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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_ 문명 여행자, 커튼 뒤로 걸어 들어가다
Part 1 신을 대신한 인간들 _이집트 문명이 남긴 첫 자각 교과서가 가르쳐 준 고대 이집트 문명 피라미드는 노예들의 피 땀 눈물? 수염 달린 최초의 여성 파라오 홍수가 날수록 세금이 오른다 죽음의 민주화, 누구나 부활할 수 있어 기록한다, 고로 존재한다 혼혈 파라오의 위대한 유산 태양 아래 평등했던 단 한 번의 일탈 Part 2 자유의 그림자 _그리스 문명이 숨긴 인간의 모순 교과서가 가르쳐 준 고대 그리스 문명 빼앗긴 자들의 무덤에 귀를 기울이면 아테네가 아니라 이오니아였다 페리클레스의 그림자 누가 철학자를 죽였는가? 철학자도 노예를 소유했다 스파르타 정신이 멋져 보여? 올림픽 쇼, 너무나 정치적인 예언은 신의 목소리? Part 3 질서의 감옥 _로마 문명이 만든 완벽한 시스템과 인간의 부재 교과서가 가르쳐 준 로마 문명 오늘은 개혁가, 내일은 공공의 적 제국의 시민 사용법 빵과 서커스 여성을 위한 제국은 없다 제국에 노예가 없었더라면 중무장한 권력이 루비콘 강을 건너다 종교라는 최종 병기 로마가 반쪽만 멸망한 이유 Part 4 구원의 감옥 _신의 이름으로 인간을 가둔 시대 교과서가 가르쳐 준 중세 유럽 문명 신은 거기에 없었다 그들의 이름은? 누구나 알지 못하게 하라 신의 이름으로 불태워진 책들 신의 대리인, 얼마면 돼? 신도 인간도 보이지 않는 전쟁 수업료를 떼먹은 유럽 지성 Part 5 문명의 거울 _서양 문명이 비틀어 버린 또 하나의 얼굴, 이슬람 교과서가 가르쳐 준 이슬람 문명 한 손에 쿠란, 한 손에 칼? 이슬람은 알라를 믿는다? 베일 속의 진실 검은 노예, 하얀 무슬림? 움마의 이상이 품지 못한 것들 수니와 시아, 권력과 기억의 전쟁 신비롭거나 폭력적이거나 Part 6 문명의 대가 _약탈로 세운 근대 유럽의 빛과 그림자 교과서가 가르쳐 준 근대 유럽 문명 명화 뒤의 회계 장부와 계산서 업자들이여, 자유를 유통하라 대항해 시대라는 멋진 말 나 자신을 부정하라는 주문 국민이지만 인간은 아니었다 세계적인 약탈물 보관소 삼각형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이성의 시대가 감춘 두 얼굴 새하얗게 탈색한 유럽의 뿌리 에필로그 _ 로제타 스톤을 다시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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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우리는 서양 문명을 언제나 ‘칭송의 언어’로 먼저 접했다. 학교에서, 교양서에서, 여행 안내서에서 만난 서양은 언제나 인류를 앞으로 이끈 주인공이었다. 피라미드는 경이였고, 아테네는 이성과 자유의 요람이었으며, 로마는 법과 질서의 완성이었다. 중세는 신앙으로 어둠을 견뎠고, 근대 유럽은 과학과 이성으로 인류를 계몽했다. 나 역시 오랫동안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믿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문명의 현장들을 직접 걸어 보기 전까지는, 그 믿음을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 p.5~6 「프롤로그」중에서 학자들은 피라미드 건설 노동자들이 오히려 상당한 대우를 받은 숙련된 인부들이었고, 국가에서 식사와 의료까지 제공했다고 밝혔다. 노동자 마을 유적에서는 대규모 제빵소와 맥주 양조장이 발견되었으며, 매일 약 4,000개의 빵과 수천 리터의 맥주가 제공된 정황도 입증되었다. --- p.21 발굴된 서기관의 조각상을 보면 보통 가부좌를 틀거나,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다.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무릎 위에 펼쳐 놓았고, 손에는 갈대 펜을 쥐고 있다. 파피루스 〈서기관의 찬가〉에 “무기는 늙으나 펜은 늙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등장할 정도로, 서기관이란 직업은 영광스럽고 안정된 삶의 길로 여겨졌다. --- p.45 페리클레스(Perikles, 기원전 495년경~429년)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황금기를 이끈 정치가로, “모든 시민이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라는 이상을 주장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시민’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아테네 출신인 성인 남성만을 의미했다.