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프롤로그
1부 2부 |
김창현의 다른 상품
|
학교는 이제 더 이상 성욱과 친구들의 공간이 아니었다. 정문 옆 담벼락에는 휴교령을 알리는 공고문이 덩그러니 붙어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종이 한 장이 이곳에서 더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전하고 있었다.
--- p.119 성욱이 두려워한 것은 또래라면 으레 품는 막연한 불안이 아니었다.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는 종류의 공포도 아니었다. 언젠가 감옥에 들어가게 되리라는 사실쯤은 그는 이미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진짜 견디기 힘든 것은 끌려간 뒤의 시간이었고, 그곳에서 벌어질 일들이었다. --- p.136 군인은 통제의 대상이 되어 버티다가 어느 순간 그 통제를 가혹하게 행사하는 주체가 된다. 그리고 깨닫는다. 군대는 단순히 훈련과 명령의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을 지배하고 굴복시키며 끝내는 스스로 그 굴복의 일부가 되게 만드는 장치라는 것을. 영혼마저 고개 숙이게 만드는 곳. 그곳이 군대였다. 주위 사람들은 그렇게 영혼까지 털리고 너덜너덜해져 돌아온 그를 가리켜 ‘어른이 되어 돌아왔다’고 말했다. --- p.154~155 자대 배치를 받은 날, 성욱이 총기를 지급받고 나서 가장 먼저 손에 쥔 것은 군인 수첩이었다. 합성 비닐로 된 표지에는 백두산 정상에 태극기를 꽂는 국군의 모습이 인쇄되어 있고, 그 아래로 ‘멸공 통일’이라는 글자가 또렷하게 박혀 있었다. 수첩은 작고 얇았지만, 그 안에 담긴 세계는 크고 무거워 보였다. --- p.324 |
|
한국 현대사의 아픈 자리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우리에게 처음 다가온 소설 강제징집이 되어 군에 끌려가 프락치 강요를 받았던 시대, 평범했던 청년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모습으로 삶을 일궈나갔을까. 실제로 재학 중 강제징집을 당했고 그 뒤 노동운동에 투신했던 김창현이 장편소설 『프락치』를 내놓았다. 전두환 정권에서 자행된 녹화사업은 학생운동에 참여한 이들을 강제로 입영시켜 보안사에 감금하고 고문과 회유를 통해 프락치로 활용하는 사업이었다. 작가는 자신과 친구들이 겪었던 국가 폭력과 인권 유린, 그리고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 과정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특히 그 과정에서 배제되고 입 밖으로 내기 꺼렸던 프락치 활동 이야기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프락치』는 회피하고 싶은 상처의 역사를 오히려 품 안으로 끌고 들어와 더욱 속속들이 들추어낸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여전히 변화를 꿈꾸며 행동하는 사람들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급박하게 전개되는 서사와 삶의 전 과정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힘은 삶이 결코 단편적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이 아님을 효과적으로 담아낸다. 이 소설은 저항하며 살아온 이가 “노예로 살기보다 내 운명과 세상의 주인으로 살고자 하는 존재”들에게 바치는 기나긴 연가와 같다. 인간이 해야 할 일과 인간이면 하지 말아야 할 일 이른바 ‘강제징집 및 프락치 강요 공작 사건’은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정권 시기인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벌어졌다. 민주화를 요구하며 학생운동을 하던 대학생들을 탄압하기 위해 강제로 군대에 끌고 가 고문과 협박, 회유를 통해 전향시킨 뒤 프락치(정보원)로 활용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따르면, 공식 확인된 강제징집 인원만 2921명에 달하며, 이 가운데 2388명이 프락치 활동을 강요받는 공작의 대상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가혹행위와 정신적 압박감, 죄책감 등으로 의문사한 청년도 최소 9명으로 확인되었다. 작가는 이들 청년들이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며 학생운동을 하다가 국가권력이 자행한 녹화사업의 희생양이 되고, 이후 노동운동에 투신하는 과정을 전형화하는 데 성공한다. 이는 개개인이 주체로서 겪어온 삶을 단순화했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역사에 존재했던 아픈 과거가 특별한 누군가가 체험했던 경험이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고 함께했던 상처였고 꿈이었음을 상기시킨다. 