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문
제1장 분노가 불러온 탈출 일요일 아침에 날아온 전보 외교 고립을 자초한 북한 핵실험 북한 대사관의 안타까운 속사정 페루 대사와의 협상에 성공하다 부정으로 가득한 북한 사회에 분노를 느끼다 아내를 쇼크에 빠뜨린 탈북 제안 치밀한 탈출 계획 긴박했던 탈출 상황 “대한민국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제2장 나의 삶 부모님을 울린 김일성 사망 오보 남조선에서 대표단이 왔다고? 부러울 것 없는 유학 생활 일본 여성 공작원과의 만남 일주일 안에 쿠바를 떠나라 지방 추방 명령을 거부한 아버지 보위부 지하 취조실에 끌려가다 김일성 사망, 3년의 애도 기간 사랑을 꽃피운 대학 생활 고난을 넘어 결혼을 결정하다 제3장 북한 외교가의 숨겨진 이야기 높은 외무성 문턱을 넘다 외무성 인원을 축소한다고? 뇌물을 바쳐가며 버틴 당간부학교 “장군님의 중국 방문을 극비로 취급하라” 제네바에서 생긴 종기, 그리고 목발 멕시코 한인들을 치료한 북한 한의사 1차 북핵 실험의 날, 북한 주민들의 환호와 중국의 레드라인 고이즈미와 김정일의 만남, “회담 탁자에 물도 놓지 말 것” 꺾여버린 멕시코 파견의 꿈 캐나다 호텔방 바닥의 문서 한 장 통일교와 평화자동차의 서글픈 종말 외무성 입직 13년 만에 마침내 외교관이 되다 아바나의 합숙마을과 외부주택 김정일 사망, 3일의 짧은 애도 기간 쿠바 북한 대사관의 암투 불법 장사에 연루된 북한 외교관들, ‘넥타이 맨 꽃제비’ ‘청천강호’ 사건 제4장 내가 만난 김정은, 김정은의 사람들 김정은의 신뢰를 받은 소심한 인물, 최룡해 노련한 외교관 리용호, 외무상으로 임명되다 핵실험과 북한 외교관들의 시련 쿠바 대표단의 평양 방문이 무산될 뻔한 사연 쿠바 대통령 영접 준비와 어이없는 사업 분담 떨림 속에서 김정은과 대화를 나누다 “통역이 저런 거밖에 없소?” 북한의 노래방 폐쇄 사건 북한 간부들에게 교훈을 남긴 황병서의 좌천 량강도당 책임비서 리상원의 허위자백 사건 외무성 의례국장의 억울한 좌천 두 번 놓친 ‘영도전화’, 당 국제부에 밀린 외무성 “지적 말씀이 계셨소” 김정은 통역사들의 불우한 운명 공개 처형으로 사라진 외무성 간부들 외무성과 노동당 조직지도부의 탁구 경기 김정은 우상화를 낳은 ‘혁명일화’ 제2차 영화혁명 한국과 쿠바의 수교, 옛 우정은 역사의 뒤안길로 김씨 일가에 한평생 충성한 보기 드문 충성파, 김영남 김정은의 ‘두 국가론’과 한류의 역할 에필로그 |
|
들어가니 이미 김정은이 부인 리설주와 함께 나와 있었다. 내가 김정은을 한 공간에서 가까이 만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마치 신 가까이 선 것 같은 느낌과 흥분이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김정은과 리설주에게 ‘정중히’ 인사하고는 한쪽에 비켜서서 말을 걸면 대답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온몸이 긴장되었다.
