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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 문용린
프롤로그 / 상처입은 치유자의 고백 1부 나와 야구 잊을 수 없는 추억들 방황을 이겨낸 버팀목 글로벌 미션의 한 모형 2부 나의 창업 스토리 막다른 골목에서 새 길을 찾다 역경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3부 실향민 정주영과 ‘현대가’의 통일비전 서산간척지와 국제옥수수재단에 얽힌 이야기 소 떼 방북 사건은 20세기 최후의 전위예술 ‘현대가’의 혈류를 타고 흐르는 통일비전 4부 마지막 헌신 삼동지간三同之間의 인생 넬라 판타지아 선택받은 일꾼들 나의 멘토, 박찬모 명예총장 파주 통일촌 이야기 야망과 구원에 이르는 길 ■ 에필로그 ∥ ‘사마리안 퍼스’를 아십니까? ■ 저자 프로필 · 2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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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평양과기대 3대 총장으로 선임되고 난 후, 그동안 쌓아 올려왔던 나 자신의 기득권을 모두 내려놓고 이타적 삶을 살도록 요청하는 ‘부르심’(Calling)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는 나를 잘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미리 아시고 내가 가야 할 길을 인도하고 계신 것 같다. 참으로 감개무량하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평양과기대 사역의 앞날을 생각하면 참으로 두렵고 떨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 할 길이라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용감하게 떠나 보련다.
청년시절 대입 실패 후 ‘잃어버린 10년’을 지나면서 뼈저린 아픔을 겪었던 사람이 야구를 통해 도전적인 창업의 ‘야망’을 꿈꾸게 되었고, 그런 과정의 끝에 (홈베이스로 돌아가야 득점을 하는 야구의 원리대로) 본향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구원’의 빛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남은 생애에서 자신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길은 아가페적인 이웃 사랑으로 분열된 한민족을 하나의 공동체로 거듭나게 하는 일, 곧 ‘한반도공동체 통일’ 사역에 자신을 투신하는 ‘마지막 헌신’이 그 답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비전을 평양과기대를 후원하고 동역하는 모든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회복의 능력의 자매편으로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젊은 날에 내가 겪었던 정신적 방황, 열등감, 좌절감과 같은 고통을 공히 겪고 있던 조선족, 고려인 청년들을 끌어안고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그들을 사랑하면서부터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었다.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그들을 끌어안고 함께 울고 웃는 가운데 오히려 나 자신이 치유되고 정상화되는 체험을 한 것이니다. 이제 내가 북한에서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역은 바로 평양과기대 학생들과 함께 살며 한마음으로 그들을 사랑하는 일이다. 이것은 또한 학생들과 공유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상처입은 치유자’로서 내가 취해야 할 ‘마지막 헌신’의 길은, 곧 소통하고 신뢰하며 나의 경험을 그들이 마음껏 이용하도록 해서 그들 스스로 남북 간에 상호유익한 길을 찾고, 또한 그 길이 지속가능하도록 돕는 일이다. 당시 연변과기대 설립을 준비하고 계시던 김진경 박사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한국 출신이고 유럽으로 유학을 가서 학위를 한 다음, 미국에 건너가 20년이 넘도록 대학 교수와 무역업을 해서 제법 성공한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크리스천이다. 나는 다른 어떤 반대 급부를 얻으려고 여기에 오지 않았다. 다만 최근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문호를 열고 있어서, 미국에 있는 재산을 팔아 와서 길림성 연길에 조그만 기술전문대학을 세워 중국 사회에 봉사하려고 왔다. 장기적으로 중국의 과학기술 발전과 조선족 후예들을 위해 힘닿는 대로 교육사업을 해보고 싶어서 왔다.” 당시 나는 돈 벌러 갔지만, 미국에 있는 재산까지 팔아 와서 조선족 사회를 위해 대학을 세우겠다고 설득하는 김 총장님의 말씀을 듣고는, 가슴을 치는 충격과 함께 오랫동안 ‘세속의 덫’에 잠자고 있던 내 영혼이 깜짝 놀란 듯 깨어났다. 젊은 날 진리를 찾아보겠다고 불교 철학까지 전공하며 열정을 불태웠던 그 철학적 탐구 정신의 아궁이에 기름을 갖다 붓는 듯한 영적 감동을 느끼게 한 것이다. 그렇다. 야구를 통해, ‘야망과 구원’의 길목에서 서성거리며 세상살이의 여러 진면목을 많이 배웠다. 그리고 마침내 ‘플레이 메이커’로서 하늘나라의 영광을 위해 주어진 은사를 다 소진하며 일하다가 저세상으로 떠나고 싶다. 그게 인생을 통해 얻는 진정한 가치이고 의미라면. 