여기에 더해 노동운동 내부 정파 간 이론 투쟁과 사업장에서의 헌신적인 활동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역사철학회’라는 동아리에서 만난 80학번 동기인 성욱, 순오, 두영, 용만은 함께 어울리며 각자가 그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꿈을 꾼다. 하지만 이들이 처한 시대는 군부가 광주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하며 정권을 찬탈하고, 치밀하고 혹독한 탄압을 자행하던 때였다. 열띤 논쟁을 벌이며 토론하고, 웃통을 벗어던진 채 함께 운동하고, 사랑과 우정을 키워가던 이들이 만나는 앞날이 평탄할 수 없는 이유였다. 녹화사업의 대상이 된 이들은 끝내 강제징집을 당해 군대에 끌려간다. 훈련을 마친 뒤 각자 자대 배치를 받아 흩어지지만 두영은 곧바로 보안부대로 끌려가 고문과 협박으로 동료를 배신하도록 강요받다가 끝까지 거부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순오 또한 마찬가지 과정을 겪으며 고뇌에 빠지지만 결국 두영과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하고 만다. 한편 군에서 아버지와 두영의 죽음을 차례로 듣게 된 성욱은 프락치 활동에 협조하는 척하며 무사히 제대한 뒤 노동운동에 뛰어든다. 이후 세 사람의 재회는 치열한 노동운동 현장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들이 함께 꿈꾸던 세상의 모습은 이제 서로 다른 모습을 띠고 있었다. 역사의 비극처럼 이들 관계 역시 비극으로 치닫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작가 김창현은 〈작가의 말〉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된 프락치 공작은 우리 내부를 갈라놓았고 수많은 희생자를 남겼다”면서 “부모와 형제의 사랑, 친구와 우정, 사람에 대한 믿음까지 무너뜨린 그 공작은 인간이 할 짓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작가는 어쩌면 인간이 하지 말아야 할 짓보다는 오히려 인간으로서, 그리고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할 짓에 대해 말하고 있는 듯하다. 죽은 두영이 못다 산 삶에 부채감을 가진 순오와, 마을운동에 뛰어든 그의 아내의 삶, 노동운동과 야학운동을 병행하는 용만의 삶, 그리고 대학 때부터 줄곧 주체적 여성을 주장하던 소정의 여성운동가로서의 삶에 더욱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저항하기 때문에 사람이야. 노예로 살기보다 내 운명과 세상의 주인으로 살고자 하는 존재.” 군대 이야기, 운동 이야기, 어둡고 슬픈 이야기가 가려진 사회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곳 바로 곁에 아직 존재하는 이야기다. 어쩌면 그 고통을 바탕으로 현재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소설은 그들이 받았던 상처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들이 현재 살아가는 삶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작가는 “프락치 활동을 한 사람도 또 다른 희생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사회의 주류로” 자리 잡고 “지금도 어디에선가 사람의 존엄을 갉아먹으며 그 삶을 재생산”하는 이들에게는 날카로운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우리는 거짓말도 하고, 비겁해지기도 하고, 소심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다 또 반성하고, 웃으며 살아가겠지요. 혁명가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영웅이 아닙니다. 수시로 자신의 나약함과 비겁함을 돌아보고, 부끄러웠던 일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일 뿐입니다. 겁나고 힘들더라도 옳다고 믿는 길이라면 끝내 포기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짜 인생의 승자 아닐까요.” (2권, 354~355쪽) 김창현 소설의 소중함은 상처받은 사람의 증언을 문학으로 재창조해낸 데 있다. 작가는 “이 문제를 기록하고 독자들과 나누고 싶었다”고 말한다. 소설을 써본 경험이 없는 그는 이를 위해 문예창작대학원에 들어가 공부하고, 다시 수년의 세월 동안 작품을 써내려 갔다. 그는 예전에도 지금도 침묵을 강요받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여전히 사람은 “노예로 살기보다 내 운명과 세상의 주인으로 살고자 하는 존재”임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했고 더 나은 사회를 꿈꾸었던” 이들에게 바치는, 함께 저항했던 자의 기나긴 노래와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