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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01_ 왕손 시절 제1절 세종 탄생 전 제2절 세종 역사 시작 제3절 왕자 시절 02_ 세자 충녕과 등극 제1절 세자가 된 충녕대군 제2절 등극 03_ 조선의 이원집정제 제1절 부자가 나눈 왕권 제2절 백성과 나라 제3절 진정한 임금이 되다 제4절 세종의 깊은 고뇌 제5절 천애 고아인 손자 04_ 훈민정음으로 백성을 받들다 제1절 성공적인 문자혁명 제2절 버킷리스트 완성 제3절 죽음을 대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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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중국 대학에서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한 학생의 질문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는 “훈민정음 이전에는 한국어가 없었느냐?”고 물었습니다. 물론 특유의 비하하는 의미도 들어 있었지요. 훈민정음(訓民正音), 즉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을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질문이었습니다.
--- p.3 세종실록을 살필수록 훈민정음은 1,000년 조선을 향한 세종의 꿈이 실린 교과서로 다가옵니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혼돈한 지금, 솔선수범한 세종의 통치 철학을 본받을 때입니다. --- p.6 세종은 현재의 서울인 한성에서 태어난 첫 임금이다. 세종이 왕위에 오르기까지는 극적인 반전과 ‘국가 우선’의 위대한 결정이 이어졌다. 태종은 장자 상속을 내세운 유교 원칙을, 왕위계승의 순서를 국가를 위해 과감하게 접었다. 왕이 될 수 없었던 충녕은 태종의 결단으로 임금이 되어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 p.13 태조 4년(1395년) 봄이다. 궁궐 공사가 한창 진행되던 5월에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중으로 가장해 조선을 정탐하러 온 중국(요동) 사람이 붙잡혔다. 그는 “명나라가 조선을 치려 한다.”는 가짜 뉴스를 퍼뜨리며 조선의 민심을 뒤흔들었다. 소위 말하는 인지전이었다. 태조는 가차 없이 요동 사람을 참형에 처했다. 군 최고통치자로서 국가 안보를 위해 인정이나 미련을 둘 수 없었다. --- p.18 조선을 위해 세자를 교체했다. 수많은 사람 목을 베면서도 눈도 깜박하지 않던 그였다. 임금이 되면서 흘린 피눈물을 아들 때문에 또 흘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마음을 다잡았다. 그의 흔들림은 곧 조선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현명한 충녕이 뒤를 받치고 있었다. --- p.107 부자가 왕권을 나눴다. 태종의 본심은 조선의 왕실을 튼튼하게 다지고, 아버지와 자신도 못 했던 일을 성사시키려는 것이었다. 자기 생전에 이뤄야 중국에게 당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세종은 평생 법치를 위해 노심초사했다. 짧은 기간 세자라서 서연을 흉내만 냈다. 이것이 오히려 임금 노릇을 하면서 큰 보탬이 되었다. 판서를 임명할 때 신하에게 부서를 사정했고, 편법으로 부서가 필요 없는 기관에 배치하기도 했다. 세종은 사가독서제 등 인재를 기르는 일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 p.127 임금의 평생 꿈이 이루어졌다. 조선 백성은 하늘이다. 人乃天. 이 말을 하고 싶어 평생을 무던히도 참았다. 그리고는 훈민정음 해례본에 은근슬쩍 숨겨 두었다. 한나절이면 배울 수 있는 글자다. 백성을 가르쳐야 한다는 속앓이를 그만해도 됐다. 섣불리 중국을 자극하지 마라. 하늘을 내세우면 중국이 발끈할 것이다. 훈민정음을 가르치려 힘쓰지 마라. 저절로 배우고 쓰게 되며 전수될 것이다. 백성의 삶만 보살피면 된다. 세종이 후세에 전하는 가르침이다. --- p.2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