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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_ 학급제를 다시 묻다
1장 학급제의 속성 01 불편한 진실 02 학급제를 둘러싼 담론 2장 학급제의 탄생 01 모니토리얼 시스템 02 한계에 도달한 교장 3장 학급제의 완성 01 일제교수 방식의 도입 02 국가 개입과 의무교육 제도 03 배제된 영세 사설 학교 4장 학급제의 모순 01 공급선행형 조직으로서의 학교 02 권력자로서의 교사 5장 일본의 학교와 학급 01 사목 관료제 성립과 학급 02 보이는 학교와 보이지 않는 학교 6장 학교 문제의 규명 01 ‘무거운’ 학급 02 무력해지는 학생 03 이중구속의 세계 맺으며 학급이라는 환상 에필로그 참고 문헌 역자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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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둘러싸고 숱한 논란이 일고 다양한 개혁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학급이라는 존재 자체에 의문을 갖는 사람은 없다. 왜 아이들이 자기 자리에 앉아 교사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지,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는 말이다. 학급은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고 그 안에서 그렇게 공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고정관념이 너무나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 p.9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인 학급과 유희를 목적으로 하는 패키지여행 그룹을 동일선상에서 논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얼핏 생각하면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사실 이 두 집단은 애초에 탄생하게 된 뿌리가 비슷하다. 두 집단 모두 19세기 산업혁명이 진행되던 가운데 영국에서 대량으로 발생한 빈민을 구제하고, 보다 선한 생활로 인도하려는 중산계급 중심의 기독교 자선활동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학급은 도시 슬럼가에 모여 사는 빈민 아동에게 근면한 생활 태도를 익히게 하고 치안 유지를 도모하기 위해 추진된 ‘빈민 교육(poor education)’ 속에서 아동을 조직화하는 방안이었다. 패키지여행 역시 마찬가지로 사회 밑바닥으로 추락해가는 빈민가의 성인들을 술로부터 떼어내고 건전한 여가와 생활 태도를 익히게 하려는 금주운동의 결과물이었다. --- pp.23-24 분업제를 기반으로 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단순히 가르치는 모니터를 분류하고 분업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교수 활동에 필요한 모든 항목을 체계적으로 분류한 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컨베이어 벨트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도록 설계된 합리적 장치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전통적 학교와는 전혀 이질적인 광경이 탄생했다. 전통적 학교가 분류라는 작업이 부재한 혼잡한 세계였다면, 모니토리얼 시스템은 모든 것이 분류되고 정연하게 배열된, 명확히 구획된 세계였다. --- p.64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모니터의 활동은 교사가 전체를 관리함으로써 비로소 의미를 지니게 된다. 무엇을, 어느 학급에서, 어느 시간과 장소에서 가르칠 것인가를 모니터가 결정할 권한은 없으며, 모든 것은 관리자로서 교사가 세운 계획과 명령에 따라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여기서 교사의 존재 방식에 결정적인 전환이 일어났다. 전통적 교사상은 해체되어, 관리하고 계획을 입안하는 사람과 계획에 따라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하는 사람으로 분리되었다. 무엇에 대해서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던 전통적 교사가 사라진 것이다. --- p.66 모니토리얼 시스템에 반대하는 움직임은 모니터에 의한 교수를 비판하고 교사에 의한 일제교수라는 새로운 방식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글래스고의 상인, 데이비드 스토우(David Stow)에 의해 6세 이상, 즉 모니토리얼 시스템이 대상으로 했던 학생들을 위한 소년학교(juvenile school)에서도 시도되어 성과를 거둔다(Stow, 1832). 초등교육에 일제교수를 적용하려는 시도는 이렇게 하여 탄생한 것이다. --- p.89 개정교육령에서는 이러한 흐름에 반해 가르쳐야 할 내용을 3R, 즉 읽기, 쓰기, 셈하기 셋으로 한정했다. 