김정은은 2015년 디아스 카넬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그를 만났던 이야기를 김영남 등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한참 이야기하더니 나와 김성남을 향해 물었다. “디아스 카넬이 타고 오는 비행기가 러시아 비행기요, 미국 비행기요?” 김성남은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대답하라는 뜻이었다. “원수님, 러시아에서 생산된 비행기입니다.” 그 말에 김정은이 대꾸했다. “그 사람들도 미국 제품은 못 쓰는 모양이구만.” “그렇습니다. 쿠바가 미국의 제재를 받다 보니 미국 제품은 쓰지 못합니다.” 내 대답을 듣고 김정은이 문득 물었다. “쿠바 사람들은 뭘 좋아하나?” 순간, 갑자기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질문이 음식을 의미하는지, 생활 방식을 뜻하는지 선뜻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미처 대답을 못 하자 김정은은 다른 질문을 던졌다. “쿠바는 인구가 얼마나 되오?” “원수님, 1,100여 만 명입니다.” 내 대답을 듣고 김정은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인구는 많지 않구만.” 그렇게 10분쯤 지나자 국제부 의례과장이 들어와 비행기가 곧 착륙한다고 김성남 부장에게 보고했고, 김성남 부장은 다시 김정은에게 보고했다. “원수님, 특별기가 곧 착륙한다고 합니다. 저는 실무 일꾼들을 데리고 현장에 나가겠습니다.” 김정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곧 나가겠소.” 김성남과 나는 김정은에게 다시 정중히 인사한 뒤 밖으로 나갔다. --- pp.284-286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은 핵폐기의 진정성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김정은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많은 양보를 얻어낼 수 있도록 핵실험장의 폐기를 의미 있게 진행할 것을 지시하고 그 과업을 외무성에 주었다. 외무성에서는 김계관 당시 외무성 1부상과 리태성 11호실 실장 등이 밤을 새워가면서 핵실험장 폐기에 관한 대책 문건을 완벽히 준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김정은이 핵실험장 폐기 문건 준비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밤 11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 외무성 1부상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시 1부상은 몸이 불편하여 사무실 안방에서 잠시 누워 쉬고 있었는데, 김정은에게서 걸려오는 ‘영도전화’ 벨소리를 듣고는 침대에서 일어나 다급히 전화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던 도중에 전화가 끊겼다. 통화가 되지 않자 김정은은 이어서 외무상 리용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외무상은 마침 그때 화장실에 있었다. 화장실에서 ‘영도전화’ 벨소리를 듣고 뛰어오다시피 했지만, 도중에 전화가 끊기고 말았다. 김정은은 곧바로 노동당 국제부 리수용 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지시했다. “내가 외무성 1부상과 외무상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누구도 받지 않는다. 외무성이 정말 규율이 없다. 이렇게 규율이 없어 가지고 미국과의 큰 싸움을 어떻게 감당해내겠나. 아무래도 이번 조미회담(북미회담)은 당 국제부가 맡아 해야겠다.” 사실 그날 내가 외무성 경비 책임자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에 나는 전반 상황을 잘 알고 있다. 원래 외무상이나 1부상이 자리를 비울 때는 서기가 전화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서기들은 밤 10시가 지나면 퇴근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전화를 받지 못한 것이다. 그날 1부상이나 외무상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전화를 받았다면 별일 없었을 것이다. 다음 날 조직지도부에서 내려와 상황을 요해하였는데, 외무상과 1부상 모두 퇴근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으므로 일단 처벌은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김정은이 북미회담 사령탑을 외무성으로부터 당 국제부로 옮기라고 이미 지시했으므로 외무상은 밤을 새워가며 만든 소중한 문건들을 모두 당 국제부에 넘겨야만 했다. 당 국제부는 외무성이 작성한 문건들을 거의 그대로 김정은에게 보고했다. 김정은은 그 문건을 받아보고 기분이 좋아 높이 평가했다. “역시 당이 규율이 있소. 