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여성은 공적 삶에서 철저히 배제되었고, 투표권도, 토론권도, 공직 출마권도 없었다. 여성은 아고라에서 열리는 민회에 참석할 수 없었으며, 재판에서도 법적 대리인을 통해서만 발언할 수 있었다. --- p.81 현대의 시각에서 보면 델포이 아폴론 신전은 단순한 신전이 아니었다. 그곳은 고대 그리스 판 ‘여론 조작의 중심지’, 혹은 ‘신의 이름으로 포장된 권력의 방송국’이라 말할 수 있다. ‘신탁’이라 불린 그 신비로운 예언들은 사실상 가장 오래된 형태의 이데올로기 메시지였다. 그리스 문명이 이성과 합리의 산물이었다는 통념과 달리, 그 내부에는 언제나 ‘신의 이름으로 현실을 조율하는 정치적 장치’가 자리하고 있었다. --- p.112 가장 상징적인 사례는 명문가 출신이었던 티베리우스 그라쿠스(Tiberius Gracchus)다. 그는 기원전 133년 호민관에 선출되어, 부유한 귀족들이 불법적으로 점유하고 있던 국유지를 몰수해 무산 평민에게 재분배하는 토지 개혁을 추진했다. 그러나 원로원은 이를 자신의 기득권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였고, 그라쿠스를 ‘권력욕에 사로잡힌 선동가’로 몰아세웠다. 그의 개혁은 극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그는 신성한 정치 공간인 원로원 광장에서 원로원 측 인사들이 동원한 군중에게 살해당했다. 이는 로마 공화정 역사상 첫 정치적 암살로 기록되었다 --- p.123 콜로세움에서 열리는 검투사들의 피비린내 나는 경합은 대중의 분노와 폭력을 상징적 방식으로 대체시켜 주었고, 전차 경주는 도시를 상징하는 붉은색과 초록색 응원단으로 갈라져 일종의 정치적 팬덤을 형성했다. 이러한 오락은 무작위로 열리는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정치적 결정이나 논란이 있는 입법이 논의되는 날, 대규모 경기와 공연이 동시에 열리곤 했다. 이는 의도적으로 시민들의 관심을 정치에서 분산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 p.134 농노는 중세 유럽의 문명적 유산을 실질적으로 건설한 자들이었다. 고딕 성당 건축 현장에서 석재를 나른 자, 수도원의 농장을 가꾼 자, 성채와 성벽을 쌓은 자-이 모두가 농노였다. 그러나 그러한 문명의 상징물 속에 농노의 이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과 건축, 종교와 군사 모두에서 노동의 흔적은 지워지고, 오직 후원자와 설계자의 이름만이 전해진다. 이는 문명의 표면에서 실질적 기여자들이 어떻게 지워지는지를 보여 주는 상징적인 대목이다. --- p.182 교회는 정통 교리를 유지하기 위해 방대한 이단 심문 체계를 운영했다. 성경의 해석은 4세기 성 예로니모(히에로니무스, 제롬)가 그리스어를 라틴어로 번역한 불가타(Vulgata, 대중적인) 성경을 기준으로 정했고, 자국어 번역이나 자율적 해석은 이단으로 간주되었다. 12세기 말부터 본격화된 도미니코 수도회의 이단 심문은 교황청의 강력한 도구가 되었고, 단지 생각을 말한 것만으로도 심문과 처벌의 대상이 되었다 --- p.191 “이슬람은 알라를 믿는 종교다.” 이 짧은 문장은 언뜻 보기에 아무 문제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 속에는 언어의 오해, 종교의 단순화, 그리고 서구에서 들어온 기독교적 관념의 투사라는 세 겹의 함정이 숨어 있다. 종교를 설명할 때는 그 종교가 스스로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가려 하는지를 먼저 들어야 한다. 믿음이 중심인 종교도 있지만, 행위나 깨달음, 복종이 중심인 종교도 있기 때문이다. --- p.346 다 빈치와 그의 동업자들이 밀라노의 성모 마리아 교단으로부터 〈암굴의 성모〉를 의뢰받았을 때도 정확한 안료 색상과 액자 장식까지 계약서에 못 박혀 있었고, 이후 완성작이 계약과 다르다는 이유로 실제 소송으로까지 번져 수년간 대금 분쟁이 이어졌다. 미켈란젤로가 교황 율리오 2세로부터 시스티나 예배당 작업을 의뢰받았을 때도 총 대금은 3천 두카토로 협상되었고, 작업 도중 수차례 대금 지급이 지연되자 미켈란젤로가 직접 항의 편지를 보낸 기록까지 남아 있다. --- p.270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찍어 낸 인쇄물은 성경이 아니라 면벌부 양식지였다. 