그리고 가르쳐야 할 내용의 수준과 범위를 각각 표 3-1에 제시된 6단계 스탠더드로 규정한 것이었다. 6단계로 구별된 스탠더드의 각 단계는 각기 1년에 걸쳐 이수되는 내용이며 학생에게는 각 단계의 습득 상황을 평가하는 시험 기회가 단 한 번씩만 부여되었다. 그리고 이 스탠더드는 6세부터 11세까지의 연령에 대응하여 설정되었다. 이러한 6단계로의 구분과 연령 간의 대응, 그리고 각 단계 시험을 1회만 실시하는 것은 사실상 6년간에 걸친 초등학교 제도의 시작을 의미하며, 학년제에 의한 클래스 제도가 실현되는 방향으로 향하게 되었다. --- p.104 학교의 규모가 다르고 학생 수가 달라도 학년과 스탠더드에 의한 학급이라는 표준화된 기초적 단위가 확립된다면 감독관에 의한 사정은 원활하게 진행된다. 성과급 제도는 국가 예산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모니토리얼 시스템 이래의 클래스라는 패키지를 보다 정교한 것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등급제에 기반한 클래스 대신에 학년제의 학급이 등장하게 되었다. --- p.111 정답/오답의 양자택일식 해답 방식, 그것은 교육정보의 디지털화였다. 다양한 요인이 결합한 문맥 의존적, 또는 상황 의존적인 교육 내용, 즉 아날로그적인 정보는 모니터의 부담을 감당할 수 없이 크게 만든다. 문맥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단순하게 세분된 정답-오답만의 정보로 3R이 디지털화되었기 때문에, 모니터라도 용이하게 기억할 수 있었고 또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교육 내용의 난이도에 따른 단계화란 이러한 기술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한 기초적 작업이었다. --- p.141 학생들은 이제 자신의 의사를 무시하고 기계적 리듬으로 작동하는 장치 속에 갇히게 되었다. 체인화된 학교에서 컨베이어 작업처럼 작동하는 조직의 리듬에 학생은 자신을 맞추어야 한다. 학급이란 이 조직의 리듬이 강력히 작동하는 장, 즉 규율 공간이다. 개인의 기호, 이해의 속도, 성적 수준은 모두 무시됨으로써 학급을 통한 수업이 진행된다. 따라서 학급은 자기억제라는 규율이 큰 부하를 가하는 일종의 압력밥솥이 되어 아동에게 중압을 가한다. 더구나 그들은 제로섬 경쟁의 세계에 내던져진다. 지연, 혈연, 신분 등의 속성을 박탈당한 학생은 이전까지 그들을 감싸 주었던 가문이나 의리, 인정과 같은 사회적 보호막을 상실하고 익명화된 알몸의 개인으로서 경쟁의 세계에 내던져진다. 시험에 의한 경쟁은 그들의 자기억제를 촉진하고 학급이라는 규율화된 내압을 더욱 강화한다. --- pp.144-145 학급제라는 틀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 한, 교사의 직무는 얼마든지 다른 내용으로 이야기될 수 있다. 교육이란 곧 자유라고 외칠 수도 있고, 교육의 성과가 오로지 개별 교사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실패의 원인을 조직이 아닌 교사 개인에게 돌릴 수도 있으며,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편성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그 동안 수없이 되풀이되어 왔다. 하지만 그 누구도 조직 자체가 교육을 하고 있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학급이라는 패키지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다. --- pp.196-197 규율화된 생활을 계속하며 학습을 진행해도 규율화의 대가로서 성적 상승이라는 성과가 누구에게나 보장되지는 않는다. 제로섬 게임은 반드시 성적을 둘러싼 경쟁의 승자와 패자를 구별하여 성적 격차를 만들어내고 성과를 불균등하게 배분한다. 더구나 누가 승리자고 누가 패자인가를 사전에 예측할 수 없다. 성과를 거둘 수 없는 학생에게 규율화의 대가는 따르지 않는다. 만족을 누릴 수 없는 채로 규율화가 진행되어 누적되는 욕구불만이 학급제에는 필연적으로 따르게 된다. --- p.210 시간표라는,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보여주는 사실은 교과의 호불호나 우선순위 등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학생에게 인정하면 학교의 일제교수는 성립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학급에 의한 교수 활동은 학생을 무력화하고 그들에게서 학습 과정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박탈함으로써 비로소 성립할 수 있다. 학급이라는 사전제어 공간은 굳이 말하자면 학생의 자기결정권을 박탈하는 인권침해를 통해 성립하는 집단이다. 이를 강제하지 않는 한 학급도, 그리고 일제교수도 성립할 수 없다. --- p.219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은 학생이 순종적인 인간으로 길러졌기 때문이다. 타인에 의해 결정된 순서에 묵묵히 따르기만 할 뿐, 거기서는 자신에 맞는 수업의 진행 방식, 학습 리듬, 교과 간의 선호 등에 관한 자기주장이 정지된다. 자신의 속도대로 가게끔 결정하지도 못하고 매일 학급 안에서 함께 지낸다는 것, 그것은 학생이 철저하게 무력한 존재로 변했거나 무력화하는 작용이 계속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전제어된 학급 없이는 효율적인 교수 활동을 추진할 수 없는 학교란 이런 의미에서 ‘무력화 장치’로 부를 수 있다. --- p.228 성실하고 우수한 학생이 원조교제나 유흥가에서 기이한 행동을 하는 것, 또는 자해 행위나 가정 내 폭력 같은 비참한 행동으로 치닫는 것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다양하게 보고되어 왔다. 