남은 인생도 데드볼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퍼스트 베이스를 밟아서 게임을 주도하는 감독 (하나님)이 그 게임을 잘 리드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그러다가 마침내 홈 (돌아갈 본향)으로 돌아가 천상의 복을 누리며 영생을 사는 그런 신실한 야구인 (신자)이 되고 싶다. 야구에서 홈으로 돌아가는 과정은 신자가 본향으로 돌아가는 여정과 마찬가지로 끊임없는 훈련(예배 및 영성 수련)과 기량(섬김과 나눔, 봉사와 구제 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홈베이스를 밟았을 때의 그 환희에 찬 성취감은 천국 본향에 이른 신자의 완전한 구원의 기쁨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야구는 구원에 이르는 길을 가르치는 스포츠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야망과 구원’을‘야구’로 줄여서 말해도 하등 이상이 없다고 본다. 다시 말해 ‘야구로 배우는 인생 이야기’는 곧 ‘야망과 구원에 이르는 인생 이야기’라 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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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과학기술대학 제3대 총장
‘상처 입은 치유자’ 이승율 박사의 대역전 인생 드라마 젊은날의 정신적 방황과 좌절을 딛고 사업가로서의 야망을 현실에 뿌리 내리기까지, 이제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한반도공동체 통일’이라는 부르심(Calling) 앞에 평양과기대 제3대 총장으로서 마지막 헌신의 길에 나서기까지, 야구에서 홈베이스로 돌아가 득점을 하듯 마침내 ‘구원의 빛’을 찾기까지의 드라마틱한 인생여정을 진솔하게 고백한다. 경북고 시절, 대학생 선배들과 만나 문학, 철학, 역사 및 사회 전반에 걸쳐 거대담론을 늘어놓으며 신선놀음에 빠져 지내던 그는, 청춘의 단물을 모조리 흡입한 당연한 결과물로 대학입시에 낙방, 재수생의 길을 걷지만, Y대 법대에 과 톱으로 입학했던 절친이 연애 실패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가 대학에 입학한 것은 결혼 이후 첫 아이를 낳고 난 이듬해, 28세 때였다. 가장으로서의 의무감까지 짊어진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경북고 야구부의 창단 멤버였던 그의 ‘야구 사랑’이었다. 보조요원으로서 대학 선수들과 같이 유니폼을 맞춰 입고 야구를 다시 시작하면서부터 그는 그동안의 정신적 심리적 고통을 치유하고 극복하는 길을 찾게 된다. 아내의 전공(조경)을 살려 건설회사를 창립했지만, 탄탄한 길에 올라서기까지는 순탄치 않았다. 세들어 살던 집이 차압을 당하는 일도 겪었고, 부진한 사업으로 절망에 빠져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비닐하우스를 짓고 여섯 명이 한 방에서 자면서 겨울을 보내기도 했다. 그래도 주눅들지 않고 백방으로 뛰어다닌 결과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현대건설의 협력 회사로서 중견 기업으로 자리매김될 때까지, 그를 뒷받침해 준 것은 그라운드를 누비면서 터득한 ‘야구 인생론’이었다. 그는 야구에서 홈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신자가 본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에 비유하면서, 홈에 돌아가 안기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훈련(예배 및 영성 수련)과 기량(섬김과 나눔, 봉사와 구제 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본질적으로 야구는 구원에 이르는 길을 가르치는 스포츠라는 것이다. 동북아공동체 형성이라는 거대한 역사의식과 비전 앞에 자신을 헌신하고 희생함으로써 이제는 ‘마지막 헌신’의 삶을 살고자 하는 그에게 평양과기대 총장이라는 새로운 역할이 주어졌다. “북한에 무엇을 갖다주고 지원해 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자신감을 키워주는 일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생명력 있는, 지속가능한 성장 대안을 가르쳐주는 일이 될 것이다.”라고 강조하는 그는, 한반도에 복음의 씨 뿌린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아들인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와 손잡고 평양과기대 캠퍼스 안에 ‘외국인문화센터’를 세우고 국제학교를 병립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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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입문 이후 현재까지의 그의 삶은 신앙의 토대 위에 이루어지는 사업과 봉사와 헌신의 생활로 점철되어 왔다. 그의 사업적 성공은 그의 능력을 더 크게 이용하고자 하신 하나님의 섭리인 듯, 그의 마음속에는 동북아공동체 형성과 한민족 동질성 회복이라는 거대한 역사의식이 홀연히 솟아오른다. 연변과학기술대학(중국)과 평양과학기술대학(북한) 건립 및 운영을 기반으로, 1991년 이래 현재까지 70을 훌쩍 넘어선 그의 몸과 마음은 온통 이 일감에 집중되어 있다. 연변과 연해주 지역, 평양으로 날아가서 할 일을 하겠다고 다짐하는 그의 염원은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다. - 문용린 (서울대 명예교수. 인간개발연구원 회장, 전 교육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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