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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부 나주의 서쪽 왕곡면: 신포1리 내동마을 / 신원2리 봉학마을 / 행전1리 행장마을 반남면: 신촌1리 성내마을 / 흥덕4리 옥련마을 / 대안2리 구영마을 공산면: 화성3리 청룡마을 / 남창3리 송산마을 / 금곡4,5리 장승백이마을 동강면: 장동1리 수문마을 / 진천1리 내동(운정)마을 / 인동3리 중앙마을 다시면: 문동3리 증문마을 / 가흥1리 정가마을 / 운봉1리 백동, 백운마을 문평면: 북동2리 명하마을 / 산호1리 남산마을 / 안곡2리 신안마을 노안면: 오정1리 오리마을 / 학산7리 문화마을 / 금안동 영강동: 11통 남부마을 / 8통 택촌 / 12~13통 부영아파트 금남동: 18통 죽림마을 / 7통 장산, 용치마을 / 5통 경현동 성북동: 16통 산정마을 / 2통 / 24~27통 대방노블랜드 1차 아파트 이창동: 15통 동방마을 / 19통 텃골마을 / 4, 23통 2024년 추석 ‘나주 사람들 ’나주공동체’를 함께 꿈꾸는 사람들 2부 나주의 동쪽 남평읍: 노동리 / 오계1리 석치마을 / 동사리 강변도시 세지면: 송제1리 송산마을 / 벽산2리 산계마을 / 오봉1리 동창마을 금천면: 오강1리 금구마을 / 죽촌1리 야죽마을 / 신가4리 당가마을 / 석전4리 전원마을 산포면: 신도1리 당촌마을 / 등수1리 등개마을 / 산제리 산제마을 다도면: 덕동3리 삼정마을 / 신동2리 신촌마을 / 방산2리 한적골 봉황면: 용전3리 관전마을 / 철천리 철야마을 / 죽석1리 구석마을 송월동: 2통 토계마을 / 7통 내동마을 / 9~11통 주공아파트 영산동: 10통 / 2~4통 선창 / 13통 용승마을 빛가람동: 1~2통 에듀캐슬아파트 / 12~14통 우미린아파트 / 31~33통 중흥S클래스 센트럴 1차 아파트 전통 시장의 ‘젊은’ 사람들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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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별거 있당가? 다 똑같제!”는 대답과 달리 똑같은 삶은 없었다.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 분야의 전문가였다. 75년째 대나무 빗자루를 만드는 세지면 벽산2리 산계마을 김기옥 할아버지의 손끝은 지금도 꼼꼼하게 칡넝쿨을 잡아맨다. 벼와 배를 기르고 새끼를 꼬고 왕골 돗자리를 짜고 갈퀴나무를 하며 ‘같은 듯 다르게’ 나주의 역사를 잇고 있다. 자연스레 나주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는 큰 책임감과 사명감이 생겼다. 사람들과의 만남은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갈퀴나무와 ‘하드레’를 새롭게 만났다. 한 끼 불쏘시개를 해결하기 위해 배를 곯으면서 산을 넘어 헤매며 갈퀴나무를 했다는 이야기엔 눈가를 적시는 어려운 삶이 보인다. 봉황면 죽석1리 구석마을에서 처음 알게된 ‘하드레’는 한민족의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 p.5 「프롤로그」 중에서 금곡 4,5리는 2022년 5월 왕곡, 반남, 동강면과 영암군 시종면 등 5개 면의 주민들이 이용하는 전통시장을 신축하는 등 농촌 중심지 활성화 사업이 한창이다.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이광석(65세) 추진위원장은 “일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생색만 내고 예산만 낭비해선 안 된다”며 “주민들이 이용하고 외지인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선 국도 23호선에 접해 있는 보건지소 뒤 야산을 활용해야 한다”고 목소리에 힘을 준다. “농림부에 직접 전화해서 설명하고 시와 도에도 주민들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서 최근에서야 기본계획을 확정했다”는 이 위원장은 제8대 나주시의회 부의장을 지냈다. 농촌 중심지 활성화를 통해 새롭게 태어날 장승백이마을을 그려본다. --- p.59 「공산면 금곡 4,5리 장승백이마을」 중에서 “삼봉의 초사는 두자미(杜子美, 두보의 자)의 초당보다 더 길이 청사에 남으리라. 그가 전하는 것은 초사의 이름이 아니요, 조선왕조를 일관한 민본(民本)사상이요. 인민의 삶과 정신을 혁신한 토지개혁, 종교개혁 등의 영구혁명론이다. 그 사상이 동학, 의병, 독립운동, 광주민중항쟁을 거쳐 오늘 우리 사회의 개혁 정신에까지 이르고 있으니 이곳 소재동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끊임없는 혁명의 샘물이다.” 