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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책을 펴내며 옮긴이의 글 코덱스Codex I1. 사도 바울의 기도2. 야고보 비밀의 서3. 진리의 복음4. 부활론5. 삼부론코덱스Codex II6. 요한 비밀의 서7. 도마복음8. 빌립복음9. 아르콘들의 본질10. 세상의 기원11. 영혼의 해석12. 논쟁자 도마의 책코덱스Codex III13. 이집트인들의 복음14. 복된 자 유그노스토스15. 예수 그리스도의 소피아16. 구세주의 대화(요한 비밀의 서)코덱스Codex IV(요한 비밀의 서)(이집트인들의 복음)코덱스Codex V17. 바울의 묵시록18. 야고보의 제1묵시록19. 야고보의 제2묵시록20. 아담의 묵시록(복된 자 유그노스토스)코덱스Codex VI21. 베드로와 열두 사도의 행전22. 천둥, 완전한 마음23. 권위 있는 가르침24. 우리의 위대한 권능의 개념25. 플라톤의 『국가론』 588B-589B 26. 여덟 번째 세계와 아홉 번째 세계에 대한 가르침 27. 감사기도28. 아스클레피우스 21-29코덱스Codex VII29. 셈의 전언(傳言)30. 위대한 셋의 두 번째 글31. 베드로의 묵시록32. 실바누스의 가르침33. 셋의 세 기둥코덱스Codex VIII34. 조스트리아노스35. 빌립에게 보내는 베드로의 편지코덱스Codex IX36. 멜기세덱37. 노레아의 생각38. 진리의 증언코덱스Codex X39. 마르사네스 코덱스Codex XI40. 지식의 해석41~45. 발렌티누스파의 설명: 기름 부음에 대하여세례에 대하여 A와 B성만찬에 대하여 A와 B46. 알로게네스47. 휩시프로네코덱스Codex XII48. 섹스투스의 어록49. 단편(진리의 복음)코덱스Codex XIII50. 세 형상의 프로텐노이아(세상의 기원)BG(Berolinensis Gnosticus) 850251. 마리아 복음52. 베드로 행전(요한 비밀의 서)(예수 그리스도의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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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함마디 문서》는?나그함마디 문서는 1945년 이집트 나그함마디 마을 근처에서 발견된 초기 기독교 영지주의 복음서들이다. 12권의 가죽(으로) 장정된 파피루스 코덱스(Codex)가 밀봉된 항아리에 들어 있었는데, 이를 한 농부가 발견하였다. 문서에는 영지주의 문서 52편, 헤르메스주의 문헌(Hermetica) 문서 3편 그리고 플라톤의 《국가》의 번역본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코덱스는 나그함마디 마을 근처에 있었던 파코미아수도원에 있었는데 대주교 아타나시우스가 기원후 367년 정경으로 채택되지 못한 문서들에 대한 정죄를 시작함에 따라 이를 피해 묻혀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이 코덱스들의 문서들은 모두 콥트어로 쓰여져 있는데, 그리스어로 된 원본의 콥트어 번역본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예수의 어록만을 담고 있는 영지주의 복음서인 「도마복음서」와 영지주의의 우주론과 세계관을 보여주는 〈요한의 비밀 가르침〉 등이 있다. 현재 나그함마디 문서들은 모두 이집트 카이로의 콥트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위키백과)기원후 3~4세기에 사필된 13의 콥트어 파피루스 코덱스(고사본, 이하의 Cod. XII, I는 그 약호)로 이루어지며, 적어도 52의 문서를 포함한다. 그 대부분은 그노시스 문서인데, 그노시스와는 관계없는 그리스도교 문서, 특히 《신약성서 외전》(Cod. VI ①, VII ④), 헬레니즘 시대의 격언집(Cod. II), 나아가서는 플라톤 《국가》의 일부 콥트어역(Cod. VI ⑤)도 포함되어 있다. … 다른 47의 문서는 모두 그노시스 문서이다. 이들은 헤르메스 문서, 〈cod. VII ①〉, 〈cod. VIII ①〉, 〈cod. X ①〉는 그리스도교와 관계없는 그노시스문서, 다른 것은 모두 그리스도교 그노시스 문서에 해당한다. 종래 그노시스 원자료가 부족하여 그노시스 사상은 주로 교부들에 의한 반이단문학에서 간접적으로 복원되었다. 따라서 나그 하마디(나그함마디) 문서의 발견은 그노시스 사상의 연구에, 또한 초기 그리스도교에서의 정통(초기 가톨릭시즘)과 이단(그노시스파)과의 관계의 해명에 가장 중요한 원자료를 제공하게 되었다. (종교학대사전, 1998. 8. 20.)영지주의는 고대로부터 이른바 정통 그리스도교의 비판 대상이었으며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이들은 중세까지도 남프랑스와 북이탈리아에서 ‘카타리교’(Catharism)라는 형태로 그리스도교보다 더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으나 교황은 십자군을 동원하여 이들을 무참하게 파괴했다. 그들은 영지주의자들을 ‘이단’으로 탄압하고 처형했으며, 영지주의 문서를 불살랐다. 영지주의자들은 지하로 숨거나 사라졌다.그러나 영지주의의 영향은 역사 속에서 사라진 적이 없었다. 이슬람 신비주의자들인 수피들은 이슬람 영지주의자들이라고도 부른다. 그들은 영지주의를 받아들였으며, 특히 헤르메스 사상을 적극 수용했다. 유대교 신비주의인 카발라(정확히 말하자면 ‘카발리즘’)와 하시디즘은 영지주의의 영향으로 나타난 것이다. 일반적으로 간과하고 있는 것이지만, 중세 그리스도교 신비주의는 영지주의의 영향을 강력하게 받았다. ‘인간의 회복’을 주장한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그리스-로마의 고전 사상의 영향으로 나타났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 사상의 핵심에 플라톤 사상과 카발라와 헤르메스 사상이 있었다. 비잔틴 제국의 몰락과 함께 이탈리아로 전해진 〈헤르메스 문서〉는 이 운동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위에서 보았듯이 헤르메스 문서는 인간을 곧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으므로, 중세의 권위적인 신관과 세계관에 정면으로 대립하는 것이었다. 종교개혁 또한 단순히 루터가 신비주의의 영향으로 일으킨 것이 아니다. 그 배경에는 카발라와 헤르메스 사상이 있었다. 종교개혁자 로이힐린은 그리스도교 카발리스트였으며, 헤르메스 사상을 연구한 사람이었다.이제 우리는 《나그함마디 문서》를 발견함으로써, 영지주의를 단순히 그리스도교의 이단이 아니라 하나의 독특한 종교 사상 내지 신학으로 보게 되었다. 독자는 이 《나그함마디 문서》를 통해 그리스도교 영지주의의 진수를 맛볼 수 있으며, 하나님과 세계와 우리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나그함마디 문서》는 (1945년에) 발견된 이후 1970년에 들어서야 비로소 이집트 문화부와 유네스코가 사본의 형태로 출판하기 시작했으며, 미국 성서학자 제임스 로빈슨(James M. Robinson)을 필두로 세계 여러 학자가 각국의 언어로 번역하였다. 현재 『나그함마디 문서』는 세계 여러 나라말로 출판되어 있으며, 미국 영지주의 교단 웹사이트 등 많은 웹사이트에 콥트어 원본과 함께 번역본이 공개되어 있다. (옮긴이의 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