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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도서 한국 축구의 영웅들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 7인 열전
대한축구협회 편
판매자
charis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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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김용식
불꽃처럼 살다 간 '축구의 신' - 정태륭
한국 축구 1세기를 대표하다 - 이의재

2. 홍덕영
한국의 골대를 온몸으로 지킨 수문장 - 류송아
한국 축구사와 함께한 영욕의 세월 - 조동표

3. 이회택
불세출의 스트라이커 - 김경세
당신은 제 꿈이었습니다 - 홍명보

4. 차범근
한국 축구의 새로운 희망을 꿈꾸며 - 차범근
축구밖에 모르는 차범근 - 서기원

5. 김화집
수많은 거목을 키운 축구 살림꾼 - 이연철
뿌리가 되고, 거름이 되어 - 장원재

6. 히딩크
한국 축구의 새 지평을 연 명장 - 김경주
4800만 명을 '주목'시킨 특별한 친구 - 이갑진

7. 정몽준
한국 축구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축구 행정가 - 김정산
꿈을 이루어 낸 행운의 사나이 - 이홍구

부록
한국 축구 100년사
2002 한-일 월드컵 유치 및 준비 약사

품목정보

발행일
2005년 06월 25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359쪽 | 682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59244843

출판사 리뷰

축구 명예의 전당 : 선수 부분

● 김용식(1910~1985)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본선 일본 대표 팀의 유일한 한국 선수!
43세까지 현역 선수 생활!
수차례 국가 대표팀의 코치와 감독 역임!
흉내 낼 수 없는 1만일 간의 개인기 훈련!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축구인 중에서 김용식을 능가하는 경력을 가진 인물은 단연코 없다. 경력뿐만 아니라 그보다 축구를 사랑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부와 명예를 가볍게 버리고 축구를 택한 김용식. 누군가는 그에게 있어 ‘축구는 역마살이다’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김용식에게 축구는 구도의 길에 가까웠다. 명예의 전당 헌액자 선발에서 가장 먼저 고려되고, 어떠한 이의도 없었던 인물이 바로 김용식이다.


● 홍덕영(1921~ )
1948년 런던올림픽 스웨덴 전 0:12 패!
1954 스위스월드컵 헝가리 전 0:9 패!

누군가는 한숨을 쉬며, 또 누군가는 웃음을 머금고 얘기한다. 그러나 골키퍼로서 홍덕영은 가슴에 피멍이 들도록 한국 축구 유년기의 골대를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전차 한번 잘못 타 축구에 발을 들여 놓았던 그였지만, 그는 평생 축구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선수생활 이후에도 그는 지도자로서 행정가로서 축구계의 영원한 골키퍼였다.


● 이회택(1946년~ )
모든 선수는 땀 흘린만큼 성장한다.
그렇지만 스트라이커는 노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스트라이커는 태어나는 것이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펠레와 에우제비오를 상대로 골을 기록한 이회택. 그의 뒤를 이어 차범근 - 최순호 - 황선홍 - 박주영으로 이어지는 스트라이커의 계보가 쓰여졌다. 오로지 축구를 한 덕분에 그는 평생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아버지와 북한에서 해후하게 된다. 그는 다시 태어나도 축구를 택하겠다고 한다.


● 차범근(1953년~ )
“한국에서 축구를 하는 사람들에게 차범근은 ‘넘고 싶은 산’이었다.
나는 그게 늘 괴로웠다. 그래서 독일은 참 편했다. 그러나 이제는
나를 넘고 싶어 하는 그들에게 등을 구부려 갖다 대어주고 싶다.” - 차범근

‘20세기 세계 축구를 움직인 100인(영국 월드사커).’ UEFA컵을 두 번이나 차지한 최초의 한국인. 한국 축구 선수 중 가장 화려한 세계의 찬사를 받은 차범근.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풀어 놓았다. 1998 프랑스 월드컵 본선 등 자신의 축구 인생에서 ‘가장 아팠던 부분’에 대해서도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이제 그는 자신의 영광을 바닥에 놓고 감사의 마음을 세상에 돌려주고 싶다고 말한다.


축구 명예의 전당 : 공헌자 부분

● 김화집(1909년~ )
김화집은 한국 축구의 뿌리와 거름 노릇을 자임했던 인물이다.
사람들이야 낙락장송의 우람하고 꿋꿋한 그루터기에 감탄하겠지만,
나무를 지탱하고 있는 뿌리야 어디 모습을 밖으로 드러내던가.

축구 선수로서의 화려함은 그의 몫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국 축구의 성장기에 꼭 필요한 역할을 담당한 사람이 김화집이다. 1949년 한국 최초로 여자 축구팀 창단(중앙여중)을 창단했고, 같은 해 한국 최초의 여자 축구대회를 개최했다. 20여 년간 심판 활동을 해오던 그는 1951년에 한국 최초로 FIFA 국제심판 자격 취득을 취득했다.


● 히딩크(1946년~ )
놀라운 것은 그 이방인이 한국이란 나라와 깊은 관련을 맺은 것은
고작 1년 6개월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방인은 그 어떤 한국인 못지않은 찬양을 받고 있다.

대표 팀 선수들에게 그는 얄미운 여우였고, 때로는 무서운 호랑이였고, 지금은 전 국민이 사랑하는 귀여운 곰이다. 하멜 이후로 한국인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네덜란드인. 사람들은 그를 복잡하게 생각하지만, 그는 단순하게 인생을 살아왔다. 히딩크는 자신의 일을 사랑한 사람일뿐이다.


● 정몽준(1951년~ )
“그 꿈만 같던 민족의 큰 잔치는
온 국민의 바람과 열의를 한 덩어리로 뭉쳐 만들어낸 영광의 무대였다.
그러나 ‘정몽준이 빠진 2002월드컵’은 있을 수 없었다고 나는 믿고 있다.”
- 이홍구 전 국무총리

대한민국이 열광한 2002 한-일 월드컵 4강의 드라마 뒤에는, 월드컵 유치를 위한 극적인 반전 드라마가 존재했다. 정몽준은 단순 계산으로 지구를 서른여덟 바퀴나 돌 만큼의 어마어마한 거리를 돌아다니며 기어코 월드컵을 유치했다. 그가 월드컵을 유치한다고 했을 때, 전 세계가 어림없다고 말했다. 물론 한국의 여론도 그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정몽준은 대한민국의 불가능한 꿈을 현실로 이루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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