이러한 사건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결국은 ‘마음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상한 정신을 가진 아동의 ‘마음의 어두움’ 문제로 치부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학급제라는 시스템이 지닌 이중구속 상황이 이러한 문제 발생과 불가결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 p.237 둘째, 학교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마음의 문제’도 아니다. 청소년의 문제 행동을 정신적, 심리적인 문제로 보려는 시도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정신병리학자 가게야마 진스케(影山任佐)는 ‘공허한 자아’라는 개념으로 현대 청소년의 범죄 행위나 히키코모리 현상을 분석하며 부모자식 관계의 병리와 풍요로운 사회의 병리를 결합해 설명한다(影山, 2001). 그러나 문제는 정신적 병리가 아니라 사전제어라는 자기억제 작용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 p.2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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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학급의 역사학』이라는 제목만 보고는 대학 교재로나 어울릴 법한 딱딱한 교육사 연구서겠거니 속단했다. 그런데 책장을 덮고 나니 생각이 완전히 뒤집혔다. 교육의 위기와 문제 상황, 그리고 교육의 변화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꼭 한 번은 읽어야 할 책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학교와 교육을 둘러싸고 나도 모르게 품고 있던 오래된 통념 하나가, 이 책을 읽는 동안 조용히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학생이라고 하면 이름 앞에 으레 ‘··학교 ·학년 ·반’이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너무 당연해서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이 말 속에, 바로 학교교육의 기본 단위인 ‘학급’이라는 구조가 숨어 있다. 저자는 오늘날 교육이 마주한 위기의 근원이 다름 아닌 이 구조 자체에 있을지 모른다는, 대담하면서도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학교폭력, 집단따돌림, 등교 거부, 정서행동위기, 교사 번아웃까지, 지금까지 학생이나 교사 개인의 문제로 생각해 온 이 현상들이 실은 ‘학급’이라는 사전에 통제된 공간 속에서 오랜 시간 자기억제를 강요당한 인간이 겪는, 지극히 구조적인 병리라는 것이다. 상담사를 늘리고 마음 교육을 강화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원인은 구조에 있는데, 모두가 줄곧 증상만 붙들고 씨름해 온 셈이다. 그렇다면 지금껏 왜 누구도 이 구조를 의심하지 못했을까. 저자의 답은 뜻밖에도 단순하다. 우리 모두가 십수 년의 정규 교육과정을 거치며 학급제를 ‘과잉 체험’한 자아로 자라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보이지 않았던 셈이다. 저자는 이 익숙함을 깨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학급이라는 개념은 사실 산업혁명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발명품에 지나지 않는다. 19세기 초 영국에서 시작된 모니토리얼 시스템과 의무교육 제도가 자리 잡는 과정을 촘촘하게 추적하는 대목에 이르면, 학급제란 애초에 대량의 아동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고안된 ‘패키지화된 서비스’였음이 드러난다. 여기에 각국의 종교적 신념과 사회문화적 배경이 덧입혀지면서 지금의 익숙한 학교 문화가 완성된 것이다. 학급제를 부정하거나 폐지하자는 주장은 아니다. 그보다는 학급제가 지닌 문제점과 한계를 인지하고, 그 안에서 생활하는 학생과 교사들의 어려움을 한층 넓어진 시각에서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전문 분야의 학술서이지만 읽는 내내 한 편의 역사 교양서를 보는 듯 쉽게 읽힌다. 책에 수록된 도판들은 학교의 초기 모습과 함께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근대의 교육 현장을 생생히 보여 주고 있어 새롭고 신선하다. 매일 학급이라는 구조 안에서 아이들과 씨름하는 교사에게도, 학교 문제의 뿌리를 다시 한번 물어보고 싶은 독자에게도 이 책은 값진 경험을 선사한다. 너무 당연해서 질문조차 던져 본 적 없던 풍경을 완전히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흔치 않은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