내가 지시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이렇게 완벽한 문건을 만든 것을 보면 국제부에 일을 맡기길 잘한 것 같소.” 그것은 밤을 새워가며 문건을 작성했던 리태성 11호 실장이 땅을 치며 통탄할 일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한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이 무너진다. 이것이 바로 북한 체제의 실상이다. --- pp.317-319 먼저 군복무와 관련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정확한 부대 명칭은 알 수 없지만, 김정은은 탱크부대에서 일반 병사(사병)로 복무했다고 한다. 그가 처음 부대에 배치됐을 때, 남보다 훤칠한 체격이 부대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북한군에서는 병장 중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자를 사관장(부사관)이라 한다. 한국군의 병장에 해당하는 사관장의 군사 칭호는 상급병사이며, 그 아래로 중급병사(분대장), 초급병사, 하급병사 등이 있다. 사관장은 군인들의 대열 관리를 총책임지며, 부대의 양식과 피복 등을 총괄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장교들조차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핵심 사관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은이 처음 군에 배치됐을 때 그를 가장 괴롭힌 사람이 바로 이 부대의 사관장이었다. 사관장은 김정은에게 고향과 부모 등에 대해 물었다. 김정은은 고향은 평양이며,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고, 회사 사장을 하는 외삼촌 손에서 자랐다고 말했다. 사관장은 김정은이 평양 출신이라는 것과 외삼촌이 회사 사장을 한다는 사실에 상당히 거부감을 느꼈던 것 같다. 사실 평양에 산다고 해서 누구나 호의호식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방에서 외화벌이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평양시 주민보다 훨씬 부유하게 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당시 북한에서 수도와 지방의 격차는 하늘과 땅만큼 컸다. 그러다 보니 지방 사람들은 평양 사람들을 부러워하다 못해 미워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사관장은 김정은에게 도둑질까지 시키고, 부대 안에서 온갖 잡일을 시키며 괴롭혔다고 한다. 반면, 김정은이 소속된 분대의 분대장은 그를 감싸주었다. 체격만 클 뿐 상당히 순진하고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잘 모르는 김정은이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분대장은 사관장에게 매를 맞고 서러워하는 김정은을 따로 챙겨둔 음식을 내주며 달래기도 했다. 부대에서 아무리 학대를 받아도 자신이 ‘장군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힐 수 없었던 김정은의 마음도 참 서글펐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고생을 감내할 수 있을 만큼 강한 의지력의 소유자였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약 1년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부대에서는 김정은에게 외삼촌을 통해 부대에 필요한 물자를 구입해 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귀가를 승인받은 김정은 옆에는 분대장이 동행했다. 평양에 도착한 김정은은 공중전화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10분 정도 지나자 2.16(지금의 7.27) 숫자가 표기된 검은색 벤츠 한 대가 나타났다. 보통 북한에서 2.16은 당중앙위원회 위원(후보위원 포함) 이상의 중요 간부들에게만 배정되는 번호다. 차에서 내린 중년의 간부는 김정은에게 정중히 인사한 뒤 그를 차로 ‘모셨다’. 김정은은 당황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분대장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간 나를 돌봐주느라고 수고가 많았습니다. 오늘로 나의 군사복무 기간은 끝났습니다. 내가 지시해놓을 테니 평양에 체류하는 동안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훗날 제가 분대장 동지를 꼭 찾겠습니다.” 그러고는 깍듯이 인사를 했다. --- pp.338-340 |
|
“내가 책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는 하나다. 나는 고위층의 삶도 인생 막바지의 인생도 모두 경험해본 사람이다. 내가 경험한 북한 주민들의 삶, 특히 고위층 내부의 권력투쟁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모두에게 알리고 싶다.”
