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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 5
소소한 하루 …… 9 그리운 하루 …… 71 요가의 하루 …… 133 여행자의 하루 …… 177 회복의 하루 …… 225 추천의 글 …… 2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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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비우려고 빈몸으로 절에 들어간 그녀가, 6개월 후에는 트럭으로 짐을 가득 싣고 나왔다고 했다. 영적 공부를 한다고 쌓여가는 것들을 보니 그녀의 말이 떠올라 웃음이 나온다. 뭘 그리 비움을 가득 채웠을까. 아니, 간절함이라고 말해볼까? 쌓여가는 것들을 보며 오늘은 내 마음에 트럭을 대기시켜야겠다. 1톤으로.
--- 「비움과 채움」 중에서 이제 상처받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하지 않을 것이기에. 왜냐하면 진짜 사랑할 것이기에. 보통의 사랑, 특별함을 넘어선 자리. 칼날이 사랑이 될 수 있을까. 예리함은 포용이 될 수 있을까. 특별함으로 상대를 구속하고 나를 속박하지 않는 사랑은 내려놓는 것. 특별하지 않는 특별한 보통의 사랑. --- 「보통의 사랑」 중에서 예전에 지인들과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쩌다가 어렸을 때 맞아 본 이야기들이 나왔다. 파리채부터 체벌의 무기들이 다양했다. 어느새 무기들의 강도들이 높아갔고, 마치 배틀하듯 웃픈 이야기들이 오가며 끝이 나지 않을 때. “너희 목탁으로 맞아봤어?” 그의 아버지는 스님이었다. (대처승 : 자식을 둔 승려) 목탁~ 거의 기절했다고 한다. 남은 사람들이 두 손을 들었다. 생존자들(?)의 밤은 깊어갔다.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그리고 목탁으로도 때리지 마라. --- 「때리지 마라」 중에서 어린 시절, 엄마는 늘 교회 새벽예배를 다니셨다. 이른 아침이면 교회를 다녀오는 엄마의 발자국 소리. 집 가까이에서는 그 걸음이 빨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엄마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얼굴을 살피고 이불을 덮어주고 베개를 고쳐 살폈다. 나는 예민한 아이여서 그때마다 잠을 깨고, 잠을 깼다고 투정을 부렸다. 이제 엄마는 없고 베개를 볼 때마다 아련한 기억이 난다. 사랑이란 때론 얼마나 성가신 것인가. 새벽공기, 엄마의 빨라지는 발자국 소리. 때때로 성가셨던 베개 고쳐 주었던 손길이 그립다. --- 「엄마와 베개」 중에서 옛날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악기 연주로 실기 테스트를 한다고 다룰 수 있는 자기만의 악기를 준비하라고 하였다. 느닷없는 음악 중간고사 발표였다. 시험 날, 아이들은 난리법석. 어떤 아이는 옷도 깔맞춤하여 가야금도 연주하고 바이올린도 나오고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차례였 다. “선생님. 저의 악기는 휘파람입니다. 휘파람을 부르겠습니다”. 선생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휘파람으로 ‘세레나데’를 기가 막히게 불렀다. 아이들이 환호의 박수를 보냈다. 얼마 전 인도 오르빈도 아쉬람 앞 거리 난장에서 정신 팔려 ‘텅드럼’이란 것을 샀다. 싱잉볼 같기도 하고 휘파람 같기도 하고. 이제 나의 악기를 만났다. 18세 휘파람 소녀는 중년에 텅드럼과 조우한다. --- 「휘파람 소녀」 중에서 내 나이 서른 살. 결혼 한달 전에 암이 걸렸다. 처음에는 초기라 낙관했는데 잡히지 않았다. 계속된 재발로 1년에 암수술 3번, 항암 12번, 방사선 30번. 더 이상 쉽지 않다고 하여 몸 둘 바를 몰라 도시를 등지고 해발 500m 산골로 갔다. 사는 것에 희망을 걸기도 두렵고 죽는 것은 더 두려웠던 날들이었다. 그리고 22년의 세월이 지났다. 늙어가는 것이 한때 소원이었던 나는 늙어가고 있다. 돌아본다. 삶이 준 지혜 하나는 ‘아무것도 모른다’이다. 지나친 낙관도, 지나친 비관도 하지 말자. 또 하나, 삶은 고통이어도 눈부시게 아름다워라. 매일 만나고 매일 헤어지는 모든 순간이 완벽한 하루이다. --- 「완벽한 하루」 중에서 한 마을이 있었다. 청년들이 시장에 당나귀를 팔러 간다. 당나귀 길에서 당나귀들이 주인에 대해 말한다. “이 청년이 나의 고삐를 붙잡아서 내가 도망가지 못한다고 하는데, 천만의 말씀. 그도 나를 붙잡느라 어디도 갈 수 없어”. 무엇을 붙잡고 있는 건 그것 또한 우리를 붙잡는 것이다. 