도올 김용옥이 2005년 가을에 쓴 ‘신소재동기’는 이렇게 마친다. 다시면 운봉1리 백동마을에 유배 와 조선 건국의 밑그림을 그린 삼봉 정도전의 〈소재동기〉를 도올이 해석한 것이다. 삼봉은 백동마을에서 3여 년 유배 생활을 통해 어렵지만 함께 나누고 아낌없이 내어주는 나주사람들에게 받은 감동을 조선 건국의 핵심사상으로 삼았다. 민본사상은 백동마을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임을 〈소재동기〉가 확인하고 있다. --- pp.89-90 「다시면 운봉1리 백동, 백운마을」 중에서 금안동은 노안면 금안리 인천, 반송, 광곡 등 7개 마을과 영평리 영안, 구정리 구축, 용산리 월송·송정·금곡마을 등 12개 마을을 부르던 이름이다. 1914년 일제에 의해 행정구역이 통·폐합되기 전까지 금안면으로 불렸다. 우거진 숲에 모여든 새들의 낙원이라는 의미에서 금안(禽安)이라 불렸으며, 사신으로 가서 공을 세운 정가신이 원나라 황제에게서 금으로 만든 말안장 등을 받고 돌아왔다 하여 금안(金鞍)이라 했다고 한다. 금안동의 자랑 중 하나로 대동계(大同契)를 꼽을 수 있다. 임진왜란으로 황폐해진 마을을 다시 일으키고 주민들이 함께 가꾸자는 취지로 행해진 대동계는 지방자치의 근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도 음력 4월 20일이면 마을 사람들이 쌍계정에 모여 계를 연다. 1280년 정가신이 세운 쌍계정의 현판은 조선 서예의 대가인 한석봉이 썼다. --- p.121 「노안면 금안동」 중에서 100여 년 전 호남지역 최초의 쌀도정공장과 정부양곡창고로 사용됐던 옛 정미소 자리는 2016년 도시재생사업, ‘나주읍성 살아있는 박물관 도시만들기’를 통해 복합문화공간 ‘정미소’로 다시 태어났다. 정미소를 위탁운영하고 있는 ‘나주읍성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곽영선(41세) 사무국장은 “2019년 개관 이후 공연과 전시, 도심 캠핑 등으로 나주 시민은 물론 인근 지역민들의 사랑을 받는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며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로부터 성공 사례로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음에도, 내년 사업이 축소될 상황이라 당혹스럽다”고 한다. 정미소 앞에는 동문 안의 유일한 ‘소방샘’이 있었지만 1990년대 말 회색 시멘트 아래로 사라진 것을 주민들은 아쉬워한다. --- pp.169-170 「성북동 2통」 중에서 100년 넘은 한옥과 함께 다도면 도래마을을 지켜 온 배롱나무가 화려한 꽃을 피운 ‘서기당 홍기창 가옥’의 막내딸 홍현욱(67세) 씨는 “서울 사는 딸은 이번 명절엔 못 온다”는 아쉬움을 나타내며 “어릴 적엔 명절이면 사촌들이 우리 집에 모여 함께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다녔는데 지금은 명절 쇠러 오는 자녀들이 많지 않아 썰렁함마저 든다”고 한다. 본채 한 칸과 별당채를 현대식으로 개조해 펜션업을 겸하고 있는 홍 씨는 “결혼하면서 떠났다 40여 년 만에 돌아와 옛집을 가꾸며 유년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고 손님들에겐 새로운 기억을 남길 수 있어 즐겁다”며 “서기당을 찾는 도시 사람들이 오래된 한옥에서 아늑하고 편안한 체험을 쌓길 바란다”는 당부를 남기며 마당의 낙엽을 쓸어 모은다. --- p.200 「2024년 추석 나주 사람들」 중에서 양봉과 쌀농사와 함께 비닐하우스에서 무, 배추, 시금치 등을 재배해 인근 로컬푸드에서 판매한다는 윤 이장은 “전날 저녁부터 새벽까지 준비해서 광주 남구와 남평, 산포, 나주로컬푸드 매장을 돌고 나면 오전이 다 지난다”며 “지금까지 한눈팔지 않고 성실히 살아왔듯이 앞으로도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한다. 12년째 이장을 맡고 있는 윤 이장은 “이번을 마지막으로 이장은 그만둘 계획”이라며 “대학생인 막내가 학업을 마치면 농사를 줄이고 집사람과 여행도 다니며 여유를 가지려고 한다”는 소박한 소망을 밝힌다. --- p.220 「남평읍 노동리」 중에서 동창엔 아픈 역사도 있다. 한국전쟁 중인 1951년 1월 20일 국군이 오봉리와 벽산리 주민 140여 명을 동창교 아래에 모아놓고 총살한 것이다. 1998년 나주시의원에 출마한 이상계 후보(현 세지면 노인회장)가 진상 규명을 공약으로 제시한 것을 계기로, 제16대 국회에서 배기운 국회의원이 주도한 청원을 통해 진상조사가 이뤄졌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 의해 2007년 최종적으로 ‘국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으로 규명됐다. 2005년 11월 25일 사건 현장에 세워진 ‘동창양민학살희생자위령비’ 앞에서 무자비한 국가 권력의 폭력을 되새겨본다. --- p.250 「세지면 오봉1리 동창마을」 중에서 당촌마을은 병자호란(1636년) 이후 의령 남씨가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의령 남씨 문중의 충신과 공신 8인을 배향하는 팔충사를 세워 매년 제사를 지내며 그 뜻을 이어왔다. 