_ 「서문」 중에서 ‘북한 고위급 외교 인사’의 탈북으로 주목받은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이일규 참사가 20년 이상 외교관으로서 직접 목격한 북한 정권의 알려지지 않은 내밀한 스토리부터 외교 비화, 그리고 긴박했던 ‘북한 탈출기’를 『내가 본 김정은-북한 외교관의 탈북 스토리』라는 이름으로 전격 공개했다. 그의 스토리는 일본에서 『내가 본 김정은 - 북한 망명 외교관의 수기』라는 이름으로 먼저 출간돼 1만 권 이상 판매되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해당 내용은 그가 최근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직접 출연해 일부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일규는 1972년 평양에서 태어나 부모의 성분 덕에 알제리와 쿠바에서 8년간 유학하고, 명문대인 평양외국어학원과 평양외국어대학을 나와 외무성에 입직했다. 입직 8년 만인 2008년 꿈에도 그리던 노동당에 입당했고, 3년 만인 2011년 9월 다음 목표인 ‘해외 파견’까지 이루었다. 그는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3등 서기관(대외직급 1등 서기관)으로 임명돼 가족과 함께 쿠바에서 4년 4개월간 근무했다. 임기 동안 북한 선박 ‘청천강호’ 파나마 억류 사건을 성공적으로 해결해 ‘김정은표창장’도 받았다. 2016년 2월 귀국해 외무성 1국(정책종합국) 과장으로 임명됐고, 몇 개월 뒤 아라국(아프리카·아랍·라틴아메리카) 부국장으로 승진했다. 힘 없고 배경도 없어서 남들보다 뒤늦게 천천히 출발했지만, 불과 마흔넷의 나이에 북한 외무성에서 가장 젊은 부국장 겸 당 세포비서가 됐다. 부국장으로 일하면서 쿠바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현장에서 지휘하며 김정은과 직접 만났으며, 당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최룡해 노동당 조직비서, 리용호 외무상 등 대한민국 국민에게도 익숙한 최고위급 인물들의 외국 방문도 직접 설계하고 동행했다. 2019년 3월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정치참사 겸 세포비서로 임명돼 다시 쿠바로 향했고, 4년 8개월간 근무하다 2023년 11월 탈북에 성공했다. 50년 이상을 체제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며 열심히 살아온 저자는 왜 ‘출세’와 ‘성공’이 보장된 북한 체제를 버리고 치열한 생존경쟁이 기다리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택했을까? 고위층의 삶도, 인생 막바지의 인생도 모두 경험해본 저자는 그 기막힌 사연을 구체적으로 풀어놓고 북한 주민들의 삶, 특히 고위층 내부의 권력투쟁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그야말로 긴박했던 탈북 상황을, 저자는 제1장 「분노가 불러온 탈출」에서 공개한다. 부정으로 가득해 열심히 일할수록 가난과 고립만 더해가는 북한 사회에 분노를 느낀 저자는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근무지였던 쿠바에서 치밀하게 탈출 계획을 세운 뒤, 한밤중에 가족들에게 통보하고 그 즉시 짐을 싸 탈출을 감행한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던지 외교관증과 집 열쇠, 자금이 든 가방도 챙기지 못해 낭패를 겪기도 했다. 가까스로 출국 수속을 통과해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까지 남은 1시간은 저자에게 몇 년과도 같았다. 북한대사관 사람들이 눈치채고 잡으러 올까 봐 시계를 백 번은 확인했다. 저자는 그때 자기도 모르게 기도했는데 단 한 번도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믿어본 적 없었던 저자였지만, 생사의 위기 순간 의지할 데도 없고 기도를 어떻게 하는 줄도 몰랐지만, 그저 눈을 꼭 감고 두 손을 모아 쥔 채 같은 말만 반복했다고 한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내 가족을 보호해주십시오. 한 번만 도와주시면 일생 열심히 살겠습니다.’ 이일규 가족은 제3국 공항에서 정치망명을 신청하고 대한민국 대사를 만났고, 인천공항행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고 탈출 48시간 만에 마침내 대한민국에 도착했다. 제2장 「나의 삶」도 우리가 쉽게 경험하거나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3년간의 알제리 생활을 마치고 1987년 귀국해 평양외국어대 프랑스어과에 입학한 저자는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석한 한국 대학생 임수경 씨를 통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국 사람을 만난 경험과 당시 북한의 분위기도 생생히 들려준다. 