그것을 통제한다면 그것이 우리를 통제한다. 흘러가도록 두어라. 명상도 마찬가지. 생각을 통제하거나 따라가지 말고 ‘생각이 오는구나’ 흐르도록 한다면 멈출 때가 온다. --- 「당나귀와 명상」 중에서 내 젊은 날 암 투병을 했을 때 일이다. 여러 가지 감정들이 오가던 어느 날은 억울함이 북받쳤다. ‘왜 하필 나?’, ‘나 착하게 살았는데’ 씩씩거리며 병원을 돌아다니다가 길을 잃었다. 소아암 병동을 가게 되었다. 아, 어린 아이들이…… 머리카락 다 빠지고 자기 몸뚱이만 한 링겔을 맞으 며…… 충격적이고 맘이 아팠다. 말이 안 되잖아…… 나는 한참을 울었다. 억울하다고 투정부린 것이 부끄러웠다. 억울한 날, 소아암 병동에서. --- 「억울한 날」 중에서 제주 해녀들의 쉼터이자 이야기 공간. 추운 겨울 물질을 마치고 불을 지펴서 몸을 말린다. 옷을 갈아입고 다시 바다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돌담으로 에워싼 공간. 나는 누군가의 불턱이 되어주는지 물어본다. --- 「불턱」 중에서 “용서해라, 잊어라, 상생하라” 하지 마라. 원수를 사랑하는 건 예수님의 몫. 폭력 피해자에게 달라이라마와 테레사 수녀를 강요하지 마라. 남은 자들이 할 것은 손상된 현장을 일구고 밑바닥까지 흔들린 신뢰를 복구하는 것. 고립을 넘어 연결감으로 함께하는 것. 용서하는 것 or 용서 못 하는 것.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통제권을 회복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용서, 화해라는 말, 때로는 무자비한 폭력이고 가해의 언어라는 것을. 함께할 수 없다면 침묵할 것. --- 「용서 폭력」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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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저는 상처와 폭력으로 얼룩진 이웃들의 마음을 일으키는 데 함께하는 상담심리사입니다. 타인의 아픔에는 함께하며, 정작 제자신의 안식은 엄마가 돌아가신 지 1년이 지나서야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휴식의 시간, 그림에 소질이 없음에도 어느 날 문득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소소한 하루, 그리운 기억, 요가와 여행의 순간들. 그저 흘러가는 날들을 기록하며 저의 이야기와 이웃들의 삶을 담았습니 다. 이 책은 그렇게 쌓인 기록의 묶음입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이 과정은 엄마를 향한 저의 애도의 시간이었습니다. 동시에 지나온 삶을 겸허히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었고, 평범한 삶 속에 깃든 이웃들의 용기를 발견하는 여정이었습니다. 이 기록들을 하나씩 나눌 때마다 함께 울고 웃어준 분들이 있었습니다. 덕분에 저의 쉼은 고립이 아닌 ‘연결 속의 진정한 안식’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세상에 나오기 전, 이미 저에게 가장 깊은 치유를 선물했습니다. 서툰 글씨체와 그림을 책으로 내는 여정에 따뜻한 눈빛을 더해 준 모든 분과 특별히 송선미 님, 그리고 삶창 출판사에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지나온 날도 지금의 날도, 앞으로 날도 모든 순간 다 완벽한 하루입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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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 에세이를 읽다 보면 그녀의 세계는 투쟁이 아니라 받아들임과 해학을 넘어 치유의 역사로 계속해서 확장되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기승전요가’로 말한다면 카타우파니샤드에서의 죽음의 신, 야마와 대화를 나누는 나치케타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진리는 싸워서 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드러날 때까지 조용히 머무는 것이다.” 그녀의 죽음과 두려움을 넘어서 수용을 통한 자유의 역사가 계속되기를……. - 키란 (다정요가샬라 대표, 요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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