마을이 이주한 뒤인 2013년에 팔충사도 옮겨왔다. 매년 음력 3월 3일에 지내던 팔충제는 4월 첫 번째 토요일에 시제를 겸해 지내고 있다. 남씨들이 살고 있는 못이 있는 마을을 뜻하는 남당굴로 부르던 것이 당촌이 됐다고 한다. 농경지로 만들기 위해 못을 메웠다고 전한다. 한때 의령 남씨가 70여 가구를 넘었지만 지금은 25가구만 남았다. --- pp.277-278 「산포면 신도1리 당촌마을」 중에서 임진왜란 때 강릉 유씨 등이 처음 터를 잡았다는 한적골 표지석 옆엔 ‘동학농민혁명 국가유공자 유광화 선생 기념비’가 있다. 202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의 핵심으로 꼽히는 ‘유광화 편지’의 주인공이다. 동생에게 일제에 맞서 싸우기 위한 군자금을 요청한 ‘편지’는 동학혁명이 농민만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함께 참여했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 p.307 「다도면 방산2리 한적골」 중에서 ‘하드레’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금은 사라진 세시풍속이기 때문이다. 농업이 주 경제 기반이던 시절, 겨울 끝자락인 음력 2월 1일에 콩을 볶아 먹고 칡을 캐 나눠 먹으며 한 해 농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구석마을은 매년 음력 2월1일 환갑과 일흔, 여든, 아흔 살을 맞는 주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내 잔치를 여는 ‘하드레날’을 계속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모두 모이는 날은 또 있다. 중복 날과 연말인 음력 11월 10일에 한해를 결산하고 새 이장을 뽑는 마을총회가 그것이다. 넉넉한 인심으로 함께 어우러진 구석마을 잔치에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음식을 나누는 주민들의 행복한 모습을 떠올려본다. --- pp.322-323 「봉황면 죽석1리 구석마을」 중에서 8년째 통장 일을 하는 이 통장은 새마을지도자회 나주시협의회장 등으로 경제 사정이 어려운 이웃과 어르신들의 집을 고쳐주는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으며 3년 전부터 전국농업기술자협회 나주지회장을 맡고 있다. “채소를 팔고 사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골모실길이 텅 비었다”는 아쉬움을 나타낸 이 통장은 “아기자기한 골목길이 많은 10통의 특성을 살려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올 수 있는 도시 재생의 모델을 만들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조심스레 내놓는다. --- p.346 「영산동 10통」 중에서 마른반찬과 김치 등 70여 종을 판매하는 목사고을시장 매일동의 ‘개돌이네’ 배현숙(43세) 씨는 “첨엔 채소만 팔다가 엄마 손맛이 좋아 금계동 매일시장에서부터 반찬을 만들기 시작했다”며 “할머니 때부터 3대를 이어오고 있는 목사고을시장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라고 자랑 삼아 이야기한다. 곁에 있던 배 씨의 어머니 남일수(75세) 씨는 “매일시장에 오일장도 같이 섰다”며 “아들 별명을 따서 가게 이름을 지었다”고 웃음 짓는다. --- p.377 「전통 시장의 ’젊은‘ 사람들」 중에서 명절을 맞이하는 사람들, 나주 공동체를 위해 매일 노력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장터의 젊은 사람들을 만났다. 다시면 노래자랑과 노안면 광곡마을 노인회장배 바둑대회는 출향 향우들과 함께 어우러졌고, 금남동의 남파고택과 천수봉 한식 명인은 우리 음식의 전통을 잇고자 노력하고 있다. 두부와 김치로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아버지 세대 양계 농가들의 소득 증대를 위해 유통 회사를 책임진 30대 청년이 있다. ‘마을 사위’로 크고 작은 일을 해결하는 재주꾼이 있고, 살아온 마을에서 치유하고 그 이후까지 함께 책임지는 공동체를 꿈꾸며 고향으로 돌아온 교사가 있다. 장터에서 희망을 일구는 청년들의 삶은 나주의 힘이고 희망을 만드는 미래가 아닐까. --- pp.382-383 「에필로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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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나주’를 꿈꾼다