필사로 한 장씩 써야 했던 것을 인쇄기로 찍어 내자 교회는 훨씬 짧은 시간에 훨씬 많은 면벌부를 유통할 수 있게 되었다. 구매자의 이름과 날짜만 빈칸으로 남겨 두고 나머지 문구를 통째로 찍어 내는 방식이었으니, 사실상 오늘날의 정형화된 영수증 발급과 다르지 않았다. 인류를 계몽했다는 바로 그 기술이, 훗날 종교 개혁이 정면으로 비판하게 될 부패를 먼저 대량화하는 데 쓰인 셈이다. --- p.2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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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서양 문명’이라 알고 있었던 것들에 관한 46개의 질문
영화 〈오디세이〉에서 우리는 같은 것을 보고 있을까? AI 기술 혁신은 우리의 경험과 사유 체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지식과 정보의 시대가 가고 해석과 통찰의 시대가 왔다. 정답을 맞히는 시대가 가고 질문을 던지는 시대가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시대적 요구에 발을 맞추고 있다. 서양 문명을 비롯한 인류의 역사와 문명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상식의 권위에 도전하며,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동서양을 넘어 전 세계 수많은 관객이 영화 〈오디세이〉에 열광했다. 그러나 그들과 우리는 영화 속에서 과연 같은 것을 보고 있을까. 고대 그리스 문명은 서양인들이 자기 정체성의 뿌리이자 문명의 정수로 찬사를 바치는 문명이다. 하지만 서양의 경계 밖에 있는 이들에게도 그러할까. 내 머릿속에 어느새 자리 잡은 ‘서양 문명’에 관한 이미지는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나는 역사와 문명을 누구의 눈으로 보고 있을까. 《문명 덕후의 시간 탐험》은 이런 불편한 의문에서 시작된다. “화려한 유적 옆에는 언제나 말하지 않는 이야기가 있었다. 기록되지 않은 이름, 지워진 얼굴, 침묵당한 목소리가 유적의 그늘 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책에서 배운 역사와 현장에서 마주친 이야기 사이에는 미묘하지만 분명한 간극이 있었다.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은 대개 미화였다. 불편한 사실은 조용히 생략되고, 자랑스러운 서사만 골라 매끄럽게 이어붙인 역사. 나는 그것을 선택된 문명사라 부르기로 했다.” _프롤로그 중에서 저자는 ‘선택된 문명사’를 벗어나 그 속에 감추어진 이야기들을 찾아 나선다. 하트셉수트 여왕의 얼굴이 신전 벽에서 깎여 나간 흔적, 델포이 신탁이 실은 정치적 계산 위에서 움직였다는 사실, 콜로세움이 빵과 서커스를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란 것, 교회가 지켰다는 지식만큼이나 불태운 책이 많았다는 사실, 아랍과 베르베르 사이에 없던 경계선을 식민 지배가 새로 그어 놓았다는 사실, 그리고 만유인력을 발견한 과학자가 밤마다 성서의 숫자를 헤아리며 종말을 계산하고 있었다는 사실까지. 이처럼 어느 시대, 어느 문명에나 인간의 욕망은 시대의 흐름을 바꾸어 왔다. 누군가의 의도와 욕망에 따라 역사는 선별되었고, 서사는 계산되고 아름답게 치장되었다. 거대 권력이 해체되고 세계 질서가 재편되는 지금, 저자는 더 이상 만들어진 역사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더 이상 그 말들을 무비판적으로 떠받들 필요가 없다고 본다. 지난 한 세기 넘게 우리는 서양을 따라잡아야 할 모범으로만 배웠고, 그 결과 그들의 성취는 찬사로 기록됐지만 그 그림자는 침묵으로 남았다.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우리 스스로 문명을 이루고 기록하고 세계에 내놓을 만큼 자신감을 쌓아온 지금, 서양 문명을 있는 그대로, 비판적으로 바라볼 자격도 함께 얻었다. 비판적으로 본다는 것이 곧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떠받드는 자리에서 내려와, 동등한 눈높이에서 마주 보는 일이다.” _에필로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