 ‘딸바보’라 불려지는 아버지의 모습을 ‘부엉이’의 생태에 빗대어, 시집간 딸을 잊지 못해 밤에도 지켜주고 있는 아버지의 사랑을 추억함으로써 보는 독자의 심금을 울린다. 참으로 좋은 아버지이자 좋은 딸의 감성이다. ‘부엉이 웃음’이야말로 아버지의 사랑을 이 지상의 하나밖에 없는 가장 고유하고 특별한 것으로 만든 미학적 발견이다. 그 웃음의 감각이 있는 한 아버지의 존재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대상이 된다. 시적 비전으로서 영원한 현재성을 획득한 상징 동력이 되는 것이다. 감각과 상징이 지금 여기의 현존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은 시적 이미지가 갖는 깊은 울림에 연원한다. 이 시의 ‘부엉이 웃음’은 그만한 내공의 깊이를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웃음소리를 떠올리며 시적 화자가 오늘 하루의 살아갈 힘을 얻게 되리란 추측은 너무나 정당한 것이다.

이러한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다시 존재의 근원에 해당하는 고향과 유년에 대한 그리움으로 확산될 것은 자명하다. 현재의 일상적 삶이 갖는 무력함과 무미건조함을 달래주기 위한 방편의 인식인 것이다. 가령 “내 나이를 잃고 온 진북면 정현리 291번지/ 처음 내가 부유하며 닿았던 발길/ 지금 그곳은 텅 빈 들판으로 또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인생의 책장처럼 두꺼워진 시간// 나의 젊은 울음을 걸어두고 온 그곳/ 사랑 하나가 무게가 되어/ 나를 붙잡았던 곳”(「진북면 정현리 291번지」)이나, “술 취한 친구가 보았다는 기차/ 만남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추억 그릇을 안고/ 유년의 기억 속 한 장씩 넘어가고 있는/ 고성 철둑”(「고성 철둑에는」)의 표현은 과거의 충실했던 삶의 감각을 통해 현존이 갖는 결핍과 결여의 감각을 교정하고 보충하려 한다. 그것은 늙어감에 따른 존재의 무기력함을 이겨내기 위한 존재 승화의 감각이다. 보다 순수하고 충만했던 시기로의 퇴행이 아니라 그와 같은 감각을 지금 여기로 재소환하여 현존 삶의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하기 위함인 것이다.

충만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구체적 실천은 정이향 시인에게 시쓰기가 될 것은 너무나 명약관화한 일이다. 실제 이번 시집에서 시쓰기와 관련된 여러 시편을 통해 보다 고차원적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길에 대해 모색하고 있다. 다음 시편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시인은 배가 고픈 사람들이다
밥을 먹어도 부르지 않는
허기진 위를 하나 더 가지고 산다
길거리에서 차안에서 시장에서 들판에서
넝마주이처럼 시를 줍는다
매일 충혈 된 눈으로
계절을 탓하고 바람을 탓하고
남편을 팔고 자식을 팔기도 한다
시는 곳곳에
머리만 보이고 꼬리가 없는
꼬리만 있고 머리가 없는 무서운 동물로
사라진다
허기진 인생을 버리지 못하는
그들은
일상을 비틀어 짜는 걸레처럼
때로는 대장간에서
뜨거운 불길을 내어 시를 담금질하고
- 「시인의 조건」 전문

이 시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허기’다. 시적 화자는 “시인은 배가 고픈 사람들이다/ 밥을 먹어도 부르지 않는/ 허기진 위를 하나 더 가지고 산다”고 말함으로써 시인의 본질적 조건으로서 ‘허기진 위’를 언급하고 있다. 시를 읽어볼수록 그 허기는 결코 물질적 음식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곧 허기의 실체는 정신적 양식의 부족에서 오는 것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신적 양식으로 허기는 무엇인가? 그것을 딱히 한 마디로 이것이다라고 재단할 수 없지만 정이향 시인의 시적 도정을 따라오며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서 존재의 본질 추구, 또는 진정한 실존이 그것이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다. 보다 진정하고 고차원적 존재로서 살아가는 길에 대한 모색과 탐구가 여러 현실적 장애가 막혀 주춤하게 될 때 시인은 번민과 고뇌로 방황한다. 그 방황의 내용과 흔적이 바로 ‘허기’의 정체다.

때문에 이 허기를 달래는 것은 보통의 방법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이 시의 시적 화자는 자기 나름의 방법을 터득한 것인지 그 방법을 말하고 있다. 곧 “일상을 비틀어 짜는 걸레처럼/ 때로는 대장간에서/ 뜨거운 불길을 내어 시를 담금질하고”에 담겨있는 초월과 자학이 그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 구절들이 암시하는 바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우선 ‘일상을 비틀어 짜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초월의 감각과 정서다. 늙어가는 일상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 점에서 늙어가는 일상을 보다 싱싱한 일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나의 인식을 날카롭게 벼려 늙어가는 일상을 비틀거나 베어버려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일상을 초월하는 존재, 다시 말해 성스러운 존재로의 도약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의 지향이 그렇게 되지 못하였을 때, 즉 늙어버린 일상에 안주하고 타성화되어 살아가는 존재로 남았을 때 시적 화자는 자신의 실존을 ‘뜨거운 불길을 내어 담금질’하고자 한다. 이 뜨거운 불길로 담글질하여 나온 것이 내용 상 ‘시’가 되겠지만 실제로는 시와 같은 삶을 살고자 하는 시적 화자의 존재성이다. 그 점에서 “끊지 못하는 손장난/ 본전치기도 못하는/ 유산되는 시를 밤마다 잉태한다”(「활자놀이」)고 정이향 시인이 자신의 실존적 삶의 방식으로 시쓰기의 의미를 고백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아름다운 행위다.

그렇게 볼 때 정이향 시인에게 시와 시쓰기는 존재의 승화와 맞물린 거룩한 행위다. 무의미로 떨어지는 ‘늙어가는 일상’에 대항하여 자신의 진정한 존재성을 획득하기 위한 정신적 미학적 분투행위인 것이다. 그것은 충만한 의미를 지향하는 존재라면 당연히 지녀야 할 ‘고집’, 곧 “버려야 할 거푸집에 담긴 수직의 힘으로/ 그들의 눈에 비치는 한쪽 거울만 바라보는 눈으로/ 어른이라 어른이라/ 말하는 고집이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고 있다”(「수직의 힘」)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어른’이라는 이름의 정당한 존재성이 지녀할 ‘수직의 힘’이자 ‘존재의 활시위’으로서 취해야 할 고집인 것이다.

따라서 정이향 시인은 시를 통해 삶과 존재의 의미를 터득하면서 무의미로 변해가는 늙어가는 일상에 대응하기 위해, 그리고 존재의 정당한 실존을 위해 팽팽한 존재의 활시위를 지금도, 점차 나이 들어가는 내일도 겨누고 서 있을 것이란 점을 짐작할 수 있다. 그 고군분투(孤軍奮鬪)에 경의를 표하며, 보다 성스럽고 아름다운 존재성으로 나아가기를, 더 이상 세상의 무의미와 타락에 지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나아가기를 그녀의 시 풍경 속을 거슬러 나온 독자의 한 사람으로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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