함께 꾸는 꿈이 가장 행복하기 때문이다 선사시대 유적인 석기와 고인돌 등은 세계에서 한반도에 가장 많이 분포한다. 그중에서도 전라남도 지역이 가장 많다. 영산강의 본류인 나주에 고인돌 164개소 1,440여 기가 밀집해 있다. 청동기시대 유적인 고분 역시 129개소 170여 기가 분포하고 있다. 나주는 그야말로 고대 유적의 ‘보물창고’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서 김덕수 저자는 고향 나주에 관해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나주의 마을은 어떻게 형성됐을까? 나주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살아왔을까? 일련의 질문 끝에 마을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해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이 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저자는 2022년 7월부터 2025년 3월까지 3년 가까운 세월 동안 100여 마을에서 1,000여 명의 사람을 만나고 인터뷰에 응한 700여 명의 삶을 기록했다. 역사 이전의 삶의 흔적인 고인돌과 고분군,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담은 유적과 문화유산을 만났고, 현대사의 질곡을 겪어온 어르신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들었고, 나주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하는 청년과 중년 일꾼들의 희망찬 포부를 보았다. 마을을 걸으며 나주의 과거, 현대, 미래의 모습을 담고 나주에서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자료는 2009년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펴낸 《나주시 문화유산 종합학술조사 보고서》를 토대로 했다. 나주의 역사 문화 자원은 무궁무진하다. 김덕수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한 만남 속에서 갈퀴나무와 ‘하드레’를 새롭게 만났다. 한 끼 불쏘시개를 해결하기 위해 배를 곯으면서 산을 넘어 헤매며 갈퀴나무를 했다는 이야기엔 눈가를 적시는 어려운 삶이 보인다. 봉황면 죽석1리 구석마을에서 처음 알게 된 ‘하드레’는 한민족의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자연스레 나주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는 큰 책임감과 사명감이 생겼다. 사람들과의 만남은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사는 게 별거 있당가? 다 똑같제!”는 대답과 달리 똑같은 삶은 없었다.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 분야의 전문가였다. 75년째 대나무 빗자루를 만드는 세지면 벽산2리 산계마을 김기옥 할아버지의 손끝은 지금도 꼼꼼하게 칡넝쿨을 잡아맨다. 명절을 맞이하는 사람들, 나주 공동체를 위해 매일 노력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장터의 젊은 사람들을 만났다. 다시면 노래자랑과 노안면 광곡마을 노인회장배 바둑대회는 출향 향우들과 함께 어우러졌고, 금남동의 남파고택과 천수봉 한식 명인은 우리 음식의 전통을 잇고자 노력하고 있다. 두부와 김치로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아버지 세대 양계 농가들의 소득 증대를 위해 유통 회사를 책임진 30대 청년이 있다. ‘마을 사위’로 크고 작은 일을 해결하는 재주꾼이 있고, 살아온 마을에서 치유하고 그 이후까지 함께 책임지는 공동체를 꿈꾸며 고향으로 돌아온 교사가 있다. 장터에서 희망을 일구는 청년들의 삶은 나주의 힘이고 희망을 만드는 미래가 아닐까. 김덕수 저자는 나주 사람들과 함께 활기차게 솟아오를 ‘새로운 나주’를 꿈꾼다. 마을과 사람이 가르친 대로 각자의 분야에서 제 역할을 충실히 하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함께 꾸는 꿈이 가장 행복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