아버지를 따라간 쿠바 유학 기간은 저자에게 가장 행복하고 잊을 수 없는 나날이었다. 북한에 납치돼 공작원으로 활동하던 일본인 여성과 만나는 경험도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누명을 쓰고 소환되면서 다시 북한으로 돌아와야 했고, 지방 추방 명령을 거부하던 아버지는 무려 7개월 동안 보위부 지하 취조실에서 조사를 받고 나서야 가까스로 풀려났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외국어학원에 다시 복학해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하기까지의 이야기도 담았다. 제3장 「북한 외교가의 숨겨진 이야기」에서는 1999년 외무성에 입직해 탈출 직전까지 이어진 외교관 생활을 회고한다. 저자가 북한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집안 배경도 가진 돈도 부족하다 보니 실력만큼 능력을 발휘할 기회도 자리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외무성은 그런 ‘텃세’가 가장 심한 곳이었다. 저자는 “북한 사회에는 여러 문제가 있지만, 그중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바로 노동에 대한 보수, 노력에 대한 평가가 공정하게 이루어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국가가 인간의 노력을 공정하게 평가해주지 않으니 온갖 부정부패, 권력남용 같은 사회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한다. 북한 외교에서 ‘핵무기’ 이슈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였는지도 저자의 경험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핵실험 후 국제사회의 규탄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그들이 활동할 외교 무대는 계속 좁아졌으며, 이는 천안함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캐나다 외교부는 2010년 초 북한 외무성이 오랫동안 제기했던 북한대사관 설립을 위한 대표단 파견에 동의한다는 각서를 보내왔지만, 막상 캐나다에 파견된 북한 대표단을 향해 천안함 사건을 강력 규탄하며 일절 협상이나 논의를 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저자는 “무모한 도발은 국제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게 될 뿐”이라는 교훈을 북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말한다. 저자는 김정일의 중국 방문을 전 세계가 알 때도 정작 북한 주민들에게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던 사실도 들려준다. 그사이 쿠데타가 일어날까 염려해서다. 저자는 이 아이러니한 북한의 비밀 관념이 오히려 체제의 불안정성을 방증한다고 꼬집는다. 저자는 아버지의 ‘혁명화’ 경력으로 외무성 입직 13년 만인 2011년에야 주쿠바 북한대사관 3등 서기관으로 임명돼 진정한 외교관이 됐다. 쿠바대사관에서는 처음 카리브공동체 회원국 14개국 포함 중남미 지역 17개국과의 관계를 주 업무로 했지만, 외교관들과 직원들이 ‘대사파’와 ‘당비서파’로 갈려 서로 시기하고 질투해 몸싸움까지 벌이는 일도 경험했다. 북한 특유의 감시 체계 때문에 대사에게 전권이 주어지지 않는 까닭이다. 저자가 한국 미디어에서 여러 차례 밝혔듯 북한 외교관들은 허울만 좋을 뿐, ‘넥타이 맨 꽃제비(거지)’에 불과한 현실도 이 책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다. 외교관이면 누구나 불법 장사에 연루돼 있고, 충성자금·지원자금·기금헌금 등 갖가지 명목으로 북한 정권에 수탈당한다. 저자는 “불우한 처지를 한탄하면서도 강요받은 ‘충성심’을 지키며 정권 유지를 위해 지혜와 정열을 바치는 그들이 참 안쓰럽다”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살았으니 그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외에도 북한과 쿠바 관계에 냉각기를 가져온 중대 사건, 즉 쿠바에서 설탕을 싣고 파나마운하를 경유해 북한으로 가던 ‘청천강호’가 파나마 당국에 억류됐던 사건의 해결을 주도한 과정도 상세히 기록했다. 저자는 이 사건을 해결한 공로로 ‘김정은표창장’까지 받았다. 아울러 이 사건을 해결하면서 부분적으로 알게 된 장성택 사건의 뒷이야기도 들려준다. 당시 쿠바 대사는 장성택의 매제인 전영진이었는데, 그는 저자와 함께 긴급 본국 소환 지시를 받았다. 