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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이승만 독트린
정읍선언 대한민국의 위대한 시작 EPUB
인보길
기파랑 202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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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길을 떠나며
1. 얄타의 30분
2. 나라 찾기 폭로전
3. 스탈린과 38선
4. 미국의 귀국 방해
5. ‘분단의 원흉’은 누구?
6. 귀국 제일성 “소련 추방 자주통일”
7. 정읍 선언의 국제정치학
8. 스탈린과 김구
9. “하나님이 세운 나라”
나가며_‘이승만 독트린’은 말한다
참고문헌

저자 소개 1

印輔吉

1940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신문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미 하와이대 동서문화센터를 수료했다. 조선일보 기자로 편집부장, 문화부장, 편집부국장, 편집국장, 논설위원, CTS본부장, 상무이사 뉴미디어연구소장, 종합미디어본부장 등을 지냈고, 디지틀 조선일보 대표이사로서 한국 최초의 인터넷신문을 창간했다. 서울시문화상, 우남애국상 등을 수상했다. 엮은 책으로 『이승만 다시 보기』(2011)가 있다. 현재 인터넷 미디어그룹 뉴데일리(newdaily.co.kr) 대표 회장, 건국이념보급회 회장, 이승만 포럼 공동대표로 있으며, 유튜브
1940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신문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미 하와이대 동서문화센터를 수료했다. 조선일보 기자로 편집부장, 문화부장, 편집부국장, 편집국장, 논설위원, CTS본부장, 상무이사 뉴미디어연구소장, 종합미디어본부장 등을 지냈고, 디지틀 조선일보 대표이사로서 한국 최초의 인터넷신문을 창간했다. 서울시문화상, 우남애국상 등을 수상했다. 엮은 책으로 『이승만 다시 보기』(2011)가 있다. 현재 인터넷 미디어그룹 뉴데일리(newdaily.co.kr) 대표 회장, 건국이념보급회 회장, 이승만 포럼 공동대표로 있으며, 유튜브 채널 ‘인보길의 우남 이야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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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8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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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52.28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2.3만자, 약 3.6만 단어, A4 약 78쪽 ?
ISBN13
9788965234494

출판사 리뷰

분단의 원흉은 누구인가

한반도 분단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2차대전 종전(終戰) 직전 미국이 제안하고 소련이 수용한 38선이다. 미국은 왜 38선을 그었나?
소련은 사실 2차대전에서 함께 피를 흘린 연합국도 아니었다. 전쟁 막바지에야 ‘무늬만 연합군’으로 가세한 소련은 독일과 이탈리아가 패망하자마자 폴란드를 시작으로 동유럽부터 공산화해 나가고 있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의 항복까지 기정사실화 되자, 소련은 재빨리 한반도를 향해 군대를 진격시키기 시작했다. ‘한반도의 폴란드화’를 막으려는 미국이 부랴부랴 저지선으로 그은 것이 38선이다. 이미 개성을 넘어 서울을 코앞에 두고 있던 소련은 미국의 원자탄이 무서워 울며 겨자 먹기로 38선 너머로 물러났다. 아직 미군이 한반도에 진주하기도 전의 일이다.
소련은 1945년 9월에 38선을 봉쇄해 사람과 물자의 통행을 막았다. 이때부터 6·25전쟁이 끝나는 1953년 7월까지 8년 동안, 북에서 남으로 향하는 대규모 피난 행렬 얘기는 수없이 많아도 남에서 북으로 향하는 피난 대열 얘기는 없다는 사실이, 38선 이북은 당시 이미 다른 세상이었음을 웅변한다.

대한민국은 ‘강요된 차선’이었다

정읍 선언에서 이승만은 “세계 공론에 호소”하자고 했다. 그 결실이 1년 5개월여 뒤, 1947년 11월 유엔총회의 ‘한국 결의안’이다. 결의안대로면 한반도에서는 1948년 3월 31일 이전에 총선거를 실시해야 했다. 알다시피 총선은 그해 5월 10일에야, 북한 전역과 제주도를 제외한 지역에서만 실시될 수 있었다. 그 이유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알고도 제 입으로 말 못 하는 사람을 위해 다시 불러 준다. 북한은 총선거를 거부했고, 제주도는 공산 폭동으로 할 수 없었다. 남한만의 총선거는 이승만과 대한민국 국민의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강요된 차선(次善)’이었다.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선포 후 그해 12월 유엔 총회가 대한민국을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로 승인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 모든 일이 1946년 정읍 선언의, “통일정부를 고대하나 여의치 않으니”라는 상황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정읍 선언’ 후 80년이 흘렀다. ‘강요된 차선’은 돌이켜보면 ‘선택 가능했던 최선’이 아니었을까? 두 가지를 자문(自問)해 보면 안다.
첫째, ‘소련 치하의 공산 통일’이 되었더라면 우리는 지금 ‘반쪽만의 자유’보다 더 행복했을까?
둘째, 만약에 다시 태어나야 한다면 한국을 포함한 다음 여섯 나라 중 어느 나라 순서로 태어나고 싶은가? (1)한국 (2)미국 (3)일본 (4)중국 (6)러시아 (6)북한
『이승만 독트린』을 읽고 나면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위 질문의 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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