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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떠나며1. 얄타의 30분2. 나라 찾기 폭로전3. 스탈린과 38선4. 미국의 귀국 방해5. ‘분단의 원흉’은 누구?6. 귀국 제일성 “소련 추방 자주통일”7. 정읍 선언의 국제정치학8. 스탈린과 김구9. “하나님이 세운 나라”나가며_‘이승만 독트린’은 말한다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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印輔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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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원흉은 누구인가한반도 분단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2차대전 종전(終戰) 직전 미국이 제안하고 소련이 수용한 38선이다. 미국은 왜 38선을 그었나?소련은 사실 2차대전에서 함께 피를 흘린 연합국도 아니었다. 전쟁 막바지에야 ‘무늬만 연합군’으로 가세한 소련은 독일과 이탈리아가 패망하자마자 폴란드를 시작으로 동유럽부터 공산화해 나가고 있었다.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의 항복까지 기정사실화 되자, 소련은 재빨리 한반도를 향해 군대를 진격시키기 시작했다. ‘한반도의 폴란드화’를 막으려는 미국이 부랴부랴 저지선으로 그은 것이 38선이다. 이미 개성을 넘어 서울을 코앞에 두고 있던 소련은 미국의 원자탄이 무서워 울며 겨자 먹기로 38선 너머로 물러났다. 아직 미군이 한반도에 진주하기도 전의 일이다.소련은 1945년 9월에 38선을 봉쇄해 사람과 물자의 통행을 막았다. 이때부터 6·25전쟁이 끝나는 1953년 7월까지 8년 동안, 북에서 남으로 향하는 대규모 피난 행렬 얘기는 수없이 많아도 남에서 북으로 향하는 피난 대열 얘기는 없다는 사실이, 38선 이북은 당시 이미 다른 세상이었음을 웅변한다.대한민국은 ‘강요된 차선’이었다정읍 선언에서 이승만은 “세계 공론에 호소”하자고 했다. 그 결실이 1년 5개월여 뒤, 1947년 11월 유엔총회의 ‘한국 결의안’이다. 결의안대로면 한반도에서는 1948년 3월 31일 이전에 총선거를 실시해야 했다. 알다시피 총선은 그해 5월 10일에야, 북한 전역과 제주도를 제외한 지역에서만 실시될 수 있었다. 그 이유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알고도 제 입으로 말 못 하는 사람을 위해 다시 불러 준다. 북한은 총선거를 거부했고, 제주도는 공산 폭동으로 할 수 없었다. 남한만의 총선거는 이승만과 대한민국 국민의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강요된 차선(次善)’이었다.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선포 후 그해 12월 유엔 총회가 대한민국을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로 승인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 모든 일이 1946년 정읍 선언의, “통일정부를 고대하나 여의치 않으니”라는 상황 인식에서 비롯되었다.‘정읍 선언’ 후 80년이 흘렀다. ‘강요된 차선’은 돌이켜보면 ‘선택 가능했던 최선’이 아니었을까? 두 가지를 자문(自問)해 보면 안다.첫째, ‘소련 치하의 공산 통일’이 되었더라면 우리는 지금 ‘반쪽만의 자유’보다 더 행복했을까?둘째, 만약에 다시 태어나야 한다면 한국을 포함한 다음 여섯 나라 중 어느 나라 순서로 태어나고 싶은가? (1)한국 (2)미국 (3)일본 (4)중국 (6)러시아 (6)북한『이승만 독트린』을 읽고 나면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위 질문의 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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