결국 전영진이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 사실을 전하면서, 저자는 “한 사람의 잘못으로 아무 죄도 없는 일가친척과 지인들까지 무참히 희생되는 북한 특유의 연좌제가 없어지고, 그 땅에도 자유와 민주주의의 꽃이 필 날을 학수고대한다”는 바람을 적었다. 저자의 북한 외무성 ‘갓생 직장생활’부터 북한 외교가의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긴박했던 탈북 스토리도 흥미진진하지만, 제4장 「내가 만난 김정은, 김정은의 사람들」에서는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북한 최고위급의 말과 생각이 담긴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이 장에는 김정은의 신뢰를 받은 소심한 인물 최룡해, 노련한 외교관으로서 외무상에까지 임명된 리용호 등과 함께 저자가 쿠바 대표단의 평양 방문을 준비하며 가까이에서 만난 김정은과의 일화도 담겨 있다. 2018년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 행사에 쿠바 고위급 대표단이 초청되었고, 저자는 쿠바 부통령 대표단 지휘를 맡았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돌발 난제를 해결하는 한편, 두 달 뒤 쿠바 미겔 디아스 카넬 대통령의 평양 방문까지 준비하며 김정은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북한과의 혈맹 관계를 과시하던 쿠바는 2024년, 결국 대한민국과 수교하기에 이른다. 저자는 “북한이 아무리 ‘혁명적 원칙과 동지적 의리’라는 말을 반복하며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옛 우정으로 쿠바의 발목을 잡으려 안간힘을 써도,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허물기에는 역부족”이라며, “그것이 ‘역사의 대세’가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4장에는 이 밖에도 2018년 북한 체제가 노래방을 일제히 폐쇄한 사건과 그 배경, 장성택 이후 날로 위세를 더해가던 황병서가 보고 시 단어 2~3개를 잘못 썼다가 청소부로 좌천된 사건, 량강도당 책임비서 리상원의 허위자백 사건, 피치 못할 사정으로 김정은의 전화를 받지 못해 외무성이 당 국제부에 밀려버린 일과 공개 처형으로 사라진 외무성 간부들, 김정은 통역사들의 불우한 운명, 외무성과 노동당 조직지도부의 탁구 경기 등 다양한 북한 내부 이야기와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한편,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북한 내 소문도 소개하고 있다. 바로 ‘김정은 우상화’를 낳은 혁명일화다. 사실인지는 확인 불가능하지만 김정은은 일반 사병으로 배치되었는데, 1년 6개월 복무 중 그를 따뜻하게 대해준 분대장은 그의 ‘특별지시’로 김일성종합대학에 추천받은 반면, 그를 괴롭히던 사관장은 후일 자살을 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심금을 울리는 혁명일화’들을 여럿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이 밖에도 김정은과 관련된 일화는 많지만, 그 모든 일화들이 그의 실제 모습을 반영한 것인지 아니면 ‘애민 지도자’로서의 우상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선전 조작인지는 알 수 없다”며 “분명한 것은, 주민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이런 이야기들은 김정은이라는 새로운 지도자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 이야기들은 단순한 소문으로 끝나지 않고, 인간적 면모와 애민정신을 세뇌하는 ‘혁명일화’로 기록됐다. 이것이 북한식 우상화의 뒤에 숨은 현실”이라며 “김씨 일가의 ‘혁명일화’는 대부분 그렇게 만들어지고 유통되면서 ‘위대한 수령’의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역사에 기록으로 남는다”고 적었다. 끝으로 “이제라도 한국에 정착해 남은 인생을 천국과 같은 세상에서 살 수 있지만, 아직도 북한 땅에서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을 나의 동료들과 친척들, 2,500만 북한 동포를 생각하면 나는 행운아라고 자부한다”며, “죄라면 그저 북한 땅에서 태어난 죄밖에 없는 불쌍한 북녘 동포들을 생각하며, 그들도 하루빨리 인간의 존엄과 자유, 민주주의, 유족(有足)하고 문명한 생활이 보장되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그날을 앞당기는 길에 내 남은 생을 바치